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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12/21 (19:58) from 210.219.97.54' of 210.219.97.54' | Article Number : 133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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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623 , Lines : 90 |
| 임지현 교수의 '일상적 파시즘 워크숍' 발제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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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교수의 '일상적 파시즘 다시 읽기' 입니다. 자세한 것은 '뉴스방'에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 '일상적 파시즘' 다시 읽기 '파시즘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따위의 구호를 받아들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파시즘은 이미 발생했고, 또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욕망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은 사회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파편적으로 산포되어 있다. 그것이 취하는 형태는 어느 장소에서든 지배적인 권력관계에 의존할 것이다.1) ―펠릭스 가타리 임지현(당대비평 편집위원) I. 시지프스의 노동? 지식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당대비평의 '우리 안의 파시즘' 특집이나 내가 제기한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다양한 비판은 일단 고무적이다.2) 당대비평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소통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은 다시 우리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이 땅의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 문제제기가 현실 정합적이지 못하고 실천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엄연히 존재한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러한 비판의 존재 자체는 이미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제기가 이 사회 현실의 그 어떤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비판을 무시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당대비평이 화두로 던진 '우리 안의 파시즘'이 결점이 없는 이론이라고 강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분명 현실의 지형도를 잘못 읽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훗날 보면, 건강한 실천적 지향을 굴절시켰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실천의 굽이굽이마다 치열한 고민과 냉정한 분석 그리고 자기 반성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정 가능한 굴절이 아닌가 한다. 우선은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비판자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용의 진보성이 곧 비판적 학문이나 연구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사회적으로 소통되고, 그 소통의 관계망을 통해 비판적 대중이 형성되고, 연구내용의 사회적 확장이 다시 비판적 연구를 견인하는 지식과 사회의 교호작용이 아닌가 한다.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고무적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나는 그것을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제기가 사회적으로 소통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일단 이해한다.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겠지만, 그러나 지금의 소통방식이 온전한 첫 걸음인지는 자신이 없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비판과 반비판이 건설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텍스트에 대한 성실한 독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판과 반비판의 전선이 형성될 때, 그 논쟁은 사회적으로 소통되며 또 다양한 읽기와 비판을 통해 텍스트 자체를 풍부하게 만든다. 논쟁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기된 비판들은 아직 생산적 논의 수준에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의 논의가 텍스트에 대한 성실한 읽기보다는 이미지 비판 혹은 인상 비평에 머물기 때문이다. 일상적 파시즘이 민중을 파시스트로 간주하고 "민중을 적으로 돌리는 논리"라는 논리적 비약과 왜곡에서부터 운동의 후퇴국면에서 나타나는 문화주의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 심지어는 극우와 '내통'하는 논리이며 진보허무주의라는 서릿발같은 논고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 비판들은 선정적 어휘구사와 자극적 결론만으로도 충분히 도발적이다. 그러나 텍스트에 대한 성실한 독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그것은 논리적 호소력을 지닌 지적 도발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감정적 자극에 그칠 수밖에 없다. 비판의 많은 부분이 부정적 이미지 연상효과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우리의 절실한 문제제기를 일정한 이미지로 덮어버림으로써 현실의 복잡성에 대한 생각들을 저해하는 억압적 권력담론으로 발전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이상과 같은 비판들에 답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그러나 이들 비판에 대한 반(反)비판이 이 글의 의도는 아니다. 생산적인 비판과 반비판의 전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논점을 명확히 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논의의 초점은 그러므로 비판에 대한 반비판이 아니라, '일상적 파시즘'의 논점들을 명확히 하는 데 두어질 것이다.