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30 (06:13) from 129.206.196.105' of 129.206.196.105' Article Number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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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과 노무현




얼마전 서울 도심의 한 수족관에서 상어 5마리가 깜쪽같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말부터 상어들이 계속 사라져서 수조 내부의 폐쇄회로 TV를 분석한 결과, 길이 3m30cm의 상어가 1m50cm정도되는 상어 두 마리를 삼키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이로미루어 지난해말 실종된 작은 상어 세마리도 이 상어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수족관측의 설명이다. 공격성이 강해 '식인상어'로 분류되는 이 무시무시한 상어는 가오리나 게, 가재 등 뼈와 껍질이 있는 짐승을 주로 잡아먹고 사는데 수족관속에서 같이 살고있는 상어들이 대형상어의 먹이감이 된 것이다. 수족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눈에는 유유히 유영하는 더없이 평화스러운 모습이었겠지만 그 곳에 있던 작은 상어들이 수개월간 느꼈을 공황상태에 가까운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사각의 수족관 안에서 매순간을 식인상어와 함께 해야 했던 작은 상어의 입장에서는, 그곳이 바로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감정을 가진 인간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돌출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뜬금없는 비약을 거듭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다. 인간의 두려움이나 공포도 본질적으론 작은 상어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이드(id)를 에고(ego)의 통제하에 둔다는 것



두려움이나 공포의 근원은 불안이다. 정신분석 이론에 의하면 불안은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사인(sign)으로 심리적 평형상태를 위협하는 충동이나 생각에 대한 일종의 위험신호다.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막연하고 무의식적인 내적 충동 또는 갈등이 느껴질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정상인의 경우 적절한 정도의 불안은 사람을 각성상태로 만들어 사전에 대응책을 마련케하여 위험을 미리 피할 수 있게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불안이 극심해지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나 두려움으로 변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압도되어 불안의 순기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곳엔 무섭고 겁에 질린 초라한 인간군상만 존재한다. 두려움은 무의식적이고 원시적인 감정이라 통제하기 어렵고 사람은 그에 압도되어 종래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명했을 당시, 사람들은 엑스선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다만 막연하게 사람의 내부를 비춘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때 영국 전역에 여자의 나체를 볼 수 있는 '엑스선 안경'이 판매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 덕분에 알몸을 보이지 않게 해준다는 '엑스선 방지속옷'만 불티나게 팔렸단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될만큼 두려움이란 것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위축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악명높은 유신체제의 통치술을 '공포의 테크놀로지'로 정의한 사람은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다. 그는 당시의 사회를 '공포분위기가 유독성기체처럼 도시의 구석구석에 자욱히 퍼져있던 시대'로 묘사한다. 당연히 무의식적이고 본능적 위협에 시달리던 사회 구성원들은 겁먹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나 공포에 대한 저항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무의식의 중요성을 그 어떤 정신분석가보다 강조했던 융(Jung)조차도 인간의 모든 동기가 '우리가 알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신치료의 궁극적 목표를 '이드(Id)를 이고(Ego)의 통제하에 두는 것', 즉 자기 무의식의 일정 부분을 통제 가능할 수 있도록 자아의 힘을 키우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본다면 '두려움'은 불가항력의 본능적 감정이 아니라 극복이 가능한 존재일 수도 있다. 정신과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이론적 배경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두려움의 극복'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그 감정을 꾹 누르고 고공에서 밑을 내려다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맛일 것이다.

      



배짱있는 사람과 바보는 구별되어야..



나는 배짱이 있는 남자가 좋다. 그들은 삶의 일정한 부분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반드시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얼핏 배짱처럼 보이는 무지(無知)와 진짜 배짱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펄펄 끓는 물에 용감하게(?) 손을 담그는 갓난 아기는 배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자기 손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십년동안 技藝를 갈고 닦은 藝人들이 무대에 설수록 혹은 세월이 흐를수록 자꾸 떨린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겸양의 수사가 아니라, '진정한 두려움'을 아는 성숙한 인간의 내밀한 토로일 것이다.

