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Theology Article Archive

1999/06/25 (13:22)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Article Number : 15
김진호	Access : 2422 , Lines : 37

1세기 팔레스틴 역사기행 6 - 복되어라 빚으로 사는 사람들

복되어라 빚으로 사는 사람들,
잃었던 땅을 되찾으리라!

1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새로운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했듯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소서"(마태 6,12; 참조. 루가 11,4). 여기에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부채관계가 상정되고 있다. 전자는 사회적 관계이며, 후자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종말론적 관계이다. 또한 빚을 내어준 이와 빚진이가 용서하는 자와 받는 자로만 묘사된다. 빚을 지고 도망갔다든지 고의로 부채상환을 지연시킨다든지 하는 빚진자의 몰염치한 채무불이행과 같은 있을 법한 상황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오직 강자는 약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만 부채라는 사회적 현실이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복음서 여기저기에는 빚에 관한 수많은 구절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데 이 구절들 전부에서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만 부채의 사회적 현실이 묘사되고 있다. 요컨대 빚을 내어준 이와 빚진이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이며, 이 사회적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를 용서해 주는 것이 전제될 때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관계가 같은 방식(용서와 탕감)으로 이루어 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런 방식의 빚에 대한 이해가 이 문제에 대한 예수운동의 전형적인 태도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편협하고 단순한, 어떻게 보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적인 도덕가의 훈계처럼 들린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해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골방 안에서가 아니라) '사람 사는 땅'에서 펼쳐진 예수운동은 도대체 왜 이런 방식의 '부채문제'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을 찾아보기 위해 1세기 팔레스틴으로의, 식민지 종주국이 있고 식민지 예속국이 있으며, 통치자와 지주와 청지기와 농민이 있는 그 시대 그 상황에로 시간여행을 시작해 보자.

