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Theology Article Archive

2000/07/16 (01:33) from 211.39.62.184' of 211.39.62.184'	Article Number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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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다섯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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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하나

예수 시대의 두 가지 권력 체제

세례자 요한은 외쳤다. "회개하라,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1). 그리고는 그에게로 온 이들에게 '죄사함의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마르1,4). '죄사함을 위해 성전에 제사 드리러 가라'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으러 자신에게로 오라 한다. 유다인의 신앙에 의하면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다. 이곳을 기초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그래서 왕들은 자신의 도읍에 성전을 짓는다. 이제 왕의 통치는 곧 신정통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왕의 나라는 곧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현존하는 '그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래를 부르고 있다. 현존하는 그 나라의 죄사함의 장치인 제사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불의한' 성전체제와 그 체제의 지배기구인 산헤드린, 그리고 그 배후의 로마 제국을 향한 정면도전이다.
성전체제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은 주전 8세기의 반체제 예언자 미가에게서도 나타난다(미가3,9이하). 또 우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도 마찬가지다(예레26,20이하; 26,1이하). 반성전주의적 선포는 오래 전부터 권력 비판 전통에 속하는 구호의 한 전형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 권력은 성전체제와 그 배후의 정치권력을 뜻한다.
그렇기에 갈릴래아와 베레아의 통치자 안티파스가 요한을 체포한 것(마르1,14)은 당연한 일이다.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작전을 폈고, 주모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고, 또 많은 이들이 흩어졌으리라. 훗날을 도모하며. 요한 운동의 일원인 예수,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때다. 집압군의 칼날과 몽둥이를 피해 갈릴래아로 되돌아 왔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다시 활동을 개시한다. 조심스럽게. 먼저 동조자를 규합한다. 그리고는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촌락에서 활동을 펴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대중에게 그는 점차 메시아적 존재로 인식된다.
안티파스 당국은 예수를 '요한과 연계된 자'로 파악하고 있다(마르6,16). 예수를 처형한 로마 식민지 당국이나 성전 체제도 그를 '왕 참칭자'로 이해하였다(마르15,2). 예수 자신도 세례자 요한과 동일한 선포를 한다. "회개하라.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1,15).
하지만 이러한 이해만으로 예수운동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예수의 하느님나라 선포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요한적 전통을 승계했다고 할 수 있지만, '권력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비판'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바로 이것을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예수는 요한이 활동했던 베레아 광야를 떠나 갈릴래아의 촌락을 두루 다니며 하느님나라 운동을 펼친다. 여기서 그는 권력의 또 다른 실체를 발견한다. 율법을 통한 '촌락회당'의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 시대 팔레스틴에서 율법은 그 사회의 규범 체계였다. 이미 지파동맹 시절(사사시대, 판관 시대)부터 공동체 규범인 토라(율법)가 존재했으나, 오랜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것은 민족적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었다. 그러나 민족 공동체 재건을 앙망하던 일단의 엘리트들에 의해 시작된 민족공동체 재건 운동에서 율법은 다시 규범적 가치로 자리를 되찾기 시작한다. 특히 바리사이 운동은, 우리가 아는 한, 율법의 생활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가장 두드러진 사회 규범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주로 촌락과 도시에서 소자산가로 등장한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된 운동으로, 이 계층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사회의 통합적/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경향을 가진 규범체계로 민족 공동체를 재구축하려 하였다.
그런데 어떤 가치가 규범직 가치로 자리잡는 데는 반드시 '제도적 장치'가 수반하기 마련이다. 제도적 장치란 그 규범적 가치에 의거해서 응징(벌)과 보상(축복)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사회적 기구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이 역할을 맡은 기구가 바로 '회당', 특히 촌락에 세워진 회당이었다(우리는 이를 '촌락회당'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제도적 장치는 두 가지 차원의 '담장'을 필요로 한다. 첫째로, 제도적 장치는 그것의 보상/응징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관념상의 담장'를 필요로 한다. 우선 여기서 '안'과 '밖'이 나뉜다. 실재의 삶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명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제도적 장치는 그 경계선을 나누는 관념체계를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어 놓는 것이다. 그 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 활개치기 때문이다. 누구나 조금은 선하고 또 조금은 악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경계선 저편으로 추방당한다. 가령 현대 한국의 반공주의가 만들어 놓은 신화적 경계처럼. 한편 이 제도적 장치의 경계짓기는 내부에 또 다시 담장을 만든다. 이때 이것은 안팎을 가르는 담장보다는 월장하기가 훨씬 용이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미치는 효과는 그리 과소평가할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경계 내부에 형성된 중심-주변의 구획짓기가 마치 피라미드 모양으로 형성되는데, 이것은 경계 내의 사회적 신분상의 위계와 상응한다.
둘째로, 제도적 장치는 그것의 보상/응징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물리적 담장'을 필요로 한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일상적 규범 단위는 촌락사회다. 마찬가지로 예수 시대 회당의 사회적 작동 무대 또한 주로 촌락이었다(물론 당시에 도시의 회당도 존재했으나, 그 의미는 위의 설명과는 다소 다르다). 즉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규범적 가치의 단위가 촌락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로 촌락 내부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회당'의 결합체는 예수 시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규범적 근거를 제공해 주는 준거이자, 이 근거에 의해 사람들의 존재 가치를 구별짓는 기준이기도 했다. 한편 회당의 중심에는 촌락사회의 담장 쌓기에 의해 주로 소자산가 층으로 이루어진 바리사이가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농민에서 상향분화한 소자산가층과 관련된다.
주전 4세기경 헬레니즘에 의해 통합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주로 도시들 사이를 연결하는 국제적 교역량이 급증하는 데, 이 와중에서 상인, 무역업자 등이 일정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며, 또한 농업생산자 가운데도 잉여자산 축적에 성공한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새로운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하여 한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진보적 운동의 핵을 이루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이념체계를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부의 축적으로 해서 노동의 고역에서 다소 벗어남으로 말미암은 여가를 지식 축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현대의 전자통신 매체 같은 사회적 소통망이 결여된 사회에서 그 과정이나 내용은 매우 다중적이었을 테지만, 커다란 흐름에서는 수렴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팔레스틴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아 볼 수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바리사이즘인 것이다.
요약하면 바리사이즘은 예수 시대 소자산가층의 세계관을 포괄적으로 대변하여 그 세계관에 따른 사회적 재구성을 추구했고, 이는 구체적으로 사회적 규범화 전략으로 실현된다. 촌락에서 이것은 회당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구현된다. 즉 율법이라는 일상의 규범적 체계와 회당이라는 일상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연결되면서 예수 시대 팔레스틴에는 촌락단위의 규범적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바리사이들의 규범화 운동은 구약의 율법을 생활화한 것인데, 이때 구약의 율법은 주로 사제들의 법이다. 구약성서의 율법 중 사제법은 구체적으로 내용이 적시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반법은 대체로 모호한 편이다. 그러니 율법의 생활화를 위한 규범이 주로 사제규율에 근거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으리라. 그 결과 사제적 규율에 기초한 바리사이적 규범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게 된다. 단 지역 생활이 주 무대인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전 중심성이란 현실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일. 따라서 성전은 바리사이즘에서 '상징적' 중심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촌락단위에서 실행되는 규범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다양한 바리사이적 규범화 운동간에는 연결망이 구축된다.
이상과 같이 '율법-회당-바리사이-성전'이 하나의 계열을 미루며 예수시대 팔레스틴 농민의 일상을 지배했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신부-줄리엣-잠자는 약'이 계열을 이루어 형성된 '행복한 사랑의 성취'를 지향하는 의미가, 이 계열에서 신부가 빠지고 로미오가 끼어들자 '잠자는 약'이 '독약'으로 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화로 귀결되듯이, '율법-성전' 계열에서, 주로 성전 귀족들로 이루어진 사두가이 파와 그들의 제도적 장치인 산헤드린 대신 '바리사이-회당'이 끼어듦으로써, '율법-회당-바리사이-성전' 계열화는 산헤드린 중심의 성전체제와 로마 식민지 당국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지배체제를 형성했던 것이다.
성전체제와 로마 식민지 당국이 팔레스틴 전역에 대한 지배체제를 구축했으나, 이 체제가 농민 삶의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규제하지는 못한, 체제의 '외면적' 구속을 이뤄냈다면, 촌락회당 체제는 촌락 단위의 농민의 삶의 일상을 규제하는 '내면적' 구속을 이루어냈다. 전자가 주로 강제라는 규제 수단을 통해 지배를 실현했다면, 후자는 '동화/내면화'라는 수단을 통해 지배를 실현했다. 전자가 주로 물리적 폭력을 기반으로 해서 지배체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반면, 후자는 주로 전통이라는 인격적 양식의 지배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양자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동질성이 있다. 그것은 양자가 모두 엘리트 중심적이며, 사회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을 긋고 여기서 배제된 '저주받은 사람들'을 그 밖으로 내몰았으며, 또 사회 내부에도 중심-주변으로 나누어 계층화된 불평등한 특권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하면 선과 악, 우리와 저들을 가르고 그것 각각에 축복과 저주를 부여하는 배제주의적 가치가 이들에 의해 대변되고, 또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권력사회'라고 한다.
반면 예수는 '율법-회당-성전'이든 '율법-산헤드린-성전'이든 간에 이 두 계열화 모두를 해체코자 했다. 이 점에서 후자의 권력 체제를 주로 표적삼았던 요한이나, 구약의 반체제적 전통을 넘어서는, 철저한 권력비판의 새로운 전통을 우리는 예수의 실천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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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둘

