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1/02 (02:36)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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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주 목사님의 남루한 구두를 생각하며

정형주 목사님의 남루한 구두...   이번 여름은 참 좋다. 땀은 아무나 흘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오면 나는 걱정이 생긴다. 내 신발에 자꾸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실내운동용 신발이라 그런가. 땅바닥에 닿아 축축히 젖은 물방울들이 자꾸 신발 앞 꼭지를 타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보폭이 크면 클 수록 빠른 속도로 신발 머리를 적시게 된다. 조심스럽게 걷더라도 한 백보 걸으면 양말이 다 젖어버리게 된다. 권태를 깨는 긴장이 비오는 날에 있지만 백보 이상 걷게 되면 짜증이 찾아올 뿐이다. 그러나 죽을 정도의 짜증은 아니다. 하지만, 양말이 젖으면 학원에서 앉아있는 시간들이 워낙 불편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버스를 타지 않고 천원 더 주어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얼핏 신발 앞에만 묘하게 젖어있는 신발을 보니 축축해져버린 신발 그 자신은 얼마나 찝찝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정목사님이 생각이 나게 되었다. 마음이 쿵 하고 무거워졌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무덤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이 비를 다 맞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문득... 문득.... 어쩌면, 사유에 있어서 문득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눈가의 눈물을 훔쳐내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왜 젖은 운동화를 바라보다 정목사님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희미하게 떠오르는 인상이었지만, 목사님의 그 남루한 구두가 아련하게 잔상으로 다가왔다. 단화였을까? 구두였을까? 황색과 노랑색이 섞인 아주 남루한 신발이었다. 뒷굽의 바깥쪽은 거의 다 닳아버려 이미 선생님의 땅을 향한 발의 각도는 오다리 형태로 잡혀졌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목사님의 그 신발이라는 이미지에 묻어 있는 의미는 가난이었을까, 아니면 자유분방함이었을까, 아니면 게으름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이미지와 의미가 서로 쉽사리 착상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미지와 의미 사이의 거리를 좁혀낼 수 있는 대화의 여지와 기회가 전혀 없다는 자명한 현실 때문에 더 이상의 물음은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기의를 잃은 기표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이래서 사유의 연쇄적인 운동이 새삼 두려워진다. 우리의 사유의 끝은, 결국 사유의 끝인 죽음이라는 주제를 향해 신나게 혹은 슬프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최종적인 물음은 심각하게시리 죽음인 것이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이 조금은 느리게 흐르는 순간, 삶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때, 혹은 삶에 대한 방향감각을 제대로 찾아나아갈 때, 죽음의 그 실상을 간혹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저항할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단단한 벽이기에 쉬 지속적으로 생각을 이어나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 피곤하고 나른한 오후, 돌아가신 정목사님과 죽음이 머리에 떠올랐다는 것은 어느덧 나도 모르게 죽음의 문제가 나의 일상가운데에서 거추장스러운 이물질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99년 07월 28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