그렇다. 삶속에서 진정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성숙한 인간이다. 두려움을 모르거나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되 무릎꿇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은 특이한 사람이다. '진정한 두려움의 극복'이 어떤 것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흔치않은 사람이어서다. 본능에 무릎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본능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에 책임질 수 있는, 심리적 건강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좀 속되게 말하자면 '진짜 배짱'이 있는 사내다.

정치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을 '바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끔찍한 지역주의를 타파해야한다며 지는 싸움에 번번히 나서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98년 10월 강준만교수도 노무현을 긍정적으로 다룬 그의 글에서 "뻔히 패배할 줄 알면서도 그 지역구도에 정면 도전해 의연하게 패배한 것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선의를 모르는 바 아니나 배짱이 있는 사람과 바보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솔직히 말해 노무현이, 당락에 관계없이 대통령선거에 감초처럼 입후보하던 카이젤 수염의 진복기도 아닌데, '번번히 지는 싸
움'이나 '뻔히 패배할 줄 아는' 싸움에 왜 뛰어 들겠는가.

92년 14대 총선 때 노무현은 허삼수후보의 절반밖에 안되는 득표율로 피눈물나는 패배를 기록했지만 훗날 노무현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치는 마약과도 같다고 하더니....잘하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다'고 고백한다. 95년의 부산시장 선거나 96년의 15대 총선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완전한 낙선을 예상하고 뛰어든 싸움은 아니었다. 더구나 '친정을 걱정하는 딸의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2000년 16대 총선 땐 적지나 다름없는(?) 부산에서 출마했지만 선거 전 이루어진 열차례가 넘는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은 늘 당선 안정권이었다. 92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의 희생물이 될지 모르니 지역구를 서울로 옮기라는 주위사람들의 성화를 전하며 털어놓는 노무현의 이런 속마음은 또 어떤가.

"남자는 죽을 자리라도 가야 할 땐 가야합니다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 속은 이미 숯 덩어리처럼 새까맣게 타 있었다. 말이 그렇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죽을 자리에 제 발로 가고 싶겠는가"

나는 지금 지역주의에 정면도전한 노무현의 그 숭고한 정신을 폄하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노무현의 행동을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애시당초부터 노무현이 질 작정을 하고 두려움없이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리스크'가 월등히 많은 전쟁터에 두려움을 가지고 발을 들여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전혀 다른 얘기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노무현이 종로에서 출마했더라면 손쉽게 당선되었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도 막판에 '지역주의'라는 '위험인자'에 발목이 잡혀 낙선을 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그게 얼마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위험인자인지 그걸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맞부딪친다. 그래서 노무현은 배짱이 있는 사람이다.

실상 정계에 입문한 지 15년째지만 보궐선거 당선을 포함해 노무현의 국회의원 경력은 5년 8개월 정도다. 그만큼 많이 떨어졌다. 낙선의 쓰라림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 선거에서 떨어지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정치를 해야 할 것인가부터 자문을 해보아야 할 정도의 참담한 기분이 된다는 게 노무현의 고백이다. 그럼에도 어느 기자의 말처럼 그는 한국정치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그만큼 낙선을 거듭하고도 유명세와 지지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치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지는 싸움에 나가서 진 때문이 아니라 이길 수도 있었고 이길 자격이 충분한데도 그 몹쓸 '위험인자'를 피하지 않고 맞서다가 패배한 배짱있는 사내에게 낙선은 오히려 훈장이었던 셈이다. 전두환 집권 시절 민정당 간판으로 광주에서 출마한 입후보자도 막판까지 '혹시나'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정치인이나 선거판의 생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노무현이 매번 뻔히 패배할 줄 알면서도 선거판에 뛰어 들었다면 진작에 '제2의 진복기'가 되었거나 부정적 의미에서 '정치적 바보'가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바보'가 아니라 배짱이 두둑한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무조건 선거마다 이기고 큰 자리하는 것보다 노무현이가 하는 정치는 내용이 좋은 정치였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말이 패배자의 초라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어떤 위험과도 당당히 맞서 싸우는 그의 배짱때문일 것이다. 물론 15년의 정치경력을 가진 노무현이 선거 결과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다.

