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질서

우리는 사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장을 봐 오기를 잘했다고 아내가 말했다. 머지않아 길에 차가 다닐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 생각이 나를 기쁘게 했다-모든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속담이 있지. <행복해지려면 숨어 살라>는 속담 말야. 우리가 바로 그렇지 않아?" "맞아, 우리가 바로 그래." "누군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작가가 이렇게 덧 붙였지. 그리 오래 전도 아니지. <숨어 살려면 행복하라>고 말야.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우리에게 더 적절해." - 아멜리 노통, <오후 네시>

나는 그가 시계에 집착하는 이유를 퍼뜩 깨달았다. 삶을 사랑하는 이들과는 반대로 팔라메드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축복했다. 자신이 갇혀 있는 우리 속에서 유일한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다. 따라서 그의 집 안에 있는 스물다섯 개의 시계는 느릿하고 확실한 리듬에 따라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죽고 나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부재에 입회하지 않아도 되리라. 육체가 없으니 그 안에 담길 공허도 없으리라. 삶 대신에 무가 되리라. - 아멜리 노통, <오후 네시>

이 문장은 연쇄 살인 사건이 3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었소. 사람들은 그 문장을 그런 식으로 이해를 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추리가인 에릭 뢴로트 당신으로 하여금 사건이 4중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암시들을 반복적으로 삽입시켜 놓았소. 북쪽에서 일어난 하나의 불가사의, 동쪽과 서쪽에서 일어난 불가사의들은 당연히 네번째 불가사의를 남쪽에서 요구하게 될 거라는, <테트라그라마톤>은 네 글자로 구성되어 있소. - 보르헤스, <죽음과 나침반>

그리고 신은 그를 100년 동안 죽게 한 다음 그를 살려냈고,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얼마 동안 여기에 있었는가?" "하루 또는 하루의 일부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 <코란>, II: 261

새벽 무렵, 그는 클레멘티눔 도서관의 한 서고에 몰래 잠입하는 꿈을 꿨다. 검은 안경을 쓴 한 사서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찾는지요?" 흘라딕이 그에게 대답했다. "신을 찾고 있습니다." 사서가 그에게 말했다. "신은 클레멘틴 도서관에 있는 40만 권의 책들 중 어떤 페이지 어떤 글자들 중의 하나에 있지요. 나의 부모들과 나의 부모들의 부모들이 그 글자를 찾아 헤맸지요. 나 또한 그것을 찾느라 눈이 멀어버렸지요." 그가 안경을 벗었고, 흘라딕은 죽어 있는 그의 눈들을 보았다. 한 열람자가 지리부도 하나를 반환하기 위해 들어왔다. "이 지리부도는 쓸모가 없어요." - 보르헤스, <비밀의 기적>

<말씀>은 육화되면서 어느 곳에나 있는 만유로부터 한정적인 공간으로, 영원으로부터 역사로, 끝없는 행복으로부터 덧없는 변천과 죽음으로 건너왔다. 그러한 희생에 값하려면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한 인간이 적절한 희생을 치르는게 불가피하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바로 그러한 대표로서의 인간이다. 유다만이 제자들 중 유일하게 비밀의 신성과 예수의 처참한 계획을 깨달았다. <말씀>은 스스로를 낮춰 죽어가는 인간이 되었다. 따라서 <말씀>의 제자인 유다 또한 스스로를 낮춰 밀고자(모든 수치스러운 행위 중에서 가장 비열한 죄악)가 되고,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의 손님이 될 수 있었다. 하위질서는 상위질서의 거울이다. 지구의 형상들은 천국에 있는 형상들과 일치한다. 몸의 주근깨들은 변질되지 않는 성좌들의 지도이다. 유다는 어떤 의미로 예수를 반영한다. 바로 여기에서 영원한 비난 그 이상조차 받아 마땅할 30냥의 은화와 입밎춤이 유래한다. 바로 여기에서 유다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유래한다. 이렇게 닐스 루네베리는 유다의 수수께끼를 명증하게 밝혔다. - 보르헤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이제, 이것으로 한 매듭을 짓는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과 실오라기 간격만큼이나마 달라진 어떤 당신일까? 이제, 지금의 당신은 나의 다음 소설을 다시 읽으려 할까? - 이인성, <당신에 대해서>

우선, 이 소설을 읽으려는 당신에게, 잠깐 동안 눈을 감도록 권하게다. 눈을 감지 않고 위의 비어 있는 한 줄을 뛰어넘었다면, 제발, 아래의 비어 있는 한 줄을 건너기 전에, 꼭, 눈을 감아보기 바란다. - 이인성, <당신에 대해서>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선수와 팀을 가지고 있다. 60년 동안 야구를 사랑해온 늙은이에게도, 바로 어젯밤부터 야구가 좋아진 중학생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을 뽑거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와는 달리, 적어도 야구에선 '다 똑같은 놈들이야'라거나 '전부 도둑놈들이야'와 같은 태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야구에 관심이 없는 이라 해도, 경기를 죽 지켜보다 보면 어쨌든 누군가를 응원하고 있거나 어떤 팀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야구란 그런 것이다.... 예컨대 원칙과 룰이 있는 쪽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에는 별처럼 무수한 야구팀들이 원칙과 룰을 지키며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반짝임 속에서 결국 자신의 별을 발견하고, 응원하게 된다. 즉, 저 별은 나의 별이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하지만 그건 놈들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야. 삼미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전기 리그 내내 조롱을 당했으니 아마 후기에선 이를 악물고 뛰겠지, 라고 믿었던 놈들의 예상은 그래서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지. 차마 놈들도 5승 35패 승률 0.125의 후기 성적 앞에선 벌린 입을 오므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완전히 한 방을 먹은 거야. 제대로! 결국 놈들은 전략을 수정했어. 아아, 이놈들은 달래야겠구나. 짓밟으면 짓밟을수록 기어이 되살아나 이 강산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버릴 유한킴벌리 같은 놈들이구나, 싶었던 거지. 그래서 차라리 이 꼴찌를 1등으로 만들자-라는 '하면 된다'의 감동이 끓어 넘치는 역전의 드라마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거야. 그것이 바로 83년의 프로야구였지. 놈들은 즉각 타 구단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장명부를 권총으로 협박해 삼미에 픽업시키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프로의 귀감으로서 삼미를 거듭나게 할 작정을 했던 거야. / 뻥이지? / 물론.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여자가 남자에게, 또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겐, 적어도 우리 세대의 한국인들에겐 아직도 너무 버거운 의식이다. 유럽인들이라면 두 단어나 세 단어로 표현해야 할 그 사랑의 고백을 한국인이라면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고 그저 사랑해, 라고 한 마디 하면 되지만, 그 한 마디는 유럽어의 백 마디보다도 입 밖에 내기가 더 힘들다. 마음속에 갈무리돼 있을 때는 그리도 순결하고 심지어 숭고한 느낌을 주는 그 사랑이라는 한국어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뱀처럼 징그러운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꼭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거나 종이 위에 쓸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 감정을 자기들이 알고 있는 외국어로 표현한다. 대체로 외국어에는, 모국어가 주는 만큼의 구체성 육체성 직접성이 없으므로. 그것은 느끼는 언어가 아니라 이해하는 언어이므로. 자기가 내뱉거나 휘갈긴 말에 대한 자신의 관련성이 엷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러니까 자기 발언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는 느낌을 주는 언어이므로. - 고종석, <파두>

화련이는 글씨가 참 예뻤다. 내 또래가 쓴 게 아니라 마치 어른이 쓴 것처럼. 그리고 그 글씨를 쓰는 손도 참 예뻤다. 이따금 연필 심에 침을 바르기 위해 내미는 혀도. 화련이는 모든 것이 예뻤다. 나는 화련이의 모든 것이 예뻤다. 아, 화련이를 묘사하기 위해 예쁘다는 밋밋한 말밖에 고르지 못하는 내 가난한 한국어여! - 고종석, <카렌>

