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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10/04 (01:14) from 210.115.123.112' of 210.115.123.112' | Article Number : 98 |
올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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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31 , Lines : 18 |
| 규용 님, 이제야 답변을 합니다.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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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집요하게 묻는 질문에 대답하다보니 많은 공부가 되는군요. 그런데 갈수록 더 지평선이 더욱 멀어 보입니다. 아무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 특히 제겐 도움이 되는군요. 우선 드는 느낌은 대화가 계속 평행선는 긋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글로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어렵군요. 더구나 제 타이핑 속도 따라잡기에도 벅차 허덕이는 굼벵이 컴퓨터로는 생각을 정리해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참을 쓰다 뭘 썼는지 돌아보려 해도 몇 문장이나 뒤쳐진 채 한 글자씩 한 글자씩 느긋하게 찍어가는 모니터의 여유로움에 그만 맥락을 잊곤 하지요. 논리와 표현력 모두에서 그리 자신할 만한 실력이 없는데, 그나마 부족한 실력발휘라도 하도록 협조해주지 않는 늙은 컴퓨터의 한가한 태도가 불만스럽군요. 그렇지만 대화의 어려움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규용 님과 저는 인식론적 전제가 다른 것 같습니다. 몇 차례의 대화에서 그걸 조금도 좁히질 못했다고 사려되는군요. 아니, 좁힌다는 말이 어패가 있네요. 상대방의 언어 세계에서 사고하면서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듯 합니다. 아마도 제가 대화 중에 '권력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규용 님의 느낌도 그런 저의 대화법의 부족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겠어요. 인식론적인 차이라고 했는데, 거창하게 표현하면, 제가 반본질주의의 기조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규용 님은 본질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반본질주의란 항구적인 의미의 고정점에 대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차연'이 우리의 의미화 활동 속에 끊임없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차연이라 함은 아마도 소쉬르적인 '차이' 개념을 시간적으로 확장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시공간적 차이'라는 함의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라는 개념은 관계적 개념이예요. 가령 단어들은 자기 완성적인 의미를 이미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단어와의 차이를 통해 의미를 완성해간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문장들간에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말이 의미를 완성해가는 것은 언어 내부의 게임에 의해서 만은 아닙니다. 언어 외부와의 관계 또한 여기에 관여됩니다. 이것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이지요. 아무튼 요지는 의미는 끝없이 변화하며, 그 속에서 무수한 완성을 이루며, 또한 완성의 순간에 자신을 해체해야만 또 다른 완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완성된 한 의미가 자기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했다고 합시다. 물론 여기서도 말만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진리 주장 배후에는 복잡한 정황이 개입되어 있지요. 언젠가 제가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이런 언어 내부와 외부의 연계성을 함의하고 있는 개념적 장치로 채택된 거예요. 어쨌든 이래서 의미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 과정에는 자기 해체가 뒤따르는데, 어느 순간 그 움직이는 역동성에 제동을 걸며 진리주장을 하는 것, 그것이 본질주의적 진리담론의 특성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본질주의는 의미의 고정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규용 님은 제게 계속적으로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이 지향하는 바 진리성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추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추구했던 하느님나라와 같은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다른 대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궁극적 정박지가 있다는 가정하에서 이론의 비판적 개입을 논하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규용 님은 예수님의 하느님나라를 그런 정박지로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요. 예수님에게서는 그런 의미에서의 그 나라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령, 예수님의 비유담론이 하느님나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 나라는 당신이 구체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부당함에 대한 지양 의지만을 분명하게 발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현실의 부당함을 무엇으로 판단했느냐고 물으실 겁니다. 물론 그때마다 어떤 준거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준거라는 것도 일관성이 있거나 항구불변의 '큰진리'(혹은 대문자 진리)에 기반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예수님의 담화에서 고정화된 진리성의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하느님나라'는 무엇일까요? 