2
갈릴래아의 한 촌락이 보인다. 그리고 그 주위에 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농민들이 일을 하고 있다. 베냐민은 서쪽의 낮은 언덕 지역의 한 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노모와 아내, 그리고 14살먹은 아들과 그 손아래의 두 딸이 거들고 있다. 올해도 흉년이 들어버린다면 채 성년(12세)도 안된 나머지 두 딸마져 팔아보내야 할 지경이었다. 작년에는 한발이 심해서 위의 두 딸을 노예로 팔았던 것이다. 사실 6년 전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작은 땅덩이를 빚으로 팔아야 했고 자신은 소작하는 처지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안티파스의 대신인지 뭔지 하는 작자의 하인녀석이 황소와 철쟁기를 가져와서는 빌려준다고 했었다. 추수할 때 약간의 밀을 이자로 쳐 준다면 그냥 영구이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베냐민만이 아니라 동네의 여러 가구들이 그말을 받아들였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웃 마을에도 여러 농가들이 그랬다고 했다. "내가 눈이 멀었지. 하도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서, 황소와 철쟁기로 농사를 지으면 좀 더 나아질 줄 알았는데 ." 6년 전에, 그러니까 황소와 철쟁기로 농사를 시작한 지 4년만에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가더니 그해 가을엔 전염병까지 돌았다. 아버님과 한 살박이 자식이 죽어버렸다. 장례까지 치루고나니 황소와 철쟁기의 이자는 커녕 먹고사는 것도 막막해서 그놈의 하인녀석에게 사정해서 땅을 저당잡혔던 것이다. "악독한 놈! 그때부터 밭에서 난 밀의 삼분의 일을 그놈에게 바쳐야 했지 뭐야. 그나마 남은 건 인두세(예: 군역)니 토지세는 하는 것으로 빼앗기고 ." 한번은 소출을 받으러 나타난 그 하인놈을 동네 몇 사람이 패대기를 쳐서 내쫓아 버렸었다(마르 12,1-12 참조). 그랬더니 얼마안가서 그 대신이란 작자의 졸개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서 어찌나 두들겨 패대는지 , 벌써 두 가구는 살다살다 못해 다 버리고 산으로 야반도주했다.
베냐민은 몇년 전부터 농번기인 씨 뿌릴 때와 추수 때마다 가까운 지주들의 농장에서 날품일을 했다. 평소엔 지주의 종 몇이 밭을 돌보다(루가 17,7 참조) 농번기가 되면 날품꾼을 모아들여 밭일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마태 20,1-15 참조). 일거리를 찾아나선 사람들은 새벽부터 읍내 장터로 모여들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일거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몸집도 탄탄하고 지주의 청지기들에게 찍히지 않은 고분고분한 사람들만,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 품삯은 1 데나리온 정도. 건장한 청년의 하루 종일의 댓가로는 너무 헐값이었지만, 그게 어디야 하며 힘차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종일 굶은 채 장터에서 서성이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허다했다. 물론 집에 온다고 날짝 들어누어 쉴 처지는 아니다. 노모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하루 종일하고도 남은 일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농번기 때가 되면 내 밭일하랴 남 밭일 하랴, 그는 회당 예배에도 참석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바리사이들은 펄펄뛰며 야단을 쳤지만, 할 수 없는 일. 젠장, 하느님도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정말이지 자식이 팔려나가는 건 애비로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은 안식일날 밭일하다 빌린 황소가 언덕에서 미끄러져서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었다(마르 참조). 눈앞이 캄캄했다. 그놈의 청지지가 아는 날이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허둥대며 마을 사람들을 데려와 소를 구덩이에서 끌어내고 다친 곳을 치료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그 때문에 회당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몽둥이로 매 다섯 대를 맞아야 했다. 바리사이파 사람인 사제는 나름대로 사정을 봐 준다고 했지만 하느님께 죄지은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유월절이니 초막절이니 추수절이니 하는 명절이 돌아오면 바리사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난다고 호들갑이다. 며칠분 식량을 따로 마련했고 제물로 드릴 짐승과 곡식을 준비했다.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니 우리들더러도 가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죄를 용서받기 싫은 자가 어디있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게 우리 처지인걸." 베냐민은 길을 떠나는 사제 앞에, 자신의 하루끼니를 굶을 겸 밀 한움쿰을 건네주며 하소연 하듯 부탁했다. 제발 당신이 기도드리는 중에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도 한 마디만 말해 달라고.