'율법-촌락회당'과 예수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의 입을 빌어 표현되고 있는 이 말씀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 자신의 것이 아니고, 그 후의 (아마도 팔레스틴에서 형성된) 예수 집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일찍부터 예수운동 계승자들 사이에 율법에 관한 결코 자명하지 않은 논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율법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은 바울 서신들을 비롯한 신약성서 거의 전체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은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훨씬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유다교 율법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율법을 준수하시는 예수의 모습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얼핏보면, 이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두 모습 중 적어도 하나는 예수 자신보다는 후대의 예수운동 계승자들에 의해 각색된 것이라고 풀이하곤 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런 갈등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만약 어떤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규범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그 규범 체계와 투쟁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그 규범 체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는 그 규범 체계 속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그래서 그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 규범은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밴 사고와 행동의 체계였다. 혹 이 사상가가 이 규범 세계의 외부인이었다면, 가령 그가 외국인이라면, 필시 그의 주장은 내부인들에게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의 율법에 대한 태도도 바로 이와 같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 …' 이로써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한 것임을 선언하셨다"(마르7,18~19). 이것은 레위기 11장에 묘사된 바, 정결하게 하는 음식과 부정하게 하는 음식을 가르는 토라의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음식 규범은 율법의 가장 핵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예수가 돼지나 뱀 등 금기음식을 먹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오히려 뱀이나 돼지 등을 혐오하는 동시대인들의 사고를 예수 또한 공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마태7,10; 마르5,13). 바로 이렇게 모순적인 듯이 보이는 부정과 긍정의 태도의 공존, 이것은 예수가 비판하고자 했던 율법이 예수를 포함한 동시대 유다인들의 규범적 뿌리였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설명 가능해 진다.
이제 우리는 율법이 예수를 포함한 동시대 유다인들의 삶의 규범적 뿌리였다는 전제 위에서, 예수가 율법을 비판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규범적 뿌리로서의 율법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보다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규범체계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한 반복을 통해 구조화된 '행동 원리'이자 '세계관'이며 사회의 '조직 원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것들 하나하나를 가리켜 주는 교사들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터득해 온 규범을 통해 판단 기준을 갖게 된다. 또 사람들은 천하 만물의 법칙, 즉 순리라는 것을 규범을 통해 터득한다. 나아가 사람들은 가족 친족 마을 부족 민족 등의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 마땅한 도리(역할기대)가 무엇인지를 바로 규범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범은 그 사회의 '지혜로움'의 체계다. 이러한 규범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유다교 사회에서는 '賢者' 또는 '라삐'(선생님)라고 부른다. 규범은 그 사회의 전통(과거성)의 근거이자 미래적 전망의 원리며, 바로 그런 전통과 전망에 근거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서의 지식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의의를 갖는 모든 지식체계가 곧 규범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규범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 내부'에서 삶을 규제하는, 마치 무의식과 같은 의미의 지식체계인 것이다. 이로써 그 규범체계 안에 포섭된 대중은 그 규범 가치의 공동체의 적극적인 수호자(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없이 무의식적으로)가 된다.
그런데, 앞장에서 보았듯이, 규범적 가치가 사회에 안착하는 데는 반드시 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는 '율법-회당-성전' 체제와 '율법-산헤드린-성전(-로마)' 체제라는 두 차원의 제도의 계열화가 예수 시대 팔레스틴 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 두 체제는 규범적 가치를 권력화한 제도적 실체다. 다시 말하면, 규범적 가치가 (회당 또는 산헤드린과 연계된 가치체계인) '율법'이 되는 것은 곧 지혜로움의 체계가 권력적 지식, 즉 권력을 위해 봉사하며 권력에 의해 그 품위가 한층 격상되는 지식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예수 시대 규범적 가치의 현존방식인 율법은 권력적 지식으로, 팔레스틴의 대중을 권력에 길들게 한다. 대중은 소수의 특권층에게 많은 것을 박탈당하면서도, 그들이 공유하는 규범체계로 말미암아 그 심각한 이질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특권층과의 동료의식에 사로잡힌다(피학성, masochism). 반면 대중의 억눌림은 이방인을 향해 투사된다(가학성, Sadism). 억눌림이 심할수록 그 투사의 정도는 점점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이방인'은 실제로 억눌림에서 비롯된 증오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너무 강하거나, 보복의 손길에서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방인과 동일시되는 또 다른 대상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만만한 대상으로 말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희생양'이라 한다. 예수 시대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희생양으로, 사마리아인 같은 종족이나, 세리 창녀 등과 같은 직업집단, 혹은 이단적 소종파(가령 유다교의 박해받던 초기의 예수 집단) 등으로 규정하고는,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부었다. 이리하여 권력적 지식(율법)이 된 규범체계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자들뿐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대중을 권력의 공법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의 희생양에 대한 가학적이고 배제주의적인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우리는 여기서 규범적 가치의 체계가 '정결-부정의 체계'를 이룬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추상적인 이분법적 가치를 현실 생활에 적용한 것이다. 이때 현실의 경험은 결코 궁극적인 선-악의 가치와 대응할 수 없다. 그래서 선-악 가치의 중간에 무수한 과도적 단계들이 설정되고, 이 단계들 하나 하나에 구체적인 경험 하나 하나가 일대일 대응을 하게 된다. 가령, 음식 가운데 매우 정결한 것, 약간 정결한 것, 아주 조금 정결한 것, 아주 조금 부정한 것, 약간 부정한 것, 매우 부정한 것 등이 구체적으로 정-부정의 형태로 규정된다든가, 혹은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건을 옮기는 것 하나 하나도 '손' 있는 날, '손' 없는 날, '길'한 날 등, 정결례적으로 규정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구체적인 실천이 추상적인 가치와 정교하게 조합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경험/실천의 선악 가치화는 사실 친족집단 혹은 동족집단의 생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팔레스틴처럼 무더운 초지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돼지 사육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며 유익하지도 않다는 환경적 요인은 돼지를 부정한 음식으로 보는 종교적 관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정의 체계가 권력담론이 되면서, 생태 환경에서 비롯된 가치의 우열적 차등화가 인간의 우열을 가늠하는 척도로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율법은 배제된/될 희생양에 대한 사회적 보복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율법은 복수의 대상인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되어버렸다.