"정치는 프로레슬링같은 것이더군요. 국민들은 반칙을 하지 말라고 질책하면서도 반칙을 해서라도 이긴 사람에게 환호를 보내지, 깨끗하더라도 진 사람은 잊어버리거든요. 그러니까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려고 기를 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배짱은 위축되지 않는다. 한 시사주간지는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노무현의 10대 장점 중 하나로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꼽는다. 담대한 것도 그의 중요한 성격적 특징 중 하나로 꼽을만 하다. 88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도 92년 첫 번째 낙선을 할 때도 그는 선거결과를 자다가 일어나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정면응시



노무현은 자신의 의식이 변모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된 1981년의 소위 '부림사건'을 맡을 때만해도 사건의 내용이나 성격을 파악하기는커녕 시국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조차 가지고 있질 못했다. 그럼에도 선뜻 변론에 나선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단다.  

노무현은 언론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정치인으로서도 유명한데 그것이 손해인지 이득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을 못하는 정도의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국가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노무현의 생각이다. 그는 91년말에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언론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짱의 당위성을 이렇게 역설한다.

"조선일보처럼 부도덕한 언론과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면 누구도 정치를 바로 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고 이런 악의적인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 내가 정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정치인이라도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단한 배짱이다. 같이 가던 친구들이 불량배들에게 끌려가는데도 친구를 내버려두고 비실비실 피해서 집에 가버린다는 요즘 아이들의 행태를 거론하며 그 아이들의 부모가 한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정치현실에서 노무현은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그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92년 총선에서도,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정치전략적으론 모두 이길 수 있는, 이겨볼 수도 있는 싸움이었지만 매번 지역주의의 미친 바람은 노무현의 낙선을 요구했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의 과감하고 두둑한 배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어떤 일이나 사물로 인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다시 그 일이나 사물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건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노무현은 놀랄만큼 의연한 태도로 그런 두려움을 극복한다.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상황임에도 낙선이 계속되자 한 기자가 '유권자인 대중에게 절망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노무현의 대답은 이렇다.

"집단으로서의 대중에 대한 신뢰는 달라진 건 없습니다. 대중에 대한 신뢰란 것은 역사를 길게 봤을 때 흐름을 놓고 말하는 것이지 단기적으로 매번의 정치적 선택에서 대중이 옳을 것이다란 기준을 가지는 건 아니거든요."
완전히 당선될 것이라고 믿었던 4.13총선에서 낙선하고 난 직후 노무현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아픔잊는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라는 글을 띄운다. 한술 더 떠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숨은 미덕까지 들먹인다. "그러나 나는 부산시민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6.25때 전국에서 피난온 사람들을 다 끌어안고 살게 하고 다 고향에 돌아가도록 했는데 그때의 부산 인심에 대해 시비가 없지 않나"

훗날을 기약하는 정치인의 의례적 수사라는 의심만 걷어낼 수 있다면(평소 노무현의 행태를 미루어보건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노무현이 당대 최고의 배짱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상대방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여차하면 두 사람이 모두 죽을 수 있는 팽팽한 긴장상태다. 서로 총을 내려 놓자고 말을 해보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내렸는데 상대방이 나를 쏠 것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믿을 수 있는데 네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럴 때 상대방을 신뢰하고 먼저 총을내릴 수 있는 사람의 배짱은 凡人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노무현이 바로 그런 배짱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지난 10년 간 지역주의라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발작적인 상대와 벌써 여러번 총구를 겨누고 대치했다. 결과는 다 알다시피 노무현의 일방적 피해였다. 상대방을 믿고 먼저 총을 내렸는데 상대방이 쏜 총에 치명상을 입는 일이 그 정도 되풀이 되면 극심한 예기불안으로 두려움에 압도당할만도 하련만 노무현은 특유의 배짱으로 '산전수전 다 겪고 떨어져서 뒹굴기도 하면서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선다.

