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11/07 (21:50) from 129.206.196.70' of 129.206.196.70' | Article Number : 162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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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796 , Lines : 167 |
| [좌담] 고려대 김우창 교수 '마음의 생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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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람다운 삶은 즐거운 금욕주의" 제7회 세계석학 연속강좌… 고려대 김우창 교수 '마음의 생태학' 대담·정리=여건종 숙명여대 교수 입력 : 2005.11.02 19:19 34' / 수정 : 2005.11.03 05:10 4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한국주빈국 조직위원장으로 최근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제7회 석학연속강좌를 앞두고 여건종(呂健鍾) 숙명여대 교수(영문학)와 대담을 가졌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그가 말하는 ‘마음의 생태학’과 이성(理性), 변증법적 사고, 세계화를 보는 시각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계화는 보편적인 이성 운동의 불가피한 표현” “즐거운 금욕주의를 실천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 편집자 ▲ 여건종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의 조직위원장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조직하신 경험과 관련, 한 국가의 문화가 내실있는 질적 수준을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글을 쓰신 것을 봤습니다. 우선 도서전을 준비하시면서 느낀 점들로 얘기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 김우창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것을 맡고 나한테 인생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당대의 통념의 제한을 받으며 움직이는 게 뭔가에 대해서 인생공부 많이 했습니다. ▲ 제7회 석학 연속 강좌에 초빙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를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가 만났다. 허양한기자 younghan@chosun.com ▲ 여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계실 때도 조직이나 단체에 전혀 관여하신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시적인 것이지만 조직을 책임진다는 것은 다양한 현실적인 이해관계들을 조정해야 하는 일이고, 또 홍보라는 것도 선생님과는 별로 맞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 김 =나는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지요. 책과 판권에 관해 거래하고 최신 도서 기술 정보를 교환하고. 주빈국이라는 것은 그것을 조금 확장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라에서 그것을 우리 문화 홍보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결정한 것 같았습니다. 주빈국 행사는 한마디로 ‘국가 홍보활동’ 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홍보하고는 먼 사람이라 심리적 거리를 아니 느낄 수 없었습니다. 홍보는 일을 실질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주는 효과로 파악하기 때문에 전략적인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이 전략적인 사고입니다. 이 전략적 사고는 모든 현대 사회 특히 우리 사회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홍보 사회에 전략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은 조종의 대상이 되지요. 이미지, 통속적인 말, 슬로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항상 문제인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현실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전략적인 것을 어떻게 실질적 내용에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 여 =보통 홍보와 문화, 겉으로 보이고 알리기와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내실 있는 문화는 대립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그 동안 어떤 문화가 우리한테 내실 있게 진행돼 왔었고 보여줄게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 김 =내실이 있는 것도 알려지기 위해서는 우선 주목을 받고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관심에 이어서 앎이 나오고 존경이 나올 수 있지요. 개인의 경우는어느 쪽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국가의 경우는 균형된 국제관계의 기초로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실의 문제는 여전히 남지요. 국가의 문화 홍보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책방에 책이 많은데, 어떤 책이 읽히려면, 우선 제목이나 디자인이 주목을 받을만한 것이라야 한다고 할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과 제목이란 첫 주목과 관심의 매체일 뿐입니다. 그것이 디자인이었든 내용이었든, 이번 일로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단지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인 것인데 밑천을 들인 만큼 효과를 봤느냐 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돈이 얼마 들었든 간에 홍보효과를 얻었으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여 =독일 현지의 반응을 보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문화적 축적을 가졌었고 내실 있는 문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 되겠는데, 선생님께서는 한 국가 공동체가 내실 있는 문화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 김 =나라가 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문화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잘 사는 것이 보편적 의미를 가지면, 절로 사람들이 우리를 알고 싶어할 것입니다. ‘사람답게 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큰 홍보입니다. ▲ 여 =문화적 축적의 결과물들, 가령 불화, 도자기, 궁중에서 생산되던 종묘제례악 같은 음악에서 아주 정제되고 고양된 형태로 당대 사람들의 구체적 경험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결과물이지만 또 동시에 그 시대 우리가 이룩하고 지켜왔던 삶의 질이 표현되고 보존되는 매개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김 =일단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문화유산이지만, 문화유산의 의미는 옛날사람들의 삶에 구현된 조화된 삶과 통일성을 알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간단한 것일 수도 있고, 인생의 모든 것을 어렵고 복잡한대로 거머쥐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많은 가능성을 포함하고 또는 그 가운데에서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조화와 통일이면, 우리를 더욱 감탄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삶을 하나로 그리고 보다 고양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여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삶의 질적 상승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할 수 있겠죠. ▲ 김 =이번에 연주된 종묘제례악의 경우 그것은 극히 지루한 것 같지만, 삶을 단순한 엄숙성 속에 위치하게 하려는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음악이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음악입니다.