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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6/15 (21:56) from 211.49.91.42' of 211.49.91.42' | Article Number : 167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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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5149 , Lines : 85 |
| 김규황 씨가 도발한 '그 페미니즘' 논쟁의 반박글 두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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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는 이 논쟁과 관련된 글들 가운데, 이 두 분의 글이 가장 배울만 했습니다. 참조해 보세요. ----------------------------------------- 여성신문 675 (2002.5.10)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용기'를 어디서 얻었을까?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 여성학 여성신문은 최근 <말>지에 난 최보은씨의 "나는 박근혜 찍겠다" 발언과 <한겨레> 김선주 논설위원의 "여성도 더러워져야(?)" 그리고 <씨네21> 김규항씨의 "그 페미니즘"으로 이어진 '박근혜와 페미니즘' 논란에 대한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 교수의 반론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최보은·김선주 그리고 '노력하지 않는 마초' 김규항 <한겨레>는 더 이상 '여성주의'를 모욕하지 말라 2002년 4월 넷째 주. <한겨레21>을 통해 '진보주의자'로 알려진, 자칭 '노력하는 마초' 김규항씨는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라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의 '주류 페미니즘'이 "저급한 사회의식에 머물러 있고 사회적 억압에 무관심하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여성주의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이 글을 <씨네21>은 실어주었다. 2002년 4월 넷째 주.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김선주씨는 "박근혜 의원이 여성대통령 후보가 못될 것이 없다"면서 여성들이 "지나친 결벽주의를 버리고 서로 연대하고 지저분해 질 각오를"할 것을, 그렇지 않다면 "여성은 언제까지나 남성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는 주변 정치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한겨레신문>은 논설위원이 쓴 이 글을 신문에 게재했다. 2002년 4월 넷째 주. 인터넷 한겨레는 박근혜씨 논쟁의 일환으로 김규항씨의 칼럼과 김선주씨의 칼럼을 나란히 실었다. 그런데 냉소와 분노, 비아냥만 보일 뿐 논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논쟁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진지함과 성실성을 이 두 글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이러한 일련의 글들은 더 이상 여성 정치지도자로서의 박근혜에 대한,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진보언론'이 여성을, 여성주의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이다.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한겨레가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이와 같은 글들을 계속 내보내고 있음은 한겨레가 '여성주의'에 대해 무지하다는, 그러한 무지함을 "자랑스러워할 만큼" 무지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주류 페미니즘'을 '저급한 사회의식에 기초한, 그저 남근주의의 이면'이라고 비판한 김규항씨는 무지했기 때문에 '용감'했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했고 '주류'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 페미니즘의 지형을 읽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주변의 여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아는 데에는 대단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지식인으로서 최소한도의 성실성만 있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여성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최소한도의 성실성'도 읽을 수 없다. 그러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가 '용기'있게 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여성에 대해, 여성주의에 대해 함부로 다루어도 반갑게 실어줄 '진보'를 표방하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들에서 나는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함부로 다루어지듯이 여성들의 경험과 정신이 마구 다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최보은씨와 김선주씨의 글이 여성주의와 여성들간의 연대에 대한 왜곡이며 김규항씨의 글이 여성에 대한, 여성주의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최보은씨나 김선주씨가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라고 할 수 없는 그들의 주장을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음을 문제 삼는 것이다. 박근혜 지지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여성주의 아닌 것을 여성주의라 일컫지 말라 여성주의는 성찰성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어느 누구도 완전한 여성주의 시각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떠한 '철저한 여성주의자'라 하더라도 그의 의식과 행동에서 가부장적 잔재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이 한 말과 행동이 자동적으로 '페미니즘'이 될 수 없으며 우리 내부의 가부장적 잔재들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떨쳐버리고자 하는 성찰의 과정이 없는 곳에서 여성주의는 자랄 수 없다. 현실적으로 한 여성 개인이 할 수 있는 경험은 제한되어 있는 반면 여성들의 억압의 경험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많은 경우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과는 다른 여성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고통스런 경험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성찰성이다. 