예수는 유다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내면화하면서 자랐다. 그 역시도 한 사람의 유다인이었던 것이다. 30년 정도의 기간이 그 사회의 선악 가치를 무의식화시키기에 결코 부족한 햇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는 알게 모르게 그런 규범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성장하면서 그런 가치를 해체하는 열렬한 투사가 된다.
'안식일'이라는 인간의 정결성을 가늠하는 유다교적 규준은 예수에 의해 인간의 정결성을 회복시키는 규준으로 돌변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마르2,27).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며, 창녀와 거렁뱅이와 세리를 제자로 삼는다. 율법학자들이 희생양으로 배제한 자들을 예수는 이웃으로 동료로 회복시킨다. 또한 이웃 족속이자 동족이기도 한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다인의 율법적 적대감을 예수는 조롱한다. 진정한 이웃이기를 거절한 사제와 율법학자에 비해서, 이윤에만 몰두한다는 세상의 선입관을 한 몸에 짊어진 직업을 가진, 더구나 '더러운' 사마리아 출신인 장삿꾼이 도리어 강도당해 패대기쳐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루가10,25~37)면서.
우리는 예수가 율법과 투쟁을 벌이는 현장에서 언제나 배제된 희생양을 복권시키는 장면을 발견한다. 예수는 심판을 외친다. 약자들을 향한 사회의 빗나간 분노, 그것을 비난하면서 말이다. 바로 예수의 율법 해체는 막연한 규범의 해체가 아니라, 권력적 지식으로 화한 규범의 해체였다. 그것은 '율법-회당-성전'이라는 권력적 계열화를 향한 비판이었다. 반면 예수는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복권시킨다. 기적 이야기가 그 대표적 예에 속한다. 이와 같이,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의 복권, 그것은 하느님이 보낸 민중해방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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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요약 및 재정리]

앞의 두 장에서 우리는 예수를 포함한 모든 유다인들의 일상을 둘러싼 권력의 면모를 개략적으로 보았다.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아래 도표와 같은 두 부류의 계열화를 통해 범주화된다.

여기서 제2계열이 유다인을 유다교권 사회에 외적으로 포섭시키는 '체제적(정치적) 통합'의 메커니즘과 관련된다면, 제1계열은 유다인을 '유다인 다운(Jewishnesslike) 사람'이라는 내적이고 무의식적인 귀속을 야기시키는 '사회적(인격적) 통합'의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2계열에서 로마 제국은 담론상 은폐되어 있다. 즉 유다의 식민지 종주국인 로마 제국의 지배는 유다 사회의 담론적 포섭 메커니즘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은폐되어 있는 영역이다. 한편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두 권력의 계열화는 각각 율법과 성전에서 서로 연결지점을 갖는다. 첫 번째 연결지점인 '율법'은 사람들의 '일상적 실행(pratice)'에서 두 권력이 접합되는 지점이다. 가령 일상생활에서 어떤 삶이 적절한지에 관한 규범적 가치를 의미하는 율법이라는 담론적 실체는 '유다인 다움'의 근거이기도 하지만(제1계열), 동시에 유다 사회의 법적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예, 공식적 직위의 자격 등)을 보장받게 해 준다. 또 성전은 각 통합 메커니즘의 종교적 정당성을 보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권력의 접합 지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유형의 권력 작동의 제도적 메커니즘이 유다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정결-부정의 체계를 통해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정의 규범적 체계는 모든 사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규범적 장치라기보다는, 기성의 사회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역할과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았다. 요컨대 이러한 규범적 장치는 이미 포섭된 자는 계속 관용의 원칙이라는 우산 속에 모여들 수 있게 하는 반면, 이미 배제된 자에게는 이 우산이 얼마나 작은지를 체감케 한다. 또 우산 속에 모여든 사람 가운데서도, 전혀 저주의 빗줄기로부터 면제된 자에게는 더욱 안전하고, 경계선에 있는 자에겐 끊임없이 '밖의 가혹함'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예리한 분리의 논리'의 역할을 한다. 한편 배제된 자에게는 여간해서 우산 속으로 들어올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록 이상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지만 말이다. 예수의 권력 비판의 초점은 바로 이러한 권력의 배제주의적 속성 때문이었다. 지난 원고에서 우리는 예수가 '율법'을 비판한 것의 초점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수가 행한 '기적'은 이러한 관점과 연결될 수 있는가?
다음 장에서는 살펴볼 예수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함이다. 여기서는 성서를 통해 추정된 한 편의 가상의 상황을 통해 그 답변, 즉 예수의 기적과 당신의 권력 비판의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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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셋

