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1/02 (02:41)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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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을 떠나신 김상봉 선생님을 생각하며

강단을 떠나신 김상봉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는 김상봉 선생님을 대학교 2학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강의를 통해서 만났다. 선생님은 열정이 있으셨고, 애정이 있으셨다. 용석이 형과 형렬 형과 같이 수업을 진지하게 들었고 마지막 시간에는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 한국에서 쓰신 논문을 모두 모은 두꺼운 논문집을 나에게 선물해 주셨다. 나는 무척 감동하였고, 선생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바른 학문과 진정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모범으로 김상봉 선생님을 마음 한 켠에 두게 되었다. 이후에 철학과 수업에 김상봉 선생님은 출강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머리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되었다. 가끔 연대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연대 박사님들이 얼핏 김상봉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두줄 읊으신 것 빼고는 선생님의 근황을 알 바가 없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한겨레 신문에서 대문짝만한 크기의 사진과 함께 다시 선생님을 재회하게 되었다. 내용인 즉슨 그리스도신학대학교 교수로 강의를 하시다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선생님 잘못으로 학교를 나오게 된 것은 아닌 듯 하였다. 그리고 선생님의 이번 신간 소식은 각 신문에서 크게 보도가 되어서, 학교는 떠나셨지만 어떤 의미로든 한국의 사상과 철학의 기류를 움직이는 큰 그루터기 나무로 아름드리 변모해 가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저녁을 하고 기숙사 친구 방에 잠시 들러서 바로 선생님의 신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모 에티쿠스>라는 책이다. 나는 놀라웠다. 여느 책을 처음 보아도 그 책의 서문과 나오는 글을 먼저 보는 것이 상례이기에, 반갑게 그 책의 서문을 읽는데 크나큰 슬픔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문장은 조용했지만, 거기에는 크나큰 슬픔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의 역경과 현실의 부조리를 거부하지 않고 거기에 맞서 자신의 철학을 세상을 향해 건네는 단호함과 숭고함이 옹골지게 맺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숭고미>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저 수원역을 거니는 하늘의 전선줄보다 큰 존재의 그 크고 깊은 의미를 상상하면서 존재의 충격과 숭고미의 진정한 의미를 직증했던 몇 년 전의 경험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미 선생님은 끈끈한, 세찬 파도의 현실에서 철학을 하고 계셨다. 인간은 화이트헤드의 말마따나 과거의 결실과 노고와 땀에 의하여 오늘의 현실이 이렇게 청초하고도 아름답고 새롭게 드러나는 것이다. 아무리 한 학기 수업이였고, 강사였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나의 기억 가운데 칸트의 그 책 한 구절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나를 교육하셨고, 나는 진리의 흔적을 선생님의 말씀과 강의를 통해서 발견하려 하였다. 콩가루 대학의 공간이었지만 거기에는 스승과 제자의 사랑과 진실과, 진정한 인류애를 향한 숭고한 노력과 지향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가시는 말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타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보편적 인류에 대한 사랑을 꿈꿀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선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심지어, 심지어, 예수 마저도 어느 사람이 선한 당신이라고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선하지 않느니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선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그만큼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임을 새삼스럽고 뼈저리게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교만, 나의 허위의식, 그리고 생의 진실한 의미를 면면이 느끼고 현실 가운데에서 체험하고 묵상하지 아니하였던 나의 나태함은 선생님의 그 조용하면서도 본질을 건드는 그 몇 마디에 그 속살을 다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이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하신다. 선생님의 앞에는 구체적인 인간이 있고 현실적인 고통이 있다. 선생님은 곱게 자라는 강단 비닐하우스 철학자와는 달리 이제 더욱 크고 더욱 깊게 철학을 하시고 진리를 위해 삶을 이어나가실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름드리 푸른 생명나무처럼 진리가 살아 숨쉬고 진정한 인간미와 진정한 삶의 가치를 건네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악에 빠지지 않고 더욱 진실하고 더욱 선하게 살 수 있도록, 선생님은 그 말씀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시고 있다. ......... 목차 1. 너 자신을 알라 2. 한 이상주의자의 절망과 동경 3. 행복이란 무엇인가 4. 삶의 덧없음과 도덕의 숭고함 5. 참된 쾌락이란 무엇인가 6. 참된 종교와 참된 행복 7. 