우리는 아직까지 헤어지지 않았다. 83년 4월 19일 제주시의 한 호텔방에서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한 뒤로, 아니 82년의 마지막 날 티티카카의 구석자리에서 입을 맞추고 사랑을 맹세한 뒤로, 우리는 그 약속과 맹세를 지키며, 비록 더러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함께 지지고 볶으며 때로는 누추하고 이따금씩은 찬란한 세월을 살아왔다. 그때처럼, 아니 초등학교 시절처럼 서로 너나들이를 하며 말이다. - 고종석, <카렌>

그때부터,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걸 부인하는 것은 식민지 조국 조선을 배신하는 것이었고, 더럽고 냄새나는 조국 중국을 배신하는 것이었고, 희망 없는 조국 베트남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가 지배하는 기회와 풍요의 나라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내가 뱀과 같은 유대인이라는 것을, 내가 무식하고 가난한 히스패닉이라는 것을, 내가 거리에서 부랑아로 자라난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번영의 제국 유럽 연합에서 내가 아랍인이라는 것을, 내가 터키인이라는 것을, 내가 포르투갈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흑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내가 사생아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내가 이혼녀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컨드라는 것을, 레프라라는 것을, 얽빼기라는 것을, 무학력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을 배신한 유대인 예수가 되는 것이었고, 그 예수를 배신한 유대인 가롯 유다가 되는 것이었다. - 고종석, <카렌>

"하느님이 새 세상을 만드시려나 보다. 방주에 탈 자신이 있니?" "아니." 나는 사뭇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무슨 일에 뽑혀본 경험이 거의 없었으므로. "너랑 나랑 둘 가운데 한 사람만 탈 수 있다면 내게 양보할래?" "응." 나는 다소 자신 없이 대답했다. 누이에 대한 사랑과 죽음의 공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지를 잘 가늠할 수 없었으므로. - 고종석, <누이 생각> giuliana@club-internaute.fr

묵은 것을 보내는 것이 내겐 늘 힘들었다. 나는 새것이 겁난다. 새 책이든, 새 얼굴이든, 새 집이든, 새 식구든, 새해든, 나도 램 같은 보수주의자인가 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런 것 같다. <제야>를 썼을 때의 램처럼 나도 마흔여섯의 이 나이에 이대로 멈춰 있었으면 좋겠다. 플레야드의 내 친구들도 지금보다 더 늙지도 젊어지지도 말고, 더 부자가 되지도 더 가난해지지도 말고, 정부나 국영 기업체에 들어가지도 말고 지금 이대로 였으면 좋겠다. 노는 계속 대통령 당선자로 있고, 디제이는 계속 대통령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누이는 영원히 마흔두 살의 미혼녀로, 딸내미는 영원히 스무 살의 학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
"무기야, 어떻게 되었느냐?" "아직도 삼초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장삼봉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검을 거두고 자리로 돌아갔다. 장무기는 대전(大殿)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다시 천천히 반 바퀴를 돌고 나더니, 고개를 들어 얼굴에는 희색을 잔뜩 띄우면서 말했다. "이제야 모두 잊게 되었습니다." "기특하게 빨리도 잊어 버렸구나. 그렇다면 팔비신검의 가르침을 받아 보아라." - 김용, <의천도룡기>

<밤 중의 밤>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의 어느 날 밤에는 천국의 비밀 문들이 활짝 열리고, 항아리들에 담겨 있는 물의 맛이 달콤해진다. 그러나 그처럼 천국의 문들이 열렸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날 오후 느꼈던 그런 황홀감을 맛보지는 못했으리라. 책은 영어로 씌어 있었고, 1001페이지에 달했다. 나는 그 노란색 가죽 겉표지와 안 표지에 똑같이 반복되어 있는 그 신비로운 글자들을 보았다. <틀뢴의 제1백과사전, 제11권. Hlaer에서 Jangr까지>. 출간된 장소와 연도에 관해서는 그 어떤 기록도 없었다. 첫번째 페이지와 컬러 화보면들 중의 하나를 덮고 있는 실크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푸른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2년전, 나는 어느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피상적인 언질을 발견했었다. 이제 우연은 내게 보다 정확하고 꼼꼼히 읽어야 할 어떤 무엇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 보르헤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그가 처음 생각해 냈던 작업 방식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스페인어에 능통하는 것, 가톨릭 신앙을 회복하는 것, 무어인들 또는 터키인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 1602년부터 1918년까지의 유럽 역사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되는 것. - 보르헤스,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회사>의 자비로운 영향 아래 우리들의 관습은 우연으로 물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열두 항아리의 다마스커스 산 포도주를 산 사람이 그 중의 하나에 부적이나 뱀이 들어 있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계약서를 쓰는 공증인은 계속해서 거의 항상 내용을 잘못 기재합니다. 저 또한 시간에 쫓기면서 말씀드리고 있는 이 얘기 중 몇 가지 아름다운 것들, 몇 가지 잔혹한 것들을 왜곡시켜 말씀드렸을 겁니다. 아마, 거기에 어떤 신비스러운 단조로움 또한 그랬을지도.... 지구상에서 가장 명민한 우리의 역사가들은 우연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냈습니다. 이 방법의 운용은 (일반적으로) 매우 믿을 만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속임수 없이 그 운용 방식이 그렇게 널리 유명해질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회사>의 역사만큼 그토록 허구에 오염된 역사는 없으니까요.... - 보르헤스, <바빌로니아의 복권>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가장 평가를 받지 못했고, 가장 비밀스러웠던 작품이다. 쾌인은 늘 독자란 이미 멸종된 종족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잠재적이든 실제적이든 간에 (그는 이렇게 이유를 들었다) 작가가 아닌 유럽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말이네.' - 보르헤스,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제들로부터 그는 '도서관'이 총체적이고, 그곳의 책장들은 20여 개가 넘는 그 철자 기호들의 가능한 한 모든 조합(그 숫자는 아주 방대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즉 모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것을 추론해 냈다. 모든 것. 미래의 아주 세세한 역사, 대천사들의 자서전, '도서관'의 신실한 목록, 셀 수 없이 많은 거짓 목록들, 그러한 목록들이 가진 오류에 대한 증거, 진실한 목록이 가진 오류에 대한 증거, 바실리데스의 그노시스 학파적 복음, 이 복음에 대한 주석, 당신의 죽음에 관한 진정한 이야기, 갖가지 언어들로 씌어진 모든 책들의 번역, 모든 책들과 한 권의 책 사이의 중첩, 베다가 색슨족의 신화에 대해 쓸 수 있으면서도 쓰지 않았던 논문, 타키투스의 소실된 책들. -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아마 나이와 두려움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인류-유일한 종족-는 소멸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도서관'은 한계가 없지만 주기적이다.> 만약 어떤 영원한 순례자가 어느 방향에서 시작했건 간에 도서관을 가로질렀다고 하자. 몇 세기 후에 그는 똑같은 무질서(이 무질서도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속에서 똑같은 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다. -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나는 이 편지를 입수하기 전에 한 권의 책이 무한한 책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단지 순환적인, 원형의 책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와 첫번째 페이지가 동일해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그런 책 말입니다. 또한 나는 천하루 밤들 중 중간에 있는 한 밤을 떠올렸지요. 그날 셰헤라자데 왕비는 (필경사의 불가사의한 자의성 때문에) <천일야화>를 원형 그대로 언급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시 그런 유의 이야기를 들려줄 밤과 마주치게 될 위험을 가지도록 만들고, 그렇게 해서 그것은 무한히 반복을 거듭하게 되는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지요. -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우리들은 푸네스가 일반적인, 그러니까 플라톤적인 생각들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개'라는 종목별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형상들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하나하나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14의 3에 있늘 개와 (정면에서 보았을 때) 4의 3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거울에 비쳐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과 손들 때문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스위프트에 때르면 릴리풋의 황제는 미세한 손의 움직임을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푸네스는 쉴새없이 상처의 화농과 이빨이 썩는 것 그리고 피로의 고요한 진행 과정을 분별했다. 그는 죽음이 진척되거나, 습기가 차오르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보았다. 그는 다형적이고 순간적이고 그리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세계에 대한 고독하고 명중한 관찰자였다.... 그는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잠은 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 버리는 것과 같다. -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을 것이다. 먼저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 벼슬아치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 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우드가 수수해질 것이다. 집안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밖에 나가면 경쟁 의식이 훨씬 사그라지고 그 대신 현지의 문화 유적이나 살피면서 점잖은 취미를 기를 것이다. 여야가 아무리 치고 받는 국회라 할지라도, 일이 식민지 통치에 관한 한 쉬쉬하며서 아무래도 민족은 이해 공동체라는 본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무어니무어니해도 유부녀 외입만한 것이 없다고, 타족 족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깨 쏟아지는 재미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 싸움의 숨쉴 구멍이 생긴다. 심심하면 차 볼 수 있는 개 옆구리가 말이다. - 최인훈, <회색인>

