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3:17)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10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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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943 , Lines : 51 |
| 1세기 팔레스틴 역사기행 1 - 세포리스와 나자렛(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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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리스와 나자렛(1) 잿더미 속에서 소생한 희망, 메시아 탄생 * 다음에 전개될 글들은 <사람사는 땅: 1세기 팔레스틴 역사기행>이라는 주제 아래 {살림}지에 1992년 1~12월까지 9회 연재되었던 것이다. 1 한 분의 이름으로만 우리에게 기억되어 있는 호칭 '메시아'(=그리스도).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친숙한 이의 이름이다. 일요일마다 예배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름이고, 날마다의 식사 때조차 우리의 중얼거림에서 줄곧 떠나가지 않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이름,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름, 누구도 근처조차 접근할 수 없는 이름이다. 깊이와 넓이와 충만을 고루 갗춘 완전함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언제나 우리로부터 지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언제나 '나/우리'와는 별개인 존재, 즉 '타자'(他者)의 이름이다. '너무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면서도 언제나 우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 담겨 있는 메시아의 이미지다. 이렇게 '가깝고도 먼 존재', 이렇게 아리송한 이미지의 존재, 그러므로 우리가 이 분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위해선 이 분에 관한 해석이 필요하다. 성서는 이 분을 해석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다. 그것은 성서가 그 자체로 요술을 부려서 그 의미를 해석해 주는 책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분에 관한 선배 신앙인들의 해석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첫 메시아주의자들은 그 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고백했을까? 이 분에 관한 성서 고백의 핵심에는 '인간이 된 신'의 이미지가 있다. 이것은 신의 '자기 비움'을 뜻한다. 즉 저 먼 곳,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미지의 어느 곳에서 고상함과 거룩함으로만 추악한 타락의 존재인 우리를 대면하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사는 땅'의 일반적 경험세계의 법칙 안으로 오신 분이 우리가 고백하는 메시아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첫 메시아주의자들 가운데 특히 그분을 보고 느끼고 관계를 맺었던 이들의 메시아 고백의 세계 속을 향해 여행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메시아의 의미를 찾기 위한 우리의 첫번째 시간여행은, 1세기 팔레스틴이라는 '사람 사는 땅'에 등장했던 메시아의 탄생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려 가는 것이다. 2 엘리후는 '눈물언덕'으로 올라갔다. 한 다리는 전쟁 때 잘려나갔고, 다른 쪽 다리도 거의 힘을 못쓰게 됐지만, 이젠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웬만한 거리는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탓인가, 오늘 따라 걷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 하지만 그는 손자를 데리고 언제나처럼 마을에서 제일 높은 이 언덕을 향했다. 여기서는 저 멀리 세포리스가 보이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그곳에서 두 형님이 로마 군대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곳에 불길이 높이 치솟던 날, 그러니까 서른 몇 해전 오늘, 두 형님은 유다 님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 엘리후는 몇 해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이 날만 되면 나자렛의 이 언덕에서 무심코 세포리스를 응시하곤 했다.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이곳을 '눈물언덕'이라 불렀다. 