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Theology Article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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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8 (04:40) from 210.219.97.42' of 210.219.97.42' Article Number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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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운동의 민중운동적 성찰성에 대하여--게라사의 광인(狂人)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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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운동의 민중운동적 성찰성에 대하여

-- 게라사의 광인(狂人)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명상


     






1

19세기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ein의 소설 {헥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최소한 세 종류의 편견이 문제게기되고 있다. 하나는 인디언에 대한 백인의 편견이고, 다른 하나는 흑인에 대한 편견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헥클베리와 그 아버지에 대한, 즉 사회적 일탈자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이 그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흑인이나 헉클베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비하의 정서로 나타나는 반면, 인디언에 대한 이미지는 공포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주술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그를 건드리는 자는 그 신비한 힘에 의해 응징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쉽게 대면할 수 없는 대상의 타자화는 종종 이런 양상, 즉 심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한편 그것은 동시에 강렬한 희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하느님의 타자화, 즉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신앙일수록 신의 이미지는 두려움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러한 신앙은 곧잘 강렬한 메시아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일제치하 조선에서 한 일본인이 '남조선의 소학교 6년생과 중학교 2년생'을 대상으로 '일본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을 말하라'는 설문을 무기명으로 했더니, 67%가 김일성을 써냈다고 한다.(주1) 백두산 자락을 흰 수염을 휘날리며 백마를 타고 달리는 장군, 그가 나타나면 일본군은 혼비백산 달아났다는 민담이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회자되었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화화는, 신문에서 짤막하게 언급되곤 하던 기사가 이런 식의 상상과 연관되는 사회심리적 현상의 결과일 것이다. 즉, 혹한기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추위와 굶주리에 시달리면서, 산 속으로 끝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백발노인이 저항군 지도자였다는 것, 더구나 바위를 이리저리 타고 다녀야 하는 이가 말을 타고 다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진실성이 거의 들어있지 않은 허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허구가 분명 사람들 사이에 유의미한 희망의 전조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즉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역사학은 어떤 것이 허구라는 걸 밝혀내기보다는 이러한 담론 현상을 추적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김일성 담론은, 대면할 수 없는 그에 대한 정보가 사람들의 반일본적 정서와 결합되면서, 창조적 상상력이 발동하여 만들어낸 희망의 네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공포감이나 희망은 그 대상이 타자적 존재일 때, 즉 그의 '부재'가 분명할 때 한층 증폭된다. 그러므로 부재는 역사에 개입하는 강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문제는 '부재의 에너지'가 무엇을 위해 소비되느냐에 있다. 어떤 경우는 두려움을 위해 소진되었고, 또 어떤 경우는 희망을 위해 소진되었다. 양자는 굉장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저기 호랑이 온다'고 하면 우는 아이가 움찔 멈추는 것처럼,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적 규율장치로서 소비되곤 한다. 반면, 타자에 대한 희망은 고통스런 현재를 감내하는 힘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현재를 넘어서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감내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염원을 실현해줄 누군가를 단지 바랄 뿐, 그것을 스스로는 여간해선 행위화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재를 감내하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요컨대 두 유형의 부재와의 만남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역사적 효과는 사람들을 현실의 일상 속에 그대로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제까지 익숙하게 품고 있던 사고를, 편견까지도, 그대로 계속 유지하는데 비일상이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재absence는 현재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동력으로 활용되고 만다. 이것이 현재를 극복하는 힘으로 발현하려면, 부재의 탈신화화, 즉 현전presence의 운동이 필요하다. 헉클베리 핀과 톰 소여가 인디언을 탈신화화하는 순간, 그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동시에 마크 트웨인의 독자가 품고 있던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무력화시키는 효력을 발생시킨다. 그리하여 주인공들과 독자는 자기 초월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일성을 백발성성한 노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 그에 대한 담론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해방 직후기의 북한체제 건설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 체제가 얼마나 의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중단하고 단지 역사적 사실만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면, 북조선 지역의 각 공산주의적 정파들은 하나의 상징을 중심으로 폭넓게 연대하여, 반대파를 앞도하는 체제 형성의 동력을 구성할 수 있었다.(주2) 이와 같이 부재는 현전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는 실제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전의 힘은 끝내 현재를 초월하지 못한다. 극복되어야 할 현존 재체의 장애물을 넘어서는 힘이 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자신의 정체성을 물신화하곤 한다. 정치적 파시즘은 이러한 물신화를 통해 탄생한다. 그리하여 현전은 또 다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곤 한다. 이때 부재는 물신화된 현전의 왜곡을 도전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나치즘의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발전한 신정통주의가 하느님의 절대초월성을 강조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과 연관된다.
현전과 부재의 상호성은 그러므로 현재를 초월하는 진정한 힘을 내포한다. 그런데 그것은 통시적으로, 즉 하나가 우세했다가 후에 다른 하나가 이전 것을 압도하는 방식의 상호성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은 동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공시적 상호관계로 역사 속에 발현할 때, 그것이 상호작용하면서 자기초월의 동력으로 활용될 때, 우리는 그것의 역사적 운동에 '성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운동은 과연 성찰적인가? 우리는 마르코복음서 5장 1~20절의 한 흥미로운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2