그때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그의 뺨에 와 닿는 뜨거운 뺨은 느꼈다. 준은 놀라움과 흥분으로 숨이 막혔다. 살 냄새. 멀어졌던 폭음이 다시 들려 왔다. 준의 고막에 그 소리는 어렴풋했다. 뺨에 닿은 뜨거운 살. 그의 몸을 끌어안은 팔의 힘. 가슴과 어깨로 밀려오는 뭉클한 감촉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지게 만들었다. 폭격은 계속되었다. 폭탄이 떨어져 오는 그 쏴 소리와 쿵, 하는 지동 소리는 한결 더한 것 같았다. 준은 금방 까무러칠 듯한 정신 속에서 점점 심해 가는 폭음과 그럴수록 그의 몸을 덮어 누르는 따뜻한 살의 압력 속에서 허덕였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 갑자기 아주 가까이에서 땅이 울렸다.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웅성거렸다. 폭음. 또 한 번 굴이 울렸다. 아우성 소리. 폭음. 살냄새.... - 최인훈, <회색인>

깨달은 사람. 말이 준을 취하게 했다. 이 사람들은 깨달았다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 최인훈, <회색인>

한 알의 모래에서, 한 송이 야생화에서 이 세상을 보듯이, 당신의 손바닥에
무한을 움켜쥐고 한 시간이라는 짧은 순간에 영겁을 가지소서. - 윌리엄 블레이크, <결박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

난 위대한 반역자다. 그보다 더 큰 반역은 없지. 누구든 도주를 도모하기만 하면 198조각으로 잘라주지. 그런 다음에, 벽화에 쓸모 있도록 밟아 뭉개주지. 낱알 하나가 아깝고, 한 방울의 물이 아쉬운 너희들을 155년간 감금해 놓을거야. 나, 아귀레가 나무에서 새가 죽어 떨어지길 바라면 새들은 나무에서 죽어 떨어질거야. 난 신의 분노다. 내가 걸으면, 날 보는 이 땅은 지진이 날것이고, 날 따르는 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부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반역하는 자 누구든... - 베르너 헤어초크, <아귀레, 신의 분노>

바다에 다다르면, 더 큰 배를 지을거야. 스페인 왕정에서 벗어나,트리니다드를 향해 북쪽으로 항해할거야. 항해를 계속해서, 코르테스부터 멕시코까지 옮겨갈거야. 그 얼마나 위대한 반역인가! 그런 다음에 우린 새 스페인의 모든 것을 통제할꺼야. 다른 이들이 연극을 만들어 내 듯, 우린 역사를 만들어낼꺼야. 나, 신의 분노는 내 딸과 결혼해서 그녀와 함께 지구상에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가장 순결한 왕조를 이룰 것이다. 함께, 이 대륙의 전부를 지배할거다. 우린 계속 할 것이다. 난 신의 분노다. 나와 함께 할 사람은 누군가? - 베르너 헤어초크, <아귀레, 신의 분노>

"밥은 먹고 다니냐?" - 봉준호, <살인의 추억>

"세상에서 가장 쉽게 돈 버는 방법이 뭔 지 아시오? 바둑 져주고 돈 버는 겁니다." - 허영만, <살라망드르>

"만약 바둑에 신이 있다면 몇 점 깔고 두시겠습니까?" "석 점 깔고 두겠소. 하지만 목숨을 걸라면 넉 점을 깔겠소." - 허영만, <살라망드르>

1517년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는 안띠야스 제도의 금광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원주민(인디언)들에게 몹시 연민을 느꼈고, 황제 까를로스 5세에게 후에 안띠야스 제도의 금광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게 될 흑인 노예들의 수입을 건의했다. - 보르헤스, 잔혹한 구세주 라자루스 모렐>

"그럼 내 계산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봐." 벤저민이 어깨를 움츠렸다. "물질은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응?" "담나툼, 빛, 점액, 기체지." 존이 동의했다. "나를 바보로 취급하라는 소리는 아니었어." - 그레고리 키스, <철학자의 돌>

귀네스는 고개를 숙여 내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려는 제스처에 가깝다는 느낌을 또 받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뻤고, 키튼이 툭하면 그러듯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던 것 같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위에 내 손을 살며시 포갰다. 한순간 손과 손이 얽히면서, 오해의 여지가 없는 솔직한 의사 소통이 이루어졌다. "굿나잇, 스티븐." - 로버트 홀드스톡, <미사고의 숲>

"난 그녀를 갖기를 원해." 그는 위협적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랑의 섬세함을 논하기에는 난 너무나도 멀리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추적을 계속해 왔어. 죽을 때까지는 날 사랑하게 만들 거야. 그때까진 즐기면 되겠지...." - 로버트 홀드스톡, <미사고의 숲>

그녀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온다. 생생하고, 거침없으며, 이해 불가능한 단어들이. - 로버트 홀드스톡, <미사고의 숲>

심장. 그곳은 내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육체였다. - 은희경, <새의 선
물>

종구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모험의 동반자였다. 누가 인생의 동반자와 더불어 모험을 하겠는가. - 은희경, <새의 선물>

"하루하루가 이렇게 길면 지겨울까요?" 그녀가 내게 몸무게를 주면서 말했다. "사랑이 없는 사람한테는 그렇겠지." "그럴까요..." - 윤후명, <돈황의 사랑>

이해할 수 없는 사태나 사람과 갑자기 부딪첬을 때 그 여자의 눈은 그렇게 떨리고 그렇게 맑아지는가 보았다. 어쨌든 속눈썹을 떨며 내 눈을 응시하던 그 여자의 눈길은 내 운명을 결정했다. 그 순간에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해 버린 것이었다. 마음과 마음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마주치는 눈길이었구나고 생각하며 나의 술 마셔 붉은 얼굴은 더욱 붉어지며 이마로 진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 김승옥, <서울의 달빛 0장>

그 이미지와 함께 있는 동안만 나는 살아 있었다. - 김승옥, <서울의 달빛 0장>

그렇다, 이 여자가 저런 눈이 될 때마다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곤 했던 것이다. 자,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 김승옥, <서울의 달빛 0장>
그 무렵엔 이미 근시가 되어 있거나 쉽사라 환각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야. 전자의 경우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하지는 않아. 이런 식으로 퍼레이드는 계속되는 거지. - 로저 젤라즈니, <특별 전시품>

"심한 폭풍우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응, 뼈에 사무치는구먼." "저리 가라고 타일러 보았어요?" "타일러 보았지. 하지만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아." - 로저 젤라즈니, <폭풍의 이 순간>

