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am Deo

>Die wahre Geschichte des Geistes ist nicht in gelehrten Büchern aufbewahrt, sondern in dem lebenden seelischen Organismus jedes einzelnen.< Carl Gustav Jung, GW XI, 37

1999/04/21 (03:14) from 203.252.17.163' of 203.252.17.163' Article Number : 40

Geist Access : 6649 , Lines : 43

수유리 한신공동체 한마당을 참여하고

연구소에서 말씀과 교회 봄호를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에까지 최종 마무리 하였다. 박순경 교수님의 글은 매우 주목할 만한 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황덕형 교수의 논문은 참 신선하였다. 보쿰대학에서 Link 교수님에게 사사받은 분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스카 쿨만 서거에 대한 기사도 매우 현장감 있게 다가왔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회상할 수 있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기쁨이 육체적인 피로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성공스러운 노동이었다.
오늘 한신공동체 한마당이 수유리 대학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Th.M은 며칠 전부터 현란한 광고를 여기저기 붙여놓았다. 하얀 벽의 여백보다 광고지의 내용이 더 많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침부터 볼차고 운동하는 줄 알고 바삐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비몽사몽 서대문에서 전철을 타고 수유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수유리 행 전철 4호선은 4년간의 수유리 금요세미나 덕분에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노선이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익표형 사무실에서 금요일 밤에 모여서 토요일 새벽까지 하얗게 밤을 세웠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 밤을 너무 많이 지세워서 그 결과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것은 아닌가 내리 짐작도 해본다. 하지만 참 얻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피곤한 육신에 전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거의 수유리에 도착할 즈음에, 김경종 학우가 옆에 있는 것 아닌가. 나랑 같이 서울역에서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여 같이 눈을 붙이다 수유리까지 와서 결국은 상봉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번에 가서 보니 수유리 대학원의 간판이 아주 세련되게 바뀌었다. 참 이쁘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본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목각 팻말도 새로 세워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마누엘 동산은 어느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한 곳임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오히려 나 자신이 모종의 이방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옷깃을 가다듬으면서 본관을 향했다. 하지만 정말 외부인이라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도 순간 피어올랐다.
경종씨한데 물어보니, 11시에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나는 흠칫 당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신공동체 한마당 행사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바로 한신개교기념예배를 오늘 치루는 것이었다. 잠시 도서관을 살피러 들어갔다. 도서관 들어가는 입구의 타일들이 많이 부식이 되었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나기도 하였다.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예배 참여를 위하여 문을 닫는다고 한다. 겸사겸사 해서 채플실로 나는 떠밀려 갔다. 입구에서 5월에 철이(?)랑 결혼한다는 지현이도 보고, 잠시 기다리니 오산 동료들이 몇명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개교 59주년 기념예배에 전경연 교수님의 "신학의 삶"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다. 80이 훨씬 넘으신 연세에 참 얼굴이 고와보였다. 교수님의 삶과 학문적 결실을 보니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 또한 교수님의 신학의 한 쳅터였다는 것, 그리고 헬라클레이토스를 인용하면서 언급한, 전쟁은 새로운 문명의 근원적인 탯줄이라는 것, 이것 참 놀라운 이야기였다.
전쟁예찬은 모든 대립물이 새로운 차원으로 해소되고 승화된다는 변증법적 운동양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때,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나는 다시금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헤겔의 전쟁예찬에 대한 묘한 반감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지라,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반감 또한 그에 상응하리만치 나의 생각에 맺혀 있었다. 그래서 시간과 여유가 허락될 때 헤겔의 <변증법>과 화이트헤드의 <궁극자의 범주>에 대한 심도깊은 비교연구가 여전히 매혹적인 화두로 다가왔었다. 물론 전경연 박사님은 전쟁예찬에까지 적극적으로 말씀을 건네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전경연 교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저런 이야기의 그 진의를 열어주는 경험인 것이다.
며칠 전에 레이저 빔을 보고 나는 새삼 놀랐다. 레이저라는 빛의 선은 수 킬로를 달려가도 그 선의 파동은 일정하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날 밤 기숙사 앞에서 학생회관을 향해 그 조그마한 레이저 빔을 쏘아보니, 나는 눈이 안좋아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있었던 신규와 성호형이 "와! 저거 봐라?" 하며 그 빠알간 초점이 학생회관 벽에 쏘여 있었던 것을 놀라워했다. 나는 별이 아름답게 떠 있는 저 밤하늘을 향해 그 레이저 빔을 쏘았다. 부딛혀 돌아오는 벽같은 매개물이 없어서 그런지, 그 빔은 끝도 없이 저 광활한 우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공간의 그 묘한 광활함, 겹침, 그 깊이에 우주론적 충격을 한층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레이저 빔에 대한 영상을 우리가 가까이서 유추해낼 수 있는 장면은 바로 쉬리의 첫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무기대여를 해주지 않아서 1억인가 외화를 쏟아부어서 빌린 그 최첨단 무기가 화려하게 국산영화의 서두를 뽐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어두컴컴한 공간을 향해 붉게 나아가는 그 선이 바로 레이저 빔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글 몇줄 쓰는 공간도 미국 국방부의 전용 라인을 오픈한 덕분에 인터넷 세계를 우리가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무기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과 문화의 발전은 서로 꼬리를 문 원환곡선을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는 그가 경험하는 전쟁을 통하여 문명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성찰의 눈이 뜨이고 인간의 감추어진 내면의 잔학성과, 불완전함, 유한함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시한다는 그 정도의 맥락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참으로 혼미하였고 그 울리는 생각들에 인하여 모종의 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현재 수많은 생명이 잔혹한 전쟁에 의하여 아스라히 죽어가고 있는 역사의 와중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포성의 참화가 가까이 있지 않기에, 피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이 가까운 피붙이나 친지나 같은 민족이지 않기에, 우리는 어쩌면 무덤덤하고 건강하게 의식적인 삶을 살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화염에 쌓여 있는 그 당사자들은 이미 정신분열과 공포에 휩싸여 있음은 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실로 전쟁은 가장 소중한 이 세상 그 어느 것을 명분 삼더라도 그 정당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고, 확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한 점point의 전쟁이 인류 전체의 역사의 선line이라는 문명의 관점에서 의미를 확보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피어오르는 인간 생명이라는 점의 한계를 초탈해 버리고 추상적 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문명의 보고를 관통하는 우주보의 인간일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게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의 존엄성을 간과한 인간일 것이다. 진정한 군자 아니면 어떠한 명분을 위하여 생명마저도 희생하는 인간,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군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전쟁은 무엇으로도 예찬될 수 없다. 설상 전쟁의 핏값으로 문명이 새롭게 축조되었다 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그 수많은 이의 희생과 핏값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인간지성의 한계를 우리는 안타까워야 할 것이다.

