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8/16 (11:07) from 63.106.210.140' of 63.106.210.140' | Article Number : 7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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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991 , Lines : 42 |
| 주체 형성의 장치로서 가부장제적 민족주의--인물로 보는 성서, 에스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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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형성의 장치로서 가부장제적 민족주의 인물로 보는 성서, 에스델 1 성서학 전문가들에게서 에스델서는 구약성서 가운데 가장 주목을 덜 받는 책의 하나일 것이다. 또 목사들의 설교 본문 선택에서 아마도 가장 적에 사용되는 텍스트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리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수요 성경공부 모임이나 대학생들의 '경건의 시간' 강독 본문으로도, 나아가 가족예배 본문으로도 이 책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래된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아마 이 책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적어도 에스델이라는 이름은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많이 알려진, 성서에 나오는 여성 인물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교회에서 여신도회의 이름으로 가장 애용되는 것도 단연 에스델다. 이러한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구약 정경 가운데 룻기와 더불어 여자의 이름이 책 제목으로 된 또 한 권이 바로 에스델서라는 사실이 그 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줄거리가 간명하면서도 구성이 치밀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대충 읽더라도 대번에 내용에 빠져버리게 할 만큼 통속적 재미를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인기의 가장 결정적인 비결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오래전, 정경이 형성되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유다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장 오래된 유다교 전통을 생생하게 보전하고 있는 쿰란의 문서들(주전 150년경~주후 68년 사이)에는 에스델서가 정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이 책이 널리 낭송되던 부림절 축제 또한 유다력에서 배제되어 있다. 또 주후 90년경의 얌니아 회의에서도 필시 이 책을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개연성 있는 견해를 펼치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책이 정경에 포함된 시기는 주후 2세기 중반, 혹은 3세기, 심지어는 4세기까지 늦춰진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사정은 더하다. 정경에 포함되는 문제에 대해 합의된 바가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다만 서방 그리스도교는 이 책을 정경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보다 많았다면, 동방 교회 전통에서는 대체로 거부되는 경향이 강했다. 아마도 서방 교회 전통이 그리스도교의 다수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정경성이 확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시대의 유다교나 그리스도교 엘리트들의 판정과는 달리, 이 책은 일찍부터(아무리 늦어도 주전 2세기 중반 경) 대중에게는 널리 사랑받는 텍스트였음에 분명하다. 부림절 축제가 전투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마카베오 봉기 시대에 대대적인 민족절기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필시 이 책의 인기 비결의 하나는 민족주의적으로 고조된 시대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유독 이 책이 다른 것보다 크게 인기 있었던 것은, 역시 흥미진진한 내용과 통속적 구성 탓이리라. 우리는 에스델서를 '통속소설'로 분류하고자 한다. 소설이란, 작가가 작중에 등장하는 타인의 눈을 통해 사건을 관찰할 뿐 아니라, 작중 인물을 통해 사건의 해석을 추구하는 글쓰기의 특징을 갖는다. 이때 해석은 주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간의 접속을 통해 구현되는데, 사건을 둘러싼 스토리를 이어가는 텍스트의 구성이나 문체의 호소력을 통해 그 해석의 필연성/보편성이 주장된다. 독자는 감정이입을 통해서 저자의 이러한 보편성 요구에 흡인될 것을 소설로부터 요청받게 되는데, 이것은 종종 주인공의 시선과 독자 자신의 시선의 동일화를 통해서 실현된다. 저자는 이러한 동일화를 이끌어내려고 스토리 구성의 의미 연관성을 희생시키곤 하며, 바로 여기에서 글이 통속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에스델서의 구성이 강변하고 있는 해석에 개입된 구성요소들간의 문제에서 '성'sexuality이 어떻게 개입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2 '아하수에로스'를 헬라인들은 '크세르크세스'라고 번역한다. 