사람들은 일기 예보에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인간 심리를 구성하는 불변의 요소 중 하나이고, 아마 고대의 부족 구성원들이 샤먼에 대해 느꼈던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의 예언이 틀릴 것을 원한다. 만약 예언이 맞는다면 상대방이 자기들보다 잘났다는 얘기가 되고, 이것은 비를 맞고 생쥐 꼴이 되는 것보다도 더 불유쾌한 일인 것이다. - 로저 젤라즈니, <폭풍의 이 순간>

"내 입에서 타일러의 말이 튀어 나왔다. 나도 전엔 매우 상냥했다." - 데이빗 핀처, <파이트 클럽>

"정확한 염기배열이 생명이야. 그래서 비누 만드는 데는 사람 지방이 최고지." "잠깐, 여기가 어디야?" "지방 흡입 클리닉." - 데이빗 핀처, <파이트 클럽>

"9000미터 상공에서 비상구 여는 법이라니. 안전에 대한 환상이죠." "네, 그런 것 같군요." "비행기에 왜 산소 마스크가 있는 줄 알아요?" "필요할 때 숨 쉬라고." "산소를 마시면 뿅 가거든. 엄청난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겁에 질려 숨을 몰아쉬지. 그러다 갑자기 행복감을 느끼고 순해지면서 운명을 받아들여요. 여기 다 나와 있어요. 시속 천 킬로미터로 물 위에 비상착륙하는데 아무 표정도 없고 평온해 보이잖아요?" "헤헤, 그거 아주 재밌는 이론인데요." - 데이빗 핀처, <파이트 클럽>

"좋아,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는?" "간디랑 붙고 싶어." "멋진 대답인데." "넌 어때?" "링컨, 키가 크면 팔이 길잖아. 말라서 근성도 지독할거고." - 데이빗 핀처, <파이트 클럽>

"비행기는 안돼." "뭐라고?" "비행기는 안된단 말이에요." "아, 괜찮아. 비행기를 훔치려는 건 아니니까." "비행기를 훔치는게 낫지, 탈 수는 없어요. 난 비행 공포증이 있단 말이에요. 비행 공포증에 폐쇄 공포증까지 있어요." "잘들어, 협조하지 않으면 주먹 공포증까지 겹치게 될 거니까." - <미드나잇 런>

"그럼 뭐야?! 난 이꾸오의 로켓보조추진장치란 말야?! 목적지에 도달하면 필요없다는 거야?!"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2밀리야, 겨우 2밀리." "2밀리면 훌륭한 거라구. 우주에서는 2밀리로 한 생명이 떨어져 나간단 말이야"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난 글러브 한번 끼지 않고 프로선수가 될거야. 그렇게 정했어."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난... 약점이 있는 남자야. 난 도쿄에 와서... 어느 풋내기 피처를 만났지. 나의 스트라이크존은 넓지. 거기에 녀석의 서투른 공이라면 어디로 오건 완벽한 홈런이지. 이렇게하여 난 날마다 실력이 향상, 약점없는 '강한'남자로 늘 살아왔지. 하지만 내게도 구멍이 있어. 그게..바로...'여자'야! 남녀의 흥정, 그런 걸 초월해서 나도 한 번 치게 해줘! 그리고 날 틈이 없는 남자로 만들어줘!"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우리들은 남녀를 초월한 2080년의 커플이야."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내가 홈런 치면 어떡 할 거냐고!" "난 수술해서 콧구멍을 하나로 만들어 주지!" "그럼, 난 아가미 호흡을 할게." "난 평생 우회전 안하고 살게."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

나는 히브리 어, 그리스 어, 라틴 어, 아람 어를 배우던 여섯 살때로 돌아가 있었다. 열 살 때는 일리아드를 훔쳐보았다. 죄인을 기다리고 있는 지옥불이나 형제들 사이의 우애에 관해 설교하고 있지 않을 경우, 아버지는 신의 말씀을 원전 그대로 읽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 로저 젤라즈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나는 매일같이 시를 쓰며 일본어와 힌두어를 독습하는 일에 몰두했다. 불처럼 새빨간 턱수염을 기르고,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체스를 배웠다. 구원을 향한 다른 길을 몇 개 더 시도해 볼 작정이었다. - 로저 젤라즈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이리 내려와" "아뇨, 당신이 올라와요." 나는 위로 올라갔지만, 그곳에 도달하자 그녀는 또 20피트 위쪽에 있었다. - 로저 젤라즈니, <이 죽음의 산에서>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인간이란 그가 그때까지 한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 모든 것의 총합니다." - 로저 젤라즈니, <폭풍의 이 순간>

"내가 구해준 건, 그 강도 쪽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아다치 미쯔루, <카츠!>

"결혼은 안해도 영화는 보러 가는구나." - 아다치 미쯔루, <카츠!>

"얼굴은 예쁜데, 특이한 여자애네." "특이한 얼굴에 멀쩡한 애보단 훨씬 나아요.." - 아다치 미쯔루, <카츠!>

"죽일 참이냐? 그 여자애.." - 아다치 미쯔루, <카츠!>

"대수로울 것 없다. 네 쪽의 데미지는." "네 쪽...?" - 아다치 미쯔루, <카츠!>

"앞으로 바둑을 배워 보면 알게 될 거야.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는 걸." - 허영만, <살라망드르>

"사람들이 내기를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지. 이기면 될 것 아냐!" - 허영만, <살라망드르>

역시 여수에서 살 때다. 그즈음 형은 어머니를 죽이자고 끈끈한 음성으로 나와 누나를 꾀고 있었다. - 김승옥, <생명연습>

우리의 왕국에서 우리는 그렇게도 항상 땀이 흐르고 기진맥진 하였다. 그러나 한 오라기의 죄도 거기에는 섞여 있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거기에서 우리는 평안했고 거기에서 우리는 생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 김승옥, <생명연습>
자, 미영아, 너의 집을 제공하라고 한다... 너의 빈집이 내게는 용궁처럼 신비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온갖 화려한 공상을 그 곳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자, 미영아, 나는 이제 몇 분 안으로 이러한 모든 것 위에 먹칠을 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 김승옥, <乾>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 김승옥, <무진기행>

"농구 좋아 하나요?" - 다케이코 이노우에, <슬램덩크>

"왼손은 그저 얹을 뿐" - 다케이코 이노우에, <슬램덩크>

그래도 내가 손해 보지 않은 거래였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집을 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값진 것을 함께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정적이었다... 나는 아주 만족했다. 고독했기 때문에. - 쿠르트 쿠젠버그, <장미도둑>
Andrew Martin: That you can lose yourself. Everything. All boundaries. All time. That two bodies can become so mixed up, that you don't know who's who or what's what. And just when the sweet confusion is so intense you think you're gonna die... you kind of do. Leaving you alone in your separate body, but the one you love is still there. That's a miracle. You can go to heaven and come back alive. You can go back anytime you want with the one you love. - Bicentennial Man
Cirrus, Socrates, particle, decibel, hurricane, dolphin, tulip. Monica, David, Monica. - A.I.