영원의 빛 아래서 본 인간 8. 동정심의윤리학 9. 의무의 윤리학 10. 법칙 속에 있는 선 11. 도덕적 절망과 종교적 희망 베스트셀러 99년 9월 2주 주간 베스트셀러 인문과학 9위 99년 9월 1주 주간 베스트셀러 인문과학 7위 99년 8월 4주 주간 베스트셀러 인문과학 9위 신문 서평 인간본성 그 영원한 물음 인간은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는 이성적 존재인가. 아니면 윤리와 도덕을 망각한 채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이기적 동물인가. 인간존재의 근원을 탐구해온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이같은 물음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본성의 실체에 관해 뚜렷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김상봉 전 그리스도신학대 교수(39)가 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올바른 삶을 과연 어떤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성찰을 담아낸 철학 입문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부터 플라톤, 스피노자, 흄,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대표적인 처학자들이 폈던 '도덕과 인간본성론'의 요체를 다양한 일화를 곁들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윤리적 인간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여느 철학서와 달리 난해한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 철학자들의 핵심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교사가 학생에게 강의하듯 '∼습니다' '∼하지요'라는 존칭어를 써가며 독자들을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도 이책이 지닌 장점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도덕이나 사회규범은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며 철저하게 쾌락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행복의 참된 의미와 선의 본질을 캐물은 윤리학의 창시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의 안녕이나 쾌락이 아닌 선을 추구하는 맑은 영혼을 소유하는 것 ' 이라고 일갈했다. 악덕과 방종을 무지의 소산으로 파악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행복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물과 기름처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상반된 도덕관을 견지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가장 이상적인 삶은 공동체의 이념보다 개인의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참된 삶은 금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윤리관을 제시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스피노자도 선과 악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인간만이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본 반면 스피노자는 '인간의 이성적 삶을 촉진하는 것을 선이라 한다면 이를 방해하는 것은 악'이라고 규정했다. 서구 윤리학을 완성시킨 철학자로 평가받는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재는 유일한 기준은 얼마나 선한 의지를 갖고있느냐 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음속에 선한 의지가 없다면 그는 무가치한 인간이며 멸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19990831/책마을글밭 박구재기자 동정없는 사회 '선'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김상봉(39)씨가 지난 1년동안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의 원고를 모아 [호모 에티쿠스-윤리적 인간의 탄생]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내놓았다. 윤리적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제목으로 삼은 '호모 에티쿠스'의 얼개는 서양 철학의 윤리학 계보다. 지은이는 소크라테스에서 칸트까지 우리에게 낯익은 고금의 철학자들이 평생 고민했던 윤리학적 주제의 핵심을 친절한 언어로 풀어놓는다. 소크라테스가 첫머리에 서는 것은 처음으로 '선'의 본질을 물음으로써 윤리학의 창시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영혼의 질서와 조화에서 선이 발현된 모습을 찾았으며,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실현에서 선의 완성을 보았다. 그리스 도시국가가 몰락하고 제국이 등장함으로써 인간이 왜소해졌을때 나타난 철학이 스토아철학과, 에피쿠로스철학이다. 스토아학파는 광포한 운명도 침범할 수 없는 '정신의 덕'이야말로 선이라고 생각했으며, 에피쿠로스학파는 은둔자의 절제된 쾌락을 선으로 간주하는 절제의 윤리학을 폈다. 소크라테스에서 에피쿠로스까지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은 선을 최상의 행복과 등치시키는 행복주의 윤리학의 설법자들이었다. 뒤이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신과 플라톤의 이데아를 결합해,기독교 안에서 선 또는 행복의 동요없는 근거를 발견했다. 이들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서 지은이가 구사하는 사려 깊은 서술법은 이 책의 주요한 미덕이다. 지은이는 하나의 철학이 지닌 시대적 가치를 호의적으로 끌어안으면서 그것의 한계와 약점 또한 분명하게 적시한다. 