하늘과 땅 선조 등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임금의 의무중의 하나입니다. 정치가 종교로서 파악돼야 할 만큼 심각한 의미를 가졌었다는 말도 되지요. 종교음악의 특징은 대체로 사람의 일을 단순하게 하여 우주적인 질서에 연결하려고 합니다. 임금이 이것을 맡는다는 것은 임금의 지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과시하자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임금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겸허한 엄숙성 속에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여 =어떤 의미에서는 지배계급의 자기훈련의 한 도구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보편적 가치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부정해서는 안되겠지요. 지배집단의 문화이지만 그것이 일상적인 삶에 전승이 되어 내려오는 삶의 규율과 원리를 다시 표현해 주는 측면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현재 우리 삶의 정신적 원천의 일부로 확인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김 =어떤 형태로든지, 사람의 일이 보다 성스러운 차원에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사회 전반에 유지하는 것이 문화가 하는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세말적(細末的)인 감정자극을 억제하고. 삶의 엄숙성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것은 동양의 정악(正樂)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말적인 것들을 빼고 삶의 재미는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는 인생을 다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진 형상적인 요소는 그러한 것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가는 기능을 숨겨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부분은 사회의 공공 공간에 개인의 감정적 기복을 넘어가는 엄숙성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독일 정치학자와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부패 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에 부패가 있지만,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유산 중의 하나는 공공생활의 윤리성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다, 이점에서 부패를 당연시하는 어떤 아프리카의 부패국가와 다르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 여 =이제 석학연속강좌로 얘기를 옮겨보죠. 석학연속강좌의 주제인 ‘마음의 생태학’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 동안 선생님의 생각을 대표하는 개념들이 심미적 이성, 구체적 보편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동양적 지혜의 강조가 더 많이 들어가 있는 느낌입니다. ▲ 김 =그레고리 베이슨의 ‘마음의 생태학(Ecology of Mind) ’이라는 책이 있는데… 책 이름을 모방하는 것 같아서 주저가 많이 됐지만 이 책은 실제 생태학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고, 여기에서 생태학이란 개념이란 그자체 것을, 일관된 체계 속에서만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에서 쓴 것 같습니다.나의 ‘마음의 생태학’이라는 말은 사람이 사는 세계의 조건이 사람의 마음을 한정하는 것인데, 이 점에 주의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 쓴 것입니다. ▲ 여 =사실 선생님께서 ‘마음의 생태학’이라는 말을 안 쓰셔도 그 전에 쓰셨던 글에서도 이미 베이슨과는 전혀 다른 아주 넓은 의미에서 생태학적 사유의 필요성 같은 것이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 김 =맨 처음에 쓴 부분이 맨 뒤에 있는 ‘산에 대한 명상’입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사는 감각적 세계 속에 마음의 움직임이 있고 이것을 의식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꾸미면서 이것이 제일 뒷부분으로 가고 앞부분부터 이야기 하려니까 제목이 조금 안 맞게 된 감이 있습니다.그러나 앞에서도 마음의 움직임과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삶의 조건과의 관계는 기본적인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 여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사고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변증법적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와 보편, 이성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의 변증법적인 관계에 대해 많이 말씀해 주셨는데, 마음의 생태학이라는 것도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음과 그것을 둘러싸고 그것을 제약하고 동시에 같이 변화하고 있는 외부세계와의 역동적인 상호구성적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 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중 남북분단 문제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면서,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나오는 말, “한 가지 개념이나 관념으로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 즉 관념은 연관 속에 존재한다는 말을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지만, 이 소원은 다른 많은 소원과의 관련 속에서 말하여져야 합니다. 세미나가 통일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을 축하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자유’는 자유에 대치되는 두 가지 말, ‘필연’이라든가 복종을 요구하는 ‘법’과의 모순된 관계 속에 있습니다. ‘민주주의’ 하면 모든 사람의 의견과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것만 중시하면 ‘공동체의 단일성’은 파괴되게 됩니다. 관념의 일관성은 삶의 변증법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 여 =요즘은 통일이라는 말보다 ‘평화와 공존’이라는 쪽에 강조점이 많이 가고 있습니다. 평화와 공존은 생태학적 사고의 핵심적 부분이지 않습니까? 