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이 비판적 실천으로 도출된 과정에서부터 그것이 갖는 현실비판과 실천적 함의, 제도 혹은 구조로서의 거대 파시즘과 일상의 미시 파시즘과의 관계, 구조와 행위의 문제, 지배권력과 민중의 상호관계 등을 '일상적 파시즘'의 입론 위에서 밝힐 것이다. 당대비평을 통해 이미 던져진 텍스트들의 부분적 반복이 불가피하겠지만, 논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번거로움이 아닌가 한다. 또 다시 시지프스의 노동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나는 개인사의 차원에서 일상적 파시즘 비판론자들이 걸어 온 실천의 역정이나 고민의 흔적들을 깍아 내리거나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 논의가 비록 오해에 기초한 것일지라도, 생산적인 부분들은 당연히 수용할 것이다. 해석학적 오류의 생산성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이들 비판이 갖는 문제는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아니다. 오해는 풀면 되고, 왜곡은 바로 잡으면 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비판이 질풍노도의 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이 사회 진보세력 특유의 고정관념, 즉 도덕적 잣대로 현실을 양분하고 그 이분법에 복합적인 현실을 뜯어 맞추는 당위론적 이해방식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복합적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대한 민중의 다양한 대응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제안이 위에서 아래로 민중을 내려다보는 시각, 또 심지어는 민중을 적으로 돌리는 논리로 읽히는 데서 그것은 잘 나타난다. 발생론의 관점에서 80년대의 시대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 이러한 고정관념이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발생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과 현실 정합성이 없는 신화적 현실 인식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한, 이 전위적 지식인들의 숭고한 민중주의적 포즈나 실천은 시지프스의 노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개별비판들이 갖는 세세한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규정하는 인식의 틀이 아닌가 한다. 이 글에 불가피하게 어떤 반비판의 부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현실인식의 준거틀을 겨냥한 것이다. 모쪼록 오늘의 이 논의 마당이 또 다시 시지프스의 노동으로 무화되지 않고, 생산적 논쟁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II. 정치적 민주화 혹은 권력의 합리화?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에 대한 실천적 논의는 군부 파시즘을 겨냥한 것이었다. 정치한 이론적 분석보다는 수사와 구호의 차원에 머물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력에 의존하여 신체에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억압체제를 가리킨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문민정부'와 '국민정부'를 거치면서, '군부파쇼'라는 구호가 사라진 데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적어도 법과 제도의 틀에서는 일정한 정도의 민주화가 진전되었기에 가능한 변화일 것이다.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과정은 미흡한 대로 법·제도의 민주화 또는 합리화 과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나 호주제와 같은 악법이 엄연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80년대 내내 '국민의 여망'이었던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되고 다원적 의회주의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의 틀이 어느 정도 바로잡힌 것도 사실이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민주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아닌가 한다. 정치적 민주화는 인간해방을 향한 일보 전진이라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굳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창발성'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민중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정이 독재나 과두정보다 발전된 형태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해방의 기운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가 가져 온 해방이 불충분하고, 사회적 해방이 신자유주의에 발목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서는 현실이 해방에 대한 기대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크빌을 패러디한다면, "억압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억압에 대한 감수성은 더 예민해졌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에서 보듯이,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의 정치적 민주화는 군부파시즘이 무력으로 가두어 두었던 해방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민주화는 역설적으로 정치적 해방과 계급해방의 영역을 넘어서는 전면적인 해방을 요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권력의 지배와 착취가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생활에까지 관철되는 메커니즘을 고찰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면적 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민주화는 부족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국민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법과 제도의 틀 속에 해방의 에너지를 가두어 두는 위험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당장의 생존과 최소한의 자유가 절박했던 8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일종의 사치일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고 