기적 사건을 통해 본 예수의 실천

성서에 나오는 '나병'( )을 오늘날 문둥병이라고 부르는 질병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레위기는 이례적으로 이 질병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13~14장), 그것은 이 병이 이스라엘인에게 매우 위협적이었음을 시사한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고(레위13,45~46), 의복 등, 자신의 몸이 닿은 천은 불로 태워야 했으며(13,52), 공동체에서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13,38). 이는 이 질병이 전염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요컨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성서의 나병'을 가장 안전하게 규정한다면, 전염성이 있는 피부질환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리라.
'나병'은 이스라엘인의 신앙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최악'의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나병' 환자는 몸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존재였고, 하느님의 천벌을 받은 자로 간주되었다(민수12장 참조). 예수 시대에 이들은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인 회당 예배에 참여할 자격을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생존의 기본 조건인 공동체 내에서 생활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촌락 지역 밖의 토굴 같은 데서 기거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들이 생존하는 길이란 가족의 부양이나, (그나마도 기대할 수 없다면) 구걸하며 사는 일 뿐이었는데, 정상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결한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이 자주 다니는 상업로 근방에서 구걸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니 '나병' 환자는 정통적 유다 교리에서 더욱 적대적인 대상으로 여겨졌다.
요컨대 '나병' 환자는 1세기 팔레스틴 사회에서 종교 사회 경제적인 영역 모든에서 가장 비참한 '극한의' 주변적 존재들이다. 마르코복음서 1장 40~45절에는 바로 이런 '극한의' 대중의 한 사람이 메시아와 만난다. 그리고 이 만남에서 기적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사람 사는 땅'에서 기적을 매개로 하여 일어난 메시아와 대중간의 만남의 한 극단적(또는 전형적) 예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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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쫓겨난 뒤 그리움을 먹으며 세월을 보낸 지 어느덧 열두 해째.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와 실컫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 부모님은 여태 살아 계신지, 동생들은 굶고 있지나 않는지, 뚱뚱이 청지기 놈의 몸종으로 팔려간 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짝사랑했던 옆집 계집얘는 . 그러나 사람들은 시몬을 보자마자 얼른 피해 저만치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벌컥 화를 내며 저리 비키라고 호령한다. 그래서 아예 유다인 듯한 사람이 보이면 미리 피하는 게 상책. 더구나 사제나 레위인을 만나기란 아예 불가능했다. 그들 쯤은 돼야 자신을 이 저주받은 질병에서 해방시켜 줄지도 모르는데 . 불결함을 회복시켜 줄 회당이나 성전 예전에 참여하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이 세상의 질서는 어느 것도 그를 구출해 줄 수 없다. 아니, 구출하지 않으려 한다.
떠돌이 날품팔이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시몬은 얼른 달려가 이야기를 청하곤 한다. 때론 재수 없다고 박 터지도록 두들겨 맞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들은 우호적이다. 처지가 마찬가지니 그럴 법도 하다. 당시는 생할고에 못이겨 마을에서 도바리 친 사람들이 퍽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 대분분은 살아남기 위해 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무슨 일이든 마다않던 떠돌이 날품팔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 곳의 이야기를 다른 곳에 전달해 주는, 지역과 지역 간의 대중의 의사소통 중개자였다.
그들로부터 들은 소문에 의하면 예수라는 분이 갈릴래아 지방의 여러 촌락을 전전하면서 '병' 걸린 많은 사람들을 고쳐 준다고 한다. 시몬은 불연 듯 희망에 휩싸인다. "그래, 그 분을 만나자. 나도 고쳐달라고 하소연해 보는 거야. 어쩌면 고침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분명히 나을 거야. 그 분의 손이 닿으면 누구라도 백발백중 낫는다지 않아! 아, 그렇게 된다면, 그립던 가족도 볼 수 있고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 분을 만날 수 있을까?" 바리사이나 사제들처럼, 천한 사람들을 불결하게 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소리에,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그 소문에 시몬은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예수 일행은 갈릴래아 촌락들을 전전하면서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다녔다. 물론 가는 곳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무수히 고쳐 주었다. 나음받음 사람들과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을 엘리야, 예언자, (안티파스의 감옥에서 신출귀몰하게 살아나온) 세례자 요한, 심지어는 하느님의 아들 또는 메시아라고 고백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예수님과의 만남은 하느님 나라 도래의 확증을 의미했다.
길을 가고 있을 때다. 저 멀리서 먼지가 일어나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 달려오고 있다. 순간 그들은 긴장한다. 안티파스의 병사들이라면 큰 일이다. 이내 그 요란스런 먼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뿐이다. 안심이다. 더욱이 그 뒤뚱거리며 뛰는 꼴이란. 긴장했던 자신들의 모습에 실소가 터진다. 이윽고 그가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저런, 알고보니 '나병'환자가 아닌가?
그는 예수님을 보자 납작 엎드리며 간청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신에게 닥친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기에 너무나 간절하다. 만일 여기서 온전해지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은, 그 끝도 없는 저주의 삶이 또 다시, 아니 영원히 되풀이되겠지. 그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듯 그 분께 매달린다.
이 짜증스런 사람은 불결하게도 마구 몸을 비벼대며 애걸복걸한다. 화가 치민다. 하지만 한편에선 측은한 마음도 일었다.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며(마르 3,30; 5,27~31; 6,56; 8,22 등을 참조하라) 선언한다. "내가 원하니 깨끗해지라."
기적이 일어났다. '나병'의 흔적이 마치 얼룩이 지워지듯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박탈해 버린 그 악마적인 세력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해방사건이었다. 그 순간 메시아 왕국, 하느님 나라는 그의 가슴속에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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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 년 이상 지속돼 온 오랜 격변의 식민지 상황을 거치면서 팔레스틴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는 극도로 왜곡되어 갔다. 사회의 전반적인 왜곡은 구성원 전체에게 신경과민 증세를 유발한다. 특히 사회의 모순이 특정 계층에 과도하게 부과될 때, 그 계층 사이에는 집단적인 히스테리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억압된 정서가 폭발할 분출구를 찾아 몸 속과 마음 속 이곳 저곳을 활개치며 돌아다닌다. 그러나 여간해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종종 어떤 예언자가 나타나, 그들의 억눌림을 해방시킨다. 그래서 그를 신앙하는 신비적인 민중 종교운동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언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잔뜩 억눌린 정서가 개인적 차원에서 과잉 분출하거나 반대로 극도로 억제된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전자는 정신질환을 낳는 원인이 되며, 후자는 신체 질환을 유발한다. 요컨대 심하게 왜곡된 사회의 모순구조를 자기 몸에 새기며 살아야 하는 기층대중은 정신적 질환과 신체적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1세기 팔레스틴의 기층대중 사이에서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일탈적 요소가 산재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기층대중을 심리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억죄는 이러한 현상을 포용할 만한 기재가 사회의 공식적인 도덕적 신념체계에서는 도대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당시에 공식적 이데올로기는 크게 두 핵을 가지고 서로 얽혀 있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을 핵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로, 제사와 관련하여 형성되는 가치체계다. 왕조를 거치는 동안 제사 의식은 이미 국가적 의식으로 발전하였고, 대규모 행사를 통해 실행되었다. 이는 성전 관료기구의 비대화를 가져왔고, 의식절차의 복잡화 및 제사 제물의 양적 확대를 수반하였다. 따라서 이 곳에서 확정되는 죄사함의 기능이나 정결과 부정의 기능은 자산상태와 무관할 수 없었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날 그날 생계를 겨우 연명하는 대중을 끊임없이 배제하였다.
다른 하나의 핵은 지방에 위치한 여러 회당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로, 여기서는 율법이라는 생활률적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하였다. 회당체제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집단은 율법학자들을 정점으로 하는 율법의 해석자 또는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지방의 성읍에서부터 촌락에 이르기까지 분포된 회당을 매개로 대중의 생활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직접 통제하는 존재였다. 예수 당시 이런 부류의 다수는 주로 바리사이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성전체제의 주체가 대자산가인 사제귀족 계층이라면, 바리사이들은 대체로 소자산가적 평신도 계층 출신이었다(이들 가운데 더러는 지방의 하급사제들이었다). 이들은 하루 하루의 노동에서 어느 정도는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이들의 이상에 근거한 가치체계는 종종 대중에겐 또 다른 굴레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 두 체제를 연결하는 고리는 이른바 '정-부정의 체계'다. 사회의 모든 구성 요소,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정결함의 정도에 따라 위계화시킨 것으로, 여기에는 사회의 각 구성집단 및 그들의 실천이 매우 구체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의 위계화, 합법적인 결혼과 비합법적인 결혼의 의계화 등이다. 이런 정-부정의 위계화가 성전-회당 체제를 연결하는 바탕이었고, 이 체제를 통해 이 위계화가 재생산되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적 정치적으로 억압된 대중은 종교-이데올로기적으로도 억압 상태에 놓여야 했다.
그래서 대중의 염원은 사회의 공식적 신념체계와는 다소간 별개로 펼쳐진다. 대중의 메시아 대망 신앙은, 비록 그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은 아닐지라도, 현실 질서의 전복을 지향하였다.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대중은 기적(즉, '현실 초월의 사건')을 열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적이야말로 현존하는 질서를 교란시키는 신적 징후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러한 기적 열망은 기적행위자의 등장을 부른다. 누구든 '그럴듯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기적을 행한다면 대중의 열망은 당장 그를 기폭제 삼아 폭발하고 말 것이다. 기적행위자를 만나는 순간 대중은 막혔던 집단 욕구 또는 개인 욕구(혹은 과잉분출된 집단 혹은 개인 욕구)를 조정하는 자정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메시아의 등장이 필연적인 시대라도 모든 사람이 다 메시아일 순 없다. 메시아는 메시아로서의 카리스마적 자질을 보유해야 한다. 그는 기존의 체제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다("새 술은 새 부대에"; 마르2,22). 바로 이 점이 그를 단순한 기적술사와 구분시키는 근거다. 기적술사들은 현실 질서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연출하지만, 그들에겐 새로운 가치란 없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단순한 기술자일 뿐이다. 그러나 메시아는 기적의 효과와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대중의 염원,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무한정한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 그 새로운 가치에로 발산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요컨대 대중의 기적 대망은 기적행위자를 만들어내며 기적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나 메시아는 이러한 대중의 기적 대망을, 그리고 그 곳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 대중을 하느님과 대면시키고 의사소통하게 하며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존재다.