평화와 공존을 통한 자율적인 삶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동안 선생님의 지적 작업은 서구의 지적 전통을 한국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우리의 언어와 감각으로 다시 만들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마음의 생태학은 동양적인 지혜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 김 =동양적인 사고가 변증법적이냐 아니냐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변증법은 우리가 알다시피 정(正)-반(反)-합(合)의 과정인데, 이 과정의 동인(動因)은 갈등입니다. 동양적인 사고에도 정에 대해서 반, 또는 음(陰)에 대하여 양(陽)이 있습니다. 서양의 사고보다 이 점을 더 많이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동인으로 ‘갈등’을 크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동양에서는 여러 요소의 관계를 심미적 균형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 여 =최근 서구의 지적 경향에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서구철학 전체의 전통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움직임인데 이 과정에서 동양의 지적 전통과의 융합하는 지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김 =동양적인 것이 무엇을 보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더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현대의 관점에서, 오늘의 삶의 관점에서 다시 재해석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중 어느 것이 더 비중이 큰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다 생각해 보아야지요. 그러나 우리 내면 속에 깊이 들어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캐어 보아야지요.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민족문화추진연구회에서 문집을 350권을 발행하고 앞으로 150권을 발행한다고 하는데 그 문집들이 다 높은 문화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다 검토하고 이것이 어떤 종류의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지를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인데, 이직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보태서 이야기하면 서양에서 변증법적이라고 하지만, 거기서 갈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평화의 화해’의 이상(理想)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싸움이 있고 화해하는데, 우리 동양의 화해의 이상은 싸우지 않고 화해하는 것만 너무 강조했기 때문에 순종을 강요하게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부터 평화의 화해의 이상은 우리의 삶과 사고에서 너무나 사라진 인상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덕성이 필요하고 덕성에는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강한 덕성만 살아남아 있고 약한 덕성은 다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인(仁)과 예(禮)는 약한 덕성이고 의(義)와 지(智)는 강한 덕성인데, 이 가운데우위에 있는 것은 약한 덕성입니다. 헤겔의 말에 “최고의 정의는 최고의 손상을 가져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서운 정의만이 있는 곳에는 살아남는 사람이 없습니다. 동양에 대한 이야기 조금 더 한다면, 이번 강연에서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이성이 동적(動的)인 것이며 고정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여 =심미적 이성이라는 개념에 그 동안 선생님의 많은 생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모순어법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감성적 미적 경험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생태학에서는 이성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요. ▲ 김 =이성은, 대상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성은 몇 가지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잡을 수 없는 움직이는 원리로서의 이성이고 또 하나는 이성적인 질서와 같은 이성의 업적입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제한된 이성-합리성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성적 질서는 물리적 세계에서나 사회에서나 존중되어야 하는 삶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성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은 계속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그것은 하나의 가설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이중적 구조로 이성을 생각한다면 이성은 법칙이나 법률로 표현되면서 그것을 초월해서 법칙이나 법률을 하나의 잠정적 가설이 되게 합니다. ▲ 여 =이성의 자기부정의 원리가 이성 자체라는 얘기로 이해될 수 있겠군요. 그럼 그것이 변증법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김 =그렇습니다. 그러나 법칙이나 법질서를 부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동양적인 질서와 관계해서 이야기하면, 동양적 질서는 주로 심미적인 질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아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이 질서의 원리는 시(詩)에 의하여 매개되는 바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가 중요하다 해서 그것이 법률적 질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시에도 이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이성 속에 지양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성은 세 가지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이성이 있고, 법률과 법칙의 세계에서의 업적이 있고, 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은 그 나름으로 삶의 질서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참으로 사람들의 공존의 질서가 되려면, 그것은 다시 움직이는 이성으로 승화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성은시를 시로서 유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감정과 정서의 경우도 그러하지요, 이성이 그것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고 떠받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동양적 질서를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그것은 다른 미적 질서나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이성에 의해 확인되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성은 3중의 구조 속에 드러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여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둘이 어떻게 만나고 또 근본적으로 둘 사이의 정신 사이에 근본적인 어떤 차이가 있나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가장 진전된 자본주의-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라는 점에서 서양적인 것이 구체적 삶에서 드러난 현실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란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일 텐데, 가장 가시적인 현상은 세계 시장이 단일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선생님께서는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도 자본주의적 삶의 질서를 공리적 이성이라든지 기능적 이성의 지배로 많이 지적을 하면서, 동시 세계화가 주는 안정적인 삶의 필요성도 같이 지적을 해오셨습니다. 