Jerry: You don't understand, Osgood! Aaah... I'm a man! / Osgood: Well, nobody's perfect. - Some Like It Hot

내가 두렵다는 사실을 인정해, 베네딕트. 형을 포함한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내가 이런 식으로 무기도 없이 다가가고 있을 때조차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지 않나. 내 자신감을 보고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말야. 그러니까 두려운 거야. - 로저 젤라즈니, <오베론의 손>
"그건 그렇고... 자넨 아까 내 질문에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했어." "물론 그랬지. 무슨 질문인가?" "자네는 인간인가?" 그는 내 손을 쥔 채로 말했다. 얼굴에는 그다지 특별한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나는 씩 웃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모르겠어. 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물론 난 인간이야!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이런! 자네 진심으로 묻고 있는 거군. 그렇지? 그리고 난 정직하게 대답하겠다고 약속했어..." 나는 입술을 깨물고 잠깐 생각했다. 곧,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대답했다. "역시 그랬었군." 그는 이렇게 말했고, 미소지었다. - 로저 젤라즈니, <오베론의 손>

"절대로 친척을 믿으면 안 돼. 그건 낯선 사람을 신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짓이야. 낯선 사람일 경우에는 안전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군요. 그렇죠?" "응" "당신도 포함해서?" 나는 미소지었다. "물론 그 얘긴 나한텐 적용이 안 돼. 나는 명예, 친철함, 자비, 선량함의 화신이니까 말야. 모든 면에서 나를 신뢰해도 좋아." - 로저 젤라즈니, <아발론의 총>

"만약 누군지 알았더라면, 넌 그걸 막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가정에 입각한 질문이군요. 대답은 그쪽에서 생각해 줘요. 난 마틴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기뻐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단지 그뿐이에요." - 로저 젤라즈니, <혼돈의 궁전>

"폭풍은 앞으로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어떻게 그런 일을 알 수 있소?" "내부 정보야." 그는 껄껄 웃었다. - 로저 젤라즈니, <혼돈의 궁전>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다음 순간 나는 기억해냈다. 다라가 존경과 애정을 담아 언급했던 인물의 이름이었다. 그는 그녀의 펜싱 사범이었고, 검술의 달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멍청했다. 갑옷을 벗은 시점에서, 그는 나의 존경심을 잃었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나는 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주제넘은 멍청이들의 상대가 되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특히 상대방이 숙련된 멍청이고, 지금처럼 내가 녹초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상대해 보았자, 나만 더 피곤해지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 로저 젤라즈니, <혼돈의 궁전>

아우슈비츠의 사자들의 백지장처럼 흰 피부와, 옹이가 진 나무가지 같은 뼈들을 보았다. 내가 뉘른베르크에 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비엔나 Vienna>를 낭독하는 스티븐 스펜더의 목소리를 들었고. 브레히트의 연극이 초연된 날 저녁에 용감한 어머니가 무대를 가로지르는 광경을 관객석에서 보았다. 페네뮨데, 혼덴부르크, 케네디, 카자흐스탄의 키질 쿰 등의 오염되고 딱딱한 장소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것을 보았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직접 손으로 만졌다. 우리는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샥스퍼는 취했다고 말하고 토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웨스턴 리저브의 푸른 숲 속으로 들어가 머리가죽을 하루에 세 개씩 벗겼다. 내가 행군 중에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그것이 곧 인기를 얻어 <오프레 드 마 블롱드>라는 노래가 되었다. 생각이 난다. 생각이 난다... 그곳 주민들이 지구라고 부르고 있던 그림자 속 장소에서의 내 인생을, 세 걸음을 더 걷자, 피에 물든 검을 든 나는 세 명의 죽은 사내와 내 말을 보았다. 그거을 타고 프랑스 혁명에서 도망쳐 왔던 것이다. 더, 훨씬 더, 뒤로 돌아가면... - 로저 젤라즈니, <앰버의 아홉 왕자>

나는 편지를 다시 읽어 보고는 쿡쿡 웃었다. 도대체 저주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일까? - 로저 젤라즈니, <아발론의 총>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불의 선 부근에 출현했다. 그의 주위는 연기와 불길로 에워싸여 있었고, 불타는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틀림없는 베네딕트였다. 얼굴을 부분적으로 가리고, 잘려나간 오른팔의 그루터기를 들어 눈을 가린 채로, 지옥에서 기어나온 끔찍한 도망자 같은 모습으로 오고 있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불똥과 타다 남은 숯덩어리를 뚫고 나와, 열린 공간에 도달하자마자 내리막길로 뛰어들어 질주해 온다. - 로저 젤라즈니, <아발론의 총>
이건 훌륭한 희곡들이군. 셰익스피어는 생각했다. 아, 이것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거로군. 이 노르위치 사람은 분명 말로를 읽어 보고, 악한 로페즈 유형의 인물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일 게야. 셰익스피어 자신도 그런 희곡의 아이디어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한 법석>이라는 제목의 희극도 있었다. 선물이야. 신이 보낸 거로군. 셰익스피어는 웃음을 지었다. 닥터 슐라이어인가 뭔가 하는 이름을 가진 알라만 사람도 이 미친 사람처럼 이야기 하나를 가져왔었다. 슐라이어가 가져온 희곡들도 좋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이 가져온 것만큼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은밀히 성호를 그었다. 시인들이 뮤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게 아마 이런 방문객들을 이야기한게 아닐까? 지금 거리에서 힘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 그리고 독일인 슐라이어. 슐라이어 그 친구는 고문을 받고 자기가 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출신이라고 맹세를 했지. 아메리카에 옥스포드나 라이든이나 휘텐버그만큼 좋은 대학들이 있다고. 혹은 더 낫다고? 셰익스피어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늘과 땅에는 알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어... - 앤터니 버제스, <뮤즈>

"건강 면은 확실합니다. 과학으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서류에 계약만 하면 자기 수명에 30년을 보태는 거라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나는 이 시험에 모집된 쌍둥이들이 왜 다 젊은지를 깨달았다. - 로버트 하인라인, <시간의 블랙홀>

이렇게 이해해도 된다. 만일 몇 년간 혼자 항해가 가능한 1인용 우주선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면으로나 이상한 점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이상해져 계기반에서 조종대를 떼어 내기 시작할 것이다. 만일 2인용 우주선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를 아끼는 사람들이 탔다고 치자.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아무리 줄리엣이라도 로미오를 죽여 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 로버트 하인라인, <시간의 블랙홀>

"그게 무슨 뜻인가요?" "지렁이를 찾으려고 땅을 팠는데 금을 발견하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을 말하지. '아무 소용도 없는' 순수 연구가 '실용적'인 연구보다 훨씬 더 실용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 로버트 하인라인, <시간의 블랙홀>

내게 있어서 시간이란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것으로 계산되는 어떤 것일 뿐이다. 지금껏 나는 LC에서 약 1,400번쯤 잠을 잤고 한 번 자는 동안 세 차례 식사를 하고 간식을 한두 번씩 먹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산 시간은 70년이 아니라 4년인 것이다. - 로버트 하인라인, <시간의 블랙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지구에 도착하게 되나요?" "오, 이런.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이제 곧... 점심식사 후면 도착 할 것입니다." - 로버트 하인라인, <시간의 블랙홀>

두 번째 이야기-다시 논평없이 전합니다-는 좀더 거북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당신네 인종의 상당 부분에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함의 방주에는 특출나게 아름답고 붙임성있는 유인원 한 쌍이 타고 있었지요. 누구에게서 듣더라도 그들은 무척 총명하고 완벽한 몸매에, 게다가 곧 말을 하려는 듯한 풍부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부드럽게 늘어뜨려진 빨간 털과 녹색 눈을 가지고 있었지요. 아니, 그런 종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행에서 살아 남지 못했거든요. 배에서 발생한 그들의 죽음을 에월싼 사건 경위는 완전히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둥근 재목이 굴러 떨어진 일과 관계가 있었다고... 그러나 둥근 재목이 떨어져 동시에 그것도 매우 민첩한 종 한 쌍을 다 죽였다는 것은 엄청난 우연의 일치라고 우리는 늘 생각했습니다. - 줄리안 반즈,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그 부부가 미국인 구역으로 가는 도중, 프랭클린의 테이블을 지나면서, 짐머만 씨는 "깨끗한 자와 불결한 자를 나누고 있군"이라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줄리안 반즈,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가슴이 면도날에 에이듯 조용하고도 예리한 통증이 지나간다. 왜 이따위 것들을 수집해 가는 거지? 다섯 오라기의 털로써 무얼 하겠다는 건지. 그의 불륜에 대한 증거로? 아니면 내 불륜이 탄로났을 때의 방패막이로? - 권지예, <꿈꾸는 마리오네뜨>