치유받은 '나병'환자, 그는 과연 다시 정결한 사람들의 사회에 복권될 수 있었을까? 나병걸린 이가 정결함을 회복하려면 사제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레위 13,49). 개별적으로는, 예수로부터 치유받은 몇몇 사람들이 이들에 의해 다시 사회에 복권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촌락 사회의 정결함의 주체인 바리사이와 사제들은 예수와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갈등의 주요 배경에는 예수가 불결한 이들과 친구로 지낸다는 것이 게재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에게는, 그 질서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복권시키는 행위는 체제전복을 예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적으로는 종종 수용되기도 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수의 이 행위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시몬은 어쩌면 사제에 의해 자신의 가족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시몬으로 대표되는 사람들 일반은, 비록 자신들이 깨끗해지는 기적의 수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체제의 수호자들에 의해 복권을 허락받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은 이상적으로는 배제된 이를 포용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은 극히 제한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 결국 배제당한 시몬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깨끗함이 받아들여지는 공간에서만 진정 깨끗해질 기회를 갖게 된다. 예수 공동체는 바로 그런 담론이 통용되는 공동체다. 병자들의 공동체요, 세리들의 공동체며, 부정한 자들의 공동체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가 배제한 자들이 포용되는 공동체며, 그런 점에서 기존의 권력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담론의 공동체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처럼, 기성의 권력적 질서에 편입해서 그 질서를 공유하기에 급급한, 승자들의 공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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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비판, 넷

비유를 통해 본 예수의 실천

또 하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는 데서 모우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우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손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25장 14~30절)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는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경계하는 한 편의 비유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베짱이에 맞추어져 있다. 이렇게 어떤 것을 그것과 대조되는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이야기하면, 말하고자 하는 취지가 한결 분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대조법을 이용하는 방식은 종종, 단지 초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도입된 비교의 대상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해석되게 하기도 한다. 이때 개미는 우리 편, 베짱이는 저쪽 편의 사람을 가리키게 된다. 가령 어떤 독자는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에 주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도입부로, 개미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우리 편)을 향해 어떤 현자(賢者)가 이야기한다는 언급이 첨가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용 가운데, 개미를 두 부류로 나누어, 한 편은 부지런한 개미, 다른 한편은 게으른 개미로 분류하는 내용이 가미될 수도 있다. 원래는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를 대조시킴으로써 게으른 자를 경계하려던 것이, 이젠 '게으른 개미'라는 우리 편의 게으른 사람과 '베짱이'라는 저쪽 편의 게으른 사람이 나오는 등, 보다 복잡한 구조를 이룸으로써, 그 의미가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게 된다.
최근 손춘익이라는 작가가 이 우화를 개작해서 {여치와 개미}라는 동화를 썼다. 여기서 여치는 예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개미는 황금만능시대의 소시민을 상징한다. 개미는 여치를 놀고 먹는 무위도식자 쯤으로 걱정스레 본다. 결국 한겨울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여치는 개미에게 구걸하러 갔다가, "내 영혼을 돈에 팔 수 없다"며, 따스하고 안락한 개미의 집에서 쓸쓸히 되돌아나온다.
이쯤되면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해져서, 누군가가 우화 {개미와 베짱이}'들'을, 그 여러 판본들을 수집해서 그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면, 그는 여기에서 더 이상 선명한 의미를 찾아내기가 어렵게 된다. 오히려 {개미와 베짱이}는 비유라기보다는 수수께끼인 듯이 보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에 나오는 모든 대상들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붙여 그 수수께끼의 '숨은 뜻'을 찾아내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성서의 '비유'가 바로 그렇다. 예수는 무수히 많은 비유를 말했는데, 물론 이 이야기들은 대개의 경우엔 매우 선명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확장되었고, 결국 한 편의 수수께끼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라고 알려진 이야기는 바로 이런 수수께끼화의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서에서 달란트의 비유는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네 개의 비유 묶음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비유 묶음 앞뒤에 "'인자'가 올 때까지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계의 말'(24,44)과, 인자가 곧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당하여 떠나게 될 것이라는 '예고의 말'(26,1~2)이 덧붙어 있다. 이런 상황 설정 속에서 이 묶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한 말로 나온다.

요컨대, 경계의 말과 예고의 말로 엮어진 이 네 비유들은 모두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신앙을 굳게 지키라는 권고에 초점이 있다. 여기서 이 네 비유들에는 모두, 대조되는 두 부류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 두 부류의 주재자가 일시적으로 그들을 떠나게 되었다가 훗날 귀환하게 된다는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비유1: 주인/ 비유2: 신랑/ 비유3: 주인/ 비유4: 인자). 그리고 주재자의 부재중에 어떻게 대처하였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갈렸다는 결론으로 맺음하고 있다는 것도 일치한다. 이것은 유사한 네 개의 비유들을 마태복음서 저자가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신앙을 지키는 신자들을 위한 권고의 비유로 묶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원래의 예수가 말한 비유를 마태는 이런 목적으로 개작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개작 과정에서 이야기의 수수께끼화가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다.
아마도 원래의 비유는 권고와 예고의 말이 없었을 것이다. 즉 각기 다른 상황에서 발설되었던 것인데, 그 때의 도입부는 사라지고, 마태가 그것을 이러한 형태로 대체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는 어떤 상황에서 말했던 비유였을까? 사라진 원래의 도입부를 알아낼 방도는 없을까? 우리는 비유 내용 속에서 그것을 추론할 수 있다.