현재 우리 삶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세력으로서의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김 =세계화에 여러 문제점이 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이만큼 먹고 살게 된 것이나중국이나 인도 사람들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시장을 인간의 이름으로 조정하고 통제해 왔던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위기로도 나타나고 있지요. 즉 세계화의 중심가치 중의 하나를 경쟁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경쟁을 인간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화의 관건이라는 생각인데요. ▲ 김 =유럽으로 보면 문제지만 중국으로 본다면 경제성장의 요인입니다. 제3세계 저개발 국가 입장에서 볼 때 노동착취라든지 여러 가지 폐단이 있지만, 경제발전의 동인이 되고 있는 것이 세계화입니다. 몇 년 전에 피에르 부르디외 교수와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세계화 반대는 유럽의 기득권을 보존하겠다는 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문제점은 새삼스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요. 문화적으로 보아도 한국에서 맥도날드, 중국도 맥도날드, 사는 것의 재미가 줄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국제적인 기업이 될 수록 주된 동기는 지방 사람의 삶의 필요보다도 이윤이 목적이 되지요. 달리 말하면, 삶이 이윤으로 추상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세계화는 보편적인 이성 운동의 불가피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편성은 추상화에 일치합니다. 세계화의 근본적인 문제 중에는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의 생태학적인 삶의 조건을 무시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즉 사람이 일정한 고장에 뿌리박고 사는 존재라는 가장 중요한 실존적 사실이 무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보편적인 것 같으면서 보편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태적 조건이 무시된 보편성은 공허한 보편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태학적인 사고라는 것은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이전에 사람은 구체적인 자연 관형과 공동체에 얽혀서 사는 제한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고 입니다. 중국에 있어서 세계화 속의 경제 성장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유럽이나 미국에 대등한 관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이 다시 중국인 전체의 생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등 문제를 단순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세계화가 가져오는 추상화된 보편성, 이것이 삶의 진정한 뿌리가 파괴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이것은 다분히 세계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역적인 문제입니다. 세계화가 추세이고 이점도 있다면 그것을 자기방어적으로 받아들여야지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뿌리들을 파 없애는 것은 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 =선생님께서 세계화의 복합적 측면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느낌으로 그 동안 선생님께서 구체적 사회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오신 것에 비춰보면 세계화 문제를 비판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이런 쪽에 강조가 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편으로 세계화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평등이 강화되고 이것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일상적 삶의 원리를 파괴시키고 변화시키는 측면도 많지 않습니까? ▲ 김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마인츠가 있습니다. 마인츠의 시 중심의 광장은 새로 진 아파트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고 100년이 넘은 성당이 있고 옛 건물들이 그대로 있는 독일 소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 기자가 나에게 뮌헨에서는 뮌헨성당보다 높은 건물을 못 짓는데 이것이 옳은 일이냐 물은 일이 있습니다. 적어도 삶의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토대는 세계화와 관계없이 옛날의 도시와 촌락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모든 것을 획일적인 추상적 도시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유지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 여 =세계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단위국가, 지역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계화가 더 특별히 파괴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세계화를 주도한 지역이 아니고 세계화에 주변적인 지역들이 오히려 더 세계화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 김 =근대화를 빨리 좆아가야 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삶의 터전을 추상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금전화한 것은 이해할 수는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정신을 차리고 방어적으로 대처해 나가면 많은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방어적인 것은 민족주의로 대처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추상화된 하나의 힘을 또 다른 추상화된 힘으로 대처한다는 말이 됩니다. 삶의 구체적인 현실, 지역에 뿌리를 가진 삶으로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여 =세계화는 피하기 어려운 새로운 삶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우리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하나의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목격되는 경험과 고통, 새로운 압력과 영향 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어떠한 변화가 오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김 =그것은 문화적인 결정입니다. 