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Theology Archive News

1999/07/13 (18:04) from 203.241.132.203' of 203.241.132.203'	Article Number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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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과의 대담 - <오늘의 지성을 찾아서 - 김진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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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성을 찾아서 - 김진호 편>

제목 : 역사 속의 예수를 찾아가는 연구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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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자 : 김진호(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상임 대표)
김성기(≪현대사상≫ 책임 편집자)
* 대담 일시 : 1998년 11월 18일
* 대담 장소 : 민음사 회의실

김성기 : 한 달 전쯤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처음 뵌 후 오늘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 대담 제의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해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후 저도 차일피일하다가 며칠 전에야 비로소 목사님께 공식 연락을 드린 셈입니다.
방금 목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참 호칭이 난감합니다.(웃음) 무엇보다도 일반 독자에게 생경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저으기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목사님은 분명 연구자의 자격으로 온 것이지만, 호칭은 그냥 <목사님>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오늘의 지성을 찾아서> 대담 제의를 받고서 첫 느낌은 어떠셨는지요.

김진호 : 두렵고 떨렸죠 (웃음) 연락을 받고 지난 호 ≪현대사상≫ 대담 내용을 훑어보았어요. 그 중에서 특히 과학사를 전공하는 임경순 선생과의 대담을 아주 재밌게 봤는데요. 그런 분이나 글을 쓰고 대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괜히 하겠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영광이죠.

김성기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대담 제의를 거부하면 어쩔까, 전화 수화기를 들면서부터 내심 초조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민중신학의 제3세대라면 저도 그런 차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지성이라고 하면 원로를 연상하기 쉬운 현실에서 이 코너에 초대한 분들은 대체로 <새파란 놈>입니다. 이는 기존 학계의 대선배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처사로 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현대사상≫이 추구하는 <현실과 소통하는 지식, 지성>은 어차피 70년대, 80년대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판단에서 이 같은 대담 코너를 마련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성 학문의 룰에서 비딱하게 벗어나 있는 대목이 있죠. 저희야 원래 입장이 그러니까 별 부담은 없지만, 일단 대담의 주인공이 된만큼 혹 주위로부터 나올 수 있는 <잘난 척 한다, 겁없이 까분다>는 식의 비아냥은 능히 감당하셔야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대목이 제가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줄곧 떨쳐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부담감이기도 합니다.

김진호: 오늘은 제가 그런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네요.(웃음)

김성기 : 저희 ≪현대사상≫에서 김진호 목사님을 주목하게 된 것은 민중신학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함에서입니다. 또 그것이 현재 우리 지식 사회의 대안적 패러다임이나 분위기를 모색하는 데에 적지 않은 의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실 90년대를 거치면서 민중이란 말은 거의 고어 취급을 받고 있고 따라서 사회과학의 연구 작업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중요한 분석적 전거나 준거가 되고 있지 못한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90년대 오늘의 민중신학이 여전히 생동감을 갖고 움직인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다소 뜻밖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근래 당신의 작업 내용을 엿보면서, <90년대 민중신학이 고민하는 바는 인문사회과학 쪽에서도 충분히 귀기울여볼 가치가 있겠다, 현재 우리 지식사회가 모색하는 대안적 입장이 어느면 민중신학 방면에서 상당 부분 이미 실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민중신학의 제3세대를 자임하는 당신을 초대해 90년대 민중신학의 문제 의식이나 향후 지향을 육성으로 들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민중 개념을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90년대 지식사회에서 민중 개념을 너무 쉽게 탈락시키지 않았나 하는 때늦은 깨달음인지도 모르지만, 그 개념이 사회과학이나 철학 분야에서 다시 복권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싶어요. 어제도 ≪시대와 민중신학≫ 4호 (97년)를 보다가 이정희 씨의 <민중의 일식>이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민중>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범주로 제한되기에는 그 의미가 풍성한 범주이자 21세기의 대안적 질서를 모색하는 데도 여전히 가능성 있는 가치지향인데도 왜 그 논의가 사라지고 있으며 또 그 사라짐을 당연시하는 논의가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가라는, 그 필자의 아쉬움 깃든 문제 의식에 적지 아니 공감하였습니다. 그나마 민중신학계에선 민중 개념을 잘 보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발상의 전환을 하자, 새 패러다임을 찾자>는 말이 많은데, 이미 존재하는 대안적 패러다임마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민중 논의의 재인식은 90년대의 민중신학자뿐만 여타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중요한 지적 과제로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오늘 대담에서 듣고 싶네요.
먼저, 요즘 생활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죠. 현재 한백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계신데, <한백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목회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예배 공동체, 간판 없는 교회>

김진호 : 저희 <한백교회>는 올해로 11년째가 됩니다. 돌아가신 안병무 선생님이 <한국신학연구소>에 재임하셨을 때 처음 만드셨고, 뒤를 이어 민중신학의 또다른 세계를 구축한 박성준 선생님이 오랫동안 이끄셨어요. 그 뒤를 제가 잇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이른바 평신도 교회입니다. 모든 의사 결정 과정뿐 아니라, 목사의 고유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던 설교, 제의집전까지도 평신도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백교회는 출발부터 민중신학에 기초하고 있고, 대중들과 더불어서 더 나온 교회를 만들어보려 한다는 점에서도 민중신학에서의 논의를 실제 교회 활동 및 목회 과정에 어떻게 구현시킬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교회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간판이 없습니다. 교단에는 <한백교회>라고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나눔과 섬김의 예배 공동체 한백교회>라는 긴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나눔>, <섬김>, <예배>라는 말에 대한 저희 식의 해석이 있으며, 한백은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말을 줄여 쓴 것입니다. 저희는 교회의 지향 안에서 예배공동체로서 한반도에서 억압의 굴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을 탐색하고 있지요. 예배 형식도 기존 교회와는 사뭇 다르고 실험적인데요, 교회를 방문한 분들께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것은 찬송가입니다. 저희가 만든 찬송가 노래집 때문인데,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입니다. 기존 찬송가와 복음성가, 그리고 우리 민중운동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로 말이이죠. 이것이 나눔과 섬김을 지향하는 예배공동체인 저희의 찬송가이지요.

