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여 동안 국립서울과학관의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회에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뇌 조직 일부가 전시됐었다.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이 전시로 말미암아 소위 천재의 뇌 구조가 화제가 됐었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1955년 숨진 후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 기증된 뒤, 240개 조각으로 나뉘어 지금껏 뇌 전문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전시회엔 그 중의 한 조각이 전시된 것이다.
전시회 당시 과학전문가들이 쏟아낸 말을 종합해 보면 아인슈타인의 뇌는 크기에 있어서는 비범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뇌 무게는 1.23kg으로 성인 남자 평균인 1.4kg에 못 미쳤고, 성인 여자의 평균 무게인 1.25kg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현대 뇌과학이 지금까지 도달한 연구 결과로는 뇌의 크기와 인간의 지능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 준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그러나 수리력과 연상력 등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頭頂葉(두정엽) 하단부가 일반인보다 15% 가량 넓고, 신경 세포의 활동을 돕는 아교 세포의 수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다는 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라고 한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천재의 뇌는 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 속의 신경세포 수나 그 배열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뇌 속의 신경세포와 뇌의 성장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在美(재미) 뇌과학 전문가인 미네소타대학 의대 金大植(김대식·36) 박사는 뇌과학에서 말하는 천재에 대해 『천재는 뇌의 구조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배우고 기억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정의한다.
『런던 대학의 한 연구팀은 뛰어난 기억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법(fMRI)를 이용해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관찰 결과 예상 외로 이들의 뇌 활동량은 보통사람과 비슷했습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얻은 결론은 천재와 평범한 사람들은 뇌의 구조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배우고 기억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천재들이 학습하고 기억하는 데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새로운 것을 배우면 전에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새로운 지식과 기존의 지식을 잘 조합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뇌에서처럼 머리의 크기와 지능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인가?
『컴퓨터가 크다고 성능이 더 좋은가요? 컴퓨터의 성능을 결정짓는 것은 프로세서의 속도와 帶域幅(대역폭)과 메모리의 크기입니다.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죠. 신경세포 연결망의 복잡성과 정보처리의 효율성이 뇌의 지적인 능력을 결정짓습니다. 크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독일·미국·일본의 유명 연구소 모두 거쳐
金大植 박사는 3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에 관한 한 세계에서 유명한 대학과 연구소를 모두 거친 화려한 경력의 뇌 전문가이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에서 석·박사과정, 미국 MIT大 두뇌인지 과학과에서 박사후 과정,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의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 미국의 조지타운대학 의대 연구교수를 거쳤다.
金박사는 최근 뇌과학을 근거로 뇌의 실체와 학습의 관계를 규명하는 「공부혁명」(에듀조선 발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金박사는 『지금까지 현대 과학이 밝혀 낸 뇌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개인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뇌의 실체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고 말했다.
金박사는 작년부터 한국 과학교육의 메카인 KAIST에서 신생학과인 바이오시스템학과의 외부 협력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金박사와 함께 뇌 속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학문적인 여정을 먼저 살펴보자. 金박사가 석·박사 과정을 밟은 독일의 막스플랑크 뇌연구소는 독일의 기초과학 및 기술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은 거대재단 막스플랑크 연구재단(Max-Planck Society) 산하 81개 연구소 중 하나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자리하고 있는 막스플랑크 재단은 1911년 카이저 빌헬름 재단으로 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양자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따 재단 이름을 바꿨다.
막스플랑크 재단의 힘은 소속 과학자들이 그동안 받은 30개의 노벨상에서 엿볼 수 있다. 카이저 빌헬름 연구재단시설까지 합쳐 지금까지 정확하게 30명의 학자들이 물리·화학·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재단으로 인해 독일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물리를 포함한 기초과학분야에서 세계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MIT大에서의 연구 경험
金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11세 무렵 부모와 함께 독일로 건너가 독일 다름스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하였으나,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에서 뇌에 관해 본격적인 공부와 연구를 시작했다. 金박사는 이 연구소에서 뇌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과정 동안, 동물 새끼들의 뇌 발달 과정을 관찰하는 데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런 연구를 하려면 몇 주 동안 동물들의 뇌를 잘 보존해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죠. 그래서 「장기 시각 화상술」이라는 기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동물의 뇌를 손상시키지 않고 뇌의 발달을 관찰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金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1994년 세계적인 과학 권위지 「네이처」에 기고했다. 이 즈음 만난 지도교수가 현재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울프 싱어(Wolf Singer) 교수와, 뮌헨 소재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토비아스 본회퍼(Tobias Bonhoeffer) 교수이다.