전박사님의 말씀이 끝나고 박용길 장로님의 말씀이 계셨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박용길 장로님의 얼굴과 문익환 목사님의 얼굴과 머리모양 등등이 너무나도 비슷하게 보여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영혼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육신에 거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마저도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대화를 끊지 못할 만치, 박용길 장로님은 문목사님과 그렇게도 깊은 대화와 사랑을 나누는 것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비슷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전날 연구소에서 문목사님 전기를 보고, 뙻珦� 적의 문목사님 사진을 보고, 김이곤 교수님의 서평을 보면서 문목사님에 대한 생각이 어렴풋이 나를 오래토록 사로잡아서 그랬을까?
까랑까랑한 목소리, 거침이 없는 생각들, 몸으로 홀연이 체화된 통일혼, 결코 일상인의 목소리와 생각과 행적은 아니었다. 그의 곁에 목사님이 아주 가까이 계셔서 그러신 것일까.
예전에 몰랐던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문목사님께서 그 긴 추도시를 쓰셨던 것, 부끄럽지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은 단지 박용길 장로님이 그 긴 시를 친히 친필로 쓰신 것을 학교에 기증하는 시간이었는데 고재식 총장의 권유로 박장로님은 긴 시를 다 읽어 내려가셨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유혼 장공을 향한 제자 늦봄의 그 애절하고도 애틋한 심정, 또한 만주 벌판의 그 광활환 민족혼의 시선으로 장공의 민족애적인 삶과 역정을 한 줄기 한 줄기 짚어내는 그 여운들, 그 깊이를 지니신 장공과, 그 넓이를 지니신 늦봄의 역정, 삶, 환희, 기쁨, 눈물, 고난의 숨결을 나는 아주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장공도 여기에 없다. 그리고 장공의 숨이 멎음을 슬퍼하고 기뻐했던 늦봄도 여기에 없다. 게다가 60여년의 신학의 길에 혼을 다 하여 매진하신 전경연 교수님의 삶에 선사해주는 세월의 왕관은 새하얀 머리와 불안한 발음이었다.
하지만 장공과 늦봄, 그 두 커다란 정신에 내가 흠뻑 대면하고 강렬하게 조명되고 있을 때 느꼈던 감동과 그 스산함은 어느 살아있는 사람을 대면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 붓글씨로 쓴 길이가 10미터나 된다고 하는 그 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장공의 제자로서 거기에 모인 우리들은 우리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의 과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는 김경재 교수님이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시고 눈을 지긋히 감으시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계셨다.

