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0 (19:44) from 129.206.196.47' of 129.206.196.47' Article Number :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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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며칠 전 12월29일 사랑하는 울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살아 생전 95세 천수를 잔병치레 없이 다 누리시고 돌아가신 할머니지만,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는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슬펐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하다.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내게도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없을 것 같음에, 나의 지나온 삶질의 세월이 사뭇 무상하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삶질이라면,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은 거짓 없는 진실만을 듣고, 보고, 말하며 살고파서 할머니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회고하며"진실”에 대한 글을 이어갈까 한다.




나의 가족사를 공적인 이 공간에서 하는 것이, 혹시 할머니의 영혼을 어지럽히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지만, 울 할머니 마음, 디~따 좋은 분이시라 아마도 용서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쵸? 할머니!




작년 12월초 할머니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겨울감기에 걸리셨다. 재작년에 조금 고생하셔서 올해는 어머니가 동사무소에까지 모시고 가서 독감예방 주사까지 맞으셨지만 안타깝게도 별 도움이 없으셨나 보다. 하기사 감기에 무슨 약이 있겠냐 마는 서프앙들도  조심들 하셔, 어른들 말씀이 감기가 모든 병의 시작이라 하더라. 나는 이번에도 할머니는 며칠 앓으시다가, 우리 보란 듯이 씩씩하게 일어나실 줄만 알았다. 하지만 95세라는 삶의 무게가 할머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우셨나 보다.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축제" 라는 영화에서 이준섭(안성기 분)의 어린 딸이 허리 구부정하고, 키가 작고, 치매 걸려 어린아이 같은 할머니를 보고 준섭에게 "할머니는 왜 저리 작고 아이 같아요" (오래 되서 기억이 잘.... ?)라고 묻는다. 준섭은 딸에게 “할머니의 나이를 자손들에게 다 나누어 주셔서 점점 키가 오므라드시고 어린애가 되어 간단다” 라는 대사를 들으며 나는 울 할머니를 떠 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던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당신께서 당신의 외아들인 울 아버지 먼저 앞세우시고 손자인 나의 변변치 못한 주변머리만 믿고 살아오신 30년, 그 세월이 그리 간단치 만을 않으셨으리라 생각이 드니 지금도 마음이 짠~하여 마음 한 켠이 아리다. 한 다리 건너라고 손자인 내가 어찌 당신의 아들만 하겠는가? 이번 일만 해도 할머니의 병중이 조금 심상치가 않았을 때 아버지 같았으면 병원으로 모셨을 게고, 할머니는 당신의 아들의 뜻을 편한 마음으로 따르셨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할머니는 당신의 손주의 뜻을 굳이 마다하시더니 당신이 죽음에 문턱에 들어서서야 나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이셨던 그 마음은, 아마도 손자인, 나의 형편을 헤아리시느라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




바보 같은 울 할머니 나 돈 많은데....




맨날 맨날, 어린 당신의 증손자 덜 키우려면 돈 많이 들어가니 부지런히 돈 모아야 한다고, 당신 살아생전 아무 것도 사오지 말라며 간혹 군것질거리 사가는 나를 보고, 손사래 치시던 할머니는 내가 돈 쓰는 것이 그리 아까우셨던가 보다. 정말 바보 같은 울 할머니, 이 다음에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보라고 그리 마다를 하셨는지 모르겠다. 아버지한테 나중에 혼날 생각하니 울 할머니 정말 밉다.




할머니는 감기 때문에 2주를 자리에 누워만 계셨었다. 그 2주 동안에도, 말씀도 잘 하시고, 손수 어항의 물고기 밥도 주시며, 대소변도 화장실에 가셔서 하고, 평소의 그 깔끔함을 잃지 않으시려고 무던히 애쓰시는 모습이, 내 눈엔 참으로 안타깝게 보였다. 12월 중순 어느 날 할머니는 평생에 첫 실수를 하셨다. 문안차 방안에 들어 선 나는 역한 냄새에 코를 손으로 막았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이부자리를 다 헤쳐 놓으시고 급히 치우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고. 할머니는 화장실 변기에 않으셔서 손자인 나를 황망히 쳐다보시는 그 순간, 나는 죄스럽게도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마음에 불안감이 밀려 왔었다. 평소에도 화장실에 들어가시면 한참을 계시다 나오셨던 게,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실까봐 대장에 모든 것을 비우시느라 그러셨던 것 같다. 진작에 Diaper를 사다 드렸으면, 당신이 그런 불안감에 마음 졸이지 않으셨을 텐데, 나는 참으로 눈치가 없었음을 후회하며, 지금도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할머니는 손수 당신이 더럽힌 그 속옷을, 화장실에서 나오시지 않고, 늙고 병들어 가늘디 가는 약한 그 손힘으로, 1시간 넘게 손빨래를 다 마치신 다음에야, 앉은 채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셨다. 어머니하고 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울 할머니 한 고집하시거든….




