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7 (13:23) from 1.225.61.15' of 1.225.61.15' Article Number :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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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 ‘그날’ 이후 5년 5개월만에 입 열다 2



중년부인 “전신화상 남편에 희망을” 연구소 정문에 5억수표 봉투


24일 실험견의 난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막 마치고 나온 황우석 박사가 얼마 전 자신이 복제한 애완견(몰티즈)을 안고 섰다. 2008년 황 박사 연구팀은 애완견 복제를 단 한 번 시도해 성공했다. 용인=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사진 더 보려면 Click! 미스들은 몰라~ 미시클럽~ 이혼녀가 말하는 남편들의 거짓말수암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들은 20, 30대가 대부분이다. 일요일만 교대로 쉰다. 휴가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썼다. 경기과학고,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듀크대 석사를 받은 황인성 연구원(26·유전자형질전환 담당)은 고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황우석 박사의 강연을 듣고 줄기세포 연구로 전공을 정한 ‘황우석 키드’다. 황 박사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63일간 검찰수사를 받은 뒤 두문불출할 때 서울대연구소에서 동고동락했던 연구원들이 매일 찾아와 용기를 줬다. 생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나를 지탱해준 건 제자들이었다”고 했다.

얼마 후 제자들은 “우리가 서울대를 포기하겠다. 따로 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총 33명 중 외국 유학생을 포함해 13명을 제외한 20명(전임연구원+석박사 과정)이 사기꾼으로 전락해 검찰에 기소당한 스승을 따라 나섰다. 안정된 연구기반을 버리고 스스로 바닥 생활을 택한 것이다.

“‘황우석이가 연구실로 쓴다더라’는 게 알려져 세 번이나 사무실 계약이 취소됐습니다. 고향 선배가 빌딩 사무실을 싼 월세에 빌려줘 구로동 70평 사무실에 둥지를 틀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운영비였다. 황 박사는 서울대를 나오면서 강연료, 인세, 외부 격려금이 있던 연구실 운영 통장까지 다 주고 나왔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동티모르 지원사업으로 황 박사와 인연을 맺었던 박병수 수암장학재단 이사장이 사재 수십억 원을 내놓은 것이다. 황 박사는 2006년 6월 박 이사장의 호 ‘수암’을 딴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열고 연구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동물복제실험은 경기 용인시 근처 농기구 창고를 빌려 한쪽을 베니어합판으로 막고 했다. 얼마 후 인척이 땅과 건물을 제공해줘 지금 위치로 옮기게 된다. 현재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는 서울대 때보다 많은 4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용인에 터를 잡은 직후인 2007년 3월 어느 날 아침, 연구소로 한 중년 부인이 전화를 했어요. 정문 현관 앞에 흰 봉투가 있을 것이니 연구 활동에 보태라는 거였죠. 놀라서 달려가 보니 5억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수표 추적을 해서 소재를 찾았는데 청주에서 건설업을 하는 부부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일하다 전신화상을 입었다. 병마가 주는 고통이 너무도 커서 절망하던 차에 ‘황우석 줄기세포’에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일(황우석 사태)이 터졌다. 부디 요긴한 데 써 달라’며 거액을 내놓은 거였습니다.”

불안으로 가득했던 초창기 시절 부인의 기부는 연구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싹을 심어주는 불씨가 됐다. 황 박사는 그 돈으로 당시 제일 필요했던 초정밀카메라(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찍는 카메라)를 샀다고 한다. 15억 원짜리였지만 일본 니콘 본사에 편지를 썼더니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해 주었다. 짧은 김밥 점심이 끝나고 인터뷰가 이어졌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전경.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제공
―돈 되는 사업을 할 생각은 안 했나요.

“연구소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옥석을 구분할 수 없는 제안들이 들어와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빌려주면 거액을 후원하겠다’ ‘쓰러져가는 코스닥 기업을 싸게 사서 황우석 이름만 얹으면 ‘떼부자’가 된다’고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황우석 관련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다 거짓입니다.”

―2008년 설립한 ‘에이치바이온’이라는 회사는 뭔가요.

“후원금을 공식적으로 지원받고 후원자들에게 연구 성과를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연구원들과 후원자들이 주주로 참여한 비상장 회사입니다. 이 회사를 바탕으로 안정적 수익모델을 만들어 연구원을 이끌어 가는 게 당면한 가장 큰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다시 줄기세포 연구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어떻게 동물복제 능력을 향상시키고 복제부터 배양까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나요.

“동물 체세포복제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면서 기술이 쌓였습니다. 해외에서 제한적이나마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버려지는 난자 수를 줄여 복제배아 생산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복제배아를 줄기세포로 만드는 영양세포, 온도, 배양액 등 배양기술 노하우도 축적했습니다. 국내에서 연구 승인만 떨어지면 바로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줄기세포 연구 움직임은 어떤가요.

“선진 각국에 제자, 친구들이 포진해 있어 최근 소식을 빨리 전해 듣고 있어요. 한마디로 ‘전력질주’입니다. 매년 우리 연구원에 와서 강의도 하고 격려도 해주는 유승식 교수에 따르면 ‘내가 있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들은 한국에서 황우석이라는 모닥불이 꺼져 가고 있다며 (즐겁다는) 표정 관리하기 바쁘다’고 전해주더군요. 2006년만 해도 한국이 유일했던 복제배아는 현재 최소 5개국에서 나왔습니다. 다행히 줄기세포주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

―제일 무서운 나라는….