예를 들어 스토아철학은 그리스철학 전통에서 처음으로 빈부귀천·남녀노소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행복의 문을 열어준 덕성 넘치는 철학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짙은 패배주의의 정조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각 철학의 빛과 그림자를 분별하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지은이의 진정한 관심은 찰학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 쏠려 있다. 그는 서양 윤리학을 통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근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펼친 동정심의 윤리학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정작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동정 없는 우리 사회다. 이를테면, 심장병을 앓는 고등학생이 급우들로부터 1년 동안 이나 학대받은 사건은 극단적 입시경쟁이 낳은 시대의 질병이다. 지은이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가해자 가운데 학급 간부도 끼어 있었던데, 이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면서 우습다고 느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동정심을 느끼기는 커녕 우습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등생이고, 일류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회라면,그런 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지은이가 보기에 이런 윤리적 황폐의 일차적 원인은 부도덕한 현대사의 부도덕한 권력자들에게 있다. 그것은 흄의 동정심이 왜 보편윤리가 되지못하는지를 설득할 때 그가 드는 사례에서 분명해진다.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유형무형의 상처로 고통받을 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 사건의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게되었을때, '피의자를 아침도 먹이지 않고 구속했다' 고 동정하고 분개했다,'...<이하생략> 19990831/책과사람 고명섭기자 부도덕한 시대 윤리를 화두로 삶의 참뜻 반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인간)의 세상에 살면서 진정으로 '잘 산다는것', '좋은 삶'에 대한 반성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95년에 그리스도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로 임용된 후98년 2월 해직, 99년 3 월 총장 직권으로 대우교수에 임용된 후 지난8월 다시 해직. 5년에 걸쳐 대학가의 어두운 현실을 경험하며 이제는 재야의 철학자가 돼 있는 김상봉. 그가 서양절학의 '윤리'를 화두로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저서를 내놨다. [호모 에티쿠스]. '몇년 동안 대학 강단에 있으면서 우리사회가 얼마나 부도덕한 사회인가를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재직 때인 97년부터 시작해 이제는 그의 직장이 된 '김삼봉의 철학교실'이 그 체험에 대한 반성의 장소였고 이책은 그 결실이다. '해직된 철학자로 lMF 시절을 겪으면서도 물질적인 문제는 저만치 미뤄두고 어쩌면 가장 사치스럽나고 할 '선'(善)의 문제를 고민한 기록입니다. 참된 정신적 깊이는 그런 어려움 너머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눈 돌리는 곳마다 물질적 욕망이 번득이는 세상에서 그는 정신적 가치를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로마나 아테네가 돈이 없어서 몰락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와 역사든 '정신'이 있어야 건강하게 발전합니다. 우리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의미있는 '정신'의 맹아를 볼수 있습니다.' 그는 칸트 전공자답게 철학자는 개인으로 살지라도 '보편이성'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재야 강단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양운덕(고려대 강사), 이정우(전 서강대 교수)등과 함께 '철학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9일 창립 예정인 시민운동단체 '함께 하는 시민행동'에도 참여해 그 동안 겪은 교육의 문제를 제도적민 차원에서 풀어 볼 참입니다.' 19990904/책의향기 김형찬기자 출판사 서평 김상봉 철학이야기 저자는1977년 봄부터 일반 시민을 위해 격주에 한번씩 일요일마다 철학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3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통해 우리사회가 얼마나 부도덕한 사회인가를 이론이나 구호를 통해서가 아니라 몸으로 절실하게 체험하고 강의를 통해 선과 양심 그리고 윤리와 도덕의 본질을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야겠다고 생각 모든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고 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철학사들의 주요한 윤리학사을 쉽게 풀어 강의록을 섰는데 이 책이 [호모에티크스 -윤리적 인간의 탄생]입니다. 이 책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호모 에티쿠스, 즉 윤리적 인간의 탄생을 위하여 씌여진 책입니다.선하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선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선이 무엇인지 묻고 생각하는 것을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참으로 낯선 물음입니다.그런 까닭에 그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당연히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선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여 하지 않으며 또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그저 어릴 적부터 주입받은 사회적 규범과 막연한 미풍양속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요 도덕입니다. 