엘리후는 북부갈릴래아의 하솔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국경 근방인 이곳에서 동굴 사이를 오가며 민중군을 지휘했다던 히즈키야 님의 전설을 들으며 자랐다. "나도 자라면 그이와 같은 분을 위해 살테야" 라며, 형님들과 나무칼로 전쟁 놀이를 하곤 했다. 엘리후는 특히 달리기를 잘했고, 언젠가는 하느님이 자신의 빠른 발을 로마군의 콧대를 꺽는 일에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물 다섯 살 되던 해, 헤로데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모두들 왠지 희망에 부풀었다.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각처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얼마 후엔 의용군이 속속 세포리스로 집결한다는 소문이다. 이미 봉기대에 참여했던 큰 형을 따라 작은 형과 엘리후도 세포리스로 향했다. 그곳에는 유다 님이 계신다고 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히즈키야 님의 아들이란다. 또 다른 얘기로는 그분은 메시아라고도 했다. '그러면 그렇지'. 히즈키야 님의 아들 혈통에서 메시아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엘리후는 이번에야 말로 하느님이 해방을 가져다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헤로데의 요새였던 세포리스에는 수많은 민중군이 모여 있었다. 수백의 깃발이 휫날렸고, 나팔소리, 북소리, 그리고 민중군의 함성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엘리후 일행이 도착한 뒤에도 모여드는 민중군의 행렬은 끊일 줄 몰랐다. 아낙네들이 구어오는 빵은 전에 먹어본 적이 없을 만치 졸깃졸깃하고 기름져 보였다. 더 소원이 없을 만치 배불리 먹고나니, 이젠 누구라도 무찌를 수 있을 것같다. 더구나 이곳에는 헤로데가 백성에게 갈취해 간 곡식이 가득했고, 철제 무기도 산더미 같았다. 말과 낙타, 그리고 전차도 있었다. 유다 님 휘하의 민중군은 용맹무쌍했다. 마치 유다 지파의 보잘것 없는 가문인 이새 집안의 막내동이 다윗이 불레셋의 맹장 골리앗을 무찌르듯이 그들은 로마와 헤로데와 지주들의 '골리앗'들을 연파했다. 갈릴래아에 주둔한 헤로데나 로마 군대는 혼비맥산 흩어져버렸고, 곳곳의 요새는 민중군이 무혈입성하는 무대가 되었다. 달리기를 잘했던 엘리후는 전령부대에 배치됐다. 형들처럼 원수놈들을 무찌르는 일에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마을을 돌며 승전보를 전하는 일도 퍽 맘에 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서 한 마디 말도 더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이윽고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나팔을 불며 소리쳤다. "이겼어요. 유다 님이 로마놈들을 무찔렀어요!" 금새 아이들이 뛰어나와 함께 달렸고, 사람들은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피곤함은 씻은듯 사라지고 힘이 솟구친다. '정말 메시아는 도래한 것이야!' 새삼스레 믿음이 붇돋아진다. 물 한 모금 얻어마시곤 그는 다시 이웃마을로 달렸다.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 뜨겁다. 절름거리며 언덕을 오르던 늙은 엘리후는 오똑 튀어나온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자신의 손을 부축이며 함께 가던 손자 녀석도 같이 나뒹그러졌다. 너무나 아팠는지 엉덩이를 움켜쥐며 울어댄다. 엘리후는 손자를 끌어안는다. 그날, 세포리스 성이 불타오르던 날, 로마놈들의 군대는 성 안팎에서 닥치는대로 사람을 도살했다. 싸우다 도망치다 하면서 보이는 대로 여자와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하려 애썼다. 겁에 질려 그만 주저앉아버린 한 아이를 끌어안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돌뿌리에 걸려 몸이 공중으로 날며 꼬꾸라졌다. 아이는 2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내팽개쳐졌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을 질질 끌며 그 아이에게로 갔다. 녀석의 몸을 안고서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전쟁이 끝나가나,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작아진다. 엘리후는 품에 안겨서 엉엉 울어대는 손자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울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살아 있는 게다. 그날, 죽은듯이 엎어졌다 깼을 때, 자신에게 안겨 있던 아이는 울지도 못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눈도 감지 못한 채 . '제 어미를 기다리며 얼마나 신음하고 있었을까?' 이 아이에게서 엘리후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니 로마놈들에게 처절하게 난도질당한 동족의 얼굴을 본다. '어머니처럼 우리를 품어줄 그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 늑대에게 이리저리 뜯기다, 급기야는 눈도 못감고 죽은 귀신 꼴이 되고 말았군.' 