그 길로 내가 Diaper를 사와 할머니에게 보여주니, 할머니가 참으로 부끄러워하시더라. 하지만 내가 Diaper를 펼쳐 보이며 사용 방법을 설명하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굳이 영어를 쓰는 이유는, 울 할머니 혹시 부끄러워하실까봐 그러니 서프앙덜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시간 이후로 할머니는 Diaper를 하시고 자리에서 혼자서는 일어나시지 못 하셨다. 죽을 사다 드려도 많이 드시지 못하고 그저 비싼 돈 들여 쓸데 없는 것을 사왔다며, 당신은 밥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 입안이 죄다 헐어 죽 한술 넘기기도 힘든 양반이, 내 염장을 지르는 건지, 자꾸만 돈, 돈, 돈 해서 화가 났었다. 그 동안 내가 너무 바둥거리며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 많이 했다. 시 바!




막내 동생이 호주에서 오면서 사온 디따 비싼 약, 일명 묻지마 약을 박카스라 속이고 드리믄서 쾌차하시길 빌었지만, 울 할머니 점점 기력을 잃어 가셨다. 근 2주를 죽 한 그릇, 물 한잔 다 못 드신 것 같다. 나중에는 물도 드시지 않더라. 입술이 메말라 다 갈라져서 안타까운 마음에, 거즈에 보리차 묻혀 입에 물려 줘도 그것조차 마다하시더라. 원래 마르셨던 몸에 드시는 게 없어 뼈만 앙상하신 울 할머니 보믄서 혼자서 많이 울었다.




나의 재촉에 마지못해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 입원 하신 울 할머니, 의사 선생님의 사무적인 딱딱한 진찰에도 이쁘게도 잘도 참으셨다. 하지만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드리려 했던 나의 얄팍한 효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엔 집에서 편안히 모시자는 동생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각종 검사에 사진 촬영 후 의사 선생님도 별다른 조치가 무의미했던 모양이다. 괜히 추운데 울 할머니 고생만 하고 119대원 수고만 끼쳤다.




이 자리를 빌어 119대원분들 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경황이 없어 제가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감사합니다.    




사람이 生 하며 가졌던 그 모든 것을 다 반납하며 가시듯, 할머니는 살과 피 그리고 살아생전의 기쁨의 웃음까지도 다 내놓으시려는 듯, 죽음에 임하시는 할머니는 아픔으로 많이 고통스러워 하셨다. 울 할머니 그 동안에 하느님한테 숱하게 기도 하시던 게 생각나, 나는 누워있는 할머니 손을 잡고 하느님께 기도하시라고 하였지만,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당신이 힘들어서 그러시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일으켜 세워 달라 시더니, 울 할머니 입이 헐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웅얼거림으로 기도를 하시더라.




다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믿지 않는 그 하느님께 당신과 당신의 자손을 다 맡기고 간다는 기도를 한참 동안이나 하시는 귀여븐 울 할머니를 보믄서, 웃음도 나오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동생 앞에 눈물을 참느라 혼났었다. 울 할머니 마음에서는, 당신이 대빵 좋아하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차마 누워서 하실 수가 없었던 거였다. 하기사 성경책도 먼지 묻는다고 수건으로 덮어 놓으시는 분이었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고 싶다. 만약에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면 그 동안에 그토록 믿었던 울 할머니가 너무 가여워서다.




곡기도 끊으시고 물 한 모금도 마다하시는 그 며칠은 내게는 지옥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은 아편을 항상 소지했었단다. 마지막 가는 길에 고통을 잊어보려고…




차라리 눈으로 안 보는 게 편하였다. 꿈속에 환영이 보이시는지 헛소리만 하시고 간혹 정신이 들어 나를 쳐다 보시던 울 할머니는 내게 와이프랑 잘 의논하고 화합하며 살라는 말을 하셨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이 내게 주는 마지막 할머니의 유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잠만 자시더라. 눈도 잘 못 뜨시고 꿈을 꾸시는지 간혹 깜짝깜짝 놀라시고 내가 할머니 귀에 대고 뭐라 이야기하면 할머니는 내 손을 꽉 쥐시기만 할 뿐 눈과 말문을 닫으시고 귀만 열어 놓으셨다.