그러나 강용된 규범은 결코 참된 도덕의 위엄을 가질 수 없습니다.참된도덕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오직 주체적 반성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적 주체,윤리적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사람들이 선이란 무엇인가,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왜 우리가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근본 물음에 대하여 스스로 묻고 생각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서양윤리학의 발생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19990914/   [책과사람] 학문의 열정 , 잠시도 멈출 수 없다 한겨레신문 [ 문화생활 ] 1998. 9. 22. 火 ▶프린트 하시려면 지난 16일 신촌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김 전 교수는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보게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정리해고’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95년 그리스도신학대가 학생 정원을 늘리면서 신설한 종교철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학교는 이 과와 더불어 선교언어학과 교회행정학과 등을 신설했으나 지난 97년 ‘학부제’ 실시를 명목으로 이 3개 학과를 없애고 이들 과의 정원은 야간 선교학과 등에 분산 배정했다. 결과적으로 종교철학과 등을 신설한 것은 정원을 늘리기 위한 구실이었던 셈이다. 용도폐기된 이들 신설학과의 교수 네 명은 올 여름 재임용 심사에 아예 올리지 않아 자동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김 전 교수는 “구제금융 시기를 실업자의 처지에서 보낸다는 것은 철학자로서 다행”이지만, “학과가 없어져버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아프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맹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학부제가 대학사회를 시장의 논리에 내맡기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지난 92년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의 〈최후 유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전 교수는 대학에서 자리를 상실한 뒤 오히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자기의식과 존재사유〉(한길사 펴냄)란 두툼한 연구서를 펴냈으며, 연세대 고려대 대학원에 강사로 출강하는 이외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철학을 강의하는 ‘일요철학모임’을 이끌고 있다. 열 차례에 걸친 윤리학 강좌는 이미 원고로 옮겨 〈서양철학은 무엇을 선(善)이라 보았는가〉(가제)란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칸트 플라톤 등 서양 철학의 진수를 배우고 온 그는 “칸트에게 다가갈수록 이질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플라톤이든 칸트든 그들의 철학은 우리를 보기 위한 거울이지 우리의 초상일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양철학을 철저히 이해하되 그 바탕에서 그들을 극복하고 넘어갈 논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스스로 사표를 던진 경우다. 지난해 재임용 심사 과정에서 인사위원회는 그가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동양철학과 서양고전철학에 관련된 논문을 쓴 것을 문제삼아, “1년간 두고본 뒤 결정하겠다”며 ‘조건부 재임용’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여전히 자신의 소신대로 프랑스 현대철학과 동양철학을 ‘가로지르는’ 연구를 계속했다. 철학과 교수들은 “왜 비전공자가 동양철학을 함부로 건드리느냐”는 식의 비난을 퍼부었고,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학문 연구가 도저히 가능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이 전 교수는 지난달 사표를 던졌다. 지난 17일 이화여대 앞 한적한 우동집에서 만난 이 전 교수는 한마디로 ‘나를 슬픈 눈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 어떤 공부를 하고 있든 자신의 인생철학은 변함없이 ‘도가철학’이라는 그는, 이 일이 그의 삶에서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참지 못하는 점은 기성 철학계의 ‘학문에 대한 편협한 이해’다. “학과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강조되는 시대에 ‘너는 전공이 무엇무엇이니 거기에만 머물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칸트 전공 해서 20년 30년 우려먹는 게 전공을 충실히 지키는 일입니까?” 그는 올 가을학기부터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철학과 인간존재론을 다룬 〈인간의 얼굴〉을 이미 탈고해 출간을 기다리고 있으며, 프랑스어와 한국어 두 언어로 〈들뢰즈의 철학〉을 집필중에 있다. ‘개전의 정’이 전혀 없는 그는, 이 책의 4분의 1 분량을 들뢰즈 철학과 선불교의 비교에 바치고 있다. 두 사람의 예는, 안일에 빠지기 쉬운 교수사회는 ‘전공’이라는 안락한 테두리 긋기를 통해 경쟁의 무풍지대로 남겨두고, 정작 모든 학문을 포괄해야 할 대학의 학제는 무원칙한 시장논리로 무너뜨리는 황폐한 우리 대학사회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시련기를 건너고 있다는 점도 닮았지만, 마흔살의 별칭인 불혹(不惑)에 걸맞은 세월의 무게를 담담하게 이겨내는 모습에서 더욱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보인다. 