갑자기 다리쪽이 끊어지는 듯이 아팠다. 도끼같은 쇠덩어리에 맞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자신의 몸 위로 넘어져 죽은 다른 이의 시신탓에 지혈이 됐고, 덕택에 그는 다리는 잃었지만, 구사일생 살아남았다. 손자의 얼굴에서 눈물을 닥아주며 엘리후는 기쁨에 젖는다. '살아 있다.' 나도 살았고, 손자도 살았다. 우리의 희망도 살았다. 3 예수님은 1세기가 시작되는 시기 전후에 팔레스틴에서 탄생했다. 마태오와 루가복음서가 공히 그분의 탄생지를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마태 2,1; 루가 2,4), 동시에 네 복음서는 모두 그분이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사람'이라고 말한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다(삼상 16장). 이스라엘의 민간전승에 따르면 메시아는 다윗의 후예 가운데서 등장할 것이며 따라서 그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미가 5,1-2; 요한 7,42). 그래서 대다수 학자들은 '베들레헴 탄생설'의 역사성을 의심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다는 믿음은 그토록 기다려오던 다윗의 후예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동시대인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으리라. 반면 그분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 어디에도 나자렛이 메시아의 탄생지로 언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님의 탄생시기에 관해 마태오와 루가복음서는 서로 다르게 묘사한다. 마태오복음서는 주전 4년 헤로데 대왕의 죽음 직전(마태 2,1 19)으로 보는 반면, 루가는 탄생시기를 로마의 시리아 총독 퀴리오가 호적 동록을 시행하는 당시로 보고 있는데(루가 2,1), 퀴리오의 재직 시기가 주후 6-7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수님의 탄생시기는 그 기간 중이어야 한다. 1장 5절에서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잉태하였다던(루가 1,26) 세례자 요한이 '유다왕 헤로데' 때 잉태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 '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이며 유다, 이두매, 사마리아 지방의 통치자가 되었던 아르켈라오(주전 4년∼주후 6년)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루가는 헤로대 대왕의 아들들을 그냥 헤로데라 부르기도 했다(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의 통치자인 안티파스를 헤로데라 부른다. 3,1 참조). 결론적으로 루가는 예수님의 탄생시기를 주후 6년 혹은 그 직후로 본다. 그래서 마태오와 루가복음서 사이에는 예수님의 탄생시기에 관해 10년 이상의 오차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역사적인지, 혹은 둘 다 정확한 것이 못되는지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다. 다만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이 그 어간의 시기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전 4년, 헤로데가 죽었다. 그와 더불어 30여년의 그의 철권통치도 끝났다. 일시에 변화에 대한 기대가 온 팔레스틴을 뒤덮었다. 오랜 겨울 끝에 봄이 온 것이다. 바야흐로 해방이 이 시대를 읽는 문법이었다. 그런데 헤로데 시절 백성 등쳐먹기로 둘째라면 서러워할 구세력이 여전히 잔존했고,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처신은 예전과 전혀 다름없었다. 팔레스틴 곳곳에서 소요가 일었다. 적어도 대중의 눈으로 볼 땐, 시대착오적임이 분명한 구세력의 구태의연한 폭력적인 대응은 곧 소요를 걷잡을 수없이 확산시켰고 또한 소요 세력의 대대적인 결집을 야기했다. 헤로데 시절에는 민중의 저항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그가 즉위하던 시기인 주전 37년 직전, 그는 수많은 민중의 저항세력을 싹쓸이해버렸고 제위 기간 중에는 전국 각처에 요새를 건설하여 저항을 원천봉쇄했었다. 헤로데의 끝없는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안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인권유린과 거대한 군사력의 유지비 등을 위해 기층대중의 허리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 있었다. 더구나 그가 추구한 도시의 헬레니즘화 정책은 대도시를 중심한 향락문화가 급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큰 도시들에는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나 볼 수 있는 경기장이 제법 큰 규모로 세워졌고, 각종 기념관, 기념탑 등이 요소요소에 서게 되었다. 