29일 아침, 나는 머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었다. 효과가 없었다. 연거푸 2알을 먹었다. 동생한테 자리 지키라 이르고 나는 참을 수 없는 두통에, 아래층 내방으로 와서 깜박 잠이 들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깜작 놀라 문을 여니, 어머님이 방금 할머니가 운명하셨다고 한다. 황망히 뛰어 올라갔다. 할머니는 잠자듯 평화로웠다. 조금 전 그 고통의 아픔은 온데 간데 없고 울 할머니 내게 슬픔만 주고 영원히 잠에 드셨다. 화가나 소리치고 싶었다. 그깟 두통 때문에 임종도 지키지 못한 그 참을성 없는 나의 뻘짓이 역겨워서 분노 반, 슬픔 반 애꿎은 울 엄마에게 울면서 화풀이만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 수양이 덜 된 놈이다. 썩을 넘!




서프앙아! 한참 동안을 울 할머니 끌어안고 울면서 문득 깨닳은 게 몬지 아니?

시간의 무서움이야.

세상에 진실은 시간 뿐이라는 것이지.

이 세상 모든 게 다 변하여도 시간\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

그게 진실이야.

우리가 한 백년 살 것 같은 그 호기도 세월 앞엔 조또 아무 것도 아니야.

그 무서운 세월 앞에 우리는 거짓과, 기만과 그 많은 몸부림의 “척”을 하면서 삶질 하다가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 거야.

정말 가지고 가는 게 하나도 없단다.

옛날에 천상병 바보를 닮고자 하였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하루에 담배 한 갑, 막걸리 한 주전자.

지금 보니 그것도 사치야.

그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거야.

그리고 살아있는 그 짧은 시간 거짓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진실에 가까이 가는 거야.

근데 살다 보면 거짓의 삶질이 무지무지하게 많아.

그 삶질이, 시간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야.




울 할머니 옷장에서 217만원의 거금이 들어있는 돈봉투를 발견하고, 나는 정말 무지하게 목놓아 울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실컷 울어본 것이었다. 그 동안 자손들이 주었던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당신의 장례식 비용에 보태 쓰라고 남겨둔 돈이었다. 그렇게 울 할머니는 못난 손자의 형편을 헤아려 주셨던 것이다. 바보 같은 울 할머니 나 돈 많은데…..




신년벽두에 장황하게 울 할머니 죽음을 늘어놓아 송구스럽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느껴지듯, 사람의 죽음의 과정은 곡기-물-말문-눈-귀 의 순서대로 세상과 소통을 끊는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각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른들 말씀을 빌어도 저 위의 순서가 일반적인 게 맞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서 마지막 순간까지 귀를 열어 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말하는 자의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거짓의 말 한마디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눈팅만 하다 서프에 처음 글을 올렸던 이유는, 언론의 왜곡보도로 인한 울분에서 시작되었다. 부끄럽게도 졸필의 글을 서프앙들이 어여삐 여겨서 첫 글이 대문에 오르는 가문의 영광도 얻었다. 어쩌면 저 죽음에 과정에서 보듯이 먹고사니즘 보다 “보고”, “듣는” 세상과의 진실의 소통이 더 중요할런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대의 역사를 보자. 치욕적인 망국의 시절은 물론 정부수립 후 이승만의 독재와 박정희 독재, 그리고 전두환의 포악한 독재, 그 친구의 정권, IMF정권, 국민의 정부, 그리고 지금 참여정부까지 언론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지? 에휴~!! 우리는 지금까지 언론의 거짓의 말만 듣다 세상을 등진 수많은 영령의 원한으로 인해 소란스러운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고 가장 먼저 포문을 열고 지적한 게 언론의 왜곡보도 행태였다. 전에도 그는 조폭 언론의 패악질로 인해 무던히도 고생하였다. 하지만 그는 싸우기를 포기한 것 같다. 아니 그는 지금 우리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대통령들처럼 총칼로 위협하며 무릎을 꿇리면 얼마나 쉽고 좋을까, 하지만 그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권력까지도 다 내어 놓은 바보짓을 하고 만다. 전에도 바보였고 지금도 바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억세게도 고집부리는 바보 노. 무. 현! 그가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바보들의 대통령이다. 나는 그런 바보를 미워할 수가 없다.