"그 친구는 이제 내 편이야. 확실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난 사람의 눈과 얼굴과 태도에 지적인 호기심이 나타날 때 그걸 알아볼 수 있지. 호기심이란 건 길들여진 과학자한테는 치명적인 병이야." - 아이작 아시모프, <죽은 과거>

"하지만 그런 걸 느끼면서도 아무도 그걸 고백할 용기를 갖지 못했지. 사람들은 다시 구식의 의사 소통 형태를 시작하게 되었네.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정당을 조직하고, 심지어 거리의 낯선 사람들한테도 말을 걸게 되었지. 인간은 이상한 거야. 절대 만족하지 않거든." - 마누엘 반 로겜, <짝 인형>

스웬슨의 말은 이 모든 기계와 이 모든 전문 지식을 과거 확인이라는 저열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깝다는 뜻 같았다. "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그 희곡들을 썼는지 알아야만 해요." - 앤터니 버제스, <뮤즈>

다른 방식으로 친구를 잃은 경우가 있었는데, 6월에 있었던 알프레드 르 프와트뱅의 결혼이 그것이다. 귀스타브는 그것을 그 해에 맞은 세 번째 사별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그는 친구에게 불평한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네, 나는 그것들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당신, 어떻게 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이상한 이야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듣기에는 범죄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범죄자, 사기꾼, 실패자, 살인자인 이 대머리 방화범이 지금 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알기는 아는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게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플로베르의 초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루이 부예의 초상화로서 크루아세의 여자 안내원에서 시작하여 모든 사람이 증언해 줄 것이다. 자, 일단 박장대소하고 나서 우리는 그런 실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의 가장 나쁜 면을 알고 싶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면을 알고자 하는 것에 우리가 지쳐 있기 때문인가? 호기심은 언제나 이기심을 뛰어넘기 때문인가? 아니면 좀더 단순하게 말해 가장 나쁜 면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사랑이 도착된 호기심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인가?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편지들 - 지드에 따르면, 편지들은 플로베르의 걸작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그것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전의 자유연상의 완벽한 예이다. 그러니 당신 멋대로 생각하라.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매춘부들 - 19세기 매독 감염에 필수적 존재로서, 매독에 걸리지 않고는 아무도 천재라 주장할 수 없었다. 용기의 빨간 배지를 단 사람들 가운데는 플로베르, 도데, 모파상, 쥘 드 공쿠르, 보들레르등등이 있다. 매독에 걸리지 않은 작가들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아마 동성연애자들이었을 것이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생활을 위한 격언들. 완전한 결합이란 희귀하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행복은 상상에 있는 것이지,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쾌락은 처음에는 기대 속에서 발견되고, 뒤에는 기억 속에 남는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Morpheus: This is your last chance. After this, there is no turning back. You take the blue pill - 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hole goes. - Matrix
Spoon boy: Do not try and bend the spoon. That's impossible. Instead... only try to realize the truth. / Neo: What truth? / Spoon boy: There is no spoon. / Neo: There is no spoon? - Matrix
Phil: Do you know what today is? / Rita: No, what? / Phil: Today is tomorrow. It happened. - Groundhog Day
Pinocchio: I'm not a puppet! I'm a real boy! (nose grows) / Captain of Guards: Five schillings for the possessed toy. Take it away! - Shrek
Gail: If you can't get in, you don't get in... - Carlito's Way
Gail: Are you gonna... bust the chain? / Carlito: Uuh... / Gail: Chase me around the apartment... get me naked... take me on the floor. - Carlito's Way

"들어 보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들리지 않는다고?" "네, 무슨 소리가 들려요?" "파도 소리." 그는 눈을 꼭 감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덧붙였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어." - 프레드릭 브라운, <어느 화가의 하루>

나는 요리와 청소는 물론 아기 기저귀 갈아주기, 타이프라이터 리본 갈아끼우기 같은 힘들고 귀찮은 일까지 일사천리로 해낼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싶었다. 책에서만 보았을 뿐 우리 시대에 와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충직한 중국인 하인을 좋은 자동차 한 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 로버트 하인라인, <여름으로 가는 문>

나는 내가 기술자였다는 사실을 죽어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지금 처지에서 내가 기술자였다고 우기는 것은 뒤퐁 사에 찾아가서 '나 연금술사인데 일거리 좀 없소?'라고 말하는 격이었다. - 로버트 하인라인, <여름으로 가는 문>
책이나 비디오를 보면 신문팔이 소년이 날짜가 잘 보이게끔 신문을 들고 다니며 팔거나 아니면 달력 날짜에 X표시가 되어 있고는 해서 시간 여행자들은 언제나 날짜를 잘 알아내던데, 하지만 여기에는 달력도, 신문팔이 소년도, 아니면 자진해서 '기분좋은 6월7일이지 않습니까, 선생님? 작년이랑은 완전히 딴판이군요. 1887년에는 여름이 여름 같지가 않았지요'라고 친절하게 말해 주는 짐꾼도 없었다.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탈출을 하면서 마차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드루에에게 길을 물은 다음, 역사의 진로를 바꿔 버릴 사소한 행동을 했다. 팁으로 지폐를 준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라는 복잡다단한 과정에서 만남이라는 사건은 엄청난 분기점이었다. 넬슨 제독과 엠마 해밀틴이 그랬다. 헨리 8세와 앤 불린. 크릭과 왓슨.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그리고 테렌스는 옥스퍼드의 기차역 플랫폼에서 모드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안 읽었어. 범인은 늘 집사야"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나는 베리티에게 1백하고도 69년 동안 키스를 했다.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말도 안 돼요. 추리 소설에서는 언제나 범죄를 고백하는 데 한 장을 할애한다고요."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허튼소리, 헛소리, 시시한 말은 집어쳐요. 당신 주장이 어리석은 소리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흥, 쳇, 제길, 젠장. 첫짜로,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내가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던워디씨 사무실 카펫에 소매를 쥐어짜고 있는 당신 모습 말이에요, 그때 당신의 모습은 내 인생에서 <샬롯의 여연>이 되었어요." -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뭐랄까 자리바꿈 같은거야. 국민학교 때는 말이야, 싫어하는 아이가 옆 자리에 앉게되면 절망해서 학교도 안가게 되고 그러지 않았어? 내가 사는 세계가 좁아서, 싫어하는 아이가 옆에 있으면 치를 떨었었지. 하지만 학원이라던가 피아노라던가 학교 이외의 세계가 있게 되니까, 싫어하는 아이 한 둘 쯤은 상관없게 되는거야." "그럼 너 지금 세계가 좁았다고 반성하는 거야? 그래서 리까코를 싫어했다고?" "피차일반이야. 나도 나빴지만, 리까코도 세계가 좁았다고 반성했는걸." - <바다가 들린다>

"이 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하지 말자. 칼, 네 벽감에 들어가거라." - 아이작 아시모크, <칼>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죽는지 아네. 왜냐하면 그들처럼 나, 하늘 맛을 보았기에. - 마이크 레스닉, <키리냐가>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주식 회사로 만들고 그 주식의 40퍼센트를 팔아 치워도 좋다.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은 수명 중 몇 년과 교환해도 좋다. - 로저 젤라즈니,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리르의 딸, 피카소의 눈이여, 좋아, 도전에 응하지. 이물 우현의 루크 앞에서 10분 후에 만나자구." - 로저 젤라즈니,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책상 서랍에 담배 한 갑을 넣어 둔 누군가의 영혼으로부터 연옥에서 보내야 할 몇 년을 면제시켜 주었다. - 로저 젤라즈니,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수백만 년. 나는 단세포 생물로 시작해서, 힘겹게 양서류가 되었고, 다음에는 공기 호흡 생물이 되었다. 어딘가 높은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든 것 같군." 나는 다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숙취를 맛보았다. - 로저 젤라즈니,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어딘가에서 '손'이 쥐어진다. 미끼가 뭐지? - 로저 젤라즈니,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아니, 틀렸어. 타르보가 아니야. 타르보라면 이보다 좀더 짜릿한 맛이 있지. 이윽고 결론에 이르게 되었군. 이건이 1934년이라면, 이렇게 쏘고 있는데 타르보라 할 수는 없지. 잠깐만 기다리게. 베슈베이유도 아니고 타르보도 아니야. 그러나 으음-이 두 지방에 가깝군. 그 근처야. 이 포도원은 두 지방의 중간쯤에 있을 거야, 틀림없어. 그럼, 어딘가? - 로얼드 달, <맛>