해서 80년대의 운동 관성에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붙들어 맬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21세기의 초입에서 얻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정치적 민주화가 해방과 억압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눈에 보이는 정치적 해방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상적 삶에 대한 은폐된 억압구조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민주화=정치적 해방이라는 단순화된 등식의 이면에는 권력의 합리화 혹은 정당화라는 날카로운 발톱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발톱은 민주주의의 작동 기제인 민중의 정치참여 그 자체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민주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억압이 고도화된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독재 대 민주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합리화된 권력이 펼치는 이 게릴라 전을 이해할 수도 또 포착할 수도 없다. '일상적 파시즘'이 겨냥하는 것은 민주화 과정의 이면에 숨어있는 권력의 합리화 혹은 정당화라는 이 지점들이다. 그것은 21세기의 해방이 정치 해방과 노동 해방의 영역을 넘어 사회관계와 일상생활에서 관철되는 권력의 지배와 억압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것을 통한 전면적인 해방을 지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알다시피, 합리화된 권력은 신체에 대해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저개발된 군부권력과는 양태를 달리 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의 미세한 국면까지 지배권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을 무기로 삼는다. 권력은 이제 교묘하게 정신과 일상을 조작하는 고도화된 장치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은폐한다. 사실상 90년대 이후 권력의 자태전환은 단순히 민주화 투쟁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6·29 선언에서 보듯이, 밑으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한 권력 자신의 자태전환에 대한 의지와 결단에서 비롯된 바도 큰 것이다. 어느 면에서 70년대의 유신체제와 80년대 후반의 5공화국이 겪었던 정치적·사회적 위기는 합리성이 결여된 권력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자본을 포함한 권력의 기제들을 국가주의의 목표에 맞추어 경직되게 조직하고 민중을 억압적인 감시체제로 묶어 두었던 권력의 작동방식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미 남한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90년대의 민주화는 그러므로 권력의 합리화 과정으로 읽혀진다. 권력의 존재방식이 노골적인 것에서 은밀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면, 그 작동방식은 강제와 억압에서 내면화된 규율과 가치를 통한 합의와 자발적 복종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자태전환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단일하고 대규모적이며 직접적인 억압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겠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 권력의 생존은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권력의 요구에 맞추어 내면화시키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거대체제로서의 사회구성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출생에서부터 각 개인의 삶의 유형을 찍어낸다는 가타리의 지적이 와 닿는 것도 이 지점에서이다.3) '일상적 파시즘'이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지배코드와 그것에 맞추어 만들어진 가치와 태도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다는 점이다. 권력의 이 내밀한 지배방식은 물론 근대화 과정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더 정교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상적 파시즘'을 정치·경제적 파시즘의 대립 항에 줄 세우고 정치·경제적 파시즘의 극복이 일상적 파시즘의 극복보다 중요하다는 비판이 와 닿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우선하며 우월하다는 이원적 대립관계로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전형적인 형이상학적 사고가 아닌가 한다. 일상적 파시즘이 정치·경제적 파시즘보다 우선하며 더 중요하다는 또 다른 형이상학적 이야기가 아니다. 파시즘의 전선이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일상적 삶의 전면으로 확장되고, 사회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전면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배후에서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집단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련의 문화적 타성들, 권력에 의해 의도된 무의식적 습관과 태도 등에 파시즘이 구석구석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4) 파시스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체제가 아닌 태도로 규정했다는 사실도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5)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주화 운동이나 파시즘에 대항하는 진보운동, 노동운동조차도 권력이 만들어 놓은 지배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파시즘은 항상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념형으로서의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문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한 집단이 삶의 의미를 생산하고 교환하며 실천하는 장으로서의 문화가 주목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 때 사회·경제 구조와 문화는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관계들 자체가 이미 문화를 생산하고 실천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비투스는 현실세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문화적 형성물(구조화된 구조)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받아들이는 지각방식을 결정하는 현실의 힘(구조화하는 구조)인 것이다.6) '일상적 파시즘'론이 사회운동의 퇴조기에 나타나는 문화주의라는 일각의 비판도 기본적으로는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은 데서 비롯된 오해가 아닌가 한다. 