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29 (08:22) from 129.206.196.107' of 129.206.196.107' Article Number :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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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세계화시대 ‘케인즈’ 의 충고

지난 세기의 위대한 경제학자를 한 명만 선택하라면 아마도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세계경제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의 영광이 빛을 잃어가던 시기에 태어난 그는 조국의 경제적 위상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한 유효수요 확보 및 사회통합’이라는 처방을 제시함으로써 대공황과 사회주의의 위협에 흔들리던 자본주의 경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이후 시장과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해 왔던 미국 공화당 소속의 닉슨 대통령마저 “이제 우리 모두는 케인즈주의자”라고 선언할 정도로, 그는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한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상황은 빠르게 반전된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재정적자와 관료주의만을 남긴 비효율의 주범으로 몰리고,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한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속에서 통화정책의 독자적인 경기조절 능력 또한 약화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경쟁·효율 등의 이름으로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면서, 케인즈주의는 마침내 종언을 고하게 된다. 하지만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크게 늘어나던 상황을 배경으로 숙성된 그의 사유 중 적지 않은 부분은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920년대 당시 영국은 국가간 자본이동이 심화되면서 물가가 크게 변동하고 실업률 또한 크게 늘어나는 등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위협받았다.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케인즈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일정한 제한을 가함으로써 경기침체와 실업을 막고 국민경제의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한다. 물론 순수한 ‘금융적 계산’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디에 투자하건 그 장소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수익과 위험’의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곳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또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금융의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폄하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케인즈가 문제삼았던 것은 세계화된 금융시장 속에서 자금의 이동성이 커짐에 따라 ‘산업=주인’과 ‘금융=하인’이라는 본연의 관계가 역전되어 금융이 산업에 봉사하는 대신 오히려 산업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제 글로벌 시장을 이리저리 떠다니는 ‘금융’은 최대한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경제에 긴밀히 뿌리내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행하고 있던 ‘산업’을 방해하거나 타락시키게 된다. 더욱이 케인즈는 국경을 뛰어넘는 금융의 논리가 경제와 사회의 더 많은 영역을 ‘금융적 계산’에 맡김으로써, 쾌적한 전원·자연과 밀착된 생활·아름다운 도시·이웃과의 유대·세련된 관습과 문화 등 ‘확실성의 기초’가 되어 일상생활을 구성해온 사회적인 가치들을 파괴한다는 점도 경계한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국제 금융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단된 ‘경제적’ 고립주의 노선을 제안한다. “사상·지식·예술·친절·여행은 본성상 국제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물건은 가능한 한 국산품이 바람직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은 국내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국민경제의 자립>, 1933)”. ‘투자의 사회화’와 ‘공공정책’이라는 처방 역시 단순한 불황대책의 차원을 뛰어넘어, ‘세계화’로 인해 ‘삶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의 산업과 고용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적극적 대응의 일환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투기성 외국자본의 폐해를 우려하면서도 ‘금융허브’나 ‘자본시장 육성’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주목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의 논리가 수용될 여지는 적다. 그러나 케인즈의 충고가 우리에게 낯선 것일수록, 그 가치는 더 클 것이다.

박종현/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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