여성으로 태어났다 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차별을 '절절히 경험'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엘리트 여성들이 "나는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 "여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여성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하는 말들을 최보은씨는 들어보지 못했는가. 이러한 이유로 나는 "모든 여성이 태생적 소수자"이며 박근혜씨도 그러할 것이라는 최보은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소수자로서의 의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그리고 자신을 거부하는 환경과의 지난한 싸움의 과정에서 힘겹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박근혜씨에게서 어떠한 성찰성도 발견할 수 없다. 나는 박근혜씨가 단순히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독재자일 수도 있고 성폭력범일 수도 있다. 딸에게 아버지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성찰은 가능하다. 그 아버지에 대한 일고의 반성도 없이 오히려 그 아버지를 추모하고 그의 길을 따르겠다고 하는 딸에게서 우리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어떠한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단순히 박근혜씨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나왔다는 사실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삼는 것이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라는 언어는 권력을 얻기 위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으며 여성의 권리는 가부장적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뒷전에 밀려나야 하는 것이었다. 여성의 몸을 '달러버는 기계'로 만드는 '기생관광'도, 기본적인 권리를 찾고자 했던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성고문도, 하루 20시간의 노동을 견딜 수 없다고 저항하는 10대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보는 그러한 박정희의 정치관에 대해 일말의 성찰도 없는 박근혜씨에게서 우리는 '여성'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성찰성은 내가 원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은 오랜 동안의 학습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고통스런 용기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자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오히려 그를 정치적 지도자로 기리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갑자기 여성들의 고통스런 경험을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리라고 믿기 어렵다. 이것이 박근혜씨에 대한 지지를 여성의 독자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일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며 이 땅의 여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며 여성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유다. 여성주의의 핵심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여성 스스로에게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 여성은 일차적으로 '다른 여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남성 천국'인 언론을 여성언론인 스스로 바꾸지 못하면서, 수십 년 언론에 몸담고 있는 자신들이 언론계의 가부장성에 조그마한 균열을 내는 것도 그리 어렵다 하면서 어떻게 박근혜씨는 그보다 더한 정치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성언론인 자신들은 "인사권이 있는 자리에 앉아도 여성문제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줄까봐 여성중용을 꺼렸다"고 하면서 어떻게 박근혜씨에게는 "대통령이 된다면 재무, 법무 등의 핵심분야에 여성각료를 등용할 생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자신들이 바꾸지 못한 현실을 어떻게 보수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박근혜씨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이보다 더 비현실적인 생각이 어디 있는가? 비판과 고통없는 여성주의 연대는 불가능 '성찰'이 빠진 페미니즘은 있을 수 없어 여성주의에서 의미하는 연대는 모든 여성들이 서로에 대해 아무런 비판없이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연대는 아무런 고통없이 편하게 "나는 최보은씨의 말에 동의한다·그를 지지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간의 연대와 지지는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견고한 가부장제의 벽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내보려고 하는 시도에서 그리고 그러한 시도의 결과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고통스러움을 나누는 것이고 그 고통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내가 가진 자원을 나누는 일이다. 이미 충분히 '지저분한' '더러운 연대'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을 '결벽주의'로 매도하는 이 사회에서 한겨레 논설위원 김선주씨가 우리를 향해 "지저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새삼스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우리 사회의 철벽과 같은 가부장제 속에서 적당주의와 타협주의를 생존전략으로 학습해 온 여성들에게 '결벽주의'를 버리고 타협하기를 새삼스레 권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소수자가 살아남는 방식인가? 그리하여 <한겨레신문>은 정신대 생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정부가 정신대에 대한 공식 사과를 피해가기 위해 마련한 국민기금은 절대로 받으면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지 보름도 채 안되어 일본의 국민기금 광고를 신문 전면에 실어 온 것인가? 그리하여 <한겨레21>은 미국의 F-15K와 불란서의 라팔이 우리 나라의 안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전투기 광고를 시리즈로 실어 온 것인가? 이것은 모두 한겨레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는가? 