마태의 구성 속에 들어 있는 이 네 비유 묶음은 모두 원형의 모습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데, 특히 대조되는 두 부류 가운데 축복의 대상을 앞에, 저주의 대상을 뒤에 위치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런 경우다. 화술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통상 뒤에 오기 마련이다. 즉 저주의 대상이 이야기의 초점인 것이다. 주재자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한 자들은 저주받게 된다는 얘기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완충장치도 없다. 단호함만이 깃들어 있을 뿐. 즉 예수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는 그것을 제자들, 즉 신자들에 대한 권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두 부류가 아닌 세 부류의 종을 설정하였고, 그 종들이 받은 '달란트', 즉 위임받은 사명의 크기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서로 잘 알고 있는 공동체 내에서 신도간의 역할상의 다른 위상을 어떻게 하든 반영하지 않고서는, 그냥 단순하게 대조시키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던 탓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상 세 종은 교회 내의 각기 세 부류를 대표하기보다는 사실 두 부류로 구분될 뿐이다.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배가시킨 종과 그것을 신주 모시듯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반납한 종. 또한 달란트를 배가시킨 두 명의 종에 관한 묘사 방식도 서로 일치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비유의 초점인 저주받은 종은 어떤 대상을 가리킬까? 예수의 실제 활동에서 비판의 대상은 항상 권력자들이었다. 과연 권력자들의 무엇이 이 비유의 문제 의식이었을까?
비유에 의하면 저주받은 종들은 위임받은 달란트를 숨겨두었다. 아무도 그것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마치 중세교회에서 주의 영광이 '속된' 사람들의 입에서 훼손될까봐 성서 번역을 금하고 예전(禮典)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거행한 것처럼 말이다. 마치 교회에서 높은 단을 만들고는 성직자 외에는 올라설 수 없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마치 세상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라는 단순 분류된 두 집단의 상호투쟁이라는 속류 영화의 만화 같은 세상을 홍보하는 이 세계의 온갖 지배적 담론들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에서 권력은 악이 상징하는 대상을 응징하고 선을 수호하는 진리체계의 담지자로 자신은 포장하는 알리바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거룩한 히브리어를 쓰기보다는 속된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과 그 나라를 이야기했고, 거룩한 성전이나 회당보다는 저자거리에서, 마을 공터에서 하느님과 그 나라를 선포하고 다녔으며, 경건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보다는 마시고 먹기를 탐하는 사람처럼 처신했고, 더러운 자들로 분류된 사람들, 세리, 창녀 같은 사람들의 친구로 알려졌다. 예수는 이런 사람들이 야훼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는 온갖 '은폐의 신학'에 대항했던 것이다.
비유에서 저주받은 종은 항변한다. "주인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주인으로 상징되는 하느님이 거룩을 독점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거룩의 본질은 하느님으로부터만 발원될 뿐이며, 그렇기에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이가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하겠다고 덤벼드는 섣부른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거룩/진리를 독점하는 사람들의 명분처럼 말이다. 반면 축복받은 종들은 그것을 수중에 장악하여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개했다. 마치 돈을 늘리려면 시장에 내놓아야 하듯이, 그래야만 그것이 배가될 수 있듯이, 거룩 또한 폭로해야만 그것이 더욱 거룩해진다는 뜻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시장의 논리를 빗대어 거룩/진리를 장악하고는 모든 이들과의 접촉을 막는 은폐의 신학, 그런 신학의 주역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위임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은, 거룩한 것의 공개를 의미한다. 은폐가 아니라 폭로가 필요한 것이다. '거룩함/진리'는 누구의 수중에 장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폭로되어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그것을 가진 자가 바로 자신을 비워야만 비로소 그 빛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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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권력 비판, 다섯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가는 길

