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 대학병원의 허와 실을 꿰뚫어본 경험이 있는지라, 아는 형을 통하여 수원의 조그마한 병원 문을 두드렸다. 병원을 드나드는 경험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결코 유쾌할 것이 못된다. 그것은 병원을 찾는 환자도, 환자를 받는 병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실로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다. 그 꿈은 우리의 이 드넓은 세계 안에서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어떤 이는 그 꿈을 멋지게 성취하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는 아쉽게도 꿈을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채 꿈을 꿈으로 남겨 놓기도 한다. 아름답게 피워낸 꿈, 미완의 꿈, 또한 꿈도 제대로 꾸지 못해버린 서러운 꿈 등, 그 다양한 모습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어쩌면 병원은, 모든 이들이 가슴안에 내밀하게 간직한 꿈을 삶 속에서 피워내는 과정을 유보하는 "꿈의 사각지대"일런지 모른다.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만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뻘 되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얼굴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마음과 몸에 병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치 앞 병원 밖에만 나가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를 우리는 만난다. 그러나 그 도시 안에 병원이 거하면서도 그 곳은 결코 무엔가를 꿈꾸면서 발걸음을 바삐 거는 경쾌함이 증발된 체,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어둠이 깔려 있을 뿐이다.
나는 우리 병원안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안에 간직한 그 소중한 꿈과 또한 우리 안에 간직한 병, 아픔이 어떻게 서로 연결이 되는가 하는 소박한 물음을 던졌다.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지만, 그 꿈을 펼치는 과정에서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뜻하지 않은 정신적인 육체적인 고통과 아픔을 만난다. 그 고통과 아픔은 의학적으로 '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 안에 들어온 그 병을 만나고, 또한 그와의 기나긴 대면을 시도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병과의 지난한 대화와 극복을 통하여 건강을 다시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발걸음을 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삶의 비밀은 이렇게 쉽게 해명이 되지 않는다. 가볍게 극복할 수 있는 고통과 아픔은 결코 약이지 병일 수 없다. 나는 고통과 아픔이 창조를 잉태할 수 있다는 성찰에 이견을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쩌면, 창조를 잉태하기도 전에 고통과 아픔의 깊이가 너무 큰 나머지, 그 고귀한 꿈을 피워내지 못하고 생명과 삶을 마감하는 현실을 주목하고 싶다.
고통과 아픔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문명의 야심찬 기획 속에서 병원을 잉태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이 모든 인간 삶의 고통과 아픔을 감싸고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인간과 문명의 최대한의 노력을 성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욱 적절한 이해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인간 삶의 고통과 아픔이 어찌 신체적인 차원에서만 국한되는가. 그래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있고,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목사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그 영역은 엄연히 엄존한다. 인간의 뜻을 훨씬 이탈하고, 인간의 의지를 훨씬 넘어서서 따로 도는 그 지평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의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도 자연스레 아파왔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꿈을 향한 그 모든 발걸음에 대하여 조금은 거리를 두며 생각할 수 있었다. 즉 꿈을 꾼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삶 가운데에서 가까이 하려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겹게 아름다운 경험인지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 질병과 고통은 우선 나의 정신적 육체적 운신의 폭을 좁혀들어가게 하는 요소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꿈을 빼앗아 가는 치명적인 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보다 아픈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참 아픈 사람이 많다. 문명은 아픔과 고통에 대하여 인류가 시도하는 치열한 면역력의 강화이다. 그러나 그 항체를 마련하기 위한 과정에서 말하지 못할 수 많은 사람들이 몸소 그 아픔과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 전쟁선포를 감행하는 클린턴의 백악관 연설 본문은 너무나 그럴싸한 레토릭이지만, 그 전쟁의 와중에서 틀림없이 어느 누군가는 가엾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단 한 순간도 평화를 느껴보지 못한 나, 그리고 우리의 현실, 또한 인류의 문명의 잔혹한 시계는 끊임없이 흐를 뿐이다. 많은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또한 진정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고귀한 영혼도 있다. 그날 나를 진찰해 주시는 백선생님은 아름다운 의사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명의 야심찬 기획도, 백악관의 브레인도, 영혼의 내밀한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목사의 그 기도에도, 인간의 모든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간취할 수 없는 그 모호한, 혹은 해명하지 못할 "영역"이 분명히 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지구상에 태어나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잠시 경험하는 기쁨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픔과 고통이 묘하게 겹쳐진 현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나면 참 슬퍼진다. 그 슬픔에 대한 회상과 기쁨에 대한 꿈꾸기가 문명이라 하더라도, 문명에 아무리 잇대어 해명하고 간취하려 하여도 우리 앞에서 우리를 향해 늘 <새롭게 다가오고> <당혹스럽게 하고>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삶의 비의를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과 아픔을 몸으로 겪는 수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가진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은 결코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세계가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세상이라면, 그들의 고통과 같이 하며, 나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그리고 그들과 나 사이에 피어오르는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아직은 나에게는 그들의 아픔과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감수성도, 그리고 내적인 깊이도 없다. 나 자신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의 그 깊고도 넓은 삶의 모범을 옆에서 지켜보면, 나에게도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선생이 우리 앞에서 그렇게 건강하게 사셨고, 우리를 향해 그렇게 건강하게 살라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 조금은 든든한 마음이 생긴다.
인생은 결코 헛된 속임수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서 의미있게 사는 것만이 하늘이 나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그런데, 심히, 놀랍게도 의미있게 사는 삶, 그리고 건강하게 사는 삶이 다른 사람의 <고난>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미래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삶의 비밀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꿈을 상실하면 안될 것이다. 우리가 그 미래마저도 우리의 꿈을 가지고 저당잡을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오늘 여기에서 선생님이신 예수가 하라는 말씀을 힘과 벗삼아, 다른 사람과 같이 잘 어울리며, <고난>과 가까이 하며 우리의 소중한 꿈을 이룩하는 것이 나의 과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