김성기 : 그럼, 목회 활동도 여느 교회와는 다소 다른 면이 있겠네요? 담임목사라면 주일예배와 삼일예배를 인도하고, 교회학교와 청년부, 그리고 심방 등의 여러 활동에 매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목회자로서 한 주일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김진호 : 주일 이외에는 교회 활동이 거의 없습니다. 저희 교인 대부분이 원하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예배라든가 종교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에 매진할 수 있지요.

김성기 : 물론 그것은 목회자로서 당신의 기본 입장이겠지만, 그러한 입장을 현재 개신교 풍토에서 공공연하게 표현하거나 주장하기에는 아직은 곤란한 상황이 아니겠어요?

김진호 : 네,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이 교회와 교회 밖 사이의 벽을 허물려면 교회 안에서의 신앙이라는 것과 일상생활에서의 신앙을 동등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자기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일에 다함께 모여서 그런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의미 있다고 봅니다.

김성기 : 한백교회는 1970년대 이래 민주화 운동 과정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운동의 일환으로 형성된 교회이고, 그리스도교 바깥에서는 안병무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교회라고 볼 수 있지요. 안병무 선생님의 경우, 그분이 남긴 족적이 다른 곳에서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만. 한백교회가 지금껏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젊은 교회이기에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교인의 분포도 30-40대가 많겠네요?

김진호 : 저희 교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주연령층은 40-50대였고, 지금은 30대가 주류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을 못하겠지만, 연령과는 관계없이 저희는 저희 나름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고, 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김성기 : 한백교회 같은 <민중교회>의 경우 대사회적인 선교의 차원에서 사회 모순이나 소외 집단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교회 성원들이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로부터 새로운 영성의 가능성을 일구려고 해 왔던 것 같습니다. 한백교회의 회보 <<너른마당>>을 보니까 장기수들과도 교류 관계를 맺으면서 지원 활동도 펴던데, 이것 역시 통일운동의 관점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까?

김진호: 꼭 그렇게 큰 의미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임 목회자인 박성준 선생님께서 통혁당 사건으로 13년을 복역하신 바 있는데, 그 인연으로, 부끄럽지만, 장기수 문제에 아주 조금 관심이 있게 됐어요. 미리 통일이라는 전제를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김성기 : 신학이나 그리스도교 동네 바깥에서는 박성준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저희어떤 분인지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주시죠.

김진호 : 1960년대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부터 그리스도교 학생운동을 하셨어요. 졸업을 못하고 구속이 돼서 13년 6개월 동안 형을 사셨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안병무 선생님이 이끄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주로 활동하셨죠. 민중신학이 커다란 전기를 맞이했던 80년대 당시 변혁적인 요소를 신학이 수용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몇몇 기독청년운동가들로부터 있었어요. 선생님은 그 문제 제기를 받아서 연구자로서 민중신학적인 접근을 처음 시도한, 이른바 민중신학 2세대의 선구자격이 되는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

김성기 : 목사님께서는 언제부터 <신학을 하겠다, 민중신학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생각하셨는지요?

김진호 : 저는 1985년에 서강대를 졸업했어요. 그곳은 종교나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으면서도 기회를 갖고 싶어하면 충분히 제공해 주는 학교였어요. 저는 대학 시절엔 사회운동과 관련해서 신앙을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선 거리를 두려 했고, 전도나 성서 읽기 같은 일에는 무척 열정적이었어요. 혹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동료나 후배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리곤 했어요. 그 당시 제게 중요했던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저의 현실적인 나약함 사이의 간격에 관한 것이었어요. 아마 그런 것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전도와 성서 읽기로 나타났던 것 아닌가 해요.
신학에 대한 눈을 뜨게 된 첫 계기는 정양모 신부님의 마르코 복음서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였는데, 한 학기 내내 신부님과 갈등을 했어요. 결국은 제 생각이 그릇되었음을 자인하고 말았어요. 또 하나는 그 당시 노벨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투투 주교의 글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요. 신앙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죠. 그 밖에 여러 작은 계기들을 거쳐 신학을 지망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어요. 그 때가 4학년 마지막 때쯤인데, 한 친구가 우연히 신문에 난 한신대 신학대학원의 학생 모집 광고를 보여줘서 거의 즉흥적으로 시험을 봤습니다. 우연이 겹쳐진 결과로 이렇게 신학도요 목사가 된 셈이이요.

김성기 : 목사님의 인생 항로에서 중요한 전기는 아무래도 한신대 신학대학원 시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미 민중신학이 체계화되고 제도화돼 있었습니까?

김진호 : 잘 짜여진 민중신학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민중신학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형태로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대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데모도 해봤구요, 그러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죠.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같은 극적인 일이 벌어지던 시절이어서 그에 대해 대학원 전체가 격렬하게 맞섰죠.

김성기 : 그러니까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던 무렵인데, 당시의 저항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휩쓸린 셈이네요. (웃음)

김진호 : 네, 그런 셈이죠.

김성기 : 한신대 대학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민중신학을 접하게 된 것 같은데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시죠.

김진호 : 신학대학원생 사이에 몇 개의 스터디 그룹이 생겼는데, 저는 민중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했어요. 처음엔 뭘 모르고 들어갔는데,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할 무렵에 이 동아리에서 민중신학의 학자별 연구를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때 제가 맡은 분이 우연찮게도 안병무 선생님이어서, 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선생님의 글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죠. 그 때 제가 만든 저술 목록이 이렇게 저렇게 확장돼서 훗날 공식적인 선생님의 목록으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이때 저는 완전히 선생님에게 매료당했어요. 바로 다음 학기에는 안병무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선생님 문하에서 본격적인 민중신학의 여정에 들어섰죠. 저의 대학원 졸업 논문은 [지지자들을 통해서 본 예수 운동의 연구](1990)였는데, 지금까지 예수 운동의 연구가 개체적 존재인 예수님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이뤄졌다면, 저는 예수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과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연관시켜서 연구를 해봤습니다.

