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2/17 (20:36) from 203.252.17.161' of 203.252.17.161'	Article Number : 8
Geist	Access : 6891 , Lines : 42

김용옥의 번역서 <이성의 기능> 출간 소식을 보고

머리를 깎으려 이발소에서 기다리다 우연히 신문 한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김용옥 선생의 얼굴이 거기에는 있었다. 내용인 즉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을 새로 김용옥선생이 번역했다는 것이다. 문득 '이성의 기능은 예전에 번역된 책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영어 원문과 역자 주가 첨가되었다 한다. 번역에 원문을 달고 역자주를 다는 작업은 어쩌면 우리 한국의 지식사회 풍토에 있어서는 결코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번역서 <이성의 기능>은 기존의 번역서 이상의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옥 선생은 저번 여름에 화이트헤드 세계 회의에서 침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는데 그 논문의 내용과 반응도 궁금하고, 또 이번에 나온 번역서의 역자주의 내용도 궁금하다. 이번 겨울에는 과정신학에 관계된 저서를 공동작업을 통하여 번역하려 한다. 거기에는 원문이 첨가는 안되지만, 나름대로의 주해와 설명을 심도깊게 첨가하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본다. 시대를 넘어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현실에서 재음미 하는 것은 지금 내가 피부로 느끼고 체험하고 삶 속에 누적된 경험들과의 강렬한 마찰과 불꽃을 동반함이 없이는 공허할 뿐인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 직조하며 현실 속에 재해석하는 이 과제는 오히려 영원한 말씀을 영원한 자리에 영영 유폐시켜 버리는 길보다 더욱 많은 용기와 내밀한 긴장이 필요하다. 서구 사상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는 화이트헤드의 언명은 적어도 이런 면에서 오류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지금 우리에서 피어오르는 삶의 고유한 약동은 결코 어디에도 없고 어느 때에도 없었던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계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가 영원의 그림자가 아니라, 현재는 영원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운 방식으로 끌어내리는, 심는 과제는 영원을 넘어서는 오늘을 오늘답게 재현하는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이 과제를 유기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하루, 이 시간의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죄악을 범한다고 하여도 과언의 표현은 아닐 것이다. 전통의 현재화에 익숙한 우리의 학문풍토와 신학적 해석학은 이제 현재의 전통화라는 더욱 더 성숙된 방식으로 교정되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