이제는 오히려 그 불공정하고 어처구니없는 대결을 보고 있던 주위사람들이 노무현의 배짱에 매료되어 그를 거들면서 상대방을 손가락질하기 시작한다. 4.13 총선 낙선후 광주 출신의 한 20대 청년은 '의원님의 낙선이 촌놈의 지역감정을 하나 없앴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라며 마치 자기가 노무현을 낙선시킨 장본인처럼 마음속 깊이 머리를 숙인다. 그의 지역구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이 부산에서 낙선인사를 다니며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노무현은 부산을 그래도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 때마다 사람들이 미안하다며 그의 손을 잡고 울었단다. 이런 희안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일개(?) 정치인에게 사람들은 왜 이런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갖는 것일까.

노무현은 가난과 열등감으로 얼룩진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특히 누나가 쓰던 찌그러진 필통을 물려 쓰던 일이 너무나 창피했다고 말한다. 가난해서 겪게 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나 보통은 그때뿐이었는데 '왠지 그 놈의 필통'만은 달랐단다. 꺼낼 때마다 그를 괴롭혔고 초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쩜 우리에게 있어 지역주의라는 괴물도 어린 노무현의 찌그러진 필통같은 것인지 모른다. 살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상처가 한 두가지가 아니겠으나 대부분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리면 그뿐인데 '왠지 그 놈의 지역주의'만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무현처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그야말로 '온 몸'을 던지는 사람을 보면서 미안해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옳다면 20대에게도 배우는 유연성



그러나 노무현이 무모하다는 말을 들을만큼 쉼없이 지역주의에 정면도전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역주의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그의 정치입문 이유가 '사람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상식적이다. 노무현이 가장 상식적인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는 말을 듣는 동시에 무모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듣는 건 대단한 아이러니다. 상식을 추구하는 일이 무모하다?

상식은 모두가 제 자리에 있는 풍경이다. 도둑을 잡으러 밖으로 뛰어 나온 사람을 붙들고 '팬티바람으로 밖에 나온 사실만을 힐책'하거나 '흉기를 든 도둑을 뒤쫓은 무모함'만을 나무란다면? 말은 맞지만 어쩐지 아구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에는 최소한의 논리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상식의 논리다. 노무현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상식의 논리가 대중 앞에 처음 선을 보인 건 5공 청문회에서였다. 어떤 논객은 노무현이 5공 청문회에서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하고 자로 잰 듯한 논리적 가격'으로 증인들의 기를 꺽어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상식의 논리에 충실했다는 말에 다름아닐 듯 하다. 당시 청문회 시청자들 중에는 증인들의 거짓 증언에 흥분한 나머지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는데 그런 상황이었으니 국민들 눈에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질문으로 자신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노무현이 특별해 보였을 것이다. '정치에서 원칙이 승리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노무현의 말은 상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의 일관된 정치철학을 잘 보여준다. 노무현은 88년 연합철강 노동자들의 농성을 신선한 충격으로 기억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투쟁목표가 임금이나 직장문제같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무현으로 인해 가족사가 공개되는 걸 질색하는 그의 아내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하나만 얘기하자. 노무현이 딸의 유학을 반대한 이유는 이렇다. 정치인이란 게 남의 소득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균소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딸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는 말이겠으나 정치인으로서는 아주 상식적인 말이 아닌가. 노무현이 역설하는 상식의 논리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 건 그가 율사출신이라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노천재'라고 불릴만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그의 개인적 성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스스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독학으로 컴퓨터와 데이터 베이스의 논리구조를 파악, 32억명분의 정보를 수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을 정도다. 이토록 精緻한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얼핏 허술해 보이는 '상식의 논리'를 역설하는 건 의외일 수도 있다. 그건 아마도 노무현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유연성'에서 비롯하는 것일 것이다. 지난 95년 노무현은 원칙을 중시하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세련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기회에 제 자랑 한 가지 한다면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는 제가 편협하다고 하리만큼 고집을 부리지만, 변화에는 잘 적응하는 편입니다."

그가 토론을 좋아하는 이유도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키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면서 변화에 잘 적응한다'거나 '남의 말을 즐겨 듣는다'는 따위의 말들은 실천의 여부와 관계없이 화려한 修辭의 하나로만 기능하는 때가 많다는 걸 우리는 경험칙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유연성'의 실체를 몸으로 보여준다. 바로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다.