“미국과 중국입니다. 특히 중국은 최고위층의 주도로 올해부터 8년 이내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 3가지 신성장동력 사업 중 하나로 줄기세포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복제배아를 성공시킨 기술력도 확보했고요. 지금 세계는 줄기세포 연구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누가 죽고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치열한 국가 전쟁터.”

―줄기세포 기술이 질병치료에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 와 있나요.

“머지않은 미래에 구체적인 성과들이 나오리라 예상됩니다. 줄기세포 실용화가 도래하면 그 파급 효과는 정보기술(IT) 혁명을 넘어설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연구 승인이 안 날 경우 굳이 국내만 고집할 필요가 있나요.

“국익을 다른 나라에 넘길 순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이 글로벌이지 자기 나라에 뿌리를 두지 않는 글로벌은 머슴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해외 연구를 몇 차례 진행하며 조국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정부라는 공식적인 상의 대상이 없어져 버린 상태를 겪어 보니 부모 없는 고아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과학자를 다른 나라가 모셔간다고 해도(?) 결국 ‘이용’이나 ‘활용’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들(외국)은 겉으론 온갖 찬사를 늘어놓지만 결국은 싸구려 새경(품삯)을 주며 머슴으로 쓰고 싶어 할 뿐입니다.”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된 말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 다시 뭇매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후배 과학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마지막 말입니다.”

―왜죠.

그가 오히려 되물었다.

“지금 내가 하는 연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누구를 위한 기여입니까, 기여가 없는 과학이 있을 수 있나요.”

목소리와 눈에 결기가 스쳤다.

분위기도 누그러뜨릴 겸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영생(永生)의 시대가 오고 있나요.

“영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육체적 수명은 길어야 12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의 목적은 영생이 아니라 건강수명 연장입니다.”

―돈이 없으면 건강도 짐인데….

“이원적 해결책이 있다고 봅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지불하고 거기서 남은 수익금을 그늘진 곳에 사회보험적 차원에서 의료혜택을 주는 겁니다.”

―신(神)을 믿나요.

“그동안 종교계로부터 과분할 정도로 큰 힘을 받았습니다. 불교계뿐 아니라 1400여 개신교 목사님들도 저를 위해 탄원했고 격려금도 모아 주셨습니다. 저는 중2 때 영세를 받았는데 복제 연구를 하면서 신의 존재를 더 믿게 되었습니다. 신이 없다면 누가 제게 이 기술을 주었겠습니까, 분명히 뜻이 있는 겁니다.”

―그게 뭘까요.

“우리 인간들에게 ‘줄기세포를 통해 너희 병을 스스로 치료하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제) 기술을 비윤리적으로 써선 안 되는 거지요.”

―복제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 아닌가요.

“소, 개, 돼지를 많이 복제해 봤지만 선천적 유전형질은 거의 같습니다. 후천적 특성은 환경에 영향을 받고요. 신기하게도 같은 복제동물이라도 눈빛이 다릅니다. 저는 그걸 영혼의 존재라고 믿습니다.”

―지금 기술 수준으로 인간복제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되어선 안 됩니다.”

벌써 창밖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기자는 그가 지난 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질문을 좀 길게 던졌다.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줄기세포들을 박사가 조작하지 않았고 조작된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드러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몰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지요. 노벨상이 그렇게 타고 싶었나요.

순간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복제)와 미즈메디병원(배양과 검증) 간 절대 신뢰와 존경이 깔린 협업이었다 해도 관리책임자였던 제가 철두철미하게 크로스체크를 해야 했습니다. 논문 제출을 재촉한 제럴드 섀튼 교수(피츠버그대·황 교수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으며 2005년 논문 작업을 주도했다)를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세계를 놀라게 할 연구 결과를 내긴 했어도 제 안에는 오랜 변방의식,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습니다. 한국 토종 박사에 영어도 미숙하고…. 지금에야 하는 이야기지만 국제학회와 저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섀튼 교수의 슈퍼파워에 주눅 들 때도 많았습니다.…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변명일 뿐입니다.”

황 박사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억울함, 원망, 분노 같은 감정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고 진정 깊은 참회를 했음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서는 두려움은 떨치지 못한 것 같았다. 빛이 아닌 어둠의 세계에서, 할 수만 있다면 세상과 문을 닫고 살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때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황우석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말까지 있었다. 지금 그에겐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혹여 우리는 그를 실체보다 더 띄우고 실체보다 더 깎아내리진 않았던가. 누구에게나 잘못은 있는 법, 대한민국은 그동안 ‘황우석의 잘못’을 단죄하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그날’ 이후 6년이 흘렀다. 환상과 폄하와 트라우마(정신적 내상)까지 걷어내고 냉정하게 ‘사실’과 마주할 때가 됐다고 본다. 황 박사가 국제낭인으로 떠돌며 그토록 절감했다는 ‘조국에 대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용인=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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