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4/21 (17:45) from 61.73.16.179' of 61.73.16.179' | Article Number : 154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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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751 , Lines : 24 |
|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위하여(<탈영자들의 기념비> 머리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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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비평>의 특별호인 <탈영자들의 기념비--한국사회의 성과 속. 주류라는 신화>가 출간됐습니다. 잡지가 어려운 중에 만든 책인데,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 책의 머리글로 쓴 글을 올립니다. -----------------------------------------------------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위하여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에서 인용한 한 반파시스트 파르티잔은 "'조국을 위해 죽은 자들에게 바친' 우스꽝스러운 기념비들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탈영자들의 기념비들'을 세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구절에 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새로운 책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하지만 꼭 있었으면 하는, 그래서 우리가 만들고 싶은 책이다. 《당대비평》 특별호의 기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영웅들의 승전비들을 경외심으로 바라보는 세계, 그러나 실은 응시의 대상은 영웅들이 아니라, 영웅을 바라보는 이 세계 속의 사람들이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오는 부빌의 미술관에 전시된 지엄한 초상화를 바라보는 사람 로캉탱처럼, 그 일백 오십 쌍의 눈앞에 주눅 들어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로 전이된 것처럼, 승전비의 영웅들을 응시하는 이는 실은 그들의 시선에 의해 응시된다. 그 영웅들은, 마치 신의 배역을 맡은 존재인 양, 이 세계의 규범적 시선을 대표한다. 이 시선에 의해 선과 악이 갈리며, 축복과 저주가 나뉘며,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양분된다. 그래서 르네 지라르가 말하고 있듯이, 카인의 후예들은 항상 경쟁의식의 강박증에 시달리며, 채워지지 않는 적개심으로 살며, 아벨의 후손들의 시신을 자양분 삼아 문명을 건설한다. 한데 역사의 주역이 된 승자는 자신도 또한 다른 이의 경쟁심과 적개심의 대상이 된다는 위기감으로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지 못한다. 이러한 강박증에 있는 한 그는 영원한 유랑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세계는 안식처 없는 떠돌이들의 '사막'일 뿐이다. 사막을 횡단하며 바다를 꿈꾸는 이는 승자가 되려는 욕망 속에 살지만, 그들이 발견한 장소는 끝없는 불모의 땅이다. 다시 지라르에 기대서 말한다면, 사막을 떠도는 이들의 존재론적 위기의식을 스스로에게 은폐하기 위한 장치가 '희생양'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주체의 권리가 유보된 존재'다. 일정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까지는 말이다. 바로 이 조건이란 승전비 영웅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문명의 질서, 그 질서의 규범들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법에 의하면 어떤 피부질환에 걸리면, 그는 다른 이와 맞부딪치기만 해도 사람을 부정타게 하기에 거주자들의 공간 밖에서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안고 살아야 하는 신체의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배제함으로써 하느님의 질서의 지엄함을 실행에 옮기는 자로서 제한적인 존재 의의를 갖는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오늘 이것은 하나의 은유로서 기억된다. 그래서 가령, 기독교인들의 경우 소위 '미성년'인 자는 해서는 안 되는 것, 그 나이주의 질서 속에 순응하는 것이 자신의 유보된 주체에 얽힌 의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안고 살게 된다. 그들은 '미성년'이라는 (정상 영역 밖의) 비정상의 영역 내부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국민'다운', 가족은 가족'다운', 그리고 성도는 성도'다운' 태도가, 각각의 범주에 따른 정상-비정상의 영역화에 걸맞는 태도가 신앙의 이름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다움'이라는 것은, 유대교의 선교 역사에서 등장한다. 즉 유대교로 개종한 이는 혈통이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이를 유대교 랍비들은 유대인'다움'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유대인다움'의 자격을 얻은 자는 유대 사회라는 영역의 가장자리로 편입될 자격을 얻는다. 이 개념은 유대 영역 밖의 사람들과 안의 사람들을 구별짓게 하며, 동시에 '유대인다움'보다 못한 내부 유대인을 외부적 존재로 처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배타적인 유대주의 이데올로기의 장치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배타적 영역화를 문제제기한 예수의 운동은,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예수 자신이 극복하고자 한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영역화의 패러다임은, 최근 탈구조주의 사상가들에게서 배운 지혜에 기대어 말한다면, 인류 문명사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는 지구라는 영역의 큰아버지가 되고 싶은 미국인의 가족주의적 멜로드라마에 대한 향수가 넘쳐흐른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그들의 이라크 침공의 배경은 그들의 상처받은 지구가족의 멜로드라마적 욕망이 퇴행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석유라는 이권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라면, 미국인은 스스로를 결코 정당화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배타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희생양을 향한 폭력은 가해자에게서 망각되거나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폭력의 배후에는 항상 숭고하게 치장된 가치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숭고하기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는 모두가 그것에 공감한다. 거룩함에 관한 신화다. 