전국에는 전에 없이 조밀하게 도로망이 형성되어 중앙 중심의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바탕이 구축되었다. 또한 로마의 봉신국 지도자 헤로데는 늘 그 지위가 불안정했다. 로마제국의 정세에 민감하지 않고는 자신의 권력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종주국 로마의 황제에게 바치는 정기적 공납 외에 제국 내의 영향력 있는 여러 인사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 했다. 그래야만 로마제국의 권력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은 개미처럼 일했으나 노동의 댓가는 궁핍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뭄과 메뚜기떼 등의 병충해, 그리고 전염병 등은 대중의 생활고를 더욱 가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부과된 인두세, 토지세 등을 대기 위해서는 휴경지 없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됐고 이는 토질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만년 흉작이 구조화됐던 것이다. 수많은 농민이 토지를 이탈하여 일부는 도시로, 일부는 생면부지의 땅인 주변국 농촌으로 이주해야 했고, 그리고 또 일부는 도적떼가 되었다. 대중의 불만은 폭발할 지경이었으나 헤로데의 막강한 치안능력은 모든 저항을 분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이 숨막히던 시대의 장본인 헤로데가 죽었다는 소문은 대중에게는 그 자체로 희망의 서곡이었으며, 이는 곧바로 메시아 도래의 희망과 연결되었다. 더구나 왕의 죽음에 접한 왕실은 그 후계권을 장악하기 위한 분쟁에 여념이 없었고 여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들이 가세하여 정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기어이 분쟁조정을 로마 황제에게 의뢰하기 위해 각 분파의 대표자들이 로마시로 향했다. 팔레스틴은 권력에 공백이 생겼고, 막강한 군대의 지휘권에 혼란이 일었다. 이제 정부의 치안유지 능력은 땅에 떨어졌다. 비록 광범위하게 조직된 것은 아니더라도 전국 각처에서 소요가 분출했다. 이러한 상황을 위기로 의식한 이는 당시 시리아 총독이던 바루스(Varus)였다. 그는 팔레스틴에 진군하여 아직 분산적으로 일어나던 소규모 저항을 분쇄하고 1개 군단(군단은 약 6천 명 정도의 부대단위)을 예루살렘에 주둔시킨다. 그러나 민중의 메시아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이 정도로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이제 보다 조직된 민중의 저항이 일어났다. 여러 '영웅'들이 나타났고, 좀 더 지나자 조연급 영웅들이 주연급 영웅들의 휘하로 들어가 민중 세력은 거대해졌다. 당시 주연급 영웅들로는 유다 지방의 아트롱게우스, 베리아 지방의 시몬, 그리고 갈릴래아 지방의 유다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각기 민중의 염원에 따라 로마와 헤로데 정부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하느님의 뜻을 위해 이 땅에 파견된 메시아로서 행동했다. 그들은 각 지역에서 헤로데의 요새를 기습 점령하여 무장한 후 민중을 억압하던 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였고 민중이 완전히 해방되는 그날을 향해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이들은 민중의 메시아로서의 자질이 충분하였다. 한결같이 그들은 기층대중 출신의 지도자였다. 아트롱개우스는 일개 목동 출신이었고, 시몬은 왕실 노예였다. 유다는 헤로데에게 죽임당한 전설적인 의적 두목 히즈키야의 아들이었다. 유다의 경우, 그의 아버지의 출신배경이 무엇이든 실패한 봉기 지도자의 아들의 생존여건이 기층대중의 생활보다 나았을 리 없으리라. 또한 이들은 용맹무쌍했다. 그들은 곳곳에서 로마의 주둔군과 귀족들의 사병, 왕실 소속의 병사들을 연파했다. 그래서 헤로데가 죽은 주전 4년은 '혁명의 시대'였다. 그러나 또한 이 해는 '절망의 시대'이기도 했다. 시리아 총독 바루스가 3개 군단병력과 네 개의 기병 연대 및 인근 속주와 우방국의 통치자들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자원받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팔레스틴을 향해 진군했던 것이다. 훈련받은 이 대부대는 가는 곳마다 자신들에 의해 학살당한 대중의 시체로 산을 쌓았고 그 피로 내를 만들었다. 모든 소요는 진압됐다. 봉기가 완전히 진압된 이후에도 그들은 체포된 이들 중 이천 명을 예루살렘 주변도로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했다. 압도적인 로마군대의 창끝에 메시아라 믿었던 모든 영웅들과 그들에 대한 대중의 희망이 난도질당한 채 피투성이로 걸려 있었다. 갈릴래아 지방의 민중봉기 지도자 유다는 헤로데의 요새였던 세포리스를 점령했다. 그는 기층대중 수탈의 본거지였던 이곳을 인수하여 민중해방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갈릴래아 민중의 대다수는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 또 많은 민중이 집과 가족과 땅을 버리고 일어나 그를 좇아 봉기군에 가담했다. 