70년 중반 박정희의 독재가 한창 극에 달했을 때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천재감독 하길종님이 만든 최인호 원작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70년대 한국영화의 최고의 수작이 있었다. 진실이 실종한 유신통치의 암울한 시대에, 대학생인 병태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며 좌충우돌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대본삭제는 물론 30분 분량의 필름이 삭제되어서 상영되었다. 한마디로 골 때리는 시절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병태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대와 야합하며 편하게 삶질을 선택한 지식인들과 기성 세대들이 어린 나에게는 바보로 보였다. 고속도로나 일반도로에서 안전거리 유지하고 규정 속도를 지키려는 사람을 우리는 간혹 마주친다. 자신의 진행방향에서 걸리적거린다고 우리는 욕을 해대며 바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현역판정 받고 입대하면, 빽 좋은 자제분 들이 신의 아들답게 면제나 혹은 좋은 보직, 방위소집을 받고, 말단 소총수를 가리켜 바보들이라 욕하던 시절도 있었다. 원리원칙대로 세금 정산하여 세무서에 신고하면 지금도 바보소리 듣는다. 이 시대의 바보는 돈 없는 자가 바보이고, 가진 자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이다. 상식과 원칙을 지키려는 자는 바보고, 기만과 술수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능력 있는 자이다. 이게 무슨 해괴한 바보 논리란 말인가.




노무현이 바보가 되고, 황우석이 바보가 되고,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민초가 바보가 되는 이 도돌이표 졸라 많은 우울한 진혼곡을 이제 그만 연주하자. 호주에 사는 동생이 내게 말한다. 한국은 펄펄 뛰는 생선이라고, 밖에서 보니 대한민국은 이미 남들이 경이롭게 바라보는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어 있더란다.




근데 왜 여기에 사는 우리만 모를까? 그건 우리가 눈으로, 귀로 거짓만 소통해서 그렇다. 언론이 다 거짓부렁만 늘어놓아서 그렇다. 이놈의 윤리가 지금 대한민국을 패대기치고 있다. 진작에 윤리가 각자의 마음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헤매고 있지 않을 것이다. 원인은 교육의 문제가 크다. 다들 반칙이 능력이고 지식이 돈이라는 서구자본제국주의의 보이지 않는 악령 탓이다.




우리가 눈 딱 감고 국민소득 만 불에 만족하고 10년만 초등교육에서부터 총력을 기울인다면 지금의 우리들 자식세대는 이처럼 “진짜 바보들의 전성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못하겠지? 힘든 걸 못 참는 게 어느새 우리들의 몸에 베었다. 그래서 선뜻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 10년은 잠깐인데 우리는 그새를 못 참는다. 조급증환자에, 물질만능에 길들여져서다. 이성만 강조하고 감성을 죽인 대가이기도하다. 예전에 서구사회에서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면 그들은 차를 세우고 맥을 놓고 쳐다만 본다고 하였다. 이성이 살아있는 사회이다. 기술자가 아닌 다음에야 본닛를 열어 보아도 소용이 없을 테니 아예 수리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애꿎은 차바퀴를 발로 차며 욕을 해대고 쥐뿔도 알지 못하면서 본닛을 열고 아무거나 툭툭 쳐 보며 “제기랄”, 혹은 “쉬파”를 연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감성이 살아 있는 것이다. 지금 윤리를 들이대는 이성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성이 앞서는 시스템은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이 앞서는 사회는 삭막하기만 할 것이다. 결론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너무 많아도 없으니만 못하고 너무 모자라도 있으니만 못하는 어쩌면 이성과 감성이 양립하기란 모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삶질인 걸……




마무리하자.

삶 질에는 진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올바르고 후회 없는 삶질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야 진실에 많이 접하며 친해질 수 있다.

언론을 바로 세우는 일은 마을 앞 수백년 묵은 당산나무를 다른 마을로 옮겨 심는 것이 아니다.

어린나무를 심어서 잘 가꾸어 고목으로 만들어지는 세월과 노력이 필요하다.

언론뿐만 아니라 사회전반 모든 분야가 다 그럴 것이다.

교육이 첫째다.

그것도 초등교육서부터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조급증을 버리고 자신감을 갖자.




마지막으로 예전에 나의 블로그에 올렸던 할머니를 위한 글을 올린다.