개체는 안정한 것이 아니라. 정체 없이 떠도는 존재이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놀이의 카드처럼 즉시 섞이고 곧바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인 것이다.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사는 거주자이다. 유전자는 영원하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파놉티콘이) 빌딩으로 가려지거나 통솔될 정도의 공간이라면 어떤 종류의 기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이 다르거나 혹은 정반대되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것이 선도 불가능한 사람들을 벌주는 곳이건, 정신병자를 가두는 곳이건, 악인을 교화하는 곳이건, 게으름뱅이를 고용하는 곳이건,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부양하는 곳이건, 병자를 간호하는 곳이건, 산업 분야에서 자발적인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건, 혹은 학습의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를 훈련시키는 곳이건 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영원한 죽음의 방인 감옥이나, 재판 이전에 머무는 구치소나, 교도소나, 교화원이나, 작업장이나, 공장이나, 정신병원이나, 일반 병원이나, 학교의 목적에 관계 없이 모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제레미 벤담, <파놉티콘>

우리는 당신 빅 브라더를 감시하고 있다. We are watching you, big brother! - 멕시코 정부 홈페이지를 해킹한 사파티스타 반군 지지자들의 메시지(1998)

노예의 소일거리, 무식하고 비참하고 일과 걱정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인간들의 오락. 아무런 정신집중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사고능력도 전제하지 않는... 가슴에 아무런 광명도 밝혀주지 않고 또 어느 날엔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가소로운 희망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불러 일으켜 주지 않는 구경거리. - 뒤아멜, 영화에 대한 정의

사람들은 매체 테크놀로지에 지배를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매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않는다. 분명히 사람들은 그들의 자율적 의지에 따라 매체를 소비하는 것이지 매체에 의해 강요당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매체가 그들의 일상적 삶에 얼마나 편재해 있으며 또 그들의 완전한 지배하에 놓인 많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대체해 버렸는 지에 대해서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맥루한의 주장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매체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그 밖의 다른 조사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을 지성적인 매체로 생각하는 반면 TV는 그저 재미로 보는 매체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건 어찌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TV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신문에도 분명 오락성이 강한 지면들이 많이 있으며 뉴스조차도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문을 오락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TV는 뉴스, 다큐멘터리, 토론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 등 신문 못지 않은 정보 기능을 갖고 있지만 TV를 정보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신문보다는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캐나다에서 인종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범죄이다. 헌법에서 규정한 강력한 언론의 자유도 인종차별이나 인종혐오에 의해 유일하게 제약을 받을 만큼 이를 죄악시한다. 그렇지만 모든 차별이 그렇듯이, 인종차별은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미묘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차별은 느껴지고 경험되는 것이지, 이해되거나 설득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거리에서 갑자기 몸을 부딪치는 백인 젊은이에게서, 아무 이유 없이 불친절한 웨이트리스나 수퍼마켓 캐쉬어의 태도에서, 물건을 주문했을 때 분명히 알아들은 듯해도 내게 "뭐라구요?"를 하는 점원에게서, 고압적인 자세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백인 경찰에게서 차별을 경험했다. - 홍성욱, <인종차별의 경험과 포스트모더니즘>

하여간에 '정확하게' 읽어 내었다 해서 그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학생들이 글 읽기에서 보았듯이 끊임없이 이론서를 읽고 그 개념들을 익히고 그것의 한계를 꼬집어 내고는 또 다른 책으로 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기는 궁극적으로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책 쓰기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책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잘못 읽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가는 작업은 비판적 성찰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 종말론적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을 확보해 가는 것과 직결된 행위이기도하다. 해롤드 불룸은 '시적 역사는 시적 영향력이다'라면서 시인들이 선배 시인들의 시를 오독함으로써 자신의 상상적 공간을 개척해 갔음을 드러낸 바 있다. 문학적 창작행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생각은 '잘못 읽음'의 결과일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사회적 조건과 인지 양식에 따라 매우 달리 읽히고 마련이며 이 달리 읽음을 제대로 해낼 때 '자기'가 표현되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 조혜정, <글 읽기와 삶 읽기>

처음에는 그러한 음수의 제곱근을 도입하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도구-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안된 수학적 창조물-처럼 여겨졌지만, 후에 이 객체들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복소수 도입의 원래 목적은 음수의 제곱근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수를 도입함으로써 덤으로 어떠한 해라도 구할 수 있고 어떤 대수 방정식이건 풀 수 있는 잠재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로저 펜로즈, <황제의 새마음>

수학은 발명인가 아니면 발견인가? 수학자들이 어떤 중요한 결과를 생각해 낸다는 것은, 단지 실체가 없는 어떤 정교한 정신적 산물만을 만드는 것인 아닌가? 그런데 그 위력과 우아함 때문에 발명한 사람조차 그 단순한 정신적 산물이 '현실'에서 존재한다고 속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수학자들은 실제로 '그 곳에' 이미 존재하는 진리, 즉 그 존재가 수학자의 활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러한 진리를 밝혀 내는 것인가? - 로저 펜로즈, <황제의 새마음>

수학적 진리의 개념은 형식주의의 전체 개념을 초월하고 있다. 수학적 진리에는 절대적이며 '신이 부여한' 그 무엇이 있다. 이것이 바로 앞 장의 끝에서 논의된 수학적 플라톤주의이다. 어떤 형식 체계이건 간에 거기에는 일시적이고 '인간이 만든' 특성이 존재한다. 물론 그러한 체계들이 수학적 논의에서 매우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진리를 찾는 데 단지 부분적인(혹은 근사한) 가이드 라인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수학적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단순한 구조들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 로저 펜로즈, <황제의 새마음>

그렇게 돈을 뜯긴 재벌들은 노동자들로부터 그 몫을 짜내야 했고 노동자들이 저항하면 그 때엔 돈 받은 정권이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5공은 '조폭정권'이었던 것이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편>

뿐만 아니라 바비들의 세계에서 여성은 늘 힘겨운 자세로 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 인형인 켄은 발을 제대로 땅에 딛고 서 있지만 여자 인형인 바비는 마치 운명의 저주를 받은 것처럼 영원히 뒤꿈치를 들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지요. 아이들이 바비에게 하이힐을 신겨 줄 때만 바비는 제대로 땅을 딛고 설수가 있잖아요. 그것이 바로 '환상적인' 바비인형의 세계죠. 이 얼마나 여성 적대적이고 성 부정적입니까. - 귄터 아멘트, <섹스북>

포르노에서 여성은 남성의 환상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단순한 도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런 비난은 사실 주류영화에 더 세련된 형태로 숨어 있다. 전통적인 영화에서 욕망에 솔직한 여성들은 징벌을 당했다. 일례로 필름 누아르 영화에 나오는 치명적인 요부들은 반드시 결말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에 비하면 포르노는 오히려 좀더 솔직하게 여성의 욕망을 보여준다. - 김영진,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나는 전혀 여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여행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은 기억을 통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론 과거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당시로서의 현재가 있어야겠지요. - 보르헤스, 리타 기버트와의 대담