그러고서 어떻게 한겨레는 경제개발을 위해 유신독재를 했다는 박정희를 비판할 수 있으며 여성교육을 위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김활란을 비판할 수 있는가? 최보은씨는 여성들을 위해 대선 후보자로서의 박근혜의 존재 의미를 '사유'할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박근혜의 의미를 '사유'할 것을 권하기 전에 여성에 대해, 여성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 그의 주장이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김규항씨와 같은 '노력하지 않는 마초'들에게 페미니즘을 모욕할 빌미를 주게 되었는지를. '진보'의 간판을 내건 <말>지나 한겨레와 같은 언론들이 어떻게 여성들을 희롱하고 여성주의를 모독하고 있는지를. ♣ ------------------------------------------------------------- http://www.unninet.co.kr/spc/s_view.asp?sort0=8&sort1=19&sort2=1 (웹진 언니네) '덜 떨어진' 맑시스트와 '제대로 안 떨어진' 맑시스트의 차이? 김영옥/ 문화평론가 이 글은 글쓴이가 씨네21 349호에 실린 김규항의 "그 페미니즘"을 읽고 일필휘지로 내려쓴 것이며, 주변의 열렬한 반응으로 씨네 21에도 실렸던 글이다. 그러나 씨네 21에 실리면서 안타깝게도 글의 분량이 많이 축소되어 원래 글의 매력을 볼 수 없었다. '언니네'는 이 글이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으며 페미니스트들을 가르치려드는 남성지식인들에 대한 대단히 적절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포커스에 이 글의 전문을 다시 싣기로 하였다. 쾌히 허락을 해주신 김영옥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1. 남성 진보지식인의 비겁한 수사학 예로부터 살인 중에서도 가장 저열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살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앞을 보고 가는 사람의 등뒤에서 칼을 꽂아 죽이는 것이었다. 지식인이 되는 방법, 그 중에서도 소위 '진보 지식인'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동기부여에 따라 나름대로의 성실성, 혹은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인'됨', 지식인'이고자 함'을 실천하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식인 유형은 어떠할까?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나름대로 제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진보성을 확보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걸음 두 걸음 두렵고 불안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음으로써 매번 '그 사람보다는 더 진보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언제나 가장 진보적'인 자리를 어부지리로 얻는 사람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겐 유감스러운 예기겠지만, 내 주변의 진보주의자 남성들은 하나같이 주류 페미니즘(정확하게, 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한다. ... 나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다.' ―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랬다지만 '주변의 진보주의자 남성들' 모두를 동원시켜 '주류 페미니즘'에게 한 수 놓겠다는 이 어줍잖은 몸짓은 사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놀랄 것도 없다. 스스로를 진보 지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 그는 주류 페미니즘과 비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구분도 하지 않는 채, 90년대 이후가 그 이전과 왜, 어떻게 다른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노력하는 마초'라는 고백 아닌 고백 하나를 담보로 청하지 않은 연설을 하고 있다. 결국 마초는 노력을 해도 '마초'일 뿐이라는 걸까?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지식인의 '진보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지식인에 과연 주류, 비주류가 있는가? 내게 있어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가장 애매모호하고, 정치적으로 가장 답변하기 힘든 질문이 바로 소위 '진보 지식인'의 위상이다. 지식인, 혹은 지식인의 진보성 등은 지식인으로서의 위치에 성실하고자 하는 사람의 자기 성찰적 질문일 수는 있어도 타자들을 향한 고발적 손가락으로서의 질문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답변이다. 더군다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삶의 모든 존재영역에 적용됨을 알게 된 이래로 내게 있어 소위 '진보 지식인'의 위상에 대한 질문 또는 의혹은 '진보 남성 지식인'의 위상에 대한 의혹으로, 그리고 (사실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진보 여성 지식인'의 위상에 대한 의혹으로 세분화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오해하지 마시라. '한국에서 진보 여성 지식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보 '여성' 지식인의 존재여부 또한 '누가 명명하는가'라는 언어권력의 정치학에 속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진보 여성 지식인'의 존재는 실제 존재 자체와 무관하게 희박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의 관대한 평가 속에 포함된 여성 지식인들의 숫자를 세어 보는 것은 지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한국의 '지식인 산업체계'는 어떤 구조를 지녔는가? 이것을 알게 해 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투쟁하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무엇이 진정한 페미니즘인가'를 둘러싸고 윤리적 갈등에 싸여있을 때 소위 '진보 지식인'인 남성들은 한국 사회의 '진정한 페미니스트' 명단까지 발표함으로써 자신들의 '보다 우월한 판단력'을 과시하지 않았던가. 나는 한국문학을 도이치어로 번역하는 시도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한국문학을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 소개하는 사람들을 만나 번역의 어려움을 주고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할 경우 번역가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 나라 출판인을 가장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문학의 지독한 계몽주의적 성격이다. 작가들은 거의 모두, 기꺼이 스스로를 선생의 자리에, 혹은 지도자의 자리에 앉힌다. 독자들에게 누누히, 거듭거듭 정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책무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동일한 이야기를 민망할 정도로 자주 반복한다. 