우선 이 텍스트가 위치한 마르코복음서의 구성을 살펴보자. 예수 일행은 촌락회당의 헤게모니 세력인 바리사이와 갈등을 일으킨 후 더 이상 회당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된다(마르3,6). 그리하여 그 대신 (마을 밖 외딴 공터인) 호숫가가 예수의 주된 대중활동의 공간으로 활용되게 된다.(주3) 이 일 직후 본문은 팔레스틴과 그 인근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집회에 모여들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3,8). 이것은 역사적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약 회당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리하여 이들이 촌락 외부로 밀려나 정착할 곳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사람들(주4)이라면, 그들은 대체로 먹을 것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 이리저리 부유하며 다녔을 것이고, 그런 이들의 동선을 따라 호숫가 어느 곳에서 예수일행이 집회를 열었다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제자단의 조직 정비에 관한 언급(3,13~19)(주5)과 일가친척과와의 갈등 사건(3,20~35)이 이어진다. 이 두 일화는 예수운동이 한결 위험해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에 이어서 회당 대신 새로운 공간인 호숫가에서 펼친 일련의 말씀들이 열거된다(4,1~33). 이 이야기들의 공통된 소재는 '씨'와 '그 열매'인데, 그것은 대중들과의 만남이 당장은 소규모이고 어려운 여건이지만, 언젠가는 커다란 결실을 맺으리라는 주장과 연결되어 있다.(주6) 역시 현재의 어려움이 시사되고 있다.
그리고는 예수일행은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 데카폴리스(주7) 지역으로 간다. 이것은 분위기 전환의 뉘앙스를 준다. 본문은 호수를 건너가는 장면에서 풍랑이 일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4,35~41). 그러나 다시 되돌아오는 길은 사뭇 다르다. 예수 주위에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고, 회당장 한 사람이 사람을 보내 예수를 집을 초대한다(5,21~43). 회당에서 축출된 이를 다시 회당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그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회당장이 그를 집으로 불러들였다는 대목에서 독자는 그의 축출이 부당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동시에 이것은 그의 추방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시아적 지위는 더욱 상승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 가운데 분위기가 극적으로 전환되는 계기에 게라사 사건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광인을 중심으로 해서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재현해보기로 하겠다.



