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Theology Article Archive

1999/06/25 (13:19)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Article Number : 12
김진호	Access : 2719 , Lines : 42

1세기 팔레스틴 역사기행 3 - 베드로 증후군

베드로 증후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

1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의 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복음서에서 종종 (단지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제자단 전체를 상징하곤 한다. 이것은 예수 이야기의 전달자들 사이에서 그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베드로에 관한 성서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예수님 제자단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 출신이다. 그러므로 그의 경험은 당시 팔레스틴의 어부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던 거시적인 삶의 영역과 무관하지는 않았으리라. 요컨대 베드로는 예수님의 한 탁월한 제자인 동시에 예수님 제자단의 전형성을 대표하고 있고, 또한 당시 팔레스틴 어부의 삶의 전형성을 대표한다. 우리의 세번째 시간여행은 베드로로 상징되는 에수운동의 이 특호된 집단의 삶 및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을 따르게 된 전형적인 경위를 밝혀보는 길이다.

2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마르1,16).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일하고 있있지만 그것은 단지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세례자 요한 생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었다. "그가 정말 엘리야였을까? 그렇다면 그는 왜 안티파스의 군대 앞에 무력하게 체포당하고 말았지? 엘리야는 신출귀몰했다지 않은가? 심지어는 아합이 보낸 군대들을 번번히 불을 내려보내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던데. 어쩌면 그는 일부러 체포된 것인지도 모르지. 그는 메시아가 곧 도래하리라고 말했다지 안아? 그렇다면 그가 체포당한 것은 이제 메시아가 바로 도래한다는 징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란 말인가? 벌써 시간은 꽤 지났는데 ."

요한이 연설하는 곳에는 팔레스틴 각처에서 수천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는 이들의 가슴을 온통 쪼그라들게도 했다가 부풀어 터지게도 했다. 그는 호령하듯 위정자들의 죄, 위정자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을 괴롭히는 군대들과 세관원들의 죄를 꾸짖었다(루가3,10-14). 그의 말은 정말 실랄했고 그만큼 통쾌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모든 사람들의 온갖 죄를 쪽집게로 잡아내듯 끄집어 내어 호통을 친다(루가3,7-9). 그가 자신들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면 청중은 온 몸을 움추린다. 그때 그는 사람들을 향해 호령하듯 외친다.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1). 그리고 나서 그는 회개와 죄사함의 징표로 세례를 베푼다(마르1,4). 세례만 받으면 메시아가 도래하여 이 세상을 심판할 때 그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어려서부터 동네 어른들로부터 숫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다. 마카베오, (헤로데 집권 초기의 영웅인) 히즈키야, (그의 아들이라던) 갈릴래아 사람 유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의 가슴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런 영웅이 되리라고.
그런데 어른들이 들려준 영웅담 속에는 그네들의 절박한 삶 속에서 부풀어 곧 터질듯한, 절규와도 같은 메시아 기대가 베어 있었다. 어려서는 그것을 잘 몰랐었다. 하지만 어느덧 굵은 팔둑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 된 베드로는 이 마음을 자신의 가슴 한 가운데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의 소식을 듣자 그의 가슴 속에 잠복해 있던 메시아 열망이라는 화로 속에는 벌겋게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그러나 어려서 결혼한 처가 딸려 있는 데다 그 자신 처가살이하는 형편이라(마르1,28-29), 세례자를 따르기 위해 베레아로 가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였고, 그 사이에 요한의 체포 소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실망과 혼돈을 가득 안은 채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한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곳 사람이 아닌 듯이 보였고, 필시 먼 곳에서 온 사람인 듯했다. 오랫동안 수염도 깍지 못했고 제대로 씻기조차 못한 채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일순간 베드로의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세례자 요한이 생각났던 것이다. "혹 저이는 요한과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닐까? 요한을 잡으러 온 군대의 칼날을 피해 이곳까지 온 사람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어촌 구석까지 올 저런 모습의 사람이 어딨겠어." 어느덧 그의 마음은 기도하고 있었다. "저이가 나를 부르게 하소서."

몹시 지친 예수는 가파르나움 시(市) 외곽의 어촌 지역으로 왔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지쳐서 도와줄 동지가 없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도와줄 이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몇 사람이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중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바로 이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는 그를 향해 나즈막히, 그러나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르1,17).
베드로는 번개를 맞은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무엇에 이끌리듯이 그의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여 그분을 따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마르1,20).

3
갈릴래아 호수는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의 통치자인 안티파스나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트랜스 요르단 북부 지역의 통치자인 필립에게는 부의 보고였다. 중개무역을 통한 상업도 꽤 괜찮은 장사꺼리였지만 그 외에 갈릴래아 호수가 담고 있는 풍부한 어획고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돈벌이의 소재였다. 그래서 고작 남북으로 20.8km, 동서로 12.8km 정도인 이 작은 호수에는 유명한 상업적 항구도시뿐 아니라 어업의 중심지인 중요한 도시들이 세워져 있었다. 안티파스의 영지에서 티베리아에 버금가는 도시인 가파르나움이나 필립의 수도인 율리아스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율리아스는 필립이 재건하여 개명한 도시인데, 그 이전에는 '고기잡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 베싸이다라 불리웠었다. 한편 타리카이아(=막달라) 같은 도시는 '소금 절임'이라는 그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선 가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다. 이곳에서 가공된 물고기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어업이 괜찮은 사업꺼리였기 때문에 안티파스는 이를 독점코자 했다. 물론 그가 독점하였다는 것은 고기잡이 전문종사자들의 인적 자원을 전적으로 관할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부들의 노동착취 및 과중한 조세는 농부들의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어부들은 생계를 위해 밤세워 힘겨운 노동을 해야 했다(루가5,5). 어민의 상당수가 생계고에 못이겨 고리대금을 사용했고, 더러는 빚에 쪼들리다 못해 가족과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 했고, 심지어는 촌락에서 도주하여 떠돌이가 되는 이도 있었다.
최소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은 자연히 어촌 대중으로 하여금 메시아에 대한 갈망을 품게 하였다. 훗날 유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주후 66년) 특히 티베리아와 타리카이아에서 '뱃사람들과 무산자들(=떠돌이들)'이 봉기를 일으키기도 하였다({유다전쟁사} 2,13,2; 3,10,1). 주전 4년 세포리스 주변의 농민들이 유다를 따라 봉기를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심한 노동착취와 조세에 시달리면서, 심지어는 완전히 몰락하여 떠돌이 무산자가 되기까지 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절망의 눞 속에서 건져줄 메시아를 열망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이러한 대망을 절실하게 가지고 있던 어민의 아들로서 자라났다.

