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14 (05:49) from 84.173.120.10' of 84.173.120.10' Article Number :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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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요, 순 등의 성인이나 우왕, 탕왕, 주공, 공자, 맹자 같이 현명한 이들도 다 죽었다. 밤 낮 바뀌고 추위와 더위가 교대하는 것과 같은데, 어찌 죽음만 싫어하고 살기만 좋아할 것인가?”

- 고려 중기의 문신 박황(?~1152)의 무덤 묘지명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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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음  

권 우 현 천주교 청주교구 전산홍보실장



어느날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막스 쉘러가 대학에서 수업을 마치면서 말했다.
“내일은 죽음에 관해 강의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음날 강의 시간에는 여느 때보다 몇 배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유명한 철학자가 죽음에 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듣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강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쉘러 교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조교가 강의실로 들어와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쉘러 교수님께서 어젯밤 운명하셨습니다.”

막스 쉘러의 죽음에 관한 이 실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교수의 강의는 듣지 못했지만 학생들은 죽음에 대해 그 어떤 강의보다 더 큰 깨우침을 얻었으리라. 죽음은 언제 어느때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당장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천주교에 입교하려는 사람들을 예비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6개월 정도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예비자 교리 첫 시간마다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여러분은 왜 살아가십니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해 아무도 한마디로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왜 대답을 할 수 없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죽음’ 때문이다. 죽음은 한 인간이 평생토록 추구해왔던 그 모든 것을 무위로 돌아가게 한다. 수천억을 벌었다 해도 결국 땅에 묻힐 때는 맨몸으로 갈 뿐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 해도 관속에서는 한낱 썩기 시작하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왜 살아가야 하는갗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한다.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일생동안 추구하는 부귀와 영화 따위가 결국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삽질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무한대로 욕망을 채우려 하고 무한대로 쾌락을 누리려 한다. 죽음 따위는 자신과 무관한 일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죽는다. 생각했던 대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혹은 내일 바로 죽을 수도 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과연 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목을 매고 있는 일이나 사람 중 대부분은 내가 죽고 나면 무의미해질 것들이다. 죽음은 삶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있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왜 사는지 알고 싶다면 반드시 가져야 할 의문이다.

- 한빛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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