이제까지 우리는 예수의 활동을 '권력비판'의 시각으로 보아왔다. 예수는 당시의 지배체제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 존재였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지할 것은, 억압적인 정치제도만이 그의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을 권력의 노예로 만드는, 그래서 자기를 내리 누르는 권력에 스스로 굴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를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그러한 권력 메커니즘 전체를 예수는 비판했던 것이다. '산헤드린-성전-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코드는 억압적 기재를 통해 사회를 지배했다. 즉 그것은 억압적인 정치적 제도의 핵이었다. 한편 '성전-회당'의 코드는 상징을 통해 사람들을 권력의 욕망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예수의 권력비판은 이 둘을 아우르는 지배의 체제와 대결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활동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우리 각각의 안팎을 둘러치고 있는 권력이라는 악령과의 투쟁의 절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예수는 이 최후의 전투에서 실패했다. 그는 체포되었고, 고문당하고, 승자의 잔인한 축가를 뒤로하며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실패한 싸움이 사실은 실패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승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전을 위해 우리는 그의 '부활' 이야기를 얘기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가 영광스럽게 부활함으로써 승리했다고? 도대체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예수가 치유할 악령들인 이가 없어졌단 말인가, 회당에서 축출된 사람들의 하소연이 사라졌단 말인가?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는데…, 여전히 정의의 하느님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패배하고, 불의의 존재는, 그것이 에굽이든 바벨론이든 로마든, 아니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든,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에게 승리했기에, 혀가 마르도록 승리의 찬양을 부르며, 성탄일을 자축하며 환호해마지 않는가? 눈물나도록 고맙게도, 자본이라는 전능자는 엄청난 재화를 쏟아부으며 이 날을 최대의 소비축제일로 만들어 주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그러나 예수의 권력비판은 그의 처형으로 끝장나버리고 말았다. 흩어진 제자들의 사라진 자취를 뒤로하며, 예수의 권력비판은 막을 내렸다. 성탄절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장대한 성가 헨델의 '메시아' 선율 속에서 예수는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반전을 얘기할 거다. 왜냐면 실제로 예수의 부활 이야기가 존재했고, 그것은 끝장난 줄 알았던 권력을 향한 단호한 비판 선포의 메아리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흩어진 제자들이 다시 모이고 쓰러진 그에 관한 담론이 생기를 얻어 일어나 살점을 얻고 몸을 이루어 또 다른 투사로, 전태일로, 민중의 얼굴로 역사의 무대 위에 거듭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얘기하는 반전은, 그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의미에서다.) 바로 이 장의 이야기는 이 반전에 관한 얘기다. 예수의 입을 통해 발설됐고 그의 몸을 통해 실연(實演)되었던 권력비판은 이제 이런 저런 변두리 사람의 몸 속에서 부활하여 또 다른 권력비판의 소리로 되살아났고, 그것은 다시 또 다른 이들의 가슴속에서 환생하게 된/될 것에 관한 얘기다. 그러므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이름이 누구로 나오든, 바로 우리 속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우리 자신이다. 바로 우리의 결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 성에 도착했다. 닷세 후면 해방절(유다 월력 니산월 15일)이 오고, 그 때부터 일주일간은 '누룩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 기간이다(유다 월력 니산월 15-21일). 유다에서 가장 큰 절기인 이 때에는 팔레스틴뿐 아니라, 로마 제국 내 여러 지역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고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든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한껏 들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분명 메시아였다. 그이 앞에선 로마 군대도 쥐죽은 듯 꼼짝않고 있었고, 성전 경비병들도 어찌하지 못했다. 율사들이나 귀족들이 보낸 사람들도 번번히 예수 일행에게 모욕을 당하며 혼비백산 달아나곤 했다. 예수 일행이 주도하는 집회장을 중심으로 성전은 연일 해방구가 되었다. 이제 하느님이 메시아 예수를 통해 벌일 그 통쾌한 심판행위는 임박한 듯했다.
그러나, 나흘째 되던 날,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그는 산헤드린 의회의 기소로 로마 총독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는다. 채찍으로 실신지경까지 얻어맞은 후 처형장인 골고타 언덕에서 '메시아'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를 따랐다던 그 '늠름한' 제자단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하느님 나라 도래의 기대는 3일 천하로 끝나버렸다.
그런데 이때 성서에는 느닷없이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라는 사람으로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다. 이 인물은 총독 빌라도에게 청하여 실패한 '메시아'의 시신을 자신의 무덤에 안장한다(마르15,43~46). 그런데 바로 이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는 곧 그의 부활 소문으로 이어진다(마르16,1~8).
우리는 이 사건 외에 그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발견할 수 없다. 성서에서의 그는 단지 빈 무덤의 주인, 정녕 메시아는 죽고 말았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헛짚음'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그런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수차의 부활 예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무덤을 찾아가야 했던 '둔한' 여인들처럼…(16,1).
이 여인들은 죽은 스승의 시신에나마 마지막 정성을 쏟아붓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가 무덤이 비어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메시아가 다시 살아났다. 예수가 체포되고 처형되는 순간 흩어져 달아났던 제자들은 다시 모여서 그의 부활소식을 전하며 예수운동을 계승하는 사도들이 된다. 반면 주의 처형장면을 목격하였고(15,40; 참조. 15,45), 그의 마지막까지도 함께 하고자 했던 세 여인들과 아리마태아 요셉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린다. 물론 이 여인들의 사라짐은 남성 중심의 이야기 구성의 소산임이 밝혀졌다. 실제의 역사에서 그들이 남성 제자들 못지 않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아리마태아 요셉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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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며칠 앞둔 예루살렘 성문으로 통하는 도로에는 성전을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중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의 제물과 헌납물을 가져오는 대부호의 긴 행렬, 명절 기간 동안 소비할 물품을 실어오는 대상(隊商) 일행, 낙타나 말, 또는 말이 끄는 수레에 고향 마을에서 모운 제물을 가득 싣고 순례길에 오른 '바리사이', 그리 크지 않은 봇짐을 지고 혹은 빈손으로 상경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혹은 꽤 많은 무리를 이루며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은 성안의 여관이나 민가에 여장을 풀었고, 약간의 여비밖에 없는 사람은 성밖 농가에 묵었다. 그나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집단으로 성밖 공터에 노숙하였다.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성전 안으로 몰려든다. 벌써 상인들은 제사용 제물과 화폐를 늘어놓고, 더 많은 사람이 당도하기 전에 제의용품을 사두려는 순례객들과 흥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방에서 차출된 사제들은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며 제사 준비에 여념이 없고, 성전 경비병들은 요소요소에 배치되거나 대열을 지어 순찰하고 있다. 명절 때는 으례 비상경계령이 내리기 때문에 전 병력이 경비업무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고향인 아리마태아에서 순례차 방문한 사촌 조카를 데리고 성전을 안내하며 거닐고 있다. 그는 평신도여서 성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경비대 사무실이나 성가대 막사, 창고 등 다른 부속 건물들을 구경시켜 줄 수는 있었다. 그들은 성전 뜰로 나왔다. 많은 인파가 들끓었고,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런 일은 명절 땐 흔한 일로서, 각처에서 온 사람들간에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는 장이다. 대개는 하느님 나라 도래에 관한 이야기가 논쟁의 화두가 된다. 어려서 안티오키아에 유학가서 십수 년만에 귀향한 조카는 이런 장면을 신기하게 여기며 유심히 본다.
그런데 갑자기 상인들이 있는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갔다. 무슨 난동이 있나 싶었다. 얼른 상황을 알아보고 온 종놈은 예수라는 자와 그 일행들이 상인들의 좌판을 들어엎어 댄다(마르11,15)고 보고한다. "갈릴래아에서 기적을 베풀고 다닌다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인지 분신인지 하는 그 예수라는 사람말이냐?" 종은 전에 자신이 말해 준 것을 떠올리며, 상기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요셉은, 생기가 돋아나고 의기양양해 하는 심정을 애써 감추려는 종의 태도를 간파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흥미가, 아니 가슴이 슬금슬금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일생 동안 하느님 나라 도래를 열망하면 살아왔다. 그랬기에 그는 율법을 실천하는 데 누구보다 충실했으며,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베풀 줄 아는 "선하고 의로운"(루가23,50) 사람이었다. 그는 하느님 나라를 이룰 메시아가 도래할 시발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믿음에 따라 자신의 거주지를 아리마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만약 메시아가 나타난다면 그분을 섬기는 데 온 재산을 다 바치리라는 결심을 가지고.
소문대로라면 예수라는 분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경비병들이 몰려와서 집회를 해산하려 했으나, 엄두를 못내고 그냥 집회장 주변에 도열해 있기만 했다. 이런 장면을 보고는 망설이던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에 끼어든다. 자신의 익명성이 보장될 수 있었던 탓이리라. 하지만 요셉은 이 무리의 대열에 끼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는 단지 멀찍이 서서 그냥 바라만 보아야 했다. 누구라도 그의 푸른옷을 본다면 대번에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산헤드린의 동료의원인 요나단이 해준 말에 따르면, 이 인파들 가운데는 로마의 비밀경찰이나 대사제의 밀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포악하기로 소문난 총독 빌라도와, 교활함에 있어 둘째라면 서러워 할 대사제 가야파, 그리고 비쩍 마른 몸에 잔인한 눈설미를 가진 그의 장인 안나스의 눈에 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고향에 있는 사돈에 팔촌까지 결단나버리고 말 것이다.
요셉은 집에 돌아와서까지 곰곰이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분이 메시아임이 분명하다면 물론 당장 나서서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불확실하다는 데에 있다. 그냥 믿고 행하기에는 치루어야 할 대가가 너무 막중했다. 그동안 쌓아온 부 명성 지위 그리고 유복한 가족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날아갈지도 몰랐다. 성밖에서 아무한테나 고개를 조아리며 구걸하는 아내, 아부하기 좋아하는 성전수비대장인 뚱뚱이 사제 같은 비열한 귀족놈들 집에 노예로 팔려가는 자식들 …, 상상만 해도 몸서리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예수란 이가 메시아든 아니든 간에 분명한 것은 그가 '의로운' 사람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아까 집회장소에서 그분이 말했다던 성전에 대한 비판은 구구절절 옳은 얘기 아닌가. 정말이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인 성전을 장사치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지 않은가?(마르11,17). 그 분을 낳은 어머니는 어떤 이일까? 그의 아내나 자식을 있을까? 저렇게 용감하게 말하고 다닐 때 그의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과 주위에 모여든 무명의 군중은 한데 어우러져 집회를 열고 있었지만, 평소에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다 바치리라고 자부했던 요셉은 집회의 '변두리'에, 그것도 은밀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튼날 오후 산헤드린 의회가 소집되었다. 예수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자리다. 사실은 말이 좋아 의회지, 안나스와 가야파의 의지를 공식적 의지로 보증해 주는 '박수부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누구도 이들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회의 결론은 "명절 때에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되니 그의 체포는 일단 유보하자"(마르14,1~2)는 것. 요셉은 찹찹한 심정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지만, 안나스와 가야파의 독선이 몹시 불쾌했다. 그리고 한마디 항거도 못한 채 앉아만 있는 의원들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자신도 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너무나 비참하게 만들었다. '메시아의 모임'에도 산헤드린의 모임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이 곳이든 저 곳이든 단지 '변두리 사람'일 뿐이다.