1630, 40년대에 데카르트가 그의 세계 체계를 저술했을 때, 그는 화학현상을 거의 무시하였다. 1700년이었다면 그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리차드 웨스트팔, <근대과학의 구조>

자신의 꾀에 스스로 포로가 되어 예술작품 특유의 '신비', 거기서 오는 '두께'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답이 아니라 고즈넉한 질문일 때 더 감동적이다. - 김화영, 제 1회 문학동네 소설상 심사평

난 자선의 옳음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당성, 이슬람의 정당성, 중국의 정당성, 이런 저런 민족집단의 정당성, 그린피스의 정당성... 이들은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타자에게 그걸 강요하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1993년 <애니메니카>와의 인터뷰

그렇게 보면, 가장 근본적인 제국주의 비판은 정치 경제적 종속관계에 대한 이론적 분석적 공격에 못지않게 오늘날 우리의 비근한 일상 생활로부터 사회 조직에 이르기까지 온갖 국면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산업 기술 문명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일 겁니다. 산업사회가 제공하는 편익에 중독되고, 사소한 물질적 이득에 마비되어, 코카콜라를 아무 생각 업이 마시고, 텔레비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긍정하고, 개인 승용차에 의한 대중 교통수단의 대체를 사회 발전이라고 보는 생각에 묵종하면서 제국주의를 따로 비판한다는 것은 근본을 망각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김종철, <인간, 흙, 상상력>

영화를 구원하는 것. 그것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나는 칸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앙드레 바쟁이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을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트뤼포가 브레송의 <저항, 혹은 한 사형수가 탈옥했다>를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또는 장 콕토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카뮈가 안토니오니의 <정사>를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을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세르쥬 다네가 장 외스따슈의 <엄마와 창녀>를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올리비에 아사이야가 호금전의 <협녀>를 보았던 것 같은 순간을,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지금 볼 수 있을까? 만일 그 희망의 순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이 머나먼 여행길을 무릅쓰고 칸까지 온단 말인가?(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2003년 칸으로 부터 온 편지>, 씨네21

재즈는 솔로 주자의 영감과 그의 그룹 뮤지션들간에 일어나는 영감에 의존하는 자연 발생적인 음악이므로 각 연주마다 굉장한 질적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룹의 멤버 전원이 동시에 똑같은 영감을 갖는 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 재즈 클럽에서 재즈 그룹의 연주를 듣는 경우 적어도 두 무대 정도는 들어야 연주자의 최고의 순간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된다. 마친가지의 이유로 며칠 밤을 계속 들어 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 마크 그라이들리, <재즈총론>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가 장차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 수 없습니다.- 도르테 죌레

폭력이란 건 원래,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이 더 쪽팔린 법이다.
그의 발언은 강준만이 문화특권주의라고 부른 태도의 세련된 예다. 문화특권주의는 부르디와가 폭넓게 상징적 폭력이라고 불렀고 강준만이 폭을 좁혀 지식폭력이라고 부른 현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사실 한국의 지식인들도 프랑크류의 이런 생각에 깊이 감염돼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검찰이 관심을 보였을 때도,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판사에게까지 읽히게 됐을 때도, 가수 전인권이 마약 복용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도, 지식인들이 그들을 변호하며 기댄 버팀목 가운데 하나는 예술(가)의 열외성, 예술(가)의 존중이었다. 즉 <태박산맥>의 '좌경성',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음란성', 마약 복용의 '반사회성'은 관련된 예술(가)의 가치를 통해 상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깔려 있었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비록 국사범이지만 볼테르만큼이나 위대한 지식인이니 그대로 놓아두자는 생각과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나는 이것이 매우 위험스러운 논리라고 생각한다. - 고종석, <특권>

이 추악한 습속을 어디서 배워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텔레비전의 피디 선생들은 오로지 정의감 하나로 사창가도 뛰고, 개인 사무실도 찍고, 룸살롱의 내부도 찍고, 남의 침실도 찍고, 아무 데나 아무 때나 마구 찍어댄다. <시사>어쩌구 또는 <추적>어쩌구 하는 번듯해 보이는 프로그램의 피디가 되면, 자기를 중세의 종교재판관이나 미국의 특별 검사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서는 타인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그 타인이 그가 보기에 범죄자든, 인간쓰레기든, 그들에게도 마땅히 보호돼야 할 사생활이 있다. 말하자면 이들의 '탐사저널리즘'이란 '함정저널리즘'이다. - 고종석, <유리벽>

그러나 나는 비판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그가 백낙청이기 때문이다. - 고종석, <백낙청>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이리저리 절단해 그 조각들을 하나의 어휘소(나 형태소)에 대응시킨다. 세계를 절단하는 방식은 다분히 우연적이지만, 절단된 세계의 조각들과 특정 어휘소들의 대응이 한 언어체계 속에서 약속으로 확립되면, 세계의 그 절단 방식은 그 언어 사용자들에게 자명하게 느껴진다. - 고종석, <말>

"The game is over." - Mohammed Aldouri, Iraq'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게임이 항상 선도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프로그래머들이 제일 먼저 만드는 프로그램이 게임인 이야가 있다. - 리누스 토발즈, <리눅스, 그냥 재미로>

나의 코드는 항상, 뭐랄까, 음... 완벽하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불일치', 즉 '완벽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발전을 위해서는 나의 코드가 '완벽'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리누스 토발즈, <리눅스, 그냥 재미로>

유닉스의 단순함을 정교함의 부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단순하기에 정교해질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 리누스 토발즈, <리눅스, 그냥 재미로>
결국 존 F.케네디는 워커, 럼니처 장군과 그의 친구들에게 저항했고 쿠바와 라오스, 베트남, 혹은 다른 지역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전쟁에 미국이 앞장서서 개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1963년 11월 22일에 암살당했다. - 띠에리 메이상, <무시무시한 사기극>

대중의 마음은 하늘을 날망정 그들의 몸은 수구 기득권 세력이 구축해 놓은 기성 질서에 볼모로 잡혀 있다. 이건 일종의 인질극이다. 대중은 인질의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자신을 구출하려고 하는 그 누군가의 시도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데에 더 주목한다. 대중은 그러한 시도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 자유를 갈망한다. - 강준만,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자, 사정이 그와 같다. 도대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무어 그리 큰 자랑이라고 노무현에 대해 '당신은 주류가 아니잖아?'라고 따져 물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런 물음이 당당하게 나오고 있는건 아마도 대중이 갖고 있는 '주류 콤플렉스'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강준만,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어찌 생각하면 국민 대부분이 이미 막강한 기득권을 가진 신문의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강준만,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미국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노암 촘스키, <불량국가>

후세인을 '바그다드의 야수'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한 것은 그가 저지른 거대한 범죄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이유는 오히려 그가 궤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훨씬 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노리에가도 마찬가지였다. 노리에가의 가장 큰 범죄는 그가 미국의 꼭두각시였을 때도 저지른 것들이기 때문이다. - 노암 촘스키, <불량국가>

그러나 돌이 성스러운 것으로서 계시되는 사람들에게는 눈앞의 돌의 현실이 초자연적 실재로 변한다. 말을 바꾸면, 종교적 경험을 가진 인간에게는 모든 자연이 우주적 신성성으로 계시된다. 그 때 우주는 전체가 성현이 되는 것이다. - 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아침 일찍부터 팔기 위해 골라낸 한국 소설은 120여권. 마음 같아서는 외국 소설이나 이론서도 몽땅 팔어버리고 싶었지만 책에 대한 내 처녀막은 확실히 질겼다. - 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1>

from http://homototus.onll.net/MoinMoin/wiki/moin.cgi/FrontPage

오늘, 참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저 모니터에 출력되는 저 입자들이 내 눈으로 들어와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는 내 눈물들을 깨우게 하였던...

글을 쓴 저자에게 감사하며 글을 옮긴 이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