우선 마르코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허구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수를 건너자마자 게라사 지역에 당도했다는 것은 사실적 개연성이 없다. 이 도시는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문은 도시 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도시 외곽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마태오는 게라사 대신 가다라라는, 호수가에 인접한 다른 데카폴리스를 거명한다.(주8) 그러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게라사냐 가다라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 주위'라는 게 중요하다. 더구나 이곳은 데카폴리스의 하나라는 점에서, 헬라적 색체가 뚜렷하며, 또한 정치적으로 로마와 깊이 유착된 지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설화자나 전승자는 이곳을 게라사로 이야기할 때, 그 지리적 위치를 공간 좌표의 위상학으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을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뉘앙스로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한 광인이 있었다. 그는 물론 도시나 마을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무덤지역에 기거한다. 크고 작은 자연동굴이 많고 외진 곳이라는 뜻이다. 시신을 그늘진 동굴 같은 데 그대로 안치했으므로, 그가 있는 곳에서는 썩어가는 시신이 즐비했고, 야생동물이나 새들이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어술렁거리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잤고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가 무덤가를 소리치며 뛰어다닌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또한 돌로 제 몸을 짓찧고 있다고 한다. 소름끼치는 장면이다. 어쩌면 시신을 안장하려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깨뜨린 자들을 향해 위협을 주고 있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도 놀랐고, 그 두려움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아니 굉장히 과장되어 전파되었으리라.
그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도 분명 아이였을 적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하나였을 것이다. 분명 그도 용맹한 장군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군대를 이끌고 가는 꿈을 꾸었을 것이고, 분명 그도 부자가 되어 하인을 거느리고 이리저리 향락을 즐기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분명 그도 아리따운 여인을 아내로 삼아 많은 자식들과 유복한 일생을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의 인생은 어긋나만 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쇠고랑을 채웠다. 그는 발버둥치며 반항했다. 손과 발이 까져 피가 흘렀고, 손의 관절을 탈골시켜 겨우 빠져나갔다. 얼마 후 도망친 그는 다시 붙잡혔고, 다시 쇠고랑이 채워졌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것을 풀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춘 뒤였다. 그때마다 번번이 사람들은 더 견고하게 그를 묶어놓았고, 도망할 수 없도록 죽기 전까지 두둘겨팼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그것을 풀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왜 그렇게 사람들에 의해 묶이고 두둘겨 맞았을까? 왜 사람들은 그를 경원시했을까?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첫 사건은 사소한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사건의 파장은 매우 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지목했고, 때로 그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로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평소에도 사람들은 그를 마주치는 걸 꺼려했고, 혹 그와 만나면 불길한 것을 본 것처럼 얽굴을 붉히거나 두려워하며 도망쳤다. 점점 그는 사람들로부터 먼 곳, 외진 곳으로 물러간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떼지어 몰려와 그를 잘도 찾아냈다. 사람들이 그를 경원하는 만큼 그도 사람들을 경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무덤가, 죽은 사람들만이 온다는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는 살았으나, 또한 그는 죽었다.
무덤은 그에겐 안식처였다. 무덤에 있는 무수한 시신들은 그의 친구였고,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과 더불어 그는 새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간혹 사람들이 시신을 안장하려 왔다. 그때는 그의 평온이 깨졌다. 사람들이 저렇게 올 때마다 그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뒤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본능적으로 그들을 향해 공포를 감춘 위협 행위를 해댔다. 무덤가를 사납게 뛰어다니며, 돌로 자기 몸을 자해했다.
피투성이가 된 몸둥아리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게다. 그러니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도망쳤고, 그의 소문은 두려움이 가득한 이야기로 재현되었다. 마치 흡혈귀에 물리는 사람이 흡혈귀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귀신의 능력이 그에게 붙어서 그를 만나는 사람은 그 자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느 날 평온한 무덤가로 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마을쪽에서 온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덤가의 사람에게 달리느껴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일인가? 얼마 후 그는 그 외지사람 앞에 무릎꿇고 있다. 어쩌면 위협으로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마치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다 끝내 눈싸움에서 패하면 꼬리를 접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항복을 표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본문에는 그와 예수 사이의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필시 그들 사이에는 많은 말이 오갔을 것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된 그의 입을 열려면 수년 혹은 십수년 이상 되었을 법한 기나긴 한이 풀어질 만한 새로운 관계의 과정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예수는 근자에 그에게 말을 건넨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를 '미친놈'이라고 경원하는 대신 이 비범한 사람은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이는 그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의 손을 잡고 그를 가슴에 안았다. 그이는 그를 피하기는커녕 그의 '아버지'/후견자가 되었다.(주9)

어느날 무덤가의 사람이 마을사람들이게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다. 그의 옷차림새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처음엔 돌을 던져 위협을 하기도 했고, 붙잡아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그가 제정신이 돌아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제서야 그의 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의 가족이나 친족들이 가장 먼저 그의 얘기에 귀기울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말을 듣자하니, 그를 고쳐준 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예수라는 이는 갈릴래아에서 기적을 베풀고 해방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얼마 전 베레아에서 있었던 세례자 요한을 떠올렸다. 또 누군가가 그 요한이 부활해서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면서 광인을 고쳐주었다는 예수 얘기가 만들어졌다.
필시 그 얘기의 줄거리는 그 광인이던 사람의 후속 활동과 연관되었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다녔고, 그 나라의 도래를 가져올 예수를 선포했다. 그이는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에게 구원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이는 부자를 야단치고, 사람들에게 횡포를 일삼는 관리들과 병사들에게 호령했다는 한다. 심지어 그이는 로마인들의 도시를 저주하며,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했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쉽사리 그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게라사 이야기에서 그의 이름은 익명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얽힌 일화는 사람들의 가슴을 크게 동요시켰고, 적지 않은 파란을 일으켰음에 분명하다. 그리하여 데카폴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 편의 일화가 만들어졌다.