이것은 반복을 문학 텍스트의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는 서구에서는 이해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문학적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여백을 위해 가능한 반복을 줄여달라는 저쪽 출판사의 요구에 따를라치면 원문은 번역 후 3분의 2 혹은 심한 경우 반 정도로 줄어든다. 물론 원문에 대해 이런 '폭력'을 가할 권리가 있느냐는 혹독한 갈등도 뒤따른다. 저쪽의 문학관습보다 이쪽의 문학관습을 더 존중해야 번역의 정치학에 맞는 태도 아니냐는 성찰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번역을 포기하고 싶다는 고백들이 빈번하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대부분의 작가는 남성 주체들이다. 이들의 예가 보여주듯 한국에서 남성 지식인은 너무나 오랫동안 '계몽주의자'의 역할을 해 왔다. 일정 기간 동안 그것은 시대가 부과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 지식인들에겐 유감스런 얘기겠지만' 그러한 과제가 부과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지금까지도 많은 남성 지식인들은 (물론 소위 '진보 지식인들' 또한!) 관습으로 굳어진 상태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더군다나 어떤 경우 새로운 것은 아예 모르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계몽주의자의 역할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아아, 나는 이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덜 떨어진 휴머니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목에 힘을 주고 무엇인가를 설교해야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그들의 '과잉 욕망'은 타자에 대한 예의에서 좀 벗어난다는 것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2. '관심을 가져야 할 일'과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일' 사이 지난 4월 11일에 끝난 여성영화제에 참석한 해외손님 중에는 베를린 영화제 '영 포럼'의 심사위원인 도로시 베너도 있었다. 지난 6년간 지속적으로 한국 영화계와 관계를 맺어온 그녀는 '처음에 한국 영화를 대할 때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영화에 허다하게 출몰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다. 그러나 점차 여성에 대한 폭력성이 줄어들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고 6년간의 한국영화 동행기를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나쁜 남자>에서 다시 등장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버젓이 만들 수 있는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용인해 주는 한국 사회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베를린 영화제가 그 영화를 초청, 상영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것이다. 정말 내막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디에건 서로 결합하는 남자들은 있기 마련 아니냐'고 답변했다. 굳이 외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는 까닭은 <나쁜 남자>를 둘러싼 논쟁을 의기양양하게 종결시킨 것 중의 하나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그리고 '그곳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시라. 그곳의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단지 남자배우의 눈에 띄는 연기력만을 칭찬하고 있을 뿐이다). <나쁜 남자>같은 영화가 훌륭한 작가영화로, 예술영화로 선전될 때, 예술의 정치학, 혹은 정치의 미학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나쁜 남자>의 이데올로기를 문제적으로 언급한 남성 지식인은 한국 사회에서 한 명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에게 마음이 쏠렸는데 원했던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어 버리는' 한 주변부 남자 '깡패'의, '사랑 이야기라고 계속 강요된 폭력'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렇다 나는 중산층 혹은 상류계층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서 억압받을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아니 억압 정도가 아니라 삶의 총체적 차압, 압류, 파괴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영화는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중산층, 혹은 상류계층 여성이 결혼 후 하층계급 남성들에게 ('남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당하고 사는지를 들여다 볼 것이다. (나태한 진보지식들이여, 몸을 일으켜 정희진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를 몇 장이라도 읽어볼지어다) 남성 지식인들은 <나쁜 남자>를 오히려 인간실존의 극단적 고통, 저열함과 비참함의 미학, 불가능한 사랑 등 다양한 '휴머니즘과 미학주의의 수사학'을 동원해 포장함으로써 재현물에 새겨져 있는 특정 이데올로기의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과 효과를 지우는데 은근슬쩍 동조했을 뿐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내내 나태한 낮잠을 자던 어떤 소위 '진보 지식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페미니즘 싫다'고 선언한다.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에게 하층계급의 억압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성적 억압만을 유일한 사회적 억압으로 간주한 채 '나른한 카타르시스'를 즐긴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아아, 지루하다. 나는 거의 10년간 시간강사(소위 보따리 장사)로 생계를 유지해 온 사람이다. 시간강사 생활 10년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 알량한 지식과 교양의 '부르주아지' 출처와 내 프롤레타리아 경제생활수준 '사이'에서 이제까지의 '계급'에 대한 수정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었다. 