대공분실에 끌려가 무려 57일간이나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도 못하고 짐승처럼 지내야 했던 대학생들, 얼마나 고문에 시달렸던지 변호사인 자신마저도 정보기관의 첩자가 아닌가 눈치를 살피던 파리한 몰골의 청년들을 보며 노무현은 심한 충격과 막연한 분노에 휩싸였지만, 그때까지 노무현은 자신의 표현대로 '시국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조세법률 전문 변호사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학생들은 노무현에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와 빈부격차의 모순같은 문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는데, 노무현은 학생들의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상적인 일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면서 사회에 대해 진 빚을 갚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또 노무현은 학생들이 읽다가 붙잡혀 온 바로 그 책들을 읽으면서 이기적인 사상의 껍질이 균열되기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그로부터 운동이 노무현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조세법률 전문 변호사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20대 청년들로부터 이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노무현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상식적인 일에 있어서는 그 정도로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다. 부림사건 이후 노무현은 부산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재야단체의 간부로, 노동법률 상담소장으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펼쳤는데, 87년경에는 '아스팔트 변호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바닥에 드러누워 항의를 하는 것도 불사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그의 이런 행동을 지식인 행동의 한계를 과감히 떨쳐버린 것이라고 평가한 반면 또 한쪽에선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단다.

나는 '노무현의 정치행로가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탄탄한 논리와 일관성이 있어 이해하기 쉽다'는 강준만 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에 정면도전하는 그의 행보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인가. 지난해 초 노무현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정치적 모험과 도전을 여러 차례 감행했다. 나는 정도정치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이 보기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 신중하지 못하고 안정감없는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그의 배짱과 국민의 배짱이 한번쯤 맞았으면



사람의 인지과정이 총알과 같다고 한 어떤 심리학자의 이론이 맞는 것일까. 일단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한 번 발사하면 그것으로 끝, 어딘가에 맞을 때까지 운동을 계속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고의 흐름도 일단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인지의 왜곡을 바로 잡는 건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에 대한 인지 왜곡 현상을 이렇게 질타한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무모'한 게 아니라 '대담'하다. 무모는 '앞뒤를 헤아려 생각하려는 신중성이 없음'이라는 뜻이고, '대담'은 '일에 대하는 태도가 용감하고 담력이 큼'이라는 뜻이다. 대담한 사람을 무모한 사람이라고 욕한다면 이 세상에 누가 옳은 일을 위해 나서겠는가?"

내 말이 그 말이다. 무지를 배짱으로 아는 정치인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나는 아직까지 노무현처럼 '진짜 배짱'이 두둑한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노무현처럼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심리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은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라는 글에서 유니세프 후원금 영수증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가보'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단다. 이유는 두 가지다. '늘 주위를 둘러보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의 측면이 하나 있고, 한편으로는 '아빠는 이렇게 산단다'라는 자랑이 섞여 있어서다.

혹시 먼훗날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후원금 영수증'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나는 이렇게 멋지게 살았단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마도 그에 대한 해답은 노무현이 무주 단합대회에서 '노사모'회원들에게 던진 또 다른 질문속에 담겨 있는 듯 싶다.  

"이 나라의 옳은 길을 걸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패배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역사를 다시 쓰지 않고서 한국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노무현의 열렬한 후원자인 영화배우 문성근의 말을 들으면서 이 글을 끝맺자. 문성근은 대중 정치인은 국민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느냐가 중요한 판단기준인데 노무현은 그랬다고 말한다. 이 지역분할구도를 깨려고 흔들림없이 자기 희생을 해서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전략적으로 양심적으로 모두 다 노무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만일 노무현이 실패하면 어쩔거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마지막 대답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노무현씨는, 그런 일은 1퍼센트도 안 되겠지만 떨어지면 며칠 쉬게 두었다가 술 사가지고 가서 또 부산가서 떨어지라 그래야지요. 자, 가자. 그래야지요. 떨어져도 나 죽여라, 그러고 가야지요."

노무현에게 또 다시 그렇게 말할 염치와 배짱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노무현의 그 두둑한 배짱과 국민의 배짱이 한번쯤 맞았으면 한다.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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