그 밑에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이분법의 관성에 안주하면서 '문화'를 상부구조에 끼워 맞추는 기계적인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의식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선을 부문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으로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 코드에 따라 삶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일상의 영역으로까지 전선의 외연을 넓히자는 것이다.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법과 제도를 바꾸고 정의로운 사회·경제 체제를 만들면 세상이 변화한다는 순진한 변혁전략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에서 이미 그 역사적 파산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 파시즘을 작위적으로 일상적 파시즘에 대립시키고 전자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논의는 사실상 20세기의 변혁운동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기계적이거나 피상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들보다 해방의 대의에 덜 헌신적이었거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과 포위전략이 혁명을 질식시켰다거나 또는 스탈린과 같은 악당이 혁명의 과실을 가로챘다는 식으로 간단히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거울로 진지한 자기성찰을 시도할 때, 가장 아프게 와 닿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라는 근대의 변혁전략이 토대와 상부구조의 기계적 이분법 아래 전선을 토대의 문제로 환원시켰다는 점이다.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정치·경제적 파시즘과의 투쟁으로 환원시키거나 일상적 파시즘을 그것에 종속시키려는 시도도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한계를 공유하고 있다. 더 중요하게는 그러한 이분법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운동 자체가 파시즘적인 억압 기제를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집권 공산당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관료화된 노조, 1968년의 프랑스 공산당과 노동총연맹, 중앙의 지도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밑으로부터의 욕구를 억압한 한국의 운동 조직 등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7) 이들 운동이 정치·경제적 파시즘의 타도에 성공했다고 해도, 파시즘의 코드를 내장한 이상 그것은 새로운 파시즘을 생성시킬 뿐이다. 민중들의 일상적 삶에 깊이 침투한 지배적 권력 코드를 분쇄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여 변혁을 시도하고 결국 스탈린 체제로 귀결된 소련의 역사적 경험이 그 좋은 예이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규범에 문화적으로 도전한 68의 시도가 소중한 것은 반면교사로서 그것이 갖는 그 역의 실험성 때문이다. "히틀러를 창조한 미시정치는 파시즘의 새로운 미시적 결정화가 동일한 전체주의적·기계적 계통 위에서 낡은 것들을 대체하는 한, 바로 지금 여기에서-우리의 정치운동 및 노동조합 운동 속에서, 가족과 학교등의 소집단에서- 우리와 관련된다"는 가타리의 문제의식 또한 68의 소중한 성과로서 주목되는 것이다.8) 쉴러와 비셔의 질서미학에서 나치의 철학적 기반을 찾아내는 모스의 시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9)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상한 담론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미학 담론이 어떻게 대중들의 가치관을 파고들고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을 '히틀러 운동의 보루'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이야기한 '정치의 미학화'도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전선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리면, 예컨대 국가보안법뿐만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을 내면화하는 국민교육헌장과 국정 교과서, 가부장주의, 군사문화, 남성국수주의, 위계질서적 언어습관 등이 모두 파시즘의 공고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제들이 건재하는 한, 시민 사회와 생활세계에 깊숙이 자리잡은 파시즘의 성채는 완강하게 지속된다는 것이다. 불과 두 달만에 2천 5백만의 성인들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어 열 손가락의 지문날인을 했던 주민등록증 갱신사업에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잘 드러난다.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뿐 아니라 서유럽의 복지국가도 전체주의의 변종이라는 쿤데라의 지적이 단순한 문학적 감수성의 발로는 아닐 것이다.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단단한 성찰의 바탕 위에서 해방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면, 근대의 변혁논리는 상당히 제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그것은 토대를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무한히 복잡한 미시권력의 네트워크이자 일상 생활의 모든 국면에 침투한 권력관계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그것은 사회주의 노동해방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한 현실 사회주의 노멘클라투라의 권력 메커니즘에 눈을 감아 버렸다. 