4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닌다. 이미 여러 명의 '베드로들'이 생겼고, 이렇게 해서 예수일행이 형성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몇 명의 여자도 있었다(마르 15,41). 그들도 남성 제자들과 똑같은 고초를 감내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베드로처럼 메시아 도래를 유별라게 뜨거운 마음으로 열망하던 이들로, 예수님의 "따르라"는 한마디에 가족과 모든 생활기반을 버리고 따라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농민이었고 어부였으며, 농촌이나 어촌에서 모든 것을 잃고 도망쳐서 떠돌이가 된 '거덜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날그날의 굶주림에 시달리고 종교 엘리트들의 호통과 조소에 시달리고 조세나 지대 징수자와 병사들의 횡포에 시달리면서, "원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지지"를 수천 번 뇌까리며 살아가야 하는 기층대중의 일원이었다.
당시 대중사회에 있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위험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대중은 소유를 강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삶과 얼이 깃든 고향과 가족과 토지와 배를 버리려 하지는 않았다. 친족체계가 강고하게 확립되어 있던 사회에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절반은 죽음을 각오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아' 도래를 믿고 떠난다는 것은 필경 십자가에 매달릴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자의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히즈키야를 따라나섰던 사람들이나, 갈릴래아 사람 유다를 따라나섰던 사람들, 시몬이나 아트롱게우스를 따라나섰던 사람들의 운명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많은 대중들도 있었다.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 말이다. 광야로 나간 수도자들이 그러했다. 거의 2백년 가까이 되었다는 유서깊은 광야의 수도자 공동체가 사해 북서해안 황량한 지역인 쿰란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빛의 아들들'이라고 자임하면서 (필경 성전체제의 고위사제들을 가리키는) '어둠의 자녀들'이 다스리는 현실에서 '죄' 아래 살기보다는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에서 '의'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쿰란의 수도자들 외에도 광야의 여러 수도자 공동체는 바로 이렇게 '베드로들'이나 다른 대중들의 형제요 자매요 이웃이었으나, 메시아가 도래하는 그날가지 광야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떠난 이들이었다. 한편 갈릴래아 북부 산지 국경지역에는 전설적인 의적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베드로들'의 당대에는 거의 소문만 있을 뿐 아무도 그들을 경험하거나 보기조차 못했다. 또한 세레자 요한이 등장하여 자신이 메시아의 도래를 증거하러 온 엘리야라고 외치자 산으로도, 광야로도 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들 모두는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 도래를 기다리며 자신들을 준비했다.
'베드로들'은 '올' 메시아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온' 메시아를 따라나섰다. 이들이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나게 된 배경에는 이 세상을 변혁시키실 존재인 메시아로부터 자신이 그 일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동기가 있었다.

예수일행은 초기에는 갈릴래아의 회당을 중심으로, 후기에는 주로 갈릴래아 호숫가의 비도시 지역을 오가며 대중을 만난다. 그들은 대중을 향해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그 나라의 표징으로 기적행위를 펼친다. 특히 질병걸려 괴로워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의해 고침을 받는다. 그리고 그 나라를 이룰 메시아로 예수님이 선포된다.
그들은 그 시대의 기층대중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 위협에 늘 직면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포기함으로써 빼앗김에 대한 위협을 해소한다. 즉 그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방식은 소유의 자발적인 포기였다. 이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린 자로 예수님을 따른다. 이제 그들은 세례자 요한처럼 메시아의 선포자가 되었고, 그 사명을 위해 먹을 것이나 입을 것, 그리고 돈도 한푼 없이 예수님처럼 떠돌이 예언자의 삶을 실천한다(마르 6,8-9).
에수일행이 들어가는 촌락마다 사람들이 그들은 기꺼이 반겨 맞이하고 봉양한 것은 아니었다(마르 6,10-11).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리라는 믿음 만으로 자신의 일을 해야 했다(마태 6,25-32). 게다가 안티파스의 공권력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촌락의 지배질서의 수호자들인 바리사이의 횡포를 피해 끊임없는 방랑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마을밖 야산에서 숙박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서리내리는 겨울 산속에서의 잠자리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 나라 도래의 주체로서 메시아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들은 기꺼이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다.

필경 예수시대는 '베드로들'을 탄생시키기에 알맞은 배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많은 사름들이 생계수단과 가족과 친족과 이웃과 조상까지도 버려야 했다. 물론 아직 떠돌이가 되지 않은 더욱 많은 사람들도 늘상 이러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래서 그 많은 대중 가운데 '베드로들'만이 '자발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메시아)를 따랐습니다"(마르 10,28)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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