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2/17 (20:35) from 203.252.17.161' of 203.252.17.161'	Article Number : 7
Geist	Access : 6539 , Lines : 34

雪夜單想

많은 눈이 내렸다. 유난히도 스산한 캠퍼스에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사람들의 빈 자리가 조금은 가볍게 다가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늘에 준 것도 없는 데 하늘은 저렇게 아름다운 눈을 내려주시니 내 삶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채근하게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뜻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입에 침을 튀기며 자신의 소명에 대해 고백 반, 자랑 반 하고 있거늘, 나에게는 영 어울리는 군상은 아니다. 마치 내가 나를 잘 모르듯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뜻이 그렇게 분명한 선율로 다가오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나는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는가. 물론 내가 어린 시절에 고백했던 그 강렬한 보케이션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유아기적 정열의 단계를 넘어서서 내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삶을 걸어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보케이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하는 모종의 강박일 것이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그 침이 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말이다. 어찌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의 삶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놓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인가. 진정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의 운명을 몸소 열어 나아가기를 그는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보케이션은 인간이 성숙의 묘를 그의 삶에서 온전히 구현하라는 것 이상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카이로스이고 인간의 크로노스는 크로노스이다. 어떻게 크로노스의 삶에서 카이로스를 선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의 삶의 여정을 통하여 이룩해야 할 목표를 인간의 삶의 여정에 선취한다면,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과정에서 목적을 선취하는 논점 선취의 불행만을 자초할 뿐이다. 어쩌면 이 길이 더욱 인간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길일런지도 모른다. 인간은 분명한 목표가 그의 삶 안에 들어와 있어야 더욱 그의 보폭이 경쾌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 자체가 하나의 숭고한 목표가 아닌가. 문명을 통하여 보건데 <목표>는 언제나 수상한 레토릭일 뿐인 적이 많았다. 한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표가 없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삶. 나의 목표를 다 접어두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을 온전히 살아내는 삶. 오히려 지금 나에게 육중하게 다가오는 이 현재에 우주가 모두 맞물려 있음을 직관하고 여기에 진지하게 충실하게 대면하는 삶. 이러한 바램이 하나의 목표라면, 이러한 삶이 나의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