또 인식의 지평 자체가 생산관계와 제도의 영역에 고정됨으로써, 포괄적인 사회적 관계망과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권력의 지배와 착취가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하였다. 그것은 문화를 상부구조에 간단히 편입시킴으로써, 상징적 문화구성체와 그 안에서 표명되는 아비투스가 사회·경제 체제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따라서 더 큰 역사적 규정력을 갖기도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10) 물론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화, 즉 법과 제도의 민주적 변혁은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복지시스템이 요원한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근대의 역사적 과제 자체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적 파시즘과의 투쟁이 강조되는 것도 이 점에서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완의 정치적 민주화라는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일상적 파시즘과의 투쟁이 정치·경제적 파시즘과의 투쟁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계론적 이원론에 기초한 단계론의 발상일 뿐이다. 더욱이 우리는 국가권력과 정치권력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힘으로서의 '사회권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11) 파시즘의 대중적 뿌리에 대한 고민도 바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사회권력'이 파시즘의 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라는 정통성의 외투를 입은 파시즘은 고삐 풀린 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해방과 노동해방의 지평을 넘어서는 전면적 해방의 요구가 절실한 것도 바로 이 맥락에서이다. 이미 제 궤도에 들어 선 권력의 합리화 과정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이다.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규율권력'에서 '규격화된 권력'으로의 전환 또한 가속화될 것이다. 권력의 합리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권력은 대중들의 일상적 삶 속에 연착륙을 시도한다.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억압적 법체계보다는 일상에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 미시권력의 네트워크가 더 효율적인 권력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파시즘의 대중적 뿌리도 깊어지고 전선 또한 그에 비례하여 확장될 것이다. 파시즘의 전선이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일상적 삶의 전면으로 확장되고, 사회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전면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파시즘의 지배코드가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단지 안보이는 것일 뿐이다. 일상적 파시즘과의 투쟁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결국 합리화된 권력 앞에서 스스로를 무장 해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III. 전유된 민중 혹은 전유하는 민중? 80년대의 '변혁적·과학적 민중론'의 두드러진 특징은 민중에 대한 규범적이고 고정적 인식이다. 이 인식에 따르면, 민중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집중적 체현자이기 때문에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변혁과 투쟁의 주체로 뛰어들 것이었다. 민중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지양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는 규범적 행위자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변혁주체라고 추켜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에 대한 규범적 파악에서 민중은 역사의 합법칙성을 입증하거나 옳은 노선을 검증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작 민중 자신의 삶과 목소리는 기억에서 지워졌고, 대다수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일궈낸 삶과 생존은 진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라는 이름 아래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민중들의 생생한 현실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존의 민중론에서 중요한 것은 옳은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지도부의 이념과 방침이 민중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관철되는가였다.12) 지도부의 과학적 이론과 옳은 노선이 거부될 때, 민중은 의식이 미성숙한 대중으로 간단히 차치되었다. 이 숭고한 민중주의의 틀 속에서, 민중은 더 이상 세계를 전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한 중앙의 전위에 전유되는 대상이었다. 민족과 계급의 거대담론이 설정한 규범적 행위요구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역사 속의 민중은 종종 '전근대적' '반봉건적' '소시민적' '미성숙한' 등등의 외투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것은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의 이름으로 지도 중앙이 민중을 담론적으로 전유하는 길을 열어 놓을 뿐이었다. 어느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았지만 노동자예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좌파 담론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한 현장 운동가의 절절한 회고는 중앙에 의해 '전유된 민중'론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준다.13) 민족과 계급의 변증법에 갇혀있는 기존의 시선을 해방시켜, 인간의 삶이 제기하는 다양한 모순과 일상적 삶의 경험에서 터져 나오는 민중의 절실한 요구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유된 민중에서 전유하는 민중으로 시선을 해방시킬 때, 경제투쟁이라 비판받아 온 수많은 싸움들도 더 이상 개량주의적 경제투쟁이기를 멈춘다. 