제국시대 페르시아 왕 중에서 이런 이름을 가진, 혹은 유사형을 가진 통치자는 모두 다섯 명이나 된다. 이 중에서 본문의 아하수에로스가 어느 크세르크세스인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어떤 인물도 시대를 추정할 만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또한 '모르드개'가 바벨론 시절의 느부갓네살 왕 때 포로로 끌려온 유다인 중 하나라는 본문의 언급(2,6)에 따른다면, 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주전486~465)가 본문의 시대적 맥락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모르드개의 나이는 최소한 120살이나 된다. 이것은 소설의 작가가 세계사 속에 소설의 스토리를 맥락화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성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반면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소설은 '성'을 중요한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것은 '와스디' 왕후가 폐비 당한 경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거국적인 축제가 벌어지고, 수많은 관료들과 봉건제후들이 속속 궁중으로 모여든다. 연일 계속되는 축제의 마지막날, 거나하게 술이 취한 왕은 왕후를 호출한다. 그녀의 미모를 신하들에게 자랑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왕후는 이를 거절했고, 이것이 발단이 돼서 그녀는 폐비를 당한 것이다. 고대 로마의 사가 '헤로도투스'가 전하는 한 이야기에 따르면, '리더' 국의 왕인 '칸타울레스'는 신하에게 왕후를 자랑하려고, 그녀를 벌거벗게 했다고 한다. 후대에 유다교의 한 라삐는 와스디가 호출된 상황은 왕이 그녀에게 관만 쓰고 벌거벗은 채 나오라고 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본문 자체에선 그러한 해석의 근거는 전혀 없다. 헤로도투스가 비난조의 태도로 묘사하고 있는 칸타울레스의 경우에 비해, 이 소설의 작가는 잘못이 와스디가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요컨대 왕의 무리한 요구가 이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왕의 당연한 요구를 왕후가 부당하게도 거절했다는 점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부터 이미 본문은 '여성다움'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노한 왕은 대신들을 불러 왕후에 대하여 의논한다. 여기서 그들은 궁중에서 일어난 한 에피소드를 제국 전체 여성들의 문제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회의는 여성들이 지아비의 명을 거스르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령을 반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여성이 지아비에 순종하는 방식만이 정당한 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와스디의 폐비 후, 왕후 간택을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제국 각처에서 선택된 여인들이 궁중으로 들여보내진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인들은 이곳에서 수련을 받는데, 아마도 여인다운 예절과 품성을 닦게 하는 것이 수련의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이 '여성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본문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몸치장'이다. 양부인 모르드개의 언질에 따라 에스델이 자신의 혈족과 인척관계를 숨길 수 있었다는 건, 독자들에게 왕후 간택의 절차에서 혈연적 유대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이든 아니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녔을 법한 가문의 문제가 여기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외모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뜻일까? 한편, 어쩌면 이러한 이야기 속에는 신데렐라 동화 같은, 가난한 여인네의 소박한 꿈을 짓누르지 않으려는 저자의 통속작가다운 배려(?)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소설에서 여인의 성은 지아비인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에스델이 왕후가 되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왕후 간택 절차에서 그녀가 가장 눈에 뛰는 여인이었다는 사실과 직결된다. 이미 그녀는 '여성 만들기 프로그램' 책임자의 눈에 들었다. 그는 그녀의 몸치장을 위해 시녀를 일곱이나 붙여줬으며, 필시 이들 시녀들은 그런 치장의 최고급 전문가들이었을 것이다. 후보자들이 하나씩 왕 앞에 선을 뵐 때는 모든 몸치장의 문제는 그녀 자신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자율이란 기껏해야 자신의 몸을 왕에게 어떻게 잘 보이느냐에 국한된다. 왕과 하루라도 동침하게 되면 소위 '팔자 활짝 피는' 세월이 오는 반면,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나인으로서 남 치장하는 일 혹은 궁중의 허드렛일로 보내야 한다. 물론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에스델은 왕 앞에 나아갈 때에 지나친 치장을 삼간 채, 전문가의 조언에만 따랐다고 한다(2,15). 여기서도 에스델의 출중함보다는 여자 만들기 전문가의 능력이 중요하게 부각될 뿐이다. 