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7 (08:37) from 129.206.196.193' of 129.206.196.193' Article Number : 361
Delete Modify Geist Access : 5696 , Lines : 38
하나님은 농부



황우석 교수, 불치병 환자 희망돼야  

- 송우혜, 문화일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문제로 빚어진 파문이 대단하다. 어떤 모양새로 마무리되든 간에 뒷날 우리 과학사 의 대사건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논란의 와중에 가장 크게 들리는 단어가 ‘국익’이다. 대다수 국민이 황 교수 자신이 인정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격려와 지지를 보내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국익’만이 고려의 대상일 수 있다면, 문제 해결은 오히려 간 단하다. 그것은 매우 유망한 미래산업 하나를 다루고 해결하는 잣대와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써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는 미래산업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긴 눈으로 볼 때, 황 교수의 연구는 한 국가의 산업적 차원의 이익이라는 기준을 초월하여 전 인류사적 의미와 의의를 지니는 생명공학이다. 인류의 미래, 인류의 삶의 질, 인류의 희망, 인류의 한계와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하기에 ‘국부(國富) 창출에 긴요한 미래산업’의 수준으로 다루고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

어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빚어진 논란을 보면서 문득 뇌리에 떠오른 것이 있 다. 언젠가 들었던 “하나님은 농부”라는 러시아 속담이다. 처 음 들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강조하는 속담, 곧 만물을 기르고 키우고 살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하는 속담이라고 생각하고 그 표현의 신선함에 감동했다. 그러나 실제로 농 촌에 가서 농부들이 곡식을 키우는 모습을 본 뒤에는 ‘농부’에 대한 인상이 싹 바뀌었고, 그 속담이 지닌 무서운 뉘앙스에 전율을 느꼈다.

농부들이 지닌 ‘생명의 건강함’에 대한 기준과 대우는 매우 가혹하다. 병든 싹, 허약한 싹은 가차 없이 제거한다. 농부들은 병든 농작물을 살리고 기르기 위해서 건강한 농작물에 쏟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성을 쏟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병든 농작물, 더구나 불치의 병이 든 존재들은 가차 없는 제거 대상이 되 어 사라진다. 나머지 전체 곡식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인데,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볼 수록 그런 조치야말로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유일하게 불치의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건 강한 존재들보다 오히려 더 귀하게 돌봄을 받고 갖은 정성을 쏟 아서 기어이 살려야 하는 대상으로 대우받는 존재가 있으니, 곧 ‘사람’이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연구하는 ‘줄기세포’를 사용한 불치 병이나 난치병 환자의 치료기술 개발 및 생명공학의 영역 확장은 바로 이렇듯 특수한 존재, 곧 경제논리를 초월하는 존재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의 차원에서 다루면 매우 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생명공학 계통의 연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윤리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 우리 국민이 그동안 황 교수가 이뤄내는 눈부신 학문적 성과에 열광적으로 환호하면서 동시에 그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지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인품의 맑고 선하고 성실함을 크게 기뻐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성실한 학자들이 지닌 연구에 대한 정열과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집착은 무섭다. 황 교수 연구팀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6시5분부터 연구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학자들의 그런 정열과 집착이야말로 세상을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산업’의 논리와 구조를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을 낳기 쉽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처럼 신뢰를 주었던 인격자조차 피해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황 교수는 “눈 덮인 들판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심정으로 연구 를 진행하고 있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자신이 몸담은 학문 세 계의 첨단에 서서 능히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선도하고 나아가는 선구자로서의 강렬한 자긍심과 치열한 자기 인식이 피부에 닿듯 생생한 감명을 주는 발언이다.

그의 그토록 절실한 각오는 연구의 학문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 서는 이미 훌륭히 그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이제 그는 ‘그 눈 덮인 벌판’에 영혼을 지닌 존재인 사람을 다루는 이가 견지해야 할 고도의 윤리라는 측면에서도 연년세세 후학자들의 모범이 될 큰 발자국을 그려주어야 할 때이다. 그 부분까지 성취될 때, 우리는 황우석 교수를 앞세우고 다시 세계를 향하여 “이 사람을 보라”고 크게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송우혜 / 소설가 ]]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