나자렛은 세포리스에서 6㎞ 떨어진 인근 촌락이었다. 그토록 가혹하게 횡포를 부리던 헤로데의 도당들이 유다가 지휘하는 민중군에 의해 처벌당하는 모습이란 통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용기 있어 일찌감치 그를 따라나선 나자렛의 건장한 청년들은 유다와 함께 주민들에게 영웅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욱 많은 민중이 세포리스의 유다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요란스럽게 들려오는 로마 기병의 말발굽 소리와 보병의 행진 소리는 불길한 소식을 전해주는 까마귀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였다. 선무공작도 없었고 적극적 저항자와 소극적 저항자를 가려보려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마치 피에 굶주린 사자처럼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살상을 했고, 기물을 파손하고 가옥을 불살랐다. 수많은 장정이 죽었고, 노인과 아녀자와 아이도 무수히 살해당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은 로마군의 전리품이 되어 목과 손발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노예로 끌려갔다. 살아남은 것을 백번 저주하고도 남을만치 치욕과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땅을 향해서. 다행히 몸을 숨겼다 돌아온 이들, 그러나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쑥대밭이 돼버린 땅, 불타버린 집과 시신 더미에서 피어오르는 검회색 연기, 어둠의 골짜기까지 짓발핀 희망, 아니 절망. 이토록 세계의 대제국 로마는 약소국의 해방 염원에 대해 잔인했다. 그들은 제국 영역에 속한 어느 민족의 저항에 대해서도 이렇게 대처했다. 찬란한 문명과 발전된 제도를 후세에게 전해준 저 위대한 제국의 '존엄함'은 그 시대의 역사, 가리워진 역사 속에서 이렇게 '검은 야수와 붉은 재앙'으로 표현됐다. 야담으로만, 떠도는 유언비어로만 증언되는 역사 속에 말이다. 위대한 첫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몇년 후 이렇게 만들어진 제국의 평화를 향해 선언했다.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라고! 세포리스 인근 마을 나자렛, 그 불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썩은 시체들을 자양분으로 하여 땅은 다시 원기를 회복했다. 과중한 착취에 질식해버린듯 황폐해져갔던 땅은 살아남은 자들의 재건을 향한 몸짓에 풍성하게 보답했다. 남편 잃은 여인 마리아의 굵은 손마디와 누더기같은 옷을 감싸주는 신의 은혜였다. 흙과 나무가죽을 끓여 먹으며 굶주린 뱃속을 채워야 했던 그녀의 아이들에게 가리워졌던 신의 자비의 빛줄기는 다시 비추기 시작했다. 나자렛 사람들에게 다시 찾아온 생기, 갈릴래아와 전 이스라엘에게 다시 비추인 재활에의 희망은, 바로 그 현장 한 가운데서, 파괴의 잿더미 속에서 재활하려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아이로 태어났고 자랐다. 지극한 절망 한 가운데서 희망을 찾는 이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듯 나타난 메시아, 그 분은 화려한 왕실에서가 아니라, 하인들의 부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랄 수 있는 귀족 집안에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위대한 라삐 집안에서가 아니라, 잿더미가 된 반란 진원지에 인접한 이름없는 시골에서 남편 잃은 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4 세포리스를 바라보는 엘리후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힌다. 손자의 손과 목발을 함께 쥔 중늙은이의 손목에 힘이 가해진다. 절단된 다리처럼, 그 자신의 자랑거리는 사라져버렸건만, 양 손에 의지하여 달리는 두 목발처럼 희망은 잘리워진 부위를 헤치고 나와 솟구친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다리의 통증에 얼마나 살아남은 것을 저주했던가. 그러나 그 와중에서 죽을 것같던 아들이 장성했고 또 그 아들이 태어나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목발과 함께. 남편이 행방불명된 채 홀로 자식을 키우며 고난과 싸웠던 이웃 여인 마리아, 그녀도 매일 죽음같은 삶을 연명하며 세월을 보냈건만, 어느새 곱게 머리가 쉰 노인네로 살아 있지 않은가? 그녀의 등에서 죽을것같이 울어대던 예수, 그 아이도 살아남았고 장성했다. 그의 아버지처럼 어느날 홀연 사라져버렸건만, 멀리서 들려오는 그의 소문을 들으며 엘리후는 살아남은 것에 감사했다. 약함 속에서 움트는 강함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사람 사는 땅'에서 일어나는 신의 역사(役事)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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