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3/01 (11:07) from 210.109.177.65' of 210.109.177.65'	Article Number : 96
Geist	Access : 6510 , Lines : 195

새로운 3월을 맞이하며

나에겐 3월이 정말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면에서 그렇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이렇게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정말 기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혈액투석에 대한 방송을 우연히 두 케이블티브이 방송사에서 보게 되었다. 요즘 신장과 관련하여 비교적 가벼운 증상에 대한 치료 때문에 병원에 다니게 되어 신경이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일단은 매우 혈액투석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진행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림 좌담 때문에 성공회대 손규태 교수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손 교수님도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참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혈액투석을 받는 분들을 화면에서 보며 왜 저렇게 10%의 신장기능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쉽게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혈액투석을 받는 것이 정말 남의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들을 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건강을 주시어서.. 라는 기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건강이 감사의 조건이 된다 하지만 그분들 앞에 드리는 감사의 덕목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너무나 반신앙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당신의 뜻 안에서 이렇게 그들, 그리고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감사드린다고 기도를 하였다. 어쩌면 내가 몸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이렇게 펄떡거리면서 심장에 호흡을 잇대어 주시는 하나님의 그 은총에 감사해야지 타인이 맞이하는 질병과 고통을 내가 직면하지 않고 내 몸뚱이가 현재 건강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은 결코 올바른 신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으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진정 당신의 일에 헌신하고 쓸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나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온전히 건강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몸과 마음이 아파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주신 세상에 대한 뜻을 올바로 깨닫을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더 나아가서 그 뜻을 올바로 행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구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는 꽃동네 회보에 적힌 문구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요즘 졸업을 하면서 여러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또한 황량한 벌판에 홀홀단신 나아가는 시기에서 겪는 불안감이 다가왔다. 내 안의 불안한 영혼의 움직임을 오랬동안 지켜보았다. 물이 흐르는 대로 영혼은 그 나름대로의 길을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은총의 시간 안에 살아가는 도상에서 아주 작은 경험과 고민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너무 심각하게 이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은총 마저도 기뻐 감사하며 살아가도 벅찬 일인데, 그리고 그 뜻을 헤아리고 살아가기에도 크나큰 일인데 왜 이렇게 작은 일에 나의 영혼이 연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은총이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그가 바라보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기뻐 받아들이며 혹은 즐기며 혹은 깨달음의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껴야 할 터이니 말이다. 신학을 하는 것, 나로부터 주어진 삶이 아니고 나를 위한 삶이 아니니 더욱 기쁘고 당당하고 용기 있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도록 해야겠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가 오늘 죽었다 하더라도 나는 많은 일을 하였고, 많은 사랑을 하였고 세상과의 많은 경험,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나누었다. 어쩌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빨간 깃발을 들고 앞만 바라보라 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찬송가의 가사 그대로 내 모습 이대로... 내 모습 이대로 건네드리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한 발 한 발 정말 캄캄한 미래이지만, 진정한 신앙이라 하면 어둠 속에서 나를 인도하는 그 빛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많던 적던 아장아장 새로운 출발을 향해 용트림하는 한신신학연구소가 올바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정신없이 커리큘럼의 과정을 마쳤으니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내가 해야만 하는 공부를 차분히 앉아서 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짜피 한 번은 새롭게 통과제의를 겪어야 하고 깨야 할 독일어의 벽이라면 이제부터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가야겠다. 은정이의 논문 제목처럼, 홀로서는 것을 배워야겠다. 꼬람 데오,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홀로 서서 그 분 앞에 내 모습 이대로를 드릴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이 신학의 길을 더욱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더욱 진지하게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