김성기 : 이를테면 역사적, 사회경제적 접근을 하신 건데요. {예수 르네상스}라는 책의 서문에 <예수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의 출발점이자 항로다>라고 쓰셨는데, 그것은 민중신학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원 시절이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신학연구소에 취직을 하신 겁니까?

김진호 :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안 박사님이 <어떻게 할 거냐, 유학을 갈 거냐>고 물으셨어요. 당시 저는 <민중신학을 포기하지 않는 한, 꼭 유학을 가서 배워야 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도 반드시 학위 과정을 밟겠다는 생각보다는 제도권 바깥에서 민중신학을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선생님이 무조건 신학연구소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민중신학의 1,2,3세대>

김성기 : 80년대의 한국신학연구소는 민중신학을 지향하는 연구자들의 센터 같은 곳이었쟎습니까. 거기서 체계화되고 정리된 논의들이 출판물로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제가 서두에서도 <제3세대>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그것이 한국신학연구소의 경험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선 1,2세대와는 다른 자기 입장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김진호 : 한국신학연구소가 민중신학의 담론이 유통되는 중요한 공간 역할을 했는데요. 그런 역할은 주로 80년대 민중신학과 관련돼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는 민중신학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었고, 연구에 입문하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어져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이 <젊은 민중신학자들의 모임>(1991년 결성)이라는 연구자 동인 모임을 만들었어요. 지금 말하는 제3세대 민중신학의 모체가 되는 모임이죠. 처음 문제 의식은 민중신학 내의 이론적인 갈등들이 건전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80년대 특유의 민중신학을 흔히 2세대 민중신학이라고 말하는 데,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신학적 논의 과정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경향은, 다소 거칠게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과 민중신학의 세계관을 합류시키는 것에 대해 더 적극적인 부류와 덜 적극적인 부류 간의 갈등으로 대별되는데, 그러한 갈등과 논쟁이 생산적인 이론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지루할 만큼 반복적이고 원론적인 논의들을 되풀이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대화의 장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주로 80년대 학번 중심의 동인 모임을 구성했던 것입니다. 그 첫 사업이 <함께 보는 민중신학> 시리즈였습니다. 연구 성과들을 책으로 내고 이를 통해 생산적인 대화와 이론화를 모색해보자는 것이었죠.
그런 문제 의식이 제3세대 민중신학이라는 범주로 전개된 과정은 좀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먼저 세대론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마르크스주의적 변혁을 강조하는 80년대적 신학 경향을 2세대라고 지칭하게 되자, 그 이전의 신학은 자연히 1세대가 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세대라는 말은 사람의 분류에 초점이 있는 듯하고, 그것도 연령별 구분 같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되었어요. 가령, 2세대와 1세대 사이의 연령층의 민중신학자들을 1.5세대라고 부르기도 했죠. 이렇게 되면 세대에 관한 논의는 그 발생 맥락과는 달리 구분법 자체가 불필요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1990년초 제 동료인 최형묵 선생이 세대론 논의를 생산적인 이론 논의에 끌어들이고자 개념화를 시도하게 됐어요. 그 분의 주장은 <시대 인식과 민중신학자들의 신학하기를 연관시켜서 보자>는 것이죠. 요컨대 세대론이 누가 어느 세대에 속하느냐를 묻기보다는 신학적 경향을 구분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논의를 좀더 발전시켜서 민중신학의 전개 분류법으로 활용했는데요. 한국 사회의 비판적 시대인식의 전개 과정과 민중신학적 이론전개를 연계시킨 분류법이에요. 이렇게 해서 최 선생이 언급하지 않은 제3세대 민중신학론이 도출되게 되었어요.
저의 이러한 세대론적 분류법의 한계는 민중신학자들 가운데 <특정한> 흐름 속의 세대적 연속성과 차이를 밝히는 데에만 유용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전개 과정을 주목한 것은 민중신학적 신학하기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 이 흐름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즉, 민중신학은 시대의 위기성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동시대의 비판 담론들의 대화 과정에서 신학하기를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학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세계를 진단하기 비평하기보다는 <오늘 여기>의 현장을 더 강조하는 신학이라는 것이에요. 이렇게 분류법을 사용하게 되면, 민중신학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배제, 박탈, 억압을 문제삼으며 이에 대한 해방 지향적 문제제기를 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신학적 담론의 전개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 담론의 전개 및 형성과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국 근대화 과정을 70년대, 80년대적, 90년대로 나눈다면, 민중신학도 거기에 대응해서 1,2,3세대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그 연장선상에서 민중신학의 3세대 논의를 보면, 2세대 민중신학이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간의 만남에 주력했다면, 저희는 계급적인 관점에서 민중을 보는 시각이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 의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성, 욕망, 지역성 등을 주목하는 미시 정치와 기존 거시 정치의 결합에 주된 관심이 있고, 그로부터 90년대 제3세대 민중신학 논의를 펼쳐나갔던 것이죠. 우리 시대는 단순히 이편과 저편 사이에 바리케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경계의 결합과 나누어짐이 유동적으로 변화무쌍하게 일어나는데, 그런 공간 지형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문화정치학이라는 논의도 끌어들이게 된 것입니다.

<함께 읽는 성서>

김성기 : 목사님의 경우 신학연구자라는 정체성이 상당히 강하게 드러나지만 다른 한편 한편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스도교 운동의 한 소산인 한백교회의 목회자이쟎습니까. 그 정통성을 이어가는 부담과 의무도 있으실 텐데요. 혹 내면의 갈등은 없습니까.

김진호: 별로 없습니다.

김성기: 제가 전주 한일장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인문사회학부 소속입니다만 신학부 학생들도 제 강의를 많이 듣습니다. 어제도 몇몇 학생이 {함께 읽는 신약성서}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었어요. 그 책은 예전부터 기독학생들이 스터디를 할 때 텍스트로 삼는 대표적인 책이었죠. 사회과학 방면에서도 80년대 후반부터 <대체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진보적인 성서 교재의 개발을 겨냥했던 것이죠? 그 작업 배경을 좀 소개해 주시죠.

