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09/27 (03:04) from 210.115.75.102' of 210.115.75.102' | Article Number : 56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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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213 , Lines : 58 |
| 재개발지구--크리스마스에 관한 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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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구 크리스마스에 관한 명상 30대 전반인 시인의 한 후배가 위암 중기 판정을 받고 절개수술을 했다. 시인은 후배의 절반이나 잘린 위를 떠올리며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가 잘라내려고 했던 것들이 도리어 우리를 잘라내고 있어" ― 손현철, [수술]에서.1) 어느덧 후배의 위는 시인의 몸의 일부로, 아니 자기 시대의 사람들의 횅하니 뚫린 가슴으로 돌변해 있다. 가히 '혁명의 시대'라 할만한 격동의 1980년대 중후반을 대학에서 보낸 시인은 1990년대 중반을 넘겨보내며 '시대의 배반'에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벽화를 그리고 싶은데 내 몸에는 그릴 벽이 없다 ―손현철, [1990년대. 서시]에서2) 그는 바로 자신에게서조차 배반의 표식을 읽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과거의 투사들에게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이른바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도래. 무기를 회수해 간 '시간(時代)의 영주'는 그들에게 대가로 '암세포'를 선사해 준다. 그것은 몸 속의 '희망의 원리'를 잠식해 가는 역할을 맡고 파견된 사자(使者)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를 마친다. "나는 더 이상, 결정적인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1990년대. 서시]에서)라고. 희망을 상실하자 모두들 '베를린 장벽 이후'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만 몰두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과거의 검열관들은 마치 암세포를 색출하듯 사람들을, 시인의 후배를, 그리고 시인 자신을 절개한다. 예수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혁명의 봉화가 꺼저버린 잔해더미 한 가운데서 출생한다. 한 고대의 역사가는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주후 14~37년) 치하에선 온통 '조용한 일 뿐'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타키투스). 마치 덧없는 일에 너무 큰 것을 제물로 바쳤다는 듯, 조소의 눈길을 던지며 배반의 시대는 다가왔고, '결정적인 것'을 선사해 주리라던 메시아 대망은 해방투사들과 더불어 예루살렘 도상의 수천의 십자가 위의 썩은 고깃덩어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희망 포기를 수락 조건으로 내세우며 배반의 시대는 도래했고, 예수는 시간의 복수전이 가장 가혹하게 벌어지던 지역(세포리스 근처의 나자렛)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주검들이 즐비했던 고을에서 죽은 듯한 여인의 몸을 통해 한 소년이 성장해 간다. 시인은 도심 재개발지구의 남루한 빈집들을 본다. 그 곳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을 반납한 채 '오늘'을 살아가겠노라고 서약한 뒤 아둥바둥 세월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그 자신이 서 있다. 무엇이 두려운지 이 오래 된 건조물은 학질에 걸린 듯 떨고 있다 ― 손현철, [재개발의 추억]에서3) IMF의 으름장에 간이 녹듯 서명해야 했던 정리해고의 위협 아래 아무 말 못하고 쓸쓸히 서 있는 이 세대의 군상들처럼. 필시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시인처럼 혁명의 시대의 불꽃들이었을 텐데... 오히려 청산됐어야 할 자들이 잔인한 가윗 소리를 내며 떨고 있는 사람들을 잘라내려 달려들고 있다. 결국 불꽃같던 과거를, 그 꿈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냥 사는 거지"라며 지나쳐버렸던 시인에게, 시인의 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의 보복은 점차 자라 어느덧 참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해졌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열관'들에게 절반이나 잘리워졌어도 시인은 스스로는 결코 떼어버릴 수 없는 나머지 절반의 자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야기한다. 너를 잃고 나는 내 인생의 개정판을 다시 찍지 못할 것 ― 손현철, [재개발의 추억]에서 다시 꿈을 얘기해야 겠다는 절제된 맹세 같은 것이리라. 슬금슬금 되살아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꿈은 다시 메시아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세례자 요한을 경유하여 예수가 등장한다.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라며. 그는 사람들의 되살아난 꿈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꿈과 더불어 환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나머지 절반을 그 대가로 선사한다. 그는 '꿈의 창조자요 꿈의 생산자며, 꿈의 재건자'인 것이다. 재개발지구의 폐허 위에 검열관들의 웅대한 성이 세워진다. 거기에는 권력과 부가 집중되어 있고, 그 곳을 권력과 돈의 수호신이 지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신을 '하느/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신이 성을 지키는 방법은 개미떼 같이 성을 갉아먹는 이들을 압도하는 힘을 통해서다. 마치 이 세상 무엇보다 더 큰 힘으로 이른바 '악'을 응징하는 슈퍼맨 식의 정의 수호처럼 말이다. 마치 최고 성능의 무기로 지구상의 악을 응징하는 헐리우드 식의 미국의 정의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늘 '최고의 능력, 최고의 권력'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최고의 능력/권력의 담지자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이 이 정의의 편에 서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신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수히 많은 경험 속에서 '신 부재'의 상황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낄 수 있는 한 최고의 권력이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 한 사람이 그 성(전)을 보고 그 웅장함에 경탄해마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는, 필시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르13,2) 이 말을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했다. '성막이나 성소들의 폐허 위에, 그것들이 재개발지구의 잔해들로 전락해버렸을 때, 그 자리에 성전이 세워졌전 것처럼, 당시의 성전도 얼마 후엔 재개발지구의 남루한 건조물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까 성전보다도 더욱 엄청난 능력을 가진 더욱 정의로운 이의 상징물이, 과거의 챔피언을 때려눕히듯, 옛 것을 대체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역사는 로마의 대성당이, 쮜리히의 대성당이, 그리고 뷔텐베르크 대학 성당이 그런 것이라 믿기도 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 예수는 이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무너뜨릴 것이라던 성전의, 그 권력자들의 가위자락에 도리어 예수의 몸둥아리가 난도질당하고 말았다. 반면 가장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권력과 부가 집적됨으로써, 최신예 병기를 구축함으로써 존재하는 검열관들의 성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더욱 강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완력에 의해 제압당한 이의 무력한 시신에 의해서였다고. 비천한 것에 고결한 것이, 약한 것에 강한 것이, 빈곤한 것에 부귀한 것이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의 이 말씀은, 재개발지구를 정복한 지배자의 성은 더 강한 지배자에 의해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이 말살시키려 했던 재개발지구 거류민들의 근절된 희망이 재생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정복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되살아난 꿈을 증거하는 마당이다. 교회는 꿈의 소생으로 환생한 신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창고다. 교회는 신의 꿈 창조 이야기, 꿈의 생산 이야기, 꿈의 재건 이야기를 선포하는 광장이다. 그것은 '힘에 의한 힘의 정의'라는 재개발지구에서 유포되는 논리, 그 논리의 주인공(종종 어떤 이들에게 하나님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을 해체하는 실천을 의미한다. '예수의 오심을 기리는 날'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신에 관한 이야기를 새삼 기억하는 '제의' 자체인 것이다. [각주] 1) {문학동네} 9 (1996 겨울), 364쪽. 2) 같은 책, 363쪽. 3) 같은 책, 36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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