뮌헨성당을 지켜야 하겠다는 것은 문화적인 결정이지요. 뮌헨성당보다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뮌헨성당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뮌헨성당이 뮌헨이라는 전체의 도시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생태학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의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의식적은 아니더라도 인식하는 것입니다. 문화가 그 통일된 창조의 핵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전체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지요. 조화된 삶이 아니라 명품만 모아 놓으면 좋은 삶이 된다는 것이 그러한 생각입니다. 이것은 그림이나 도시나 제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에 문제가 있지만, 하나에 모든 것을 밀어붙이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사고입니다. 그것은 수사적 비유로의 체계로서 사실의 작은 차이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사실 속에 있습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에서 ‘폭력적인 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적 폭력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바로 비유와 사실을 혼동하는 예입니다. ‘제도의 폭력’이라는 것은 비유이고 혁명적 폭력은 사실입니다. ▲ 여 =비유적이지만 실제 폭력이 행사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비유’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실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죽을 수도 있게 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여 =보통 우리가 제도를 폭력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어떤 폭력의 일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폭력이 있게끔 하는 근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인데요, ▲ 김 =그렇게 보면 폭력이 아닌 것이 없지요.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은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는 여유가 많은 사형수이지요. 시로서는 괜찮지만 ‘이왕에 사형수인데 언제 죽으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세계화라는 것도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지만, 그것을 막아낼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화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자연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작용할 때, 그것은 지구를 통틀어 막아낼 도리가 없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 여 =기술에서 나온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기술 바깥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인데요. ▲ 김 =그것도 미리 판단해버릴 것은 아닙니다. ▲ 여 =근본적으로는 기술의 문제는 어떻게 사는 게 더 나은 삶인가 하는 큰 틀 속에서 기술이 통제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도 기술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다든지, 기술의 문제가 자본이라든가 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다든지 이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통제력이 점점 상실해간다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 =기술의 개량이 자동차를 그 재료나 디자인을 개량함으로써 얼마나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매우 구체적으로 논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산소를 원료로 한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지금까지는 자원 소비에 관한 것은 제품이나 세금에 포함을 안 시켰는데 앞으로는 이것을 계산해 넣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소비자의 부담은 산업체제의 소유권 분산에 의해 어느 정도 경감될 수 있다고 합니다. ▲ 여 =소유권 분산 자체가 어려운 문제이고,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일 텐데요. ▲ 김 =물론 어려운 문제는 어느 쪽에도 있지요. 세계화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람 하나하나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이 행복한 삶이냐,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입견 없이 이야기해서 나는 소비주의가 권력 투쟁에 의미 있는 삶이 있다는 답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어진 생태학적 환경 속에서의 작은 삶, 거기에 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답은, 농담조로 ‘즐거운 금욕주의’에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 여 =즐거운 금욕주의라는 지혜에 가 닿으려면 과거의 지적 전통만을 재구성하는 것으로는 힘들 것 같고, 제 생각으로는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 문제에 대한 좀 더 구체적 성찰 뒤에 얻어지는 금욕주의가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 김 =얼마 전 신문 보도에, 무슨 질문들을 물었던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가치관에서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물질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이 큰 힘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은 무시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먹고 사는 일이 세계 자본주의에 매여 있다는 것인데, 그 먹고 사는 것을 지나치게 호화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이 예속 상태를 강화하는 조건이 됩니다.다시 방어적으로 생각하여야지요. ▲ 여 =방어적이라면 그 체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떻게…. ▲ 김 =그것은 지금은 국가단위로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국가 정책으로 하는 것도 결국은 개인적인 것과 관계되는 것이고. 궁극적 결정을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금욕주의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제도적인 것이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소시지나 햄을 살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전통 음식을 좋아하는 까닭에 소시지가 절로 침투하지 못하는 것일 것입니다. ▲ 여 =개인적 결정이나 선택 자체가 꼭 제도라고 할 수 없지만 좀 더 큰 삶의 조건을 만드는 힘에 의해서 영향 받는데 그런 큰 힘을 저는 세계화라고 보는데, 그 큰 힘에 개인이 어떻게 맞설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합니다. ▲ 김 =그것은 이제 사람을 제도라는 구조 속의 종속 변수로만 보기 때문이죠. ▲ 여 =변수면서 반응할 수 있는 주체이죠. ▲ 김 =한국에서 세계화라든지 소비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사회구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것을 사실화하는 집단주의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자기 독자적인 판단이 없기 때문에. 