김진호: {함께 읽는 구약성서}는 김경호, 이은재, 최형묵 목사님과, {함께 읽는 신약성서}는 김경호, 이은재, 송창정 목사님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공동 학습 교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에 한 독지가께서 한국신학연구소 측에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성서 안내서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 취지는 안병무 선생님의 {역사와 해석}(1982년)이 담당했던 몫을 대체할 만한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역사와 해석}은 1970년대에 나온 {역사와 현존}의 증보판인데, 그 책이 나온 지 10년째 되는 해에 맞춰서 새로운 구성으로 또 하나의 증보판을 만들라는 것이었죠. 이렇게 해서 집필진이 구성되었는데, 저희에게는 두 가지의 전제가 있었습니다. {역사와 해석}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을 80년대의 변혁적 시대 인식을 담아서 재구성해 보자는 것과, 혼자 읽고 생각하는 형식보다는 여러 사람이 같이 토론하면서 공동 학습하는 형식의 성서 안내서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간 공동 작업을 해서 만든 책입니다.

<왜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주목하는가>

김성기 : 목사님께서는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중요한 작업 과제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 예수 운동의 혁명성 연구}나 {예수 르네상스 - 역사적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 등의 책을 보면 예수를 역사적으로 연구한다는 기본 입장이 일관되게 흐르던데요. <예수 운동의 에토스>라는 것과 <오늘날 우리에게 성서가 갖는 의미>라는 말이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진보 성향의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쉬 이해가 되는 개념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인데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김진호 : <우리가 왜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주목하는가?>라는 물음일 텐데요. 그리스도교 역사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님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교리 중심으로 해석하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탐색할 수 있는 성서 텍스트, 구체적으로는 복음서가 덜 주목을 받았던 것이죠.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운동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부분이 괄호쳐진 채 진행되다 보니까 우리의 신앙 속에서 <예수 운동의 에토스>가 가려지게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저희가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발굴해 내고자 하는 취지는, 그 분이 동시대의 권력 메커니즘에 맞서 투쟁하셨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당시의 권력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요. 성전과 회당을 연결하는 지배 코드가 있고, 로마와 성전의 관료 조직을 상징하는 산헤드린과 성전을 연결하는 코드가 있습니다. 여기서 앞의 코드의 성전이 하나의 종교적 상징 체계를 의미한다면, 뒤의 성전은 종교－정치적 제도에요. 따라서 회당과 성전을 연결하는 코드는 주로 담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지배 양상이라고 볼 수 있고, 로마-산헤드린-성전으로 연결되는 지배 코드는 보다 억압적인 정치 제도적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둘은 성전이라는 상징적이고 정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서 합류합니다.
성전-회당을 연결하는 코드는 사람들을 일상생활에서 규제하는 권력적 장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부정하거나 재해석하신 것, 혹은 기성의 건강 관리 체계나 악령 체계의 사회적 역할이나 효과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 지적을 베푸신 것 같은,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과 일전을 벌이신 행동들은 이러한 지배 코드와의 관계에서 보아야 하지요. 예수님이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권력 장치와 대결을 했다는 것은 현대의 예수 연구가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신앙 속에서 가려져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자이며 그 분을 믿고 고백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유형의 담론만 반복하다 보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구원이라는 것을 역사 속에서 구체화시키는 데 장애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민중신학을 포함한 제3세계 신학은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탐색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이죠. 그 점에서 민중신학은 아주 선구적인 면이 있는데요. 방금 말씀 드린 내용이 민중신학에서 <예수 운동의 에토스>라는 말을 쓰게 된 이유이고, 그런 견지에서 우리의 신앙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김성기 : <신앙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한국 그리스도교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는 논지와도 맞물리는 주장인데,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주요한 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진호 :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예수님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역사 속의 그분의 삶이나 실천과는 너무나 괴리가 있다는 점을 자꾸 망각하려 해요. 예수님에게서는 삶은 곧 신앙이었고, 동시에 신앙은 삶 자체였어요. 그런데 그분을 주님으로 받드는 우리에게선 삶과 신앙, 역사와 종교, 신과 인간의 이분법......, 이런 것들의 경계짓기가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그것을 깨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는 물론 소수의 목소리이고 어떻게 보면 바위에다 달걀을 던져서 흠집을 내는 것에 불과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대안적 해석은 의미가 있는데, 현재 우리에게 고무적인 것은 최근 현대 성서학계에서도 예수 연구가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상당한 침체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1980년대 중후반부터 이러한 연구 문헌들이 쏟아져 나왔고, 저는 이런 추이 변화를 설명하는 어떤 학자의 용어를 차용해서 <예수 르네상스>라는 말을 쓴 것이죠.

김성기 : 아까 제3세계 신학이라는 말도 나왔는데, 남미나 미국 등지에서 신학 공부를 안 하셨더라도 제3세계 신학의 동향을 여쭤봤으면 하는데요. 단적으로 그쪽도 역시 예전의 진보성이 위축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그들 나름의 해방 전통에 기반해서 독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호 : 조심스러운 얘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제 좁은 식견으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은 신학 운동으로서의 성격은 많이 약화되었다고 봅니다. 기존의 주류 신학과 너무 많이 대화를 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나머지 역사에 대한 예리한 시각들이 무뎌지지 않았나 합니다. 일종의 종교적 타협이랄까, 유연화 추세를 걷는 징후가 있다고 보여요. 현재 제3세계 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면이 여성 신학의 약진입니다. 또 생태학을 다루는 신학운동도 이론적 기반을 상당히 갖추면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민중신학과 문화정치학, 비판 담론>

김성기 : 1990년대 한국 신학의 현주소 쪽으로 논의 방향을 바꿔보도록 하죠. 목사님이 작년에 발표한 글 [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을 전망하며]에는 1990년대 민중신학의 위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1990년대 민중신학의 기본 방향이나 자의식을 좀더 분명하게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민중신학자로서의 정체성, 즉 <내가 왜 지금 민중신학자인가, 나는 민중신학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김진호 : 민중신학에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지형 속에서 신학적으로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는 데에 더 적합한 길인가>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1990년대 민중신학의 입지는 한편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는 권력의 배제 및 박탈 메커니즘이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는 추이에 대해 어떻게 비판하고 신학적으로 개입할 것인가>하는 것과 <우리 시대의 다양한 비판 담론들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신학 공간 내에 만들어야겠다>는 것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탐색이 <문화정치학>이라는 용어 속에 담겨 있는데요. 거시 정치와 미시 정치의 만남, 비판과 성찰의 만남 등을 신학 속에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지요. 이런 노력은 지구화라는 공간 지형의 변화에 대한 인식과 연결지어 다뤄집니다.