'그렇다. 사람의 사상을 배우는 것보다 그 사상을 잉태하게 하는 사람의 중심인 혼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그안에 있다. 그 근본적인 중심은 결코 지식의 차원이나 감각의 차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지식이나 감각의 차원으로 환원이 되지 않는 모종의 '혼'이 아닐까. '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통하여 진면모로 드러나는 일종의 전체적인 느낌, 혹은 전체적인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무늬와 향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 무늬와 향기는 결코 단절된 것이나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일관된 것이다.
나는 장공에 대한 짧은 이해를 통해서 그 분을 '자유혼'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참으로 궁금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자유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어느 덧 조금씩 해명이 되고, 불어의 에스프리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아, 혼이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세월의 경륜 속에서 어렴풋이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은은한 전체적인 이미지이자 느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이 30도 채 넘지 않은 나의 어떠한 혼을 느끼기에는 만부당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가 일정한 성향을 지닌 나의 혼이 내 안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관되게 외면화된다든지, 혹은 일관되게 외면화 시킬 수 있는 경험의 차원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50이나 60의 삶의 경험은 인간 삶의 일관성과 전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어른들을 만나면 그네들의 삶 속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던 혹은 현재속에서 유지하게 하는 그 '혼'의 깊이의 차이를 얼핏 얼핏 느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장공의 '자유혼'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더욱 구체적인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 '자유혼'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더욱 나의 삶을 끊임없이 건든다.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복종은 세상에 대한 '자유'를 진정 잉태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또한 늦봄의 '민족혼'은 오늘의 한반도라는 구체적인 땅을 딛고 살아가는 나에게 바짝 정신을 차리게 해 주는 귀한 단서가 된다. 조국, 민족, 동포, 그리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깊은 경험과 역사와 눈물과 땀이 절여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끊임없이 역사와 교감하면서 나아가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긴장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삶의 방향타가 민족혼과 그에 기인한 '통일'의 염원으로 승화된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카이로스적으로 포착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우리네의 삶을 단지 크로노스적인 삶으로 환원시켜 역행해버리고 마는 게으름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스승들의 혼을 만나자. 되도록이면 세상과 씨름하는 그 영혼의 접점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만나자. 그리고 거침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잇대는 삶을 살아내자.' 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수유리 켐퍼스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별로 부러워할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가슴 벅찬 혼과 신학과 우리의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채플시간은 참으로 부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한신의 선배들이 이 낡은 밤색 의자에 앉아서 고즈넉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채플을 드리며 하나님과 씨름하고 기도하며 그 땀과 노고로 얻은 광활한 혼을 가슴에 품고 세상에 나아갔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도 이제는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도서관 뒤의 잔디밭에서 약식 부페를 먹었다. 아늑한 공간에서 신학의 길에 들어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떡을 떼어 먹고 양식을 나누어 먹는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그 성서의 공간이 그려졌다. 그리고 개떼축구, 줄다리기, 등등 백주 대낮 운동장에 먼지를 뿜으며 우리는 신나게 귀빠지게 놀았다.
분위기가 소강되는 시점에서 나는 성호형과 같이 슬며시 운동장을 빠져나와 도서관에 다시 갔다. 볼 책도 있고 해서 도서관에 들어갔다. 수유리 도서관의 원서는 오산보다 많아 보였다. 이런 저런 책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의 신비로서의 하나님, 링크의 논문 등등 좋은 책과 논문도 찾아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본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휴게실도 가보았고, 2층 세미나실도 가보았다. 세미나에 의자가 매우 많은 것은 세삼스러운 충격이었다. 그리고 일층에서 지현이가 일하는 공간에도 들러보았고, 다 둘러보다 나가던 도중에 김이곤 교수님도 뵈어서 원장실도 구경해 보았다.

이리 저리 켐퍼스를 둘러보다 운동장으로 나아가보니 헉헉 거리면서 마라톤을 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홍조를 띄며 은혜도 마악들어오고 있었다. 남중이는 예전보다 스테미너가 많이 빠져나갔던지 좋은 성적으로 들어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여하간 땀을 흘리면서 마라톤을 뛴 자의 행복한 운명과, 그 아름다운 행진에 발한자국도 떼지 않은 나의 불우한 운명 사이의 깊은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어스름한 밤이 몰려오려 할 때 종수와 같이 수원행 전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였다.

우리 앞에 주어진 험난한 민족의 현실과 교회의 현실은 우리 연약한 영혼의 상채기가 된다. 그러나, 잊고 살았던 우리의 스승들과 선배들의 그 넓고 깊은 삶을 다시 바라보고 있노라면 스승들과 선배들이 굳건한 신앙으로 이 길을 돌파해 나아가셨듯이, 우리도 더욱 크고 넓게 살아가고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훨씬 더욱 큰 정신과 큰 혼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큰 마음들이 우리와 같이 거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나면, 이 길, 신학의 길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멀리에서 날라온 오강남 교수님의 메일에서처럼, 이 길처럼 가장 즐겁고 신나는 길이 다른 어느 곳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시간들이었다. 한신공동체 한 마당을 준비한 우리 동료들과 선생님, 그리고 하나님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