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20 (23:37) from 84.173.120.27' of 84.173.120.27' Article Number :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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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의 손길



“할멈 손을 그만 놓쳤어…” 수해노인의 애타는 사부곡




[쿠키 사회] 강원도 인제군 한계1리 김상철(77·가명) 할아버지는 앙상한 뼈만 남은 자신의 손을 연신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지난 15일 입은 부상으로 붕대를 감은 오른쪽 다리보다 할머니의 손을 놓쳐버린 자신의 오른손에 대한 원망이 앞서는 듯했다. 닷새전 아침 거칠게 흐르는 물살은 50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을 떼 놓았다.

군에서 제대했던 27살에 중매로 만나 50년 가까이 함께 산 할 할머니(69)가 7년 전부터 앓기 시작한 파킨슨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모든 가사와 끼니 준비는 할아버지 몫이 됐다. 15일 오전 7시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 순간 퍼붓는 장대비에 불안해졌다. 할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왔다 집 앞 한계천이 무서운 속도로 불고 있는 걸 보았다.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채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만을 부축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5m 정도 떨어진 곳의 산소가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퍼붓는 비를 본 할머니가 “조금만 있다가 가자”며 떠나기를 망설였다.

할아버지가 “할멈 이러다 둘 다 죽어” 라며 재촉하면서 5분 정도 실랑이를 벌였을까. 갑자기 집 앞과 뒤, 사방에서 물이 치들어오기 시작했다. 집 뒤 제방이 불어난 물에 터져 버린 것이다. 허리 높이로 빠르게 들이치는 물 속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하지만 두 노인이 버티기에 강물은 너무 포악했다. 쓸려내려오는 돌멩이에 부딪히며 부부는 물 속에서 두 바퀴를 굴렀다. 순식간에 할아버지의 손에서 할머니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팔순이 다된 노구로 물과의 싸움에 지친 할아버지는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넘어진 전신주에서 드리워진 전기줄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가까스로 근처 바위로 올라갔다. 3일 뒤인 17일 할아버지는 119구조대에게 구조됐다.

50년을 동고동락한 할머니는 그렇게 떠나갔고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는 상태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할머니 소식을 기대하며 구조대원들을 기다린다.

“내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던 할멈의 손길이 잊혀지지 않아…” “특히 밥 먹을 때면 더 생각나…내가 항상 떠먹여줬거든….”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제=김원철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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