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질서

진정성 authenticity

문학에 있어서 성실성의 문제가 과연 어떤 것인지 검토해보는데 편리한 방법의 하나가 진정성이라는 개념과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은 생존해 있지 않은, 20세기 미국 비평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트릴링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기준입니다. 트릴링은 성실성(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대조적인 개념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이 대조 속에서 성실성은 요컨대 말과 행동이 일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인데요. 물론 이것은 우리가 늘 유지하기 어려운 윤리적 덕목이지만, 그러나 어떻든 우리의 의지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러한 자질입니다. 그에 비해서, 진정성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도나 의지의 힘만으로는 조절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트릴링은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속 깊은 내부에 있는 어둡고, 비합리적이며, 무의식적인 자아의 요구와 합치하려는 시도가 진정성을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진정성의 개념은 성실성의 가능성 자체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실성이라는 자질은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진정성은 결국 우리 각자의 전인적인 인격, 또는 총체적인 인간성에 대한 호소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러기를 원한다고 해서 쉽게 진정성이 확보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의지나 두뇌작용의 차원이 아니라 이성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근접도 할 수 없는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 근원적인 욕망의 세계까지 가 닿을 때만이 다소간에 문학적 진정성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물론 성실성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지요. 그것은 문학에서 총체적인 진실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은 마음으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시인 김수영의 용어로 하면, 문학은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겠지요. 여기서 온몸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이 껍데기 육신을 말하는 것일 리 없습니다. 단순한 두뇌작용도, 성실하고자 하는 의지도, 실존적인 선택도 모두 문학적 진정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야말로, 온몸, 온마음으로 전인격이 투입됨으로써만, 그래서 상투적인 윤리나 세계관을 넘어서는 진실이 드러날 때, 문학은 비로서 진정한 것이 되고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시의 세계는 지성과 피와 상상력이 동시에 함께 움직이는 세계라고 말하였지요. 오늘날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우리의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의 사회적 양심을 깨우는 일에 적지 않게 이바지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나 작품으로서 설득력이 약하고, 우리의 전인적인 인격에 호소하는 힘이 대체로 미약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노동자의 시각에 철저히 서 있지 않다거나 투쟁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너 하는 데 진정한 원인이 있다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총체적인 인간성의 구조에 대한 통창이나 참다운 과학적 인식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닐까요?

- 김종철, <인간, 흙, 상상력>, 녹색평론 1992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