혹시나 할머니가 보셨으면 해서다.

아마도 2003년에 쓴 것 같다.





우리 할머니입니다.

올해 연세가 93이신 이쁜 우리 할머니입니다.

아직도 당신 빨래는 손수 하시고 한 달에 한번 병원 다니시는 일도 혼자서

다니시는 씩씩한 우리 할머니입니다.

귀만 약간 어두우시지 아직도 정신이 총명하시기가 저보다 낫습니다.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시면 제일 먼저 하시는 게 기도랍니다.

우리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신답니다.

저는 한번도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가끔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말씀 드리지만

매일 같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할머니에 비하면

저는 아주 나쁜 손자입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기도합니다. 이쁜 우리 할머니 건강하시라고....




할머니가 애지중지 기르시는 물고기입니다.

내 막내 동생이 적적하시지 않게 사다 드린 금붕어입니다.

그런데 너무 애정을 쏟으셔서 물고기가 버릇이 없습니다.

싸구려 먹이는 잘 안 먹습니다.

내가 사다 드리는 1000원짜리 물고기 밥 말고 할머니는 한 통에

4~5천원 하는 물고기 밥을 몰래 사다 놓으시고 그것을 줍니다.

나 원 참! 할머니도.......




내가 가게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기르던 금붕어 한 마리가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죽고 그놈 한 마리만 4년째 살고 있습니다.

중간에 그놈 장가보낸다고 한 마리 더 사와 합방을 시켰는데

아무래도 그놈도 수놈 같습니다.

물고기는 암수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




그런데 올 여름 휴가 때문에 어머님에게 물고기 밥을 부탁했습니다.

일주일치 먹이를 일회용 컵에 담아놓고.....

그런데 어머님이 서울에 며칠 급한 볼일이 생기셔서

먹이를 많이 주고 가셨나 봅니다.

아마 컵에 든 거 반은 주었나 봅니다.




그 다음날 할머니가 궁금하셔서 가게에 내려와 보니

벌어진 기괴한 현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답니다

한 물고기가(나중에 사온 물고기)

밥을 너무 먹어서 배가 빵빵해져 가지고

바로 서지도 못하고 거의 죽기 일보직전이었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는 그 물고기들을 당신의 방으로 긴급후송해서

밤을 새워 그놈을 간호했답니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다시 넘어지면 일으키고......




하여튼 할머니 말로 새벽2시 까지 그러셨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정성이 통했는지 그 다음날부터 물고기는 잘 놀더랍니다.

지금은 다시 가게로 내려다 놓으려 해도 할머니가 정이 드셨는지

당신이 키우시겠답니다.




저 어항의 그물 같은 것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건데

어항엔 작은 물고기도 몇 마리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먹이 줄때면 그 작은 물고기들이 큰놈들한테 치여서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먹이 줄 땐 그물로 어항의 반을 막아놓고는 먹이를 주신답니다.

하여튼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손수 가져 다 진열해 놓으신 사진들입니다.

그 중에 제 막내 동생 사진을 제일 귀하게 여기신답니다.

우리 할머니는 세 가지 소원이 있으시답니다.

한가지는 우리가족 모두 건강한 거고

또 한가지는 막내 동생이 결혼하는 거

마지막 한가지는 당신이 이 세상 이별하실 때 그 전날 저녁 잘 드시고 잘 노시다

잠자다 가시는 일이랍니다.

하느님! 아셨지요?





할머니가 매일 읽으시는 성경책입니다.

우리할머니 성경책 읽는 소리는 노래 가락 같아 참 듣기 좋습니다.

그 어려운 성경책을 이해나 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책을 매일 읽어야 천국 간다는 누이들 말에 할머니는

참 열심히도 읽고 또 읽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살아계신 이곳이 내게 천국이었으면 합니다.




이제 울 할머니 안 계시는데...............




덧붙여서/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논리가 부족하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이성적 논리를 요구하는 전문적인 글은 피한다.

하지만 살아온 삶질이 있어서 감성적인 신파조 글을 많이 쓰게 된다.

여기 서프에서 나 말고도 논리 빵빵한 논객들이 많으니 나의 부족한 논리는 그들에게서 보충하시고

나는 서프앙들의 감성에 호소하니까 다소 유치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쓰다 보니 반말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서프앙들이 친근감이 들어서일 것이다.

이것 또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서일 텐데

에휴~어렵다 균형질이….




ⓒ 파스텔


- 서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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