그날 밤, 낮의 그 회의 결의의 갑작스런 번복이 있었고, 가야파의 사병들이 예수님을 체포했다. 가야파의 집 뜰에서 심문이 있다는 소식, 이튼날 아침 빌라도의 관저에서 재판이 있다는 소식, 그리고 그 분이 사형판결을 받았다는 소식 등이 숨가쁘게 계속 전해졌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요셉에게 이러한 상황 전개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고, 잠시도 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정원 이곳 저곳을 오락가락 하면서 초조하게 움직여댔지만, 실제로 그는 어느 곳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분이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렸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서둘러 그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참 소란스러웠다. 십자가를 향해 퍼붓는 야유 소리가 무성했고(15,29), 무엇이 그리 통쾌한지 사람들 표정엔 잔인한 생기로 가득하다. 밀정들의 감시의 눈이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너무나도 실망해서인지 어느 누구도 이자들을 반박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께 상인들의 좌판을 들러엎을 때, 환호하던 자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서로 자기가 예수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하게 이 일을 주도했던 그분의 제자들은 또 어디에….
요셉은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벼락소리가 나고 하늘에서 천군천사가 내려와서 십자형틀에 매달린 '저주받은 메시아'를 구출하고(참조. 마태26,53) 로마 군대놈들과 그들의 간교한 앞잡이들을 궤멸시키는 장면이 떠올려졌다. 이렇게 시작된 대심판은 마침내 하느님 나라 도래로 귀결되리라,… . 그는 속으로 기도했다. 너무도 간절한 마음으로.

간간히 심음소리를 내던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가 갑자기 절규하듯이 고함을 지른다(마르15,37). 요셉의 숨이 순간적으로 멈춘다. 심장도 박동을 그친듯. '아, 드디어 그 일이 벌어지나 보다.'
이 정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사람들 한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가 죽었다."
요셉은 고개를 쳐들고 십자가를 바라봤다. 그분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다. 심음소리도 이젠 그쳐 있었다. 집행관이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것(요한19,34)을 확인하는 순간, 요셉은 서둘러 빌라도의 관저로 달려갔다.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그 자신도 몰랐다. 그냥 몸이 가는 데로 갈 뿐. 길을 가는 중에 문뜩 동굴 속에 새로 파놓은 자신의 무덤이 생각났다. "그래, 그분을 거기에 안장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지.'"
빌라도는 이 인품 좋은 호인의 갑작스런 방문에 의아해 하면서도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를 기꺼이 맞이했다. 빌라도는 제작년 마차경주에 산헤드린 의원들을 초대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별나게 말수가 적었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도 다른 의원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첨을 해댔지만, 그는 끝내 잠잠히 있었다. 몇마디 물으면 짧게, 그러나 성의 있게 대답하곤 했다. 의원들을 내사했던 정보담당 부관의 보고에 따르면 그는 강직하고 말수가 적으며, 자기들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빌라도 자신은 귀족이 아니라 평민출신 신흥자산가로, 황제에게 아첨과 뇌물을 통해 부상한 자였다. 그 주위에는 자신처럼 상승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별의별 짓거리를 다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셉 같이 권력에 초연한 사람에 대해 깊은 열등감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요셉의 부탁은 퍽 당돌했다. 감히 국사범의 시신을 달라니. 누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사람을 위해 눈물만 흘려도 즉시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이 관행인데도.
십자가 처형이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가장 처참한 고통을 맛보게 하는 잔혹한 처형방식이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피를 너무 흘러서 탈진한 상태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새들이 날아와 자신의 눈을 파먹고 가슴과 배의 살점을 뜯어먹고, 무더운 기온에 자신의 몸이 조금씩 썩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서서히 그는 죽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잔혹한 처형방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시체까지도 들에 내던져서 개들과 새떼의 먹이가 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처형관행과 그 방식의 이유를 모를 리 없는 산헤드린 의원이 자신을 찾아와서 극형 당한 자를 자기 무덤에 안장하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요구에도 빌라도는 총독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딴척을 부렸다. 그는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벌써 죽었는지를 확인하라고 명령한다(마르15,44). 실은 벌써 죽었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의외였다. 아무리 빨리 죽어도 하루는 끄는 것이 상례고 어떤 경우는 3일 정도 지나서야 죽는데, 처형 개시부터 불과 여섯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에 그가 죽었다니 말이다. 백부장이 확인하러 가는 동안 빌라도는 요셉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점점 이 사람의 진지함에 끌리고 있었다. 백부장이 예수의 죽음 보고를 하는 때에 그는 이미 허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요셉은 시신을 정성껏 손질했다. 머리에 쓰여진 가시관을 빼내고 그 상처들을 닦아냈다. 채찍에 긁힌 등어리의 흉터들도 닦았고, 못에 박힌 손과 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의 흉터도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무덤으로 만든 동굴에 그분을 안장하고는 종을 시켜 사오게 한 삼베로 수의 삼아 시신을 덮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그분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이 의로운 분을 받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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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돌아가던 이튿날은 안식일이었다. 삼일째되는 날 새벽, 예수의 제자였던 세 여자가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왔다가 그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굴 입구의 커다란 돌이 굴러서 열려져 있었고, 흰옷 입은 청년이 나타나 그가 부활했으며 갈릴래아로 떠났다고 전해줬다는 것이다(마르16,1~8).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흰옷 입은 청년은 누구며 동굴 입구는 어떻게 열려졌다는 것일까? 죽은 자가 되살아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만일 예수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되살아난 것이라 할 때, 누군가의 치료가 없었다면, 그리고 동굴문을 열어주고 피신시켜 주는 협조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의 부활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의 제자들은 다시 모였고 모종의 활동을 개시했다.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였던 민중은 되살아난 메시아 소식을 가지고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갔으며, 일부는 아예 예루살렘에 남아서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운동에 가담한다. 되살아난 메시아의 이야기는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해방을 향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예수를 체포하고 처형함으로써 당장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던 집권층에게 그의 부활 소식과 이에 따른 일련의 분위기는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이것을 시체 도난 사건으로 공식인정했고, 필시 이 사건의 범인 색출 수사에 들어갔을 것이며 책임자 처벌을 단행하였을 것이다. 아리마태아 요셉은 이 사건의 주요한 용의자였다. 당국이 그를 범인으로 실형에 처했든 아니든 간에, 적어도 그가 책임자 처벌 대상에 포함되었음은 분명하리라.

아리마태아 요셉! 우리는 이 인물에 관하여 더 이상 캐낼 수 없다. 다만 그에 관해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는 있다. 그는 예수운동의 '변두리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지막 고뇌에 찬 결단은 쓰러진 예수운동 재건의 기폭제가 된다. 예수의 권력비판의 목소리는 또 다른 '예수들'을 통해서 부활했다. 이제 그는 예수운동의 변두리 사람이 아니라 예수운동의 '중심부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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