그 광인의 몸 속에는 귀신들이 떼거지로 들어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은 자기들을 '레기온'(legion ; 군단)이라고 불렀다. 왜 하필 레기온일까? 흥미롭게도 그것은 로마의 군대 단위다. 한 레기온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약 6천 명쯤 되는 대부대다. 그렇다면 그 귀신들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덤가를 뛰어다니며 제 몸을 짓찧게 할만큼 고통스러움을 체현하게 하던 그 귀신들은 로마 군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일화의 전승자들은 여기서 로마로 인한 원혼을 연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귀신들이 그를 붙잡아 괴롭혔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그에게서 나와 돼지떼에게로 갔다. 돼지는 유다인에게는 전통적으로 터부시되는 짐승이다. 먹어서도 안 되고 키워서도 안 되는 그런 짐승인 것이다.(주10) 그런데 그것이 예수 당시에 비유다지역에서는 대대적으로 사육되고 있었다. 그것은 헬라적 도시의 소비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로버트 단턴Robert Danton의 책 {고양이 대학살}을 떠올리게 된다.(주11) 이것은 18세기 프랑스 인쇄공들 사이에서 유포된 민담이다. 그들은 주인에게 혹사당하고, 주인마님의 비인격적 모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주인마님은 고양이를 애지중지했고, 그래서 고양이는 큰 호강을 누렸다. 어느날 인쇄공 중의 몇이 꾀를 부려 주인 침실 근처에서 밤마다 고양이 울음을 흉내냈다. 여러날을 수면부족에 괴로워했던 주인마님은 인쇄공들에게 고양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인쇄공들은 신이 나서 주인마님 고양이를 포함해서 고양이란 고양이는 닥치는 대로 학살했던 것이다.
이후 이 사건을 기리는 축제가 생겼고, 민중은 이 축제를 통해서 자신들의 한을 풀었고, 해방을 향하 염원을 간직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 한 인쇄공이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 민중해방의 담화는 축제를 통해서 기억되었고, 전수되어 프랑스 혁명을 맞이하면서 민중의 해방운동으로 역사 속에 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양이 대학살'의 고양이처럼, 게라사 광인 이야기도 '돼지'를 학살하는 이야기가 여기에 결합되었다. 마르코는 2천 마리가 학살되었다. 물론 여기서 그것은 허구다. 그렇게 대대적인 학살을 했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로마군대에 의해 학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목동 가운데, 혹은 게라사 당국으로부터 착취당하고 문화적으로 모욕당하던 시골 사람들 가운데 몇이 돼지 몇 마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이 게라사 광인이 주동이 되어 돼지 몇 마리를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이야기가 2천 마리 돼지 학살 사건으로 허구화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군대와 헬라문화에 의해 대중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주눅들어있었는지를 시사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인종적, 문화적, 계급적인 착취관계가 게재되어 있다. 대중은 자신들이 타자화시킨 이 무덤가 광인에게 뭔지 모를 증오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광인의 일화로 인하여 그 증오는 로마와 (헬라)도시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반로마, 반도시에 대한 적개심은 훗날 봉기가 일어날 때, 그들을 향해 표출될 수 있었다. 즉 광인 이야기를 통해 대중은 자신들의 증오심이 발현되어야 할 대상을 바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3