김성기 : <1990년대 민중신학이 현실에 어떻게 신학적으로 개입하는가>하는 과제는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과도, 좀더 나은 삶을 기획하고 추구한다는 차원에서 공유하는 바 많다고 하겠습니다. 1990년대 민중신학은 <현실의 지형이 사뭇 달라져 있다, 지배 구조와 체제의 권력 행사 방식이 과거와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권력이나 지배 세력의 존재 방식이나 지배 방식이 유연화된 모습도 보인다, 현실의 시공간 변화나 문화 변동의 양상이 전례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 추이를 비판적으로 탐색하는 데는 새로운 비판담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보이며, 그래서 미셸 푸코나 포스트구조주의 계열의 문법도 차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해석입니까?

김진호 : 네. 거기에 보태서 요즘 신학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논의 경향을 말씀드려야만 될 것 같아요. 우리 신학자들에게는 다른 학문, 다른 분야의 논의에 대해서 깊이 개입하기를 꺼리는 경향이랄까 역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적 담론을 전개할 때도 신학사상사의 맥락에서만 논하려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신학하기>에는 시대읽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그러면서 다른 학문의 비판 담론과도 보다 적극적으로 만나자, 이런 취지가 숨겨있는 것이죠.

김성기 : 목사님의 글을 보면 여느 신학연구자와는 달리 최근의 비판담론과도 꾸준히 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푸코의 계보학적 발상법을 통해서 체제나 권력 문제에 접근하는 것도 그 일례가 되겠지요. 푸코의 방법은 상당히 참신하죠. 그 동안은 배제나 억압의 전략이 권력의 주요 작동 방식이었는데 1980년대말, 1990년대 들어와서는 <양생(養生)의 전략>이 새 차원의 지배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하지요. 이것은 1990년대 우리 사회의 속내를 이해하는데 참신한 이론적인 준거는 될 수 있으며 때문에 푸코가 1990년대 지식 사회에서 가장 인용도가 높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같은 새 인식법의 수용을 통해 1990년대 민중신학에도 어떤 성취가 있다고 보십니까?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새로운 비판 담론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것만큼 잃은 것은 없는지, 특히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잃은 것은 없겠는지를 묻고 싶기도 합니다.

김진호 :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민중신학이란 것이, 어찌보면 거창한 이름에 비해서 현재 할 수 있는 역할이 너무 없어요.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이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머리만 남아 있는 모양이 되버렸거든요. 하지만 호흡을 길게 해야겠다는 입장은 있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들이 정치적으로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도 교회 내적인 상황이나 종교적 상징의 모습은 정치적 선택의 진보성이나 혁신성에 비해서 아주 보수적이었어요. 어떤 거시적인 정치적 전선과 미시적 차원의 전선 사이에 상당한 괴리를 보였거든요. 그런 점에서 교회 차원에 국한시켜 볼 때, 이를테면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교회의 각종 예전 속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구체적으로 설교, 찬송가, 기도 양식 등에 대한 반성들과 관련해서 민중신학적 물음을 탐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러한 그리스도교 예전의 제도화된 모습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자취는, 설사 제도의 권력적 토대를 무너뜨리려 할 때조차도 동시에 권력을 욕망하는 존재로서 우리를 드러내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민중신학에서의 이른바 포스트 계열의 발상법 수용이 저항을 약화시킨다는 말씀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저항 담론이 특정 시기에 결집돼서 커다란 변화를 이뤄냈던 시기들이 있잖아요? 1960년 4월이라든가 1987년의 6월 항쟁이 그렇지요. 그런데 그러한 저항 담론이 결집되는 과정에서 대화하기나 연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담론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대목을 지적하고 문제 제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시적인 정치 연합에 대해서 비판적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분법을 넘어, 탈권력을 실천하기 위해>

김성기 : 목사님께서 구상하는 민중신학은 변화된 시대 상황과 그 속에서 나오는 비판 담론의 새로운 논점들에 대해 전진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1990년대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는데요. 첫째, 서구의 포스트 이론에 대해서 나름대로 경계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의존도가 심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로, 푸코나 들뢰즈 같은 논자들을 인용하는 방식이 다소 무비판적이고 거칠다는 인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논의에서 머릿속 발상의 전환이나 사유의 실험을 하는 하나의 단초를 얻을 따름입니다. 구체적 현실을 분석할 때는 거기에 딱히 의존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적 유희, 다시 말해 새로운 사유 방식이나 다르게 보는 방식의 매개물로 주목하지 그 논의를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 분석에까지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그들 논의는 기본적으로 메타적인 이론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둘째, 목사님의 글을 직접 인용하지요. <90년대 민중신학은 일상 생활에까지 침투하여 욕망을 상품화하고 있는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담론을 형성하고, 대항담론의 주체 곧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을 형성하기 위해 문화정치학적 비평의 영역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이나 교회의 담론에 스스로를 가두어도 안 될 것이고 영토적 공간성 차원의 담론 구성에만 매달려서도 안 될 것이다. 가능한 삶의 전공간에 걸쳐 형성된 분절적 시공간의 맥락에서 추구될 수 있는 해방적 가치의 최적화를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무수한 이질적인 피박탈 대중인 타자들과의 해방적 연대를 요청한다>([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시대와 민중신학} 4호, 1997, 27쪽)고 논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문화연구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는 문화정치학 논의가 1990년대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론적 자원으로서는 <다소 반(反)민중적이다>는 인상입니다.(웃음) 적어도 우리의 경우 문화정치학의 관점은 1990년대라는 달라진 상황을 이해하고 버티는 일종의 해석이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천에 소용되는 이론으로는 미흡한 상태에 있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셋째, 위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을 듯싶지만, 1990년대 민중신학론에서 구상하는 실천적 입장이 과연 현재 한백교회에서는 제대로 구현되는지, 혹시 신도들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면, 제가 학교에서 자주 대하는 신학대학원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목회 현장에서의 논리 사이에 갭이 많다고 토로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같은 괴리는 여타 분야에서도 쉬 발견되는 점이며, 진보적 입장을 지닌 대학교수일지라도 학교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나 민중신학자만 그렇냐>고 반문하시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실천 현장과 추상적 공간 사이의 괴리는 우리 지식인 사회의 근원적 문제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된 데는 퍽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일 터입니다. 어쨌거나 제 말씀이 타당성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솔직한 심정은 어떠한지요.