金박사는 독일에서의 석·박사 과정이 학구적이었다면, 미국의 MIT大에서 겪은 박사후(Post-Doc) 과정은 과학 연구에서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줬다고 한다. 마치 패션 디자이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밀라노 같은 패션 도시에서 활동해야 하는 것처럼 과학자들도 학문적인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MIT大 같은 세계적인 대학에서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과학의 메카로 불리는 MIT大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과학 교과서나 과학 논문집에서나 듣던 유명 과학자들을 실제로 만나 함께 일하고 연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MIT大에 있으면서 과학에 관한 정보의 소스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과학 교과서나 학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끼리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나 소문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과학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끼리의 비공식적인 모임이 있으며, 이 모임들이 과학 커뮤니티를 위한 기본 틀이 됩니다. 그런 모임에 들어갈 수 있으면 과학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2류 과학자가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현대의 과학은 마치 패션과 같은 것이죠.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면 파리나 밀라노 같은 곳을 가야 패션계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겠죠』
金박사는 MIT大에서의 경험을 한국의 동대문 시장 의류업계에 비유했다.
『예를 들어 보죠. 한국의 동대문 시장의 의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센 로랑과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보다 바느질 실력은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입센 로랑 같은 사람은 패션계의 선두 주자들이죠. 그들은 패션계의 「큰 그림」을 그리는 반면, 동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숙련된 기술자들일 뿐이죠. 불행하게도 한국의 과학 분야에는 동대문 시장의 기술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즐비해 있다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뛰어날지 몰라도, 과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패턴이나 감각이 없습니다』
金박사는 올해 10월쯤 미국 대학으로는 세 번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엔 대학 연구소의 소장 자리다. 보스턴 대학 의과대학이 올해 신설하는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 공명 영상) 연구소 소장으로 스카우트되었기 때문이다.
뇌과학 분야 중 金박사가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결정적 시기」는 뇌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뇌는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뇌는 어떻게 학습을 받아 들이느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들이 이 「결정적 시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金박사가 최근 한국의 학부모와 교사 등 교육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계층을 겨냥하여 「공부혁명」이라는 책을 펴낸 이유도 이 「결정적 시기」라는 키워드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정적 시기란 무엇인가? 왜 결정적 시기는 한국 교육에 중요한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金大植 박사와 이메일을 통하여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공부혁명」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을 참고하면서 金박사가 주장하는 결정적 시기와 뇌의 실체, 그리고 뇌의 실체와 한국 교육의 상관 관계에 대해 알아봤다. 金박사는 한글 질문지에 영어로 답을 보내왔다. 金박사가 쓴 공부혁명이라는 책도 당초 영어로 원고를 썼고, 출판사에서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 책으로 나왔다.
金박사가 이 책에서 말하는 뇌의 기본적인 명세와 구성을 먼저 살펴보자.
「무게는 1.5kg 내외, 인간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나가는 피의 15%를 소비한다. 인간의 뇌 속에는 대략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 신경세포를 뉴런(neuron)이라고 부른다. 뉴런은 태아 때 1분에 무려 25만 개가 탄생하지만, 생후 2년 후부터는 하루 몇 만 개씩 죽어간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수천 개 이상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을 시냅스(synapse)라고 부른다. 신경세포들은 이 시냅스를 통하여 기억하고, 판단하는 뇌의 중추적인 인지 기능을 수행한다. 각각의 뉴런들의 시냅스 조합은 넉넉한 추정으로 수백 조에 달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이다」
사람의 정신과 本性을 지닌 곳
먼저 뇌 전문가가 생각하는 뇌의 定義가 궁금하다. 뇌란 무엇인지 직설적으로 물었다.
『뇌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흔히 인간의 「정신」 또는 「본성」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뇌에 있습니다. 손이나 다리를 잃어도 여전히 「내」가 있지만, 뇌를 잃게 되면 「나」란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두개골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면 1.4kg 정도의 살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이런 살덩어리가 부모님, 집, 애인 등 인간의 모든 시각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 신비로운 것은 이 살덩어리가 사람의 「정신」과 「본성」을 지니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뇌와 정신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나?
『데카르트는 우주 안에 물질(뇌)과 정신이라는 기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존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설을 이원론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믿고 싶어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뇌와 정신이 기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존재라면, 뇌와 정신은 왜 연관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연관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자유의지(free will)라는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모두 우리가 원할 때 우리의 팔을 쉽게 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원한다」라는 정신적이고 非물리적인 존재가 어떻게 팔을 움직이는 물리적인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현대과학은 물리적인 모든 운동은 정해진 대로(deterministic: 뉴턴역학), 아니면 확률적으로(probabilistic:양자역학)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신력이라는 세 번째의 선택은 없습니다.