게라사 무덤가의 이 광인은 예수를 따르겠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에게 '가라'(hupage)고 한다. 마르코복음서에서 에수가 말한 '가라'는 말은 단순히 가다는 말의 명령형이 아니다. 이 말은 '따르다'(akoulthein)라는 말과 대응하는 제자들의 다른 유형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즉 떠돌이 예언자가 아니라, '재지예언자' 혹은 재지협력자 정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 단어가 쓰인다.
그것은 이 사람이 예수를 선포하고 다녔다는 이야기에서 입증된다. 이 사람의 구체적 활동에 대해서 우리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서 부재한 존재였던 그가, 예수님의 '가라'는 명령과 더불어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 사건은 그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광인에 대한 사람의 증오가 로마와 도시에 대한 증오로 바뀌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쩌면, 단튼의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후 66년 대대적인 반로마 봉기의 국지적인 계기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는 그들로부터 떠났다. 즉 여전히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부재한 존재다. 만약 이 민담이 예수가 그들에게 직접 관계해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면, 그 민담의 증오의 발상법은 절대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선포된 것은 그것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광인의 말이며, 광인의 역할 혹은 이미지라는 프리즘을 거쳐 표출된 예수의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물신화될 수 없는 제한성을 가진다. 예수는 다른 데서 '적'은 단순히 타자화된 분노의 대상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수차례 이야기했다. 그것은 자기 내부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계급적대를 넘어서고, 민족적대를 넘어서며, 일체의 자기 중심주의를 넘어선다. 곧 예수의 부재는 성찰을 향한 도전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다.

[각주]
1) 이종석, [북한 지도집단과 항일무장 투쟁], {해방전후사의 인식 5} (한길사, 1989), 126. 또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에 쇼까이 세끼(송미령)에 관한 전설도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천리안을 가졌으며, 하늘을 날라다니며 일본군들을 골탕먹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젠가는 조선의 인민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희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송미령이 조선의 해방에 관심을 기울였을 리 없다. 요컨대 송미령 신화는 송미령 자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를 매개로 해서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희망의 소산인 것이다.
2) 물론 여기에는 소련군이라는 물리적 강제력이 뒤받침되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의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이나 중국공산당의 요직을 역임한 인물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사회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귀결에는 지도적 인물의 상징적 중심성 또한 중요 변수로서 관여되었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좋은 선택이든 아니든, 이러한 상징화된 부재한 존재의 현전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그들의 정치적 헤게모니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3) 이에 대하여는 나의 책 {예수로 예수 넘기}(다산, 2000), 제6장 참조.
4) 마르코복음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오클로스(ochlos)라고 지칭하고 있다.
5) 여기서 '열둘'을 세웠다는 표현은 주목할만하다. 예수운동에서 '열둘'은 숫자 개념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표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런 상징어로 종종 활용되었다. 그런데 훗날 이러한 상징어법을 잘 모르는 복음서 저자들은 이를 숫자로, 즉 제자의 수로 환원시켜 이해하였다. 이곳은 복음서 속에 역사적 서술의 혼돈을 초래했다. 즉 제자단의 숫자를 12명으로 고정화시켰으나, 제자 명단에서 열 둘은 결코 고정화되지 않았다. 또 열두 제자 명단에는 없는 다른 제자, 특히 여성 제자들의 존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예수운동에서 제자단의 역할이나 내적 비밀의 공지 정도는 결코 획일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복음서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서너 명의 제자(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가 있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은 제자단 내에서 예사스럽지 않다. 이것을 통해 보건대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잠정적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예수 제자단의 조직은 최소한 이분화되었다. 편이상 '제자 중의 제자'와 '그밖의 제자'라고 한다면, '열둘'은 전자를 지칭하는 용어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6) 김창락, {귀로 보는 비유의 세계} (한국신학연구소, 1997), 95~126·143~74 참조.
7) 데카폴리스란 10개의 헬라적 도시의 연합체를 말한다. 이 도시들은 다마스커스, 라파나, 히포스, 디온, 아빌라, 가다라, 스키토폴리스, 펠라, 게라사, 필라델피아 등이다.
8) 이 도시는 호수에서 동남방으로 무려 55km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반면 가다라는 호수에서 10km 정도 거리에 있었다.
9) 후견인 체제는 지중해지역 일반에서 나타나는 관습이다. 마치 영화 <대부>에서처럼, 무능력한 사람은 능력 있는 이에게 자신을 위탁함으로써 생존을 위한 기본적 조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 후원자란 곧 그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B.J. Malina, [후원], {성서언어의 사회적 의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참조.
10) 레위11,7; 신명14,8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금령이 나온다. 한편 후대의 미슈나에는 사육에 대한 금령도 나온다. 그것은 미슈나 시대에는 이스라엘 사이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일이 적지 아니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주후 66년 전쟁 이전인 예수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이에서 돼지 사육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당대에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금령으로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11) [노동자들은 폭동한다: 생-세브랭 가의 고양이 대학살], 조한욱 옮김, {고양이 대학살―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문학과지성사, 1997), 1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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