김진호 : 말씀하신 의도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사실 저희 내부에서도 그와 똑같은 논의가 있습니다. 바로 보신 대로 제가 그런 비판의 축에 서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에 속합니다. 저와 다른 축에는 김선생님이 비판하는 것과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논리 차원에서의 갈등이지요. 마지막 질문에 답을 드리면 저는 그렇게 성공적인 목회자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제가 시무하는 한백교회만큼은 저의 신학적 입장을 펼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점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전혀 못 알아듣는 정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웃음)
말씀하신 괴리는 실제로 많은 목회자들의 고민이죠. 교회의 내부 문화와 대외적인 정치적인 선택이 서로 상응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런 점에서 저희 한백교회는 매우 용이한 공간이라 저로서는 큰 행운이기도 하지요. 제가 교회에서 제일 강조하는 바는 이른바 성과 속의 이분법이라든가 종교성과 역사성의 이분법을 어떻게 넘어서느냐는 물음입니다. 일년 내내 이런 설교를 할 뿐 아니라, 각종 의사 결정 과정이나 예배 형식을 통해 그런 입장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 자신이 성공적인 목회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민중이라는 개념, 민중 사건의 의미>

김성기 : 지금까지 1990년대 민중신학자로서 김진호의 기본 입장을 알아본 셈입니다. 이제는 좀더 포괄적으로 민중신학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여쭤봐야겠습니다. 저는 목사님 같은 연구자들이 1990년대에도 <민중>이란 개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의지와 현재의 작업 성과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유의미하게 응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대담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러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간 우리가 <'민중'을 너무나 쉽게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목사님의 민중론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민중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진호 : 민중신학에서 민중 문제는 크게 두 개의 다른 범주로 논의되어 왔어요. 하나는 방금 말씀하셨듯이 <민중이 누구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중은 역사의 주체다>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민중은 고난의 담지자>라는 것이지요. 그 둘은 분명히 경험적으로 다른 실체에요. 관련은 있으나 서로 다르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고난의 담지자라는 차원과 역사의 주체라는 차원>을 어떻게 연결시키면서 민중신학의 민중론을 전개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게 되지요. 이런 과제를 해명하려는 이론적 노력이 제 민중론의 핵입니다.

김성기 : 저 역시 그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입장입니다.

김진호 : <민중이 누구냐>라는 물음은 민중신학에서든 여느 민중론자든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사실 민중에 대한 물음보다는 계급이나 계층 같은 논의에 더 잘 응답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민중신학이 <민중은 역사의 주체다>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다른 어떤 이론 범주에서보다도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민중은 역사의 주체다>라고 전제해 놓고, <그렇다면 고난의 담지자가－이들을 '대중'이라고 합시다－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느냐?>는 물음을 던졌어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대중이 민중으로, 즉, 역사의 주체로 변화될 때, 어떤 담론과 어떤 연대의 망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건event 개념에 주목하게 됩니다. 민중신학의 <사건> 논의의 뿌리에는, 어떤 인식이 있냐면, <예수님이 주변 대중과 함께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보는 중요한 시점은, 예수님이 무엇을 말했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주목하는 것이었죠.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들에 대해서 타자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 분은 그와 무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에요. 하지만 민중신학에서는 예수님의 실천을 예수님과 주변의 대중이 더불어 일으킨 일(사건)이라는 차원에서 봅니다. 이처럼 <더불어 일으켰다>는 뜻에서 사건에는 공시적인 차원이 있지만 동시에 통시적 차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 당시의 사건과 후대에 일어난 마르코 복음서의 사건은 <예수운동의 에토스를 공유하는 사건>이란 점에서 연속성이 있는 것이죠. 여기서 예수사건이 탈권력적인 에토스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대중이 민중으로 전화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학적으로 개입한다 함은 곧 그러한 사건을 신학적으로 증언하는 것이죠. 민중신학자의 과제는 <예수님이 일회적인 사건을 일으킨 분이 아니고 끊임없이 지금 이 곳에서 우리와 더불어 사건을 일으키고 나에게 그 사건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증언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단순한 대중이 아니라 역사적 주체로서 전화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중신학의 기본 취지죠.

김성기 : 만중신학에서 말하는 <사건>이 갖는 의미가 이제야 비로소 명료해지는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과학에도 제도와 의식, 구조와 행동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현실 구성의 과정에 주목하는 이론적인 추이가 있거든요. 앤소니 기든스 같은 사람이 그런 케이스인데, 사건 개념은 이런 논의와도 이론적인 맥락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김진호 : 네, 그렇습니다. 처음에 저는 민중을 계급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초 민중이 계급보다도 더 유효한 개념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이후 우연하게 기든스의 책을 보면서 민중론과 관련해 상당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들뢰즈나 푸코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편입니다.

