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30 (12:40) from 84.173.166.111' of 84.173.166.111' Article Number : 507
Delete Modify Geist Access : 5871 , Lines : 202
죽음 앞의 아인쉬타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다루기 힘든 환상





1954년이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 아인쉬타인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시한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신을 옥죄어 오는 통증이 버거울 때마다 그는 이렇게 되뇌이곤 했습니다.

죽음이 곧 해방이라고.



죽음에 대한 그의 이러한 인식은,

다음 해 2월 5일에 쓴 편지의 한 귀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내 갚을 수 없었던 묵은 빚처럼 느껴집니다."



병마로 인하여 차츰 사위어 감이 확실한 자신의 생명빛,

그것을 감지하는 아인쉬타인의 정신은 더할 수 없이 진지했습니다.

한 달 뒤인 3월, 그의 오랜 벗 미첼 바소가 먼저 타계하자,

그는 바소의 유족에게 보내는 편지에다 매우 담담한 어조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나보다 한 발 앞서 이 기이한 세계를 떠나고 말았군요.

그러나 이것은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물리학자들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비록 다루기 힘든 환상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역시 환상일 뿐입니다."  

(1955년 3월 21일 편지)



상대성이론을 구축한 대물리학자답지 않은,

참으로 시적(詩的)이며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 죽음론입니다.   



4월 15일.

아인쉬타인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싸안고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세계의 매스컴이 그의 병세의 아주 작은 기미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자

고통 속에 있던 그가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당황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언젠가는 꼭 죽어야 하니까요."



죽음 앞에 있는 그의 생명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았던 담당의사는

아인쉬타인으로부터 나직한 질문 한 가지를 받았습니다.



"이 지독한 고통의 절정이 죽음입니까?"



그러나 의사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인쉬타인의 말대로 그에게 있어 죽음은 아직까지 환상이었으므로.



아인쉬타인이라는 한 사람이 보편적인 생명법칙에 의하여

'죽음'이라는 미지의 시공을 향하여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을 즈음,

벨기에의 황태후는 2년 전에 받았던 그의 편지를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신기하게도 지금 있는 자리와

그때의 긴밀한 관계를 차츰 잃어 가다가

자신이 홀로 무한 속에 놓여진 것처럼 느끼고,

이미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바라다 보고만 있게 됩니다."



뉴욕의 한 신문기자 역시 언젠가 자신의 질문에 답했던

아인쉬타인의 죽음론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두렵게 여기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종족보존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의 하나입니다.

합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그런 두려움은 대단히 부당한 것입니다.

요컨대 이 두려움은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아무도 면할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드디어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한 일상의 한 순간처럼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조용히 맞이하였고,

'심각하게' 자신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개인에 대하여, 과학에 대하여, 미국과 세계에 대하여,

그 특유의 유머까지 곁들이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서서히 찾아들어 기어히 그의 목전에 자리를 편,

죽음을 향하여는 아인쉬타인은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준비가 끝난 그의 죽음은 하룻밤의 잠에서 영원의 안식으로

고요히, 혹은 자연스럽게 이어져 갔을 뿐입니다.



이제 죽음 이쪽과 저쪽에 가로놓인 그의 굳은 몸 이편에서

상대성이론이라는 환상이 자락을 펄럭일 차례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1955년 4월 18일,

봄밤의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E=mc2)가 순수치에 이른,

새벽 1시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과연 해방되었을까요?

 



***

임종의 순간,

그의 책상에는 이스라엘 독립일에 대해 씌어진

미완성의 언명들이 적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가 성취하고자 추구했던 것은 단지 나의 부족한 능력으로 '진리'와

아무도 즐겁게 하지 못하는 위험에 대한 '정의'에 봉사하고자 한 것이다."



우주와 인간의 이해에 대하여 그가 이루어 놓은 기여는 비길 데 없으며,

그는 언제나 과학의 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넓게 말해서 인간사에 대한 그의 개혁운동은

지속적인 영향을 갖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는 순간을 위한 것이며, 방정식은 영원을 위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in 서프 쓰임원경 님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