요컨대 에스델이 왕후가 된 결정적 비결은 궁중에서 수련된 그녀의 성적 정체성과 연관된다. 이제 이야기는 본론으로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여기서 이야기의 갈등구조는 여성과 남성간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것에서 민족적인 문제로 옮겨간다. 한편엔 모르드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하만이 있다. 전자는 유다인으로서 아마도 궁궐 문지기였던 같고, 후자는 페르시아인이고 왕국의 제2인자인 지엄한 관료였다. 처음부터 양자는 게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만은 계속해서 모르드개를 의식하고 그를 견제하려고 제국 전체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을 구상한다. 허구적이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유다인이 독자라면 이 얘기는 바로 그 허구성 때문에 더욱 흥미로워진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하만의 주도에 의해 전개된다. 외스디 폐위 사건이나 에스델을 왕후로 간택하는 테서 보듯 왕은 허수아비처럼 행동하고, 멍청하게 정해진 방식의 시비/유혹의 선에 따라 일차원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일 뿐이다. 요컨대 왕은 지엄한 직위에 있으나 수동적인 행위의 주체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가 선정을 펴든 악정을 펴든 관건은 왕 자신의 지혜로움과는 무관하다. 전반부의 악정의 주도권은 하만의 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위 12년 니산 월에 하만은 제비뽑기(불, p r)를 통해서 유다인을 처형하는 때로 아달 월을 택했다. 거사일을 1년이나 뒤로 미룬다는 것 또한 허구적이다. 한 해의 처음에 시작된 음모를 그 해 마지막에 실행한다는 것은 아마도 독자를 위한 배려이리라. 하지만 이미 독자들이 기대하고 있듯이 모르드개에게는 양녀 에스델이 있다. 그가 왕후를 만난다면 어쩌면 이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바람 속에서 독자는 소설의 전개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저자는 대번에 둘을 만나게 하지 않는다. 뜸을 들이는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모르드개는 혼자 끙끙 앓으며 단식을 하면서 통곡하고 있고, 궁녀들은 내왕하면서 에스델에게 이러한 상황을 일러준다. 둘 사이에 교신은 직접적 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질나게도 '하닥'이라는 내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둘 간의 대사에서도 문제가 단순하게 풀리지 않는다. 에스델이 왕 앞에 나아가서 간청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입부에서 폐비 당한 외스디와 다를 바 없게 되는 셈이다. 결국 기대했던 에스델의 입장은 실제로 매우 난처한 상황이라는 게 독자들에게 인지된다. 하지만 4장 16절에서 에스델의 그 유명한 "죽게 되면 죽으렵니다."라는 말에서 독자들은 무언가 해결책이 있음을 암시받는다. 저자는 긴장을 극한으로 끌고 가면서도 해결책을 향한 암시를 잊지 않고 있다. 에스델은 왕의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서 있음으로써 일단 왕과의 대면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상황을 고하는 게 아니라, 왕과 하만을 자신의 잔치에 초청한다. 독자는 뭔가 이야기가 풀리고 있으나 그 방식에 궁금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잔치에서 벌어진 건 여흥이 고조됐다는 것뿐이다. 다음날 잔치에 다시 초대하겠다는 에스델의 청에 이야기는 하루 더 지연된다. 그날 밤, 하만은 퇴궐하면서 모르드개의 방자함에 분이 터지고, 왕은 우연히 과거의 역사기록을 보다 왕 암살음모를 고발한 공적을 올린 모르드개를 기억한다. 모르드개를 죽일 생각에 50자 짜리 기둥을 세운 하만을 향해 왕은 공신에게 어떤 보답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하만은 그 공신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에서 왕복과 말을 내려서 시내 광장을 돌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청한다. 그것은 왕의 다음 지위임을 만천하에 공포한다는 뜻이 숨겨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모르드개가 그 장본인임을 알고 그는 당황해 어찌할 줄 몰라 한다. 다시 잔치 자리. 왕과 하만의 대화에서 상황이 역전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는 독자에게, 도대체 어떤 방식의 결말이 있을까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날 잔치는 정말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청율을 높이려고 이야기를 질질 끄는 어느 드라마와는 달리, 결말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에스델은 왕후 살해 음모를 왕에게 고발하고, 하만은 졸지에 왕후를 죽이려는 음모꾼이 된다. 그녀가 유다인 출신임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 하만은 왕후에게 다가가 하소연하는데, 왕은 이것이 왕후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하만을 죽이기로 결정내린다. 하만의 최후는 공교롭게도 그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장대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에스델은 끝까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하만의 처형 결정이 내려진 것도 에스델의 성적 매력을 탐닉하려 한다고 착각한 왕의 분노에 근거한다. 