저는 언젠가 그것을 '그때 거기에서의 변혁적 기대의 최대치로서 구성된 진리적 언술'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나라의 개념이 단순히 언어적 게임의 결과라는 게 아니라, '그때 거기'에서 (주체가) 인식한 맥락과의 연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이때 하느님나라는 어떤 의미를 갖는냐는 질문은, 보편적 진리성에의 재현이 아니라, '맥락적 재현'의 논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과정 속에서 진리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말하는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에서 주장하는 진리의 문제는 예수님의 하느님나라 주장과 다른 것인가요? 그런데 규용 님은 이 주장이 저항의 동기를 부여하는 내적 동력인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저항의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으로서의 진리담론을 이야기하라고 제게 추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만약 규용 님처럼 당위적인 진리주장을 가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대중 동원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나요? 진리담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의 문제가 곧 대중 동원의 문제라는 주장은, 제가 아는 한, 실증적으로 뒷받침될만한 실례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여기서 '이론의 위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면 진리의 형성 과정으로서의 하느님나라 주장은 담론 형성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대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차이' 개념이 바로 그런 문제입니다. 규용 님이 말하는 "사회전반을 나타내는 통념적 개념의 문화가 아닌 좀더 국소적이고 특수한 상황인 협의의 문화운동"은 아마도 이런 맥락과 연관된 생각인 듯 싶습니다. 그런데 문화정치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문화정치학은 차이의 봉합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제 표현대로라면 '민중(연합)'의 개념이 바로 그것을 가리킵니다. 지난 10월 1일 제가 한 기독교여성사회운동 단체에서 예비발제한 글에서 '위치의 정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는데, 그것은 차이의 봉합 지점을 찾아내려는 담론 구성의 문제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민중형성 담론이 차이에 대한 무한정한 추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일시적인 봉합을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혹자는 이것이 메타이론적이라고 얘기하더군요. 실천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설명을 위한 이론이라는 애기지요. 몹시 짜증나는 질문인데, 그것은 그의 지식 습득 노력의 게으름을 입증할 뿐입니다. 한글로 된 사회과학 저널들(무수한 번역된 단행본은 고사하고)을 찾아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그것을 그는 전혀 읽지 않은 채, 제가 도리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핏대 올리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위치의 정치학은 매우 활발하게 민중형성을 위한 이론적 성과를 매우 내고 있는 유력한 실천이론적 조류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담론을 먼저 구성한 뒤, 거기에 현실에 대한 이해를 꿰어 맞추는 도리어 방식이 메타이론의 전형 아닌가요? 그런데 봉합 운운하는 데서 저의 반본질주의 주장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즉 반본질주의냐 본질주의냐의 논쟁에서 어느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규용 님은 제게 반본질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이하게 될 논리적 자가당착을 계속 묻는군요. 아마도 데리다와 저를 비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데리다 같은 위대한 사상가와 저를 비교하는 것은, 비록 규용 님이 걱정의 어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저로선 대단한 영광입니다. 또 데리다가 규용 님이 제기한 것 같은 추론에 저처럼 흔들릴 만큼 어수룩한 사상가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저로선 그를 깊게 공부한 적이 없어서 최소한의 자신감을 가지고 변명할 능력조차도 없지만, 제가 가진 작은 지식으로도 데리다의 사상의 깊이는 감동할 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데리다의 추종자는 아닙니다. '니힐'이라는 저에 대한 규용 님의 의혹은 좀처럼 의중을 파악할 수 없군요. 물론 저는 니체적 사유의 계보에 서고자 하는 덜 준비된 연구자입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인가요? 그것 자체가 '부르주아적 사고의 유희'라고 하는 것인가요? 또 제가 세계는 '언어뿐'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던가요? 혹 제가 벤야민적인 '댄디즘'에 우호적이라는 것이 규용 님의 마음에 거슬렀는지요.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가지고 제게 혐의를 둘 만큼 규용 님의 사고력이 닫힌 것은 아니라고 믿는데, 저로선 이것들과는 다른 혐의 사항들을 찾아낼 수는 없군요. 제 막힌 상상력을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도 제 대화법에 권력의 그림자가 엿보이는지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군요. 품성이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권력이란 떨쳐버릴 수 없이 내 존재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나의 속성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내겐 이 지적이 몹시 쓰지만, '위험'은 지식의 확대의 소산이기도 하니, 좋은 약이 될 것 같습니다. 더욱 노력해야할 것을 알게 됐으니 말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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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생의 신학에 관한 질문과 민중신학을 둘러싼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