만약 정신력으로 물리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면, 왜 나의 정신력은 내 팔만 움직일 뿐일까? 왜 책상 위의 빨간 사과는 움직이지 못할까? 아니라면 자유의지는 뇌의 착각일 뿐일까? 인간은 유전적인 틀 안에서 주변상황에 따라 기계적인 반응을 하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로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뇌과학의 근본 목적입니다』
뇌의 결정적 시기
―현대의 뇌과학은 뇌의 실체를 어디까지 규명해 내고 있는가?
『사실 뇌 연구는 상당히 새로운 학문 분야입니다. 과학의 오랜 역사에서 인간은 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만 관심을 쏟아 왔습니다. 예를 들어 별은 무엇이며, 어떻게 빛을 내는지, 하늘은 왜 파란지, 그리고 수학방정식을 이용해서 어떻게 물체의 운동을 나타내는지 등등. 그러나 인간의 뇌가 어떻게 그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과학적 질문으로조차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수학 분야에 매우 명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과 認知(인지) 활동은 뇌가 아닌 심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뉴런」의 존재가 알려진 지는 이제 겨우 100년밖에 안 됐고, 시냅스와 결정적 시기도 알려진 지 5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뇌과학은 아직도 초보 단계입니다. 최근 현대의 뇌과학은 뇌의 기능을 밝히는 데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여전히 뇌 기능의 기본적 원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물리학은 매우 발달된 학문이어서 물리학이 아직 풀지 못한 좋은 문제를 제시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뇌 연구 쪽에서는 사정이 정반대입니다. 아이들이 질문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도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뇌가 어떻게 사물을 보고 기억하는지, 어떻게 얼굴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직도 뇌과학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물론 뉴런이 항상 서로 소통한다는 것과 이러한 뉴런 간의 소통이 뇌 활동의 기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전기생리학과 fMRI(자기 공명 영상법)를 이용하면 뉴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죠. 그러나 뇌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뉴런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뇌과학이 현대과학의 마지막 학문이며, 궁극적인 프론티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뇌의 성장은 세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첫 번째 단계는 신경세포의 손 역할을 하는 신경섬유(nerve fiber)들이 뇌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자라난 신경섬유들이 가능한 한 많은 뉴런과 연결하기 위해 가지를 뻗는 단계이다.
이 두 단계는 대부분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金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아이의 성장 환경에 따라 시냅스의 연결성이 확장되거나 축소한다고 한다. 뇌가 자라는 과정 중에서 이 세 번째 과정을 뇌과학에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부른다. 이 「결정적 시기」가 金박사의 주요 탐구대상이다. 결정적 시기는 뇌의 실체를 파악하는 열쇠이면서, 결정적 시기의 활용 여부에 따라 인간의 후천적인 지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로렌츠의 오리 실험
뇌의 결정적 시기에 대한 학문적 기초는 독일의 로렌츠(Konrad Lorenz), 미국 하버드大 의대의 휴블(David Hubel)과 비셀(Torsten Wiesel) 등 세 명의 뇌과학자에 의해 확립됐다고 한다. 세 사람은 모두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뇌의 성장과 관련하여 로렌츠의 오리 실험은 유명하다. 로렌츠는 새끼 오리들이 항상 어미 오리를 쫓아다니는 걸 보고 이런 행동이 언제 어떻게 발달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오리알이 부화되기를 기다렸다가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오리에게 어미 오리대신 로렌츠 자신을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러자 새끼 오리들은 어미가 아닌 로렌츠를 졸졸 따라 다녔다.
실험을 통해서 로렌츠는 오리의 뇌에는 부화하자마자 처음 보는 흰색 물체를 쫓아가라는 메시지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 오리들이 쫓아다닌 건 태어날 때 처음 본 물체였으며, 흰색일 때 더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즉 오리들이 부화하여 가장 먼저 흰색 부츠를 신고 있는 로렌츠를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이 실험에서 金박사가 주목한 것은 환경이 뇌의 발달, 특히 시냅스의 연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적인 뇌의 성장 과정엔 결정적 시간대(critical time window)가 있다는 것이다.
오리들의 경우 결정적 시기는 대략 생후 한 시간 미만으로 매우 짧다. 그 기간에 시냅스의 연결이 모두 굳어버린다. 시냅스 연결이 굳어진 뒤로 고정된 행동패턴은 어떠한 훈련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휴블과 비셀의 고양이 실험
휴블과 비셀의 고양이 실험도 결정적 시기의 주요한 학문적 근거가 되고 있다. 새끼 고양이의 왼쪽 눈을 가리고 한동안 외눈 생활을 하게 한 다음 좌우 눈에 자극을 주었을 때 뉴런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이다.
