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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09/17 (04:52) from 210.115.123.112' of 210.115.123.112' | Article Number : 94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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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859 , Lines : 19 |
| 규용 님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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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용 님의 질문들에는 여러 모양의 칼날이 번뜩이고 있군요. 제가 너무 이론적으로 답변을 했나봅니다. 서로 사용하는 개념상의 불일치가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짧은 시간 동안 생각나는 걸 글로 표현해야 하는 방식의 대화에선 개념어들을 정교하게 사용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더욱 어려움이 있나봅니다. 아직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화에 어눌한 저로선 비법을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개념어들을 덜 예각화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답변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먼저 거시정치와 미시정치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규용 님의 코멘트에서 '규모와 (깊이가 아니라) 폭'이라는 말이나 당위성 등의 표현이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후에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서는 거시정치와 미시정치에 관한 저의 생각을 좀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시정치적 모델이 우리에게 문제가 된 것은 1980년대 민중운동의 실패에 대한 이론적 반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식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계급해방에 궁극적 지향점을 가지면서 (예속적 파시즘을 구현했던) 국가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여러 상이한 실천들을 위계적으로 서열화하여 배치하는 데 몰두했던 거시정치적 실천이론은 두 가지 점에서 위기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는 거시적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 및 그 네트워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낭만주의적 이론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미시적 차원은 거시적 차원의 하위적/부차적 요소라는 선형적 인식론의 위기입니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우리로 하여금 권력의 다양한 작동 방식에 주목하게 했고, 또한 그러한 다양성이 연계되는 네트워킹에 주목하게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미시정치와 거시정치는 수나 크기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참고로 사회운동의 전개에서 수와 규모에 관심을 갖는 이론적 모델은 '미시동원/중위동원/거대동원(micro-mobilization/maso-/macro-)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요즘 '차이의 정치'라든가 '정체성의 정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시정치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런데 미시정치적 단위들은 거시정치적 당위성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가령,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의 정치'는 '여성의 정체성의 정치'와 자명한 공조를 전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양자는 갈등적입니다. 최근 이 두 영역에서 각기 '연대의 정치'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이때 이들의 정체성의 정치는 성해방이라는 연대의 정치를 추구함으로써 거시정치적 차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 '탈성적 성해방론'을 제기한 것은 이러한 연대성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을 지향하는 시론적 접근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대의 정치 전략을 위한 이론적 모색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계몽적 당위성을 전제로 의식화를 통한 연대의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다시 우리의 지난 시절의 단순 선형적 거시정치의 한계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연대의 정치는 실재하는 갈등적 요소들인 '차이'를 대동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간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상이한 실천들간의 봉합의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실천들을 통해 끊임없이 검색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의 좌파는 그러한 실천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서양에서의 실험들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한국적 모델의 내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규용 님은 저의 민중신학적 모색이 '부유성'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제 답변을 다시 신중히 읽어보니 그렇게 볼 요소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규용 님의 문제제기는 제 주장을 보완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 <단과 공의 변증법>이라는 논문에서 민중신학적 실천의 두 차원을 시사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1997년 여름에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주관한 '민중신학 대토론회' 때 발표된 글에서 이미 제기한 주장이었습니다. 이 글은 아직 미간행된 것인데, 저는 그것을 충분히 보완해서 다른 지면에 출간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실천의 두 차원이란 '제도의 정치'와 '담론의 정치'를 말합니다. 실제로 제 분석에 따르면 민중신학은 지난 1970, 80년대에 걸쳐 이 두 요소의 얽힘 속에서 실천이론적 지평을 구축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전자는 '공의 실천'과, 그리고 후자는 '단의 실천'과 각기 보다 친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의 실천은 자기 형성적 전망과 연관된다면, 단의 실천은 자기 해체적 실천 지향을 갖습니다. 아마도 규용 님은 저의 답변에서 담론의 정치, 단의 정치, 자기 해체성에 경도된 실천론을 읽어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글들을 포함한 저의 다른 글들을 주의 깊게 추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제 답변을 규용 님처럼 해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저의 글쓰기의 문제가 야기한 오해겠지요. 하지만 좀더 변명을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공의 실천과 단의 실천이라는 두 범주가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상호적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말은 각 범주의 운동과 이론들이 서로 대화적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도 아니고 공도 아닌, 아니 단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한 새로운 대안적 실천을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선험적 결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 위치는 상이한 강조점을 가지고 각기 실천하고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서 평가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론가적 위치는 기본적으로 '단의 실천'을 추구합니다. 만약 탈그리스도교나 탈신학을 제가 말한다면, 그것은 규용 님의 말대로, '부유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유성이란 아마도 탈물질적 정신주의를 경계한 말이겠지요. 아마도 이러한 전망의 부정적 함의를 강조한 것일 겁니다. 이것을 단순히 잘못됐다고 판정하지만 않는다면, 그러한 우려에 대해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좋은 충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은 물질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정신주의적입니다. 그러나 그도 규용 님이 우려하는 것을 이미 유념하고 있지요. 저 또한 그러한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편, 저와는 다른 입장의 연구자는 같은 저와 말을 해도 저에 대한 규용 님의 평가를 그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규용 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법대 교수께서 최근 제게 규용 님과 거의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권력에 저항하는 데 제 온 지식을 다 동원하고자 하고, 그런 맥락에서 지배적 제도와 지배적 담론에 대해 문제를 발본적으로 제기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시간적으로 현재의 권력이 지양된 때가 도래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때라면 저는 또 다시 새로운 권력 현상을 주목하기 위해 비판의 지점을 찾고자 노력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공간적으로도 저는 일체의 권력이 작동하는 지점을 찾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며,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민중신학적 지향을 '순례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주장에서 대단한 영웅주의를 읽어내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순례자가 되고자 한다는 건, 제가 이미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지 못하다는, 끊임없이 유보된 이상의 실현에 대한 자기 한계를 수긍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자기 해체적 지향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의 주장이 '단의 실천'을 유일한 민중신학적 실천론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물론 저 자신도 때로 공의 실천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망을 추구하는 이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고 있고, 공조하기도 합니다. 저희 연구소에선 바로 그러한 대화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그것에서 어떤 이론적 성과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공의 실천이라는 범주는, 규용 님의 지적대로, 민중신학의 재권력화를 노정하는 여러 요소를 회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의 실천이 가하는 무한정한 비판, 비판의 비판, 비판의 비판의 비판,...,이 필요합니다. 반면, 단의 실천의 정신주의적 위험성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판의 제도화/물질화를 모색하는 공의 실천적 궤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양자적 범주간의 변증법적 대화가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규용 님께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의 대답은 저의 개인적 주장에 불가합니다. 다른 연구자들에게는 물론 다른 방식의 답변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제 대답을 '민중신학 연구자 김진호'에게만 귀속시키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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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생의 신학에 관한 질문과 민중신학을 둘러싼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