3
로마는 팔레스틴에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정기적으로 공납을 부과했다. 유다와 사마리아와 이두매는 황제가 파견한 로마인 총독이 그 징수 책임을 맡고 있었고 지금은 빌라도(주후 26-36년)가 그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은 헤로데의 아들인 안티파스가 조세 책임자였다(주전 4년-주후 39년). 통행세나 상품세 같은 것들은 임대를 해 주는 청부인제도로 운용되었지만(이것은 전적으로 지역 통치자와 그들의 하수인인 조세청부인들의 수입이었다)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조세는 토지세나 인두세 형태로 농민을 포함한 팔레스틴의 전신민(全臣民)에게 부과되었다. 원칙적으로 도시든 농촌이든 주거가 분명한 자는 모두 이 세금 납부 의무를 져야 했다. 물론 종이나 날품팔이나 산적같은 사회의 공식 구성원에서 제외된 이들은 이 의무의 '공식적 면제자들'(?)이었다.
한편 안티파스 자신은 엄청난 사유지를 가진 대지주였다. 팔레스틴 각처에는 이런 대지주들이 크고 작은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 대지주들은 그들이 존족하고 있는 지역의 통지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오랜 식민지 기간을 거치는 동안 팔레스틴 대자산가들의 뼈 속 깊은 곳까지 각인된 식민지 근성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통치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급변하는 식민지 정세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부재지주인 그들의 소유 토지 대부분은 농민에게 소작지로 임대되었지만 어떤 땅은 그들의 직영 농장이었다.
소작지는 농민의 예속 정도에 따라 다양한 편차의 소작료가 부가되었다. 심한 곳은 소출의 반이 소작료인 경우도 있었다. 지주는 청지기를 통해 토지와 생산도구, 물 사용권 등을 임대해 줌으로써 더욱 높은 소작료를 받아내고자 했다. 직영농장의 경우는 현지 가내노예들('종들')이 관리하였는데, 농번기 때는 일용노동자를 고용하였다. 당시 노예들의 가격은 12 데나리온 정도로 헐값이었지만, 현지 여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율법에 어긋난다는 비난(레위 25,35-43) 때문에 노예노동력을 무한정 늘리는 일은 그리 득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침 궁핍에 못이겨 일용노동자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과잉이어서 매우 낮은 품삯으로도 그들을 고용할 수 있어, 지주로선 직영 농장 방식이 퍽 이윤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관리상의 어려움이 큰 데다 소작지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력이 떨어지고, 전통적으로 반항적인 팔레스틴 농민들의 반발 또한 거세어서 직영농장 체제는 한정된 정도로만 유지될 수 있었다.
한편 아직 소작농으로 전락하지 않은 토지 소유자들이 적지 않았고, 그중에는 먹고 사는 데는 거의 걱정 없는 중소자산가층도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계층 출신이 다수였다. 이들 중소자산가 농민들은 농촌지역의 유지들이었다. 도시에 몰려 있는 대자산가들이 식민지 근성에 사로잡혀 있는 기회주의적 집단이라면, 이들 중소자산가들은 보다 전통에 충실했고 외세에 대해서도 다분히 반항적이었다. 물론 이들도 식민지 상황이라는 민족적 제약을 탈피할 수는 없었기에 일정한 수준에서 지배층과 타협하고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여하튼 힘겨운 노동에서 부분적으로 해방된 존재들인 이들은 자신들 특유의 종교적 엄격성을 매일매일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농민 일반에게 부과하려 했기 때문에 농민을 괴롭히는 또 다른 주체였다.
이렇게 당시 팔레스틴의 농민은 몇 겹으로 부과된 착취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견디다 못해 모든 것은 잃어버린 이들은 노예가 되거나 목동, 세리, 지주의 사병 등 천직(賤職)에 종사하거나 거렁뱅이가 되거나 산적이 되어야 했다. 1세기 팔레스틴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마르코복음서는 이런 사람들을 '오클로스'라고 부른다)은 매우 많았고, 지속적으로 증가일로에 있었다. 모든 것이 막혀버린 농민과 그밖의 사회적 박탈자들은 죽음보다 못한 삶을 현실로서 경험해야 했고, 그렇기에 이 모든 굴레에서 단숨에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4
베냐민은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메시아가 곧 도래하리라고 선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갈릴래아 호수 근방에서 기적을 베풀며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선포한다는 예수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 아니 그는 메시아일 것이라고들 했다. 혈기가 끓는 몇몇 동네 청년들은 그분을 찾아나섰다. 혹 소식이라도 들을까 하여 남은 마을 사람들은 회당에 자주 모였다. 바리사이파 사제는 그분이 만일 메시아라면 세상의 심판이 곧 올지도 모르니 그날의 화를 피하려거든 안식일도 잘 지키고 매일 오후에 지붕에 올라가서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어느날 읍내에서 내려온 바리사이가 회당에서 설교를 했다. 그는 화를 내며 예수라는 자는 거짓 메시아라고 소리쳤다. 왠지 모르는 반항감이 베냐민의 가슴 속에 일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가 메시아였으면 하는 생각이 삭일 수 없이 샘솟았다.
어떤 떠돌이가 전해 준 말에 의하면 예수라는 분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라.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이 땅을 상속으로 받으리라(마태 5,35).

땅을 받게 되리라는 말에 베냐민은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빚으로 빼앗긴 조상의 땅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은 그에겐 생명을 되찾는 것을 의미했다. 바리사이들로부터는 들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복음(福音)의 말씀이었다(마르 1,27). 베냐민은 이 말씀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 '메시아'의 말이 사실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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