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1 (02:54) from 129.206.196.234' of 129.206.196.234' Article Number :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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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지금.. 난 2천년 전 팔레스타인 사막 땅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 故 조성만  (2006.03.27)


기독교는 본질적인 점에서 보면, 전아시아가 당시에 이미 분명히 알고 있던 것을 가르쳤을 뿐이지만 유럽에서 이 가르침은 새롭고 위대한 계시(啓示)였으며, 따라서 이에 의하여 유럽 여러 민족의 정신의 방향이 완전히 변형되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들에게 생존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분명히 하고 그들에게 사소하고 가난하고 덧없는 지상의 생활을 초월할 것, 이 지상의 생활을 자기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실은 이것은 괴로움 죄 시련 싸움 그리고 정화(淨化)의 장소로 간주하는 것, 또는 인간은 도덕적 업적, 엄격한 체념(諦念), 자기 자신의 부정을 통하여 이 지상의 영위(營爲)에서 알려져 있지 않은 보다 훌륭한 존재에로 고양(高揚)될 수 있음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아담의 원죄에 의해 만인의 저주를 받게 되고, 죄가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 죄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승되었지만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만인의 죄가 용서받아 세계는 구제되고 죄는 소멸되고 정의가 보상되었다고 가르침으로써 알레고리(寓話)*의 형식을 띠면서 의지의 긍정과 부정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신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시간 속에서 각각 피차에 독립된 존재로 보지않고, 인간의 (플라톤적) 이념을 파악해야 한다.  이 이념이 인간의 계열에 대한 관계는, 영원 자체가 현재의 시간 속에서 토막난 영원에 대한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이념을 분명히 이해하면, 아담의 원죄는 유한한 동물적인 죄많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본성에 의해 인간이 여러 가지 죄와 고뇌 및 죽음의 손에 맡겨진 유한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과 죽음은 영원하고 초자연적인 측면, 인간의 자유와 구제를 나타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존재로서 잠재적으로는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또한 의지가 그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예수일 수도 있고 아담일 수도 있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도 즉시 단죄(斷罪)되어 죽음에 인도되거나 또는 구제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2006.02.25)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의 모든 독물을 마시고 가셨다.

- 제정구  (2005.11.07)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따로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 3대 무식할 각오하고 농사지으러 가자.

- 다석 유영모 (2005.08.02)


저는 예수님을 기독교의 교주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깨끗하게 순수하게 불의를 마다하고 저항하다가 저렇게 돌아가신 분이지 기독교라는 어떤 종교를 만드신 교주는 아니라고 봐요.

- <몽실 언니> 작가 권정생 (200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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