성스러운 것, 성스러운 주체, 그리고 상스러운 하위주체라는 신화다. 현실은 결코 안주할 수 없는 불모의 땅임에도 사진 속의 사막처럼 '매끄러운' 세계의 외연을 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 들어와 앉은 신화다. 각이 없이 부드러운 흐름으로 펼쳐진, 좌우 사방으로 탁 트인 공간이라는 영역의 신화다. 그것은 성능 좋은 환각제다. 이 환각제가 제공한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기억하며 또 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억은 특권화되고 성화된 세계와 탈특권화되고 퇴출된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 인과적이어서 매끄럽다. 그런데 그것은 복잡하게 주름진 삶의 결을 망각하게 하며, 특권화-탈특권화, 성화-속화의 메커니즘을 절대화한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는 이러한 신화의 세계에 대해 그 특유의 비아냥으로 야유한다.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민족이 독립하고 나라가 건국되는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저항 단체의 최고 지도자, 그는 식민 지배의 마지막 순간에 암살당함으로써 식민지 최후의 사람이자, 그의 순교로 인해 민족적인 저항이 조직되어 독립을 쟁취하여 자주적인 국가가 창립됨으로써 최초의 국민이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사건은 반식민지 저항 조직이 꾸며낸 일이었다. 익명의 암살자는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아니라 바로 이 조직의 요원이었다. 지도자가 식민지 당국과 내통한 배신자였다는 사실이 저항 조직에 발각되자, 조직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음모를 꾸몄고, 최고 지도자는 그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순교한 최고 지도자는 영웅이었지만, 실은 배신자였다. 영웅이 동시에 배신자일 수 있다는 역설, 이것이 국가 창립의 신화였다는 점을 저자는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줄거리에서 그 신화를 파헤치는 전기 작가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 그 불온한 사실을 다시 비밀의 장벽 속에 가둬버린다. 그리하여 국가 건국의 역설적 신화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정당화에는 잉여가 있다. 추한 것은 숨겨지고 아름다운 것은 넘쳐흐른다. 그리하여 정당화된 이는 존재하지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보르헤스 소설의 순교한 최고 지도자처럼, 영웅이지만 배신자다. 국민 또한 그렇다. 국민은 국가의 근본이지만, 동시에 권력 자원의 코디네이터 세력에게 제공할 자원을 가진 한에서만 그러하며, 자원 제공을 거부하는 순간 배신자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어머니는 가족주의의 숭고함을 가장 아름답게 간직한 존재지만, 동시에 모든 가족 구성원의 이기주의적 욕망에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한 가족주의의 배신자가 된다. 또 성도는 거룩한 교회의 몸 자체지만 동시에 종교 엘리트의 상징권력의 옹호자이기를 거부하는 순간 이단자, 즉 교회의 배신자가 된다. 민중은 체제 변화와 진보적 이상의 유일한 주체지만, 동시에 그들이 체제의 교활함에 희생자로 남아 있는 한에서만 진정한 민중일 수 있다. 이러한 집단적 오인의 메커니즘은 보통의 사람들, 그다지 특권적이지 못하면서도, 수없이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며 살아야 하면서도, 권위의 혜택보다는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면서도, 삶의 일상 속에 안주하며 나름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 속에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통합시키게 하는 동력이 된다. 왜냐면 그 오인의 메커니즘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비록 자신의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희생양' 이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인의 메커니즘은, 주변적이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포섭의 대상인 보통의 사람들에게 희생양의 가학성을 은폐시킴으로써만 비로소 작동될 수 있다고. 이는 반대로 희생양은 자신의 언어를 사회로부터 박탈당함으로써 그 사회의 통합에 기여한다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집단적 오인의 장치를 드러내고 그 매끄러움에 흠집내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희생양의 박탈당한 언어를 되찾기 위한 지식인의 대언(代言)의 시도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위대한 영웅들의 신화에 통합된 공동체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 결코 영웅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조건을 직시할 수 있는 사회고, 그것은 영웅들의 웅장하고 권위적인 기념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름 없이, 말도 없이 사라져간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쩌면 곧 새로운 구원론에 관한 책일 수 있다. 곧 망각된 탈영자들을 기억함으로써 비로소 얻게 되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이 책에 참여한 집필자들의 소중한 땀방울에 힘입어 비로소 한 권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불충분한 기획 탓에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어떤 필자들은 그러한 우리의 잘못 탓에 마지막 순간까지 피를 말리는 시간 싸움을 벌여야 했다. 또 어떤 이는 편찮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인 장애를 거슬러야 하는 정신력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의 출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거듭되는 출간 연기에도 불구하고 도서출판 '생각의 나무' 사람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책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당대비평》 편집 전담자인 김보경 씨의 손길은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 속에 스며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 책은 지난 2000년에 발간된 {우리 안의 파시즘}과, 지난해에 나온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며}의 정신을 잇고 있다. 그것은 한국 근대의 '성찰'에 관한 우리들의 제안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의 성찰을 향한 독자들과의 또 한번의 대화를 열었으면 좋겠다. 미국이 이라크 대중을 향해 연일 무자비한 폭탄세례를 퍼붓고 있는 잔인한 2003년 3월의 마지막을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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