한 폴란드 역사가의 평가처럼,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경제투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정치-경제 투쟁이며, 더 나아가서는 기계에서 인간으로 되돌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의 '문명투쟁'인 것이다.14) 임금인상 투쟁은 결국 삶의 내용을 확산시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자식들의 학비, 옷을 사고 싶어하는 욕망의 경계, 어떤 여가를 가질 수 있는 한계치, 친구를 만나서 나누게 될 우정의 모양, 이 모든 것에 접근과 배제와 한계에서 오는 기쁨, 비참함, 아쉬움, 세상을 즐겁게 보는 또는 분노케 하는 근거, 이 모든 것이 실린 것"이었다.15) 그것은 요컨대 노동자계급이, 즉 민중이 자신의 절실한 욕구에 따라 세상을 전유하는 한 형식이었던 것이다. 경제투쟁을 미숙한 계급의식의 표현 또는 개량주의라고 비난했던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노동운동은 의연히 존재한다. 사회주의는 의도된 기획이었지만, 노동운동은 구체적인 삶의 터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민중을 위한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민중의 삶은 그 기획의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것이다.16) 민중이 마땅히 옳은 노선에 입각해서 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론은 민중주의적 포즈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위로부터 민중을 전유한 것이었다. 저항과 투쟁의 변혁 주체라는 민중 신화는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다수 민중을 배제하고 타자화 함으로써 자신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단 저항과 투쟁뿐만 아니라, 권력에 대한 자발적 혹은 암묵적 복종, 파시즘에 보낸 갈채와 열광적 지지 또한 민중이 세계를 자신의 방식대로 전유하는 모습일 뿐이다. 밑으로부터의 시각이란 자신이 기획한 변혁이론에 적합한 민중의 이미지에 맞추어 민중을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세계를 전유하는 다양한 방식을 일단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저항과 투쟁의 변혁주체로서의 민중을 강조하는 기존의 과학적 민중론은 사실상 민중을 전유하기 위해 밑으로부터의 시각을 가장한 위로부터의 시각일 뿐이다. 그것은 "국민 대부분은 강력한 타율에 지배당하는 습성을 제 2의 천성으로 한다"는 박정희의 민중론과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지만, 위로부터 자신의 의도에 따라 민중을 규범화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형이상학적 틀을 공유한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민중에 대한 김수영의 시적 감수성만 있어도, 좌·우가 공유하는 이 형이상학적 민중론의 자기기만성은 여지없이 폭로된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민중이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바로 그 민중이며,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민중이 "바람보다 먼저 눕는" 바로 그 민중인 것이다. 사실상 지배와 억압의 대상이자 저항과 투쟁의 주체라는 민중을 구성하는 이중성은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항을 내장한 지배의 딜레마가 있는가 하면, 저항 속에 이미 지배가 들어 와 있기도 하다. 억압의 현실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민중이 저항의 주체가 되리라는 기대는 종종 배반되었으며, 억압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법칙적인 전화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황병주가 지적하듯이, "민중은 지배와 저항의 경계선상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구성과 해체의 이중적 계기를 통해 동질적 집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차이의 공간'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17) 민중이 세계를 전유하는 방식은 요컨대 국가권력을 거부하는 자율적 일상세계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로 표현되는 권력의 '내적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적인 것이다.18) 그것은 민중이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단일한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차이의 공간'으로서의 민중을 염두에 둔다면, 파시즘의 메커니즘은 권력의 억압과 민중의 희생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도 그것은 민중을 객체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민중은 객체이면서 동시에 주체인 것이다. 민중의 주체성에 대한 물음은 자연히 그들이 세계를 전유하는 방식에 대한 물음을 낳는다. 그러나 민중의 주체적 사고와 행위가 완전히 자율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주체는 기존의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사고와 행위양식의 단층들을 형성한다.19) 파시즘에 대한 민중의 주체적 대응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혹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지지와 동의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점에서 당연하다. 기존의 사회관계에서 그들의 행위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효제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거대파시즘과 미시파시즘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의 사회적 존재론인 것이다.20) 이것은 '일상적 파시즘'론의 입지점이기도 하다. '일상적 파시즘'론은 구조에서 분리된 개개인의 자율적 행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파시즘의 전선이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일상적 삶의 전면으로 확대되어 있는 양상을 보자는 것이다.