Das Leben




>Die wahre Geschichte des Geistes ist nicht in gelehrten Büchern aufbewahrt,
sondern in dem lebenden seelischen Organismus jedes einzelnen.<
Carl Gustav Jung, GW XI, 37


2008/10/21 (01:32) from 121.88.105.154' of 121.88.105.154' Article Number :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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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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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얼까. 예배 드리고, 성경말씀 배우고,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 혹은 사업을 위해 가기도 하고, 혹은 1주일간 때낀 양심 세탁을 위해 가기도 한다. 봉사를 위해 가기도 하고, 사회를 뒤집기 위해 가기도 한다. 아니면 일요일이 무료해서 가기도 한다. 아니면 전도당해서 어거지로 떠밀려 가기도 한다. 혹은 가족이 모두 교회에 가기에 흐름을 타고 가기도 한다. 애인이 있어서 가기도 하고, 선생이 있어서 가기도 한다. 점심 먹기 위해서 가기도 한다. 아니면, 직업을 위해서 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곳이 꼭 교회여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는 왜 교회에 가는 것일까.... 내가 목사이기에? 신학도 이기에? 아니면 누구 눈치를 보아서? 맡은 과제 때문에?

난 교회가 정말 좋았었다. 갈 곳이 교회밖에 없어서 좋았다기 보다는, 교회에는 무엇인가 전혀 다른 생동감이 넘쳤기 때문에 좋았다. 한 시절 교회가 너무 싫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게 교회는 정말 절실한 곳이 되어 버렸고, 다른 곳에서는 희망할 수 없는 어떠한 희망을 걸게 된 곳이기도 하다.

존재 탄생의 기원은 '발생론'적으로 그리고 '형태론'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교회라는 존재의 탄생을 우리는 그저 형태론적으로만 접하고 이해하기 쉽상이다. 그러나 발생론적으로 교회를 헤아려보면, 교회는 세계체제의 어느 진화와 조직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궁극적인 이념과 동력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매우 독특한 조직이다.

생로병사의 짧은 인생사를 우리는 경험하고 그 안에서 바둥거리지만 이러한 유한한 인생의 촌음에서 우리의 모태, 환경, 그리고 우리 생과 진리의 기원을 찾아나가려는 수많은 '정신'들에 의하여 교회는 탄생된다. 교회는 형태론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발생론적으로 진리를 소망하고 열망하는 이들이 만나고 형성한 고귀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공간은 유한하지만 무한의 드넓은 가치를 여는 초월과 비상의 공간이며, 성도는 그러한 진리의 빛과 사랑의 능력을 소망하고 체험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결코 역사가 빚어내는 부조리한 헤프닝이 아니다.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존재하는 부조리한 교회는? 그것은 그럼 교회가 아닌가?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한 교회가 진정 하나님의 교회인지 아니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열린 죄에 물든 교회인지.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지 못한 유한한 시야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것은 확신한다. 만약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면, 교회의 성도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랑에 대한 관심이 없이 잿밥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버리실 것이라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의 일부가 자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곳은 썩게 된다. 썩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를 잃게 될 것이며 그것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교회에 대한 나의 마음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어떠한 타락한 교회라도 하나님이 그 은혜와 자비를 통하여 다시금 새롭게 쓰시길 원하는 마음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만약 그럼에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마땅할 것이라는 마음이다.

나는 나의 삶이 그리스도가 소망하는 삶과 떨어지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내가 섬기는 교회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삶과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담아내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내가 그 교회를 위해 헌신을 하기를 소망한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독일에서 배운 것은 이것이다. 세상은 겉으로 볼 때에는 흐리멍텅해 보이지만 어느 곳보다 더욱 숨을 수 없는 곳이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투명하여, 혹은 나의 부끄러움을 숨길 수 있는 그늘이 없어서, 숨어살기 곤란한 곳이다.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그 여정을 걸어왔던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떠한 학문적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느정도는 보인다. 한 편으로는 못본 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지혜롭지 않기 때문이다. 크게 열린 미래 앞에서 너무나도 채울 것이 많아서 내가 조력하는 것이 우선이지, 현재 존재하는 모습을 들추어 내어서 냉랭하게 분석하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역지사지로 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길을 걸어간 신앙의 선배들과 생의 선배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 신앙과 인생은 헛점과 부조리 투성이인 것이다. 심지어 창조주 아버지의 눈 앞에 선 나와 우리 인간이 도대체 숨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교회는 그런 곳이다. 교회는 육에 속한 우리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유한한 인생의 희노애락이 전부가 아니며 그것을 넘어선 영원한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 안에 우리가 존재함을 자각하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성도의 창조주에 대한 고백이 흐르고, 하나님의 세상피조물을 향한 오늘날의 메시지가 던져지는 놀라운 곳이다.

내 나이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교회 언저리에서 신학의 언저리에서, 정말 말과 형식논리를 넘어서서 교회를 섬기고 사랑하고, 신학의 과제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나이이다. 장난삼아 교회 안에서 구슬치기만 하고 시간을 소일해 버리기에 우리 생의 시간은 무한하게 열려있지는 않아 보인다.  

교회를 거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와 그 연로하신 노인분들.. 아버지.. 그분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그 깊이 안에, 그 품 안에 쉬고 계시리라.

여전히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 생생한 육신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하나님 나라의 대망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교회의 지체들을 손꼽아 본다. 교회에 희망을 걸고 교회 속에서 삶을 투신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그 거룩한 행렬과 역사에 깊은 감사와 감동을 갖게 된다.

지금도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던진 빛에 감화하여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며 일선에서 기도와 훈련으로 살아가고 있는 후배들을 헤아려본다. 교회는 세상안에있지만 세상을 넘어선 곳이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교회의 집을 다시 멋지게 세우기를 소망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짧은 나의 인생에 교회를 통해 드러난 그 영원한 진리의 한자락이라도 맛볼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옵소서. 교회 앞에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숨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반가움과 감사함과 샬롬이 내 삶에 가득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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