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18 (18:28) from 129.206.196.195' of 129.206.196.195' Article Number :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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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미리 쓰는 유서


이해인

소나무 가득한 숲속에
솔방울 묻듯이 나를 묻어 주세요.
묘비엔 관례대로
언제 태어나고
언제 수녀 되고
언제 죽었는가
단지 세 마디로 요약이 될 삶이지만

'민들레의 영토'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남은 이들 마음 속에
기억되길 바랍니다.

영정 사진
너무 엄숙하지 않은 걸로
조금씩 웃음이 깃든 걸로
놓아 주세요

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이제 진짜 시가 되었다고
믿고 싶어요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은
그대로 두고 감을 용서하셔요.

생각보다 빨리
나를 잊어도 좋아요
부탁 따로 안해도 그리 되겠지요.

수녀원의 종소리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새
눈부신 햇빛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군요

그동안 받은 사랑
진정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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