허황한 소비주의가 번창하는 면이 있습니다. ▲ 여 =보다 최근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것으로는 강정구 교수의 한국전에 대한 발언과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생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강교수의 발언에 대해서 진보 진영 쪽에서도 동의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사법제도가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장의 내용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싶은 사람도, 이것을 우선 사법적으로 처리하려는 상황에서는 비판을 하기 힘듭니다. 비판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이지요. ▲ 김 =그것도 전략적 사고입니다. 메를로 퐁티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횡포가 심한 판국에 소련만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였지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자의 한 사람이 메를로 퐁티이지만, 이것은 오만한 태도입니다. 마치 자기가 역사의 큰 흐름과 은밀한 내통을 하고 있어서 그 은밀한 지시에 따라서 사실을 밝히고 감추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 여 =저는 오히려 강 교수의 이야기를 공론에 붙인다면, 충분히 우리가 그러한 주장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성숙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성숙을 이룰 때까지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것을 고무찬양죄로 다루는 것은 이러한 이념적 성숙을 다시 뒤로 돌리는 것이 아닐까요? 고무찬양죄라는 것이 누구를 좋게 말했다는 것만으로 처벌하는 것인데,우리 사회가 누가 누구를 좋게 말했다고, 체제가 위협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 김 =그것은 너무 근본적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지금은 우리의 법체계 안에서 이야기해야죠. 법이 틀렸으니까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한이 없이 혁명적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이제 법을 법으로 알면서 문제를 풀어 나갈만한 단계가 되었지 않을까요? 천정배 법무장관이 불구속 조치를 취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국가보안법에 관계 없이 피의자의 구속을 삼가는 것은 법치 국가의 기본입니다. 그렇다고 천 장관이 강 교수의 말을 옹호한 것도 아니고 반박한 것도 아닙니다. 국회에서도 천 장관은 그의 의견에 대한 논평을 요구 받고 계류중인 사건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는 것은 법무장관으로 옳은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법치주의의 옹호를 위한 좋은 발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나저라나 문제는 강교수의 의견이 옳으나 옳지 않으냐가 아니지요. 결과는 재판에서 판단해야 되겠지요. 결국은헌법 정신에 비추어서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찬양 고무만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이상하지만, 거기에도 해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구체적으로 국가 전복 행위나 살인이나 재산 파괴를 하는 일을 찬양 고무한 것만에 한정하여 해석하는 수도 있지 않습니까.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아랍권에서 전시한 책에 반(反)유대적 내용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독일에서 반유대주의는 불법이라고 합니다. 법률가에게 구체적으로 물어 본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반유대주의가 불법이냐 물었더니 실질적인 행동에 연결되는 반유대주의가 불법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 여 =시대의 변화의 관점에서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국가체제의 위협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넓은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서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번 사건이 국가보안법의 특히 고무찬양죄 같은 조항이 있어야 되느냐 이런 논의를 가져올 수 있지 않나 하는데요. ▲ 김 =넓은 공론의 장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관심 있는 논객이나 학자들의 문제이고 국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법은 그것이 실질적인 행동과 관련해서 국가전복이나 폭력행위를 사주하는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여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보호해주고 옹호해주는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 김 =국가보안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싸잡아서 보는 것은 엄정한 사고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나 내용에 대하여 말하면, 강 교수의 말의 핵심이미군이 안 왔으면 통일되었다는 말이라고 하면, 그 말은 틀리지 않는 말이지요. 같은 논리로서 중공군이 안 왔으면 통일되었겠고. 또 소련이 아시아에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종전이 되었다면 분단이 안 되었을 것이고. 일본 천황이 그 전에 항복을 했더라면, 분단이 안 되었을 것이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별 쓸모는 없지만, 공상의 날개는 한이 없는 것이니까. 내용에 관계없이 공상의 자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파괴와 폭력에 관계되지 않는 한 보호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법치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의 발전입니다. 이것은 좌파를 위해서나 우파를 위해서나 필요한 일입니다. 정권 수립의 수단으로, 군부 쿠데타를 찬양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민주주의보다 왕권 정치를 찬양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들도, 잘못된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연결되지 않는 한 처벌될 수는 없지요. 물론 행동과의 관련은 간단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정황적인 관련이 많이 작용하니까요. 그것을 법률적 최선을 다 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관 아닙니까. 이제 패거리에 따라서 시비를 가리는 일을 그만두고 사실 자체를 법에 따라서 가려내는 일이 우리의 전통으로 확립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 여 =바쁘신 중에도 대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11/200511020409.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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