실험 일주일쯤 후 두 눈에 똑 같은 자극을 주자 오른쪽 눈에 주어지는 자극에는 정상적으로 반응했지만, 왼쪽 눈의 자극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왼쪽 눈의 자극에 반응하던 뉴런이 완전히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뇌가 자라는 동안 뇌는 더 이상 가려진 왼쪽 눈의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고, 활발한 자극을 받은 오른쪽 눈으로 선호도를 바꿔 버린 것이다.
다 자란 후에 왼쪽 눈이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왼쪽 눈을 쓰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정적 시기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고양이는 생후 4週 후부터 10週째가 되면 결정적 시기가 끝난다. 오리는 앞에 설명한 대로 생후 한 시간 미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의 경우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것은 대략 12세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 10세에 끝나는가 하면 15세까지 지속되는 아이도 있지요. 그러나 대략 12세를 전후해서 아이들의 시냅스 연결이 굳어진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외국어 공부는 「결정적 시기」 전에 하라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배운다. 가족이 이민을 갈 경우 부모는 수년이 흘러도 외국어를 익숙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어린이들은 불과 1~2년 안에 그 나라 말을 능숙하게 한다. 어린이들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여겨 온 이런 현상을 「결정적 시기」라는 현대 뇌과학의 범주가 규명해 낸 것이다. 뇌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결정적 시기」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언어 능력을 비롯한 뇌의 전반적인 기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경험이 성인이 된 뒤의 사고, 언어, 나아가 가치관까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결정적 시기를 증명하는 일화들은 수없이 많다. 숲에 버려져 동물들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에 관한 얘기가 대표적이다. 훗날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인간세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영원히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었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정적 시기」 동안 인간의 언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를 담당하는 시냅스 연결이 점점 약해져 결국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인간의 결정적 시기를 얘기할 때 프리드리히 2세의 유명한 실험도 빠지지 않는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는 아주 잔인한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나라마다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흥미롭게 여기고, 만약 성경에 나온 대로 바벨탑을 쌓다가 사람들의 언어가 다르게 나뉘었다면 바벨탑 이전의 언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이를 밝혀내기 위해 갓난아이들을 유괴한 뒤 따로 격리시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라서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요? 라틴어나 그리스어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부모들이 사용했던 언어였을까요? 프리드리히 2세는 아이들에게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神의 언어인 유대語로 말할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전혀 말을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괴상한 소리만 웅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신경세포와 뉴런의 수는 갓난 아기 때 대부분 만들어진다는 게 정설이다. 어른과 비슷한 수의 뉴런을 갖고 있을지라도 새로 태어난 인간 혹은 동물의 뇌는 미완성 상태다. 뉴런의 연결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어른 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뇌의 학습하는 방법과 능력이 나이에 따라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정적 시기」에 있는 어린이의 경우 뇌는 마치 젖은 찰흙과 같습니다. 쉽게 형태를 만들 수 있고, 이 기간 동안 어린이가 배운 것이 그 후 일생 동안 어떤 뇌를 갖게 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결정적 시기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한국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영어 학습의 길은 自明해진다. 해답은 「결정적 시기」 이전에 영어 공부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결정적 시기」를 지나면 시냅스의 연결성들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외국어를 공부해도 모국어 시냅스 구조를 거쳐 외국어를 듣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정적 시기를 지나서 영어를 배우면?