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일상적 파시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독재의 상흔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의 단층 속에 자리잡고 있는 파시즘의 기제들이 체제로서의 파시즘을 더 한층 공고한 것으로 만들기도 하며,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다시 일상에 자리잡은 파시즘의 기제들을 강화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히틀러나 스탈린, 박정희는 비정상적인 광기의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취하는 규범이나 태도, 사고와 행위양식 속에 침투해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파시즘이 인민주권설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의 정점이자 대중민주주의였다는 모스의 대담한 주장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사실상 나치의 '새로운 정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치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역사적 유산에 파묻혀 있는 '대중의 보수주의'를 발견하고 적절히 이용했을 뿐이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져 기계적 유물론자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안, 나치는 민중의 일상적 삶 속에 침투해 있는 파시즘적 기제들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구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기층의 삶 속에 불균형하게 그러나 전면적으로 펼쳐져 있는 '파시즘의 분자적 구성요소'들이 그것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21) 일상적 파시즘이 지배권력의 헤게모니에 포섭된 민중의 자발적 복종과 전체주의적 억압의 이면에 숨어있는 자발적 동원체제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이론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것은 지배와 저항의 경계에서 유동하는 민중적 주체가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한 순간에 지배의 편으로 쏠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이 '민중을 적으로 돌리고', '이제 진정한 파시스트는 민중'이라는 논리로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 파악할 만큼 비상한 재주는 없다. 악의적인 독해라고 생각하기도 싫다. 굳이 논리적으로 해석하자면, 민중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주체여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론이 전유한 민중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개성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저항과 투쟁의 변혁 주체라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다수 민중을 배제하고 타자화 하기에는 그 비판자의 민중주의적 포즈가 너무도 숭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중의 자발적 동원체제는 사실상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스탈린 체제, 또는 일본의 총력전체제에만 특화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구조와 체제의 유사성을 논하는 형식주의적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유신체제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배후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녹아 있는 '파시즘의 분자적 요소'들에 주목한다면, 양자간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 박정희의 지배담론인 '조국 근대화'론에 보낸 지식층의 광범위한 지지는 물론이고, '산업 전사' '근대화의 기수'라고 호명되어 국가권력에 의해 대대적으로 동원된 민중들이 보인 자발성의 메커니즘을 풀지 못하는 한, 파시즘은 과거의 일이 아닌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전쟁'이라는 언명에서와 같이 국가가 주도한 동원체제가 내면화과정을 거쳐 자율적으로 된 메커니즘에 대한 해명은 사실상 박정희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22) 1999년 국가의 호명에 따라 불과 두 달만에 열 손가락의 지문날인을 하고 스스로의 인권을 짓밟은 2천 5백만의 대한민국 성인남녀에게서 일상적 삶의 파시즘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상적 파시즘이 갖는 실천적 함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예컨대 반(反)파시즘 전선은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법제도적 반공주의에서 내면화된 반공주의까지,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에서 자발적 국가 동원체제를 합리화하는 통일지상주의까지, 국가의 권력기관에서 진보운동 내의 조직 관료주의까지, 가부장적 호주제에서 '우리' 안의 가부장주의까지, 한-미 행정협정에서 식민화된 의식까지, 물신 숭배적 문화정책에서 파시즘적 건축미학까지 전면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지점 하나 하나가 모두 파시즘의 그물망에 포섭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지점 하나 하나가 모두 반파시즘의 전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둘만 낳자는 국가의 가족계획사업에 어긋나게 아이를 셋이나 낳아 국가에 대해 죄스럽고 부끄럽다고 느끼는 평범한 농촌 여성에서부터 "학생장님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투쟁하자"는 학생운동의 구호, 가시적 목표를 정해 놓고 목표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총력전적 운동관행에 이르기까지 일상적 파시즘은 어김없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상적 파시즘의 숨겨진 얼굴을 보고 싶다면, 멀리 갈 것 없다.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23) IV. 반복되는 시지프스의 노동? 담론 권력의 관점에서 사회주의 운동사를 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상대방에게 흔히 '···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권력이 행사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현실권력에서 소외된 운동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운동의 기득권이 현실과 떨어진 채 담론 내에서만 관철되었던 것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좌파들의 이 독특한 권력 행사 방식은 실천의 리얼리즘을 실천의 형이상학으로 변질시키는 경향이 있다. 