김성기 : 그런데 흥미롭게도 1990년대 논의에서는 <민중>보다는 <대중>이란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잖습니까. 어떤 개념이 사라지고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말장난의 문제만은 아니지요. 그렇게 된 데는 분명 사회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1980년대 식으로 민중을 계급으로 환원시키는 것 못지 않게 요즘 이론적 추세에서 보이듯 민중을 대중으로 느슨하게 확장시키는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추이가 시대 변동에 따른 문화 환경의 변화에 비추어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원래 민중 개념에 내재해 있던 민주주의와 평등 지향의 유토피아적 함의마저 이른바 시청률 논리를 중시하는 대중 개념 속에 함몰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렇기에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지금은 대중문화 개념으로 모든 것이 포괄되는데, 민중문화 개념이 다시 복원되어질 때 1990년대 대중문화 담론이나 연구도 제 균형을 잡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1990년대 민중신학의 전개 방향 역시 달라진 상황에 부응해서 제출되는 새로운 비판 담론에 기대어 당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못지 않게 1970년대 민중 개념이 태동하던 당시의 문제 의식을 견지하는 작업도 소중하다고 봅니다. 공동체라는 개념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실로 모호하고 이른바 프티부르주아적인 표현일지라도, 민중 개념의 중요한 함의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로서의 민중 혹은 공동체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대담 서두에서 제가 언급한 이정희 선생님의 <민중의 일식>이란 글에 공감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저는 그 분의 기본 논지를 <원래 공동체 개념을 붙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한데 김 목사님께서는 어느 글에서도 공동체 개념은 여전히 경계해야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목사님의 부연 설명을 들어보고, 더 나아가서 이정희 선생님의 주장에 대한 평소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공동체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진호 :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 논의가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정희 선생님과 저는 <민중>에 대해서는 비슷한 입론을 갖고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이 자신에게 마치 무의식적인 양 각인된 고통의 메커니즘을 통찰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민중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신학은 바로 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을 만드는 일에 어떻게 참여애햐 하느냐는 것이 저희의 공통된 관심이죠. 그런데 이 선생님을 원용하면서 저의 논점을 비판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은, 너무 이론적이고 관찰자적인 느낌을 주는 저의 무른 글쓰기와는 달리, 격정이 넘치는 따스한 애정과 통렬한 비평, 그러면서도 서릿발 같은 냉소가 어우러진, 힘있는 글쓰기 스타일을 갖고 있어요.
최근 이 선생님이 민중문화의 재고 조사를 하자고 제안하신 바 있는데, 교회나 지배적인 담론에서 억눌려 온 민중의 이야기를 복원시키자는 것이죠. 저는 그것을 <고난의 수사학>이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중에 대한 1970년대적인 애정을 상실할 수 있지 않겠냐>는 문제 제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전히 민중이란 말을 1970년대적 의미로 사용하기를 꺼려하고 또 공동체 논의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들의 합리적 핵심을 유념하고자 함입니다. 가령, <민중신학이 민중을 우상화한다>는 비판 속에는, 고난의 담지자를 미화하려는 데 치우친 나머지－결국 이것은 고난의 담지자를 역사의 주체와 동일화시킨 결과인데－그들의 도덕적 탈선을 망각했다는 주장이 들어 있습니다. 이 주장은, 그 비판의 불건전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라도 반예수적 선택, 즉 권력 집착적인 자기 중심주의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지요. 이 점에서 공동체라는 것은 외부의 타자를 배척하는 자기 중심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에요.

김성기 : 논쟁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공동체 개념에는 무정형의 이상적인 세계를 옹호, 미화하는 위험 요소가 있죠. <문화유산 답사기>류의 책이 많이 읽히는 것도 문제가 있거든요. 우리 민족이나 민족 유산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품고 있으면서도 미화가 지나쳐서 보편성을 잃을 우려가 있는 것이죠. 민족주의 문제도 그런 허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나 공동체 개념을 삭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돌이켜 보면 공동체 개념이 너무나 쉽게 찬양되거나 비판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쉽게>라는 말이 포인트인데요. 민중문화에서 공동체 개념이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는 19세기 후반 에 활동한 영국의 유토피아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W. Morris) 같은 사람이 그렸던 예술 자치주의나 개인의 자유로운 노동, 예술가적인 삶, 생태계와의 조화가 가능한 세계였을 겁니다. 저는 장인적, 예술적 삶에 근거한 대안적 세계 찾기는 단순히 과거지사가 아니라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더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단적으로 민중공동체라는 것은 과거의 사라진 유토피아 프로젝트가 아니고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이즈음 우리가 서구 세계와도 맞서 내세울 수 있는 실천적 전망인데, 그것이 그동안 일방적으로 찬양 혹은 미화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폄하되면서 많은 것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스꽝스러운 제안일지 몰라도 현단계 한국 사회과학에서 복원되어야 할 문제 의식은 <다시 민중이다>고 주창하고 싶은 것이죠.
이거 주제넘게 제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시간도 꽤 흐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대담 막바지로 가는 순서이니, 목사님께서 민중신학자의 정체성을 갖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자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정희 선생님의 글을 보니까 <민중신학은 망명의 신학, 변두리의 신학, 낭인의 신학, 아나키의 신학이다>는 진술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목사님은 이런 입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순례자로서의, 연구 노숙자로서의 삶>

김진호 : 언술 형태가 다를 뿐 사실은 저하고 너무나 똑같은 입장입니다. 저는 어떤 글에서 제 민중신학을 일컬어 <순례자의 신학>, <반정주(反定住)의 신학>이라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이미 민중신학의 원조격인 서남동 선생님은 <방외의 신학>이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나아가 성서도 정주할 곳을 끊임없이 해체하는 유랑자인 아브라함을 신앙의 원조로 얘기하고 있고, 하느님 자신도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함으로써 구원을 실현하는 분으로써 얘기하고 있지요.

김성기 : 요즘 연구자들은 유민이나 표류, 낭인, 변두리, 망명 같은 개념이나 범주를 자꾸 이론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는데 실은 몸으로 실천해야 될 범주라고 생각합니다. 글로 설명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실천적인 작업을 통해서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죠. 그런 개념을 세운 푸코나 들뢰즈의 입장도 그와 다를 바 없으리라고 감히 저는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어느 글에서 자신을 <연구 노숙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 또한 유민이나 변두리 낭인과 같은 함의를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제가 받은 인상으로는 <김진호는 상당히 깔끔하고 지적인 엘리트다>고 말하고 싶은데,(웃음) 정녕 말 그대로 노숙하는 연구자로서 스스로를 소외시킬 각오는 있으십니까?