이상수 기자 이정우 전 교수 학문에 대한 편협한 이해 못참아 `전공 테두리'안주 거부 사표 존재론 다룬 `인간의 얼굴' 탈고 김상봉 전 교수 학부제 명목 학과없애 `정리해고' “낮은 자리서 세상보게돼 되레 다행” 윤리학 강좌 `서양철학...'출간준비 구제금융 시기 ‘백수’가 돼버린 두 철학자가 있다. 김상봉(40) 전 그리스도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와 이정우(40)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 95년 교수로 임용된 이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소장 학자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학부제 실시와 더불어 학과가 없어져버려서, 다른 한 사람은 재임용 심사의 비학문적 논리에 맞서 사표를 던짐으로써 이번 가을학기부터 대학 연구실을 비워야 했다. 개인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임에도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라 여기며 더욱 학문적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두 사람을 ‘책과 사람’이 만나보았다. ♠위로 기사제보·문의·의견  opinion@mail.hani.co.kr 여름스케치] 학술지 '신인문' 창간 수련회 중앙일보 [ ] 1997. 7. 28. 月 사랑하는 당신께. 지난 3일간은 길위에 있었습니다.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얼마 전에 반년간 학술지 '신인문' (新人文) 을 창 간했는데, 그걸 기념하여 전북 장수에서 독자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저도 '신인문' 창간에 참여하여 편집도 하고 글도 쓰고 했던지라 순서의 일부를 맡아달라는 한길사 김언호대표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수련회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2박3일 동안 '신인문' 창간호 특집인 '문명 : 그 빛과 어둠' 을 주제로 하여 여러 사람의 강의도 듣고, 또 둘 째 세째날에는 전남 해남.강진 일대의 유적지와 장수의 논개 생가를 돌아 보는 역사기행으로 순서가 짜여져 있었습니다. 첫날은 한신대 김명섭 교수와 저, 그리고 둘째날은 고려대 최영준 교수 와 충북대 유초하 교수가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유적지 답사 여행길에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께서 길안내를 맡 았습니다. 26일 아침, 버스는 40명 남짓 사람들을 싣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둘러보니 차안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억압받는 삶을 살아온 이 땅의 여성들이 더 간절히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 참석한 분들 가운데는 아예 부모가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같이 온 이들도 있었고, 어머니 와 딸이 같이 참석한 집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제사가 있는 것을 내버려 두고 수련회에 참석한 용감한 중년부인도 있었고, 군대에서 휴가 나와 옛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오락으 로 보낼 시간에 혼자 조용히 수련회 버스에 몸을 실은 사병도 있었습니다 . 이 뜨거운 삼복 더위에 그들이 무엇을 바라, 산과 바다의 피서지를 마다 하고 공부하고 답사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모두 오락보다 중요하고 피서보다 절실한 어떤 것을 바 라며 찾고 있음을 굳이 물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70 년 대와 80년대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변혁의 물결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에 지금 우리의 의식은 깊은 무관심의 뻘밭 속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보 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잊고 그저 자기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남들이 놀러 다닐 시간에 배움과 의미를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세상을 아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고대하는 이들이 살아있음 을 확인하게 됩니다. 생각하면 ,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 기술, 여성과 남성, 노동과 자본, 그리고 시민과 권력은 여전히 불화 속에 있습니다. 더하여 우리의 경우에는 이 좁은 땅에서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과 북 쪽이 불화하며 전통과 현대가 부조화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불화는 새로운 삶의 형식과 문화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의를 하고 밤늦게까지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마음 속에서는 과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산출할 때까지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인가라는 불안이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불안은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 시대의 징후일 것입니 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는 남도 기행을 떠났습니다. 같이 가지 못하고, 하루 사이 친근해진 얼굴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 분들이 여행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빌어 보았습니다. 날이 몹시 무덥습니다. 다시 소식 드릴 때까지 건강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필자 김상봉교수,그리스도신학대·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