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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09/09 (02:55) from 210.115.123.112' of 210.115.123.112' | Article Number : 90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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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113 , Lines : 22 |
| Re: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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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사나운 중에도 질문은 매우 날카롭군요. 즉석에서 답변하기에는 무거운 질문이어서, 지혜롭게 대답을 드릴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문화정치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은 저항의 당위성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라는 물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화정치학'적 문제설정을 민중신학에 도입한 것은, 규용 님의 이해대로, 저항의 지점을 일상생활에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거시정치와 미시정치를 결합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시정치는 지향 이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중의 삶과 직결되지 않은 저항 지점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저항의 당위성을 대중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거시정치는 기본적으로 계몽적 담론의 형태로 표상되게 되지요. 반면 미시정치는 각 위치의 대중이 자신의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저항의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과제는 대중이 당위성에 공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이 호소하고 있는 억눌림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체험을 왜곡시키는 이데올로기가 혹은 인습적 가치체계가 우리를 현혹시키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시정치는 계몽적이라기보다는 대화적 구조를 지닙니다. 우리는 미시정치와 거시정치의 결합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권력이 체제적 형태를 띠고 우리를 억압할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심지어 우리 자신의 무의식의 공간 속에서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권력은 거시성과 미시성을 동시에 지지며, 서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저항은 양자의 결합을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종종 이율배반적이기도 한 두 차원의 저항의 정치가 어떻게 연계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미리 답을 내릴 수 없다고 봅니다. 제가 말하는 '민중'은 전통적 민중이 그밖의 계층들과 연대하는 것에 관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은 제가 아니라, 계급연합론을 주장한 제2세대 민중신학의 일부 연구자들의 주장에 가깝습니다. 저는 민중 자체가 이미 자기의 꼴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니라, 연대의 '과정' 자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중이란 끝없이 권력 해체의 에토스를 구현하며 형성되어 가는 과정적 실체이며, 그런 점에서 누가 누구를 포섭해야 한다든가 누구를 중립화 세력으로 규정한다든가, 혹은 누구를 주적으로 설정한다는가 하는 연합론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연합의 주체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계급 혹은 계층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의제와 과정 속에서 우발저긍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혹 분석을 위한 사후적 도구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패러다임을 끌어들인 저의 가설을 예전 패러다임으로 재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민중론의 실천이론적 함의는 이렇습니다. 민중론은 거시정치와 미시정치의 그때마다의 결합 지점을 찾아내고, 그 형성의 언어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중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이론인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민중신학이 탈신학, 탈그리스도교를 주장한다면, 도대체 그 정체성의 위치는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으로 바꾸어서 대답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정체성은 타자의 배제를 통해서 구성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제가 바로 이해했다면,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한 '옷을 입은 존재들'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공동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동일자와 타자를 구획짓는, 그럼으로써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혹은 무관심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기엔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레비나스가 이타성의 존재를 회복하려는 주장을 한 것은, 배제주의적 정체성이 아니라 이타적 정체성의 존재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 하냐면, 자기 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체성이 우리에게 익숙한 정체성이라면, 자기 중심주의의 해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직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정체성이라는 말씀을 드리려 한 것입니다. 요컨대 민중신학은 탈신학, 탈그리스도교적인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을 계몽적으로 설득하려 하거나, 대중의 욕망에 호소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대중, 아니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이타성의 존재성을 회복하는 데 방해물이 되는 신학과 그리스도교를 해체함으로써, 대중이 그런 옷을 벗을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요, 대중이 그렇게 해서 '벌거벗음'의 존재가 된다면, 즉 하와와 아담의 첫 만남의 경험의 영역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는 이타적 정체성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질문은 민중신학이 신학이나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어떤 담론을 생산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해해도 될른지요? 말씀하신 대로 민중신학의 '탈'이니 '해체'니 하는 게, 교회와 신학 밖으로 가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회 안의, 혹은 신학 안의 한 조류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안이냐 밖이냐,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담론에 대항하자는 게 해체니 탈이니 하는 말의 진정한 함의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위치이고, 우리가 생산해야할 담론의 내용이라고 하면 대답이 될까요? 마지막 질문은 민중신학이 종교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종교성과 비종교성을 합류시키려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해됩니다. 종교적 심성은 분명 인간의 한 체험 영역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체험을 표현하는 언어에 관한 겁니다. 일본 사람은 일본어로서 그것을 표현할 것이고, 미국 사람은 영어로서 표현하겠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인은 그리스도교적 담론으로 자신의 종교성을 표상하게 됩니다. 저희가 종교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종교성의 표상체계로서의 그리스도교적 담론이 배제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즉 종교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체험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배제주의적 자아를 강화시키게 된다는 얘깁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아주 일찍부터 권력과 동맹을 맺어온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언어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의 예수가 동원될 수도 있고, 전태일이라는 상징을 통해 재현된 예수가 동원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전혀 다른 (탈)신학적 화두가 사용될 수도 있지요. 이런 작업에 만약 사회과학이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서슴치 않고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민중신학은 반종교성을 주장하고, 사회과학적 세속화를 도모한다고 보는 건 속견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종교성이, 아담과 창조세계간의 대화적 상호성과 같은 모습으로 표상되기를 기대하며, 그러한 언어로서의 종교의 부활을 꿈꿉니다. 서둘러 답변한 것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걱정되는군요. 하지만 대화는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지요. 규용 님의 진지한 질문 감사합니다. 그 질문의 깊이는 저로 하여금 보다 깊은 사유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도 나누실 이야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하시길 바랍니다. 단 제가 그때마다 신속하게 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개인적인 분주함이 대답을 미루도록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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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생의 신학에 관한 질문과 민중신학을 둘러싼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