『언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시냅스들은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미 한국어에 맞게 패턴이 형성된 領域(영역)을 사용해서 영어의 음운이나 문법을 표현하는 시냅스 연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시기」 동안 외국어를 배우면 얘기는 달라지죠. 두 가지 언어, 즉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게 되면 뇌는 각각 두 가지 시냅스 연결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領域들은 각각 한국어 領域과 영어를 위한 領域으로 분리되어 존재하게 됩니다』
金박사는 뇌 속에서 두 가지 다른 언어 장치를 갖게 되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사고로 왼쪽 뇌를 다친 사람들 중에는 회복한 후에 한 가지 언어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 개의 언어 시냅스 중 한 가지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적 시기」 동안 한 가지 언어만 배운 사람은 뇌의 언어영역이 파괴되어 언어능력 자체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최대 15개 언어까지 구사 가능』
―그렇다면 인간은 결정적 시기 동안 몇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
『인간이 동시에 얼마나 많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10개 이상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고교 친구 중 한 명은 14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합니다. 뇌과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한 사람이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수는 최대 15개 정도라고 말합니다』
―뇌과학에 근거한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법이 있는가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는 생후 몇 개월부터 시작되므로 외국어를 가능한 한 일찍 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외국어를 가르치려 하면 효과가 떨어지죠. 오히려 모국어를 배우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 시기의 최고점인 4~6세에는 가르치고자 하는 외국어의 단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때 만화 같은 걸 보여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아이가 10~12세가 되면 좀더 복잡한 문장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모국어와 별개로 외국어를 위한 시냅스 연결을 얻게 되죠. 일단 시냅스 연결이 형성되면 이후의 학습은 쉬워집니다』
여성의 뇌가 빨리 발달
한국에서 태어나 11세 무렵 독일로 건너 가서 중고교 및 석·박사를 마친 후,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金박사는 자신이 언어 학습과 관련하여 결정적 시기를 잘 활용한 살아 있는 예라고 말한다. 金박사는 세 가지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金박사의 이론을 빌면 그는 결정적 시기의 전반부를 한국에서 살다가, 결정적 시기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 시간대를 독일에서 보낸 뒤, 언어 영역을 관장하는 왼쪽 뇌의 시냅스 연결이 굳어진 후 미국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꿈을 꿀 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는 독일어라고 한다. 독일어가 가장 편하고, 영어, 그리고 한국어 순이다.
―컴퓨터와 인간 뇌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컴퓨터는 이미 고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지면 변경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시냅스의 조직을 바꾸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의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정확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뇌에서 볼 때 뉴런과 시냅스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인 것입니다.
컴퓨터와 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컴퓨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지만 뇌는 우리의 조상들이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던 시절 개발했던 알고리즘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0~200년 후에는 지능·창의력·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컴퓨터가 반드시 인간의 두뇌를 능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00~200년 후에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일 것입니다. 혹시 컴퓨터가 우리 인간을 그들의 애완동물처럼 길러 줄 수 있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인 남자 뇌의 평균 무게는 1.45kg, 여자는 1.25kg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기와 무게 차이에 의한 기능 차이가 있나요?
『여성은 신체적으로 남자들보다 작기 때문에 뇌의 크기도 작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는 없죠. 지능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들의 뇌는 남성들의 뇌보다 오히려 훨씬 빨리 발달한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10세 여아의 두뇌는 10세 남아보다 평균적으로 더 똑똑합니다. 개인적 경험으로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지능이 발달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들이 신체적으로 더 힘이 세기 때문에 여성들을 지배할 수 있었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만들어서 여성들보다 더 유리한 조건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있는 곳이 뇌
―담배나 술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담배 성분이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연결망을 파괴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습니다. 담배에 비해 술은 더 흥미롭습니다.
알코올처럼 작은 분자가 뇌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관찰하는 일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 좋은 감정은 더 좋게, 나쁜 감정은 더 나쁘게 ― 을 극적으로 증대시키지만, 과다한 알코올 섭취는 뇌의 해마복합체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기억력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뇌과학자로서 영혼이나 혼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뇌가 뭔가를 본다면 단지 보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스스로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자기인식(self-awarness)」이라고 하는데, 「정신」이나 「의식」 같은 것들의 진화된 토대라고 추측됩니다. 그러나 정신(소프트웨어)은 뇌(하드웨어)가 존재할 때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뇌 없이 정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정신이 있는 곳이 뇌이기 때문입니다. 뇌 밖에 정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정신이나 유령은 없다고 믿습니다』
金박사는 결정적 시기와 관련한 뇌의 성장원리를 알고 나면 한국 교육의 잘못된 점들을 곧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교육에서 뇌가 싫어하거나 뇌의 원리에 역행하는 교육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게 金박사의 말이다.
책을 펴낸 가장 큰 이유도 뇌의 성장 원리를 쉽게 정리해 보자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교육이 뇌의 원리에 적합한 교육으로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이 실제로 뇌가 작동하는 원리와 전혀 다르다면 효율적인 학습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 학교에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일반적인 학습 방법은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데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교나 집에서 뇌의 구조에 알맞은 학습방법을 실시한다면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金박사는 한국 교육 중 뇌의 원리를 거스르는 대표적인 학습법으로 암기식 교육을 들었다.
『암기를 잘 하는 것에 중점을 둔 교육방법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암기하고 계산하는 것도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이를 위해서 다른 기술이 희생되어선 안 됩니다. 단순히 암기만을 반복하게 되면 사용되지 않은 수억 개의 시냅스들이 뇌에서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
월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