주류와 비주류를 그처럼 비분석적으로, 뭉뚱거려서, 비성찰적으로 자신은 몸담고 있지도 않은 그룹의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남성 진보 지식인'에게, 그토록 망설임 없는 당당한 태도로 앞에 가는 사람의 등에 총체적 무효선언의 칼을 내리꽂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사람에게, 사실, 내 계급적 위치의 착종성, 그리고 내 계급적 위치가 지금처럼 된 것이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적 지식산업체계와 맺는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관계'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와 연대해야 하고, 누구와 격렬하게 논쟁해야 하는지, 어디서 에너지를 써야 할지 정도 쯤은 알고 있어야 '페미니즘 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페미니스트에게는 상식이다. (말하는 주체로서, 욕망하는 주체로서, 자유를 원하는 주체로서 살고 싶은 여자에게 페미니즘은 '사는 것', '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쓴다. 왜? 어렸을 때부터 문학 책을 끼고 살았던 나는 험한 말에 대한 자기검열이 심하다. 살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로 살면서 '재수 없는'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나의 저 알량한 문학적 감수성과 지식인으로서의 학문적 품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재수 없다'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써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은 '재수 없다'는 말을 써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마침 그런 나의 소망과 적절한 계기가 '접속'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이래 자본주의가 가부장제와 결탁해 어떤 식으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확산, 운용해 왔는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착한 여자, 착한 아내' 등 '좋은 여성' 이데올로기를 다양하고 세련되게 선전, 상품화했는지를 '진보주의자 남성들'에게 새삼스럽게 새로 들어야 할 만큼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한가하지 않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글로벌 자본이 여성의 몸과 노동력을 어떤 방식으로 유혹하고 착취할 지, 이제 밀어닥치는 새로운, 더욱 더 강도 높은 계급사회에서 누가 가장 비참한 하층계급이 될 것인지, 글로벌 소비문화시대에 여성의 몸을 둘러싼 그 무성한 음모와 유혹들은 또 어떤 방향으로 심화될 것인지―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고심하기에도 힘이 딸리고 시간이 모자라는 때 아닌가. 3. 마지막으로 '여자들'의 특기인 '잔소리'를 덧붙임 누가 주류 페미니스트이고 비주류 페미니스트인가를 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구태여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로서 일하고 쓰고 느끼고 투쟁하고 괴로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주류, 비주류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무조건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을 주류라고 싸잡아 범주화시키는 것은 아마도 '덜 떨어진 맑시스트'는 아닐지 몰라도 '제대로 안 떨어진 맑시스트'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태한 낮잠에서 몸을 일으켜 웬만큼 큰 서점에 들어가 소위 '여성학'이라 이름 붙여진 서가들 앞에 선다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본다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과 위치에서 다양한 페미니즘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소위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 뿐만 아니라 '하층계급 인텔리/노동자 여성들'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해체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구체적이고 면밀한 현장검증과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 및 노동운동, 그리고 노동운동사와 젠더의 문제를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과 노동문화에 대한 올바른 해석? 한국 근대화 과정과 여성노동? 글로벌 자본의 흐름과 노동력의 재편성, 그리고 여성노동력의 관련성? 이 모든 것의 올바른 의미화를 위해 소위 '남성 진보 지식인'들이 소위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의 기치 아래 투자한 해석학적, 정치학적 투쟁의 역사가 과연 있기나 하던가? 70년대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저 '산업역군들'이 각종 '이즘'을 위해 자신들을 도용하던 진보 세력에 대항하던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은 없는지. 어쩌다 잡지 한번 읽고는, 어쩌다 무슨 신문기사 하나 읽고는 '90년대 주류 페미니즘', '나른한 카타르시스' 운운하는 것은, 아아, 해도 너무한다, 정말 지루하다. 솔직히 말하자. '성적 억압의 좀더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에 대해 남성 진보 지식인이 페미니즘을 '살면서 고민하는'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연민을 가지고, 더 굳건한 연대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하층계급 여성이 성적 억압을 더 받는다는 가설도 문제적이지만 소위 '남성 진보 지식인'이 이들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연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주장은 문제적인 정도롤 넘어서 아예 맹목적인 오만을 드러낸다. 남성 지식인들이여, 그대들이 진보주의자인지 아닌지 우리는 별로 관심도 없다. 다만 당신들이 '한국의 페미니스트가 누구인가' 지적하고 명명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 '한국의 주류 페미니스트들'과 '한국의 억압받는 계층 여성들'을 분리시키고 이간질시키기에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다층적 면모에 대해 그대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것, '한국의 억압받는 계층 여성들'의 자리에서 그들을 '위해', 그들의 '대변자'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어버린 그대들의 그 착각이 바로 그대들이 '구성된 마초'라는 것, 그 구성성에서 탈골하려면 보다 더 '겸손히 연대하는' 자세를 연마해야 한다는 것만은 좀 일반 상식으로 알아주었으면 할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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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생의 신학에 관한 질문과 민중신학을 둘러싼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