김진호 : 저에게 그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적 문제입니다. 한때 푸코에게 매료된 적이 있는데, 그 주된 이유도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의 삶을,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그 학문적 탐구의 삶을 동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장담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만큼 저는 포기의 삶을 각인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늘 잣대 삼아 살려 하고 있어요. 목회에서도 제가 늘 갈등을 겪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신념을 지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끊임없는 저의 고민이고 과제입니다. 오늘 말씀하신 것과 같은 문제 제기를 늘 되새기면서 살아야죠. (웃음)

김성기 : 그러고 보니 일찍이 안병무 박사님도 <유민의 신학>이란 표현을 쓴 바 있네요. 한마디로 민중신학은 비제도권이라는 건데요. 기존 신학계의 룰과는 다르게 홀로 간다, 거기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도 되죠. 사실 그것은 고생길이죠. 간혹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다고 해서 흘깃흘깃 누가 엿보기는 해줄지언정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고 때문에 소외감도 상당히 느낄 수 있을 텐데 그 길을 계속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혹, 박사 과정을 밟거나 유학 경력을 쌓으면 신학연구자로서 운신의 폭이 좀더 여유롭지 않겠습니까?

김진호 : 솔직히 그런 동요가 있기는 있었어요. 저는 유민보다는 <순례자>라고 표현하고 싶은 데, 그렇게 살겠다는 결심과 학위 과정을 안 하겠다는 선택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정말 <선택>의 문제인데요. 과연 선택한 것만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식으로 제 입장을 밝히면 이렇습니다. 한때 알튀세르의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보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읽기도 어려운 책인데, 쓴 사람은 얼마나 어렵게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웃음) 저는 그 양반이 자서전에서 자기 평생의 작업 결과를 다 부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받았습니다. <말년에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용기 혹은 부인할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늘 새롭게 쌓을 수 있는 통찰력이 정말 가능할까? 그러고 싶을 때 그럴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저 또한 그런 고민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지도, 다니지도 않았다>

김성기 : 저로선 퍽 반가운 고백인데요. 뭐 제가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멀리서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끝으로, 그리스도교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교회의 미래죠.

김진호 : 그리스도교를 교회로 해석하면, 저는 미래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랬으면> 하는데 교회란 것이 징그러울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질적으로 나아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한백교회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는 교회에서 어떻게 회개의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고민을 하는데요. 교회로 그리스도교의 운명을 얘기한다면 저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성기 : 왜 그렇습니까? 지금 이 자리는 분명 공적인 석상입니다. 저도 동료들과 술좌석에서는 <대학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투의 불평을 늘어놓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란 어렵죠. 명색이 교육자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이 되기 때문에......

김진호 : 저는 교회에서 늘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별로 어려움은 못 느끼겠는데요(웃음)

김성기 : 그럼, 그리스도교라고 할 때는 어떻습니까?

김진호 : 저는 그리스도교인의 신앙을 표현하는 공간이 교회 밖에서 생겨나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죠. 예수님은 교회를 세운 적도, 교회에 다닌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교회가 생긴 것인데, 초기 역사를 보면 교회적 유형의 예수님을 추종하는 집단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른 유형들도 존재했거든요. 그런데 역사를 거치면서 <교회 속의 예수님>만이 살아 남았죠. 그렇게 된 데는 물론 부정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렇게 살아남은 교회가 패권주의적 논리를 따라서 발전해 왔으며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손써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배 권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어떠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리라고 생각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감추어 왔었던 이야기들을 복원시키는 노력, 그리스도인이 기존과는 다른 존재 양태로 그리스도인일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이 요청되는 것이죠. 제가 앞에서 말했던 <성과 속의 구분을 넘어선다>는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이해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성기 :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진단인지 낙관적인 진단인지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웃음) 겉으로 보면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일 수도 있고, 거기에 또다른 낙관적인 의지가 새겨져 있기도 한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김진호 : 또다시 <순례자>라는 말을 해 봅니다. 저는 하느님 나라는 알지도 못하고 또 언제 실현될지도 이야기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제 삶의 잣대로서 존재하고 있거든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순례자가 될 수 있다면, 또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수 있다면 민중신학자로서의 내 글을 사람들이 안 읽어줘도 상관없겠다는 의지는 분명 있습니다.

김성기 : 그것 참 어려운 일인데요. 지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독자가 없으면 외롭거든요. 또 그러한 외로움을 못 견뎌서 독자를 찾아가려고 무리하게 애쓰다 보면 자칫 산통이 깨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안 읽어줘도 상관없다>는 진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진호 : 오늘 ≪현대사상≫ 같은 신학 바깥의 공간에서 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게 되어 저로서는 색다른 경험을 한 셈입니다. 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민중신학 연구자 한 사람의 것일 뿐 과대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민중신학이 우리 역사의 현장에 개입하고 현실을 증거하는 발언이며, 그 발언이 사람들에게 유의미하게 들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럴려면 민중신학의 현재적 의미를 둘러싸고 민중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에도 좀더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성기 : 오늘은 90년대 민중신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김진호 목사님을 모셔서 90년대 민중신학이 세기말의 한국 사회에 어떻게 실천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대담을 마치면서 저는 오늘의 민중신학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하나의 표현을 떠올려봅니다. <역사 속의 예수를 찾아가는 표류의 신학>이 그것입니다. 오늘 대담의 의미는 김진호라는 민중신학자가 자기와 호흡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서 말을 건넸다는 견지에서 이해되어도 좋을 듯싶은데, 저희로서는 그 말걸기에 대해서 독자들이 어떻게 대꾸를 할 것인지가 자못 흥미롭기도 합니다. 저희 ≪현대사상≫의 바람은 그러한 말걸기와 대꾸가 이어지면서 민중신학의 문제 의식과 지향이 신학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여타 지식 세계나 학문 세계, 더 나아가 실천 영역 속에서 꽃피워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표류의 신학자>로서 자기 속내를 솔직하게 보여주신 김진호 선생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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