요컨대 본문에 의하면 에스델의 문제 해결 방식은 그녀가 자신의 성을 '지혜롭게' 잘 사용했다는 걸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노련하게도 이제 스토리 진행 속도를 매우 빠르게 전환시킨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벼슬과 재산을 접수하게 됐고, 유다인 살해 정책을 폐기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유다인을 죽이려는 음모에 동참한 자를 무차별 살상하라는 칙령이 내려진다. 그리하여 거사 날, 곧 아달 월 13일에 유다인들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유다인들에 의해 닥치는 대로 살해된다. 전국에 걸쳐 무려 7만 5천 명이 죽었고, 하만의 아들 열 명도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축제는 다음날인 14일까지 계속되는 데, 이 날을 유다인들은 부림절로 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결말을 잊지 않는다. 모르드개는 왕의 위대한 대신이 되어 유다인들의 기억에 길이 남게 되었다고. 이상에서 우리는 이 책의 본론부터 집중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민족주의임을 보게 된다. 이방 여인으로 인해 야훼의 구원의 손길이 한 몰락한 가문 위에 내리게 되었다는 룻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더욱이 그 민족주의의 내용이 엄청난 폭력도 마다치 않는 전투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보게된다. 3 우리는 에스델서에서 표현하고 있는 주체 형성의 요소가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음을 본다. 하나는 성, 특히 '여성다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유다 민족주의, 즉 '유다인다움'의 문제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여기서 가장 중시되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임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인 즉슨, 앞서 말했듯이, 적에 대한 가혹성을 결코 아끼지 않는 과도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변되고 있다. 물론, 필시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습득되었을, 국제적 관계의 긴밀함에 대한 인식이나, 우호적 이방국에 대한 이해심까지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적성국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공격성을 드러내는 민족주의가 본문에서 미화되고 있다. 학자들은 부림 절기가 널리 준수되던 때가 반제국주의적인 마카베오 혁명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라는 사실(마카베오하15,36)과 연관시키면서, 에스델서 저자의 배경을 이 당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시 마카베오 혁명군은 반제국주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외교관계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아무튼 에스델서의 민족주의는, 시대의 절실한 요청에 부응한 것이든 그런 절실함이 식어버린 시대를 아쉬워하며 그것의 새로운 부활을 꿈꾸는 것이든, 분명 민족주의라는 대강령 속에 모든 것이 희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성에 대한 두 가지의 규제 방식이 드러난다. 하나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조율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성만이 의미가 있다는 규율이다. 소설은 교묘하게 둘이 모순되지 않고 합류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실제에선 둘이 종종 모순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논쟁할 생각은 저자에겐 전혀 없는 것 같다. 즉 여자는 모름지기 여자다움을 통해서 민족을 위해 헌신하라는 주장 정도가 이 책의 주된 논조가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세계관이 숨겨 있을 것이다. 남성은 남성다운 용맹과 지혜로서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치라고. 요컨대 '가부장주의적 민족주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각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여건이 어떠하든 간에 현존하는 지배적 담론이 추구하는 프로그램이 정당하며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최선/차선의 선택이라는 일종의 '판단마비 효과'를 발생시킨다.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호명 과정 속에서 주체들이 형성된다. 그래서 각각의 성적 주체들은 자신들이 가부장제의 대리인이라고 오인하게 되며, 또 민족 구성원들은 민족의 대리인으로 스스로를 오인하게 된다. 그래서 가부장제를 지키기 위한 투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다하지 않고, 또 기꺼이 광신적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장치 가운데, 이스라엘에서는 에스델서가 한 역할을 했음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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