정확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순수 추상적 이성을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 착각은 결국 이론에 현실을 뜯어 맞추려는 경향을 초래했다. 파시즘에 대한 토대 환원론적 해석이나 민중에 대한 규범적이고 선험적인 인식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다. 그것은 다시 파시즘은 '그들'의 문제이고, 모든 죄와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24) 나치즘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사회주의의 건설과 더불어 파시즘을 청산했다고 선언한 구 동독지역이 신나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파시즘'론이 갖는 실천적 문제점을 전형적으로 드러내 준다. 한편 '그들의 파시즘'론은 그 이면에 민중은 투쟁과 저항의 주체이자 순결한 희생자라는 논리적 함의를 안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에게 심정적으로 이것은 참으로 뿌리치기 어려운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숭고한 민중주의가 갖는 민중에 대한 억압성과 폭력성이다. 이 숭고한 민중주의에는 저항과 투쟁을 포기하고 파시즘에 지지와 갈채를 보낸 민중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참된 민중이 아니라 '봉건제의 탯줄을 끊지 못한' '의식이 성숙되지 못한' '지배계급에 포섭된' 등등의 대중으로 배제되고 타자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유동적이다. 민중의 일상적 삶은 국가권력을 거부하는 자율적 일상세계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로 표현되는 권력의 '내적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적인 것이다. 그것은 곧 민중이 세계를 전유하는 방식이며, 숭고한 민중주의에 전유된 민중의 추상적 행위양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전유된 민중에서 전유하는 민중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위로부터 민중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아래로부터 민중의 시선에서 민중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는 구호는 자기 역사를 쓰는 스웨덴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민중주의 지식인들에게도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을 파헤치고 있는가? 이 자기성찰적 질문들에 대해 같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한, 오늘의 이 모임 또한 지겹도록 반복되는 시지프스의 노동으로만 남는 것은 아닐까? ♣ [각주] ) 펠릭스 가타리, "파시즘의 미시정치," 서울 사회과학연구소 편,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 (푸른숲, 1997), PP. 213-214. ) 임지현 외 지음,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0) 참조. ) 가타리, "앞의 글," P. 212. ) 움베르토 에코, "퍼지 전체주의와 끝없는 파시즘," 김성도 역 <<세계사상>> 2호 (1997, 가을), P. 228. ) G. L. Mosse, The Nationalization of the Masses (New York, 1977), p. 9. ) 임지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중심이동," <<역사와 문화>> 창간호 (2000, 3), P. 44. ) 서구의 운동과 한국의 운동에 나타나는 이러한 양상에 대해서는 임지현, "사회주의 거대담론의 틈새 읽기,";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소나무, 1999), pp. 321-355참조. ) 가타리, "앞의 글," p. 206. ) Goerg L. Mosse, op. cit., pp. 23-27. ) 이에 대해서는 "위의 글"; 알프 뤼트케 "서문: 일상사란 무엇이며, 누가 이끌어 가는가?," 알프 뤼트케 편, <<일상사>> 나종석 외 역 (청년사, 2001 발간예정) 참조. ) 조희연,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당대, 1998), pp. 154-157. ) 역사학의 관점에서 기존의 민중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이용기, "미군정기의 새로운 이해와 '사회사'적 접근의 모색," <<역사와 현실>> 35호 (2000, 3); 임지현, "근대의 담밖에서 역사읽기-20세기 한국 역사학과 근대의 신화," <<한국사론>> 참조. ) 임인애, "감정과 침묵: 과거가 될 수 없는 시간과 잔류자의 기억," <<당대비평>> 13호 (2000, 겨울), p. 78. ) F. Tych, "Bunt dzki z Maja 1892 Roku na Tle Ruchu Robotniczego w Europie,"(유럽 노동운동의 배경에서 본 1892년 5월 우치 봉기) in P. Samu ed., Bunt dzki 1892 Roku ( d , 1993), p. 10. ) 김진균, "일상적 노동과 상상력 그리고 욕망," 임인애, "앞의 글," p. 76에서 재인용. ) 에릭 홉스봄, "노동운동의 세기," 임지현 엮음,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삼인, 2000) 참조. ) 황병주, "박정희 시대의 국가와 '민중'," <<당대비평>> 12호 (2000, 가을), p. 51. ) 임지현, "파시즘은 살아있다" 임지현 외 지음,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0), pp. 6, 8. ) 알프 뤼트케, "앞의 글" 참조. ) 조효제, "마지막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녹색평론>> 54호 (2000, 9/10월), p. 146. ) 이에 대해서는 임지현, "파시즘의 진지전과 합의독재," <<당대비평>> 12호 (2000, 가을) 참조. ) 이에 대해서는 황병주, "앞의 글"; 김영미, "근대화와 아미리 마을공동체" 외의 이천 마을지 조사사업에 관한 글들을 보라. ) 이 구호는 원래 1970년대 스웨덴의 '밑으로부터의 역사'로 노동자의 역사를 쓰자는 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감히 차용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S. Lindqvist, Grabe wo du stehst (Bonn, 1989) 참조. ) K. Woycicki, Ofiary czy Wspolwinni: Nazizm I Sowietyzm w swiadomosci historycznej (희생자인가 공범자인가: 역사의식 속의 나치즘과 소비에티즘) (Warszawa, 1997), p.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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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생의 신학에 관한 질문과 민중신학을 둘러싼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