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7:44)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11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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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356 , Lines : 60 |
| 귀성(歸省)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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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歸省)의 뜻 김 진 호 한백교회 목사 때 : 통일염원 55년 육백 아흔일곱 번째 예배에서(1999.2.14) 본문 : 고린도전서 6장 20절 \ 곳 : 한백교회당 고린도전서 6장 20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공동번역 성서에서 인용) 대학 시절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던 저희에게는 많은 화제거리였습니다. 그 향수가 남았던지 신학교를 졸업하고 관심거리도 많이 달라진,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 나온 속편도 제게는 아주 흥미로왔지요. 알아듯지 못하는, 한글 자막처리도 안 된 테잎을 구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볼만큼 말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천 년대초 인간과 컴퓨터 메커니즘간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사실은 인간이 개발한 초특급 슈퍼컴퓨터가 반란을 일으켜서 핵전쟁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한 뒤, 인간을 통제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인간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컴퓨터는 인간 저항군을 찾아내서 사살하기 위해 인간과 '똑 같은' 신체를 가진 합성인간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터미네이터'입니다. 하지만 존 코너라는 저항군 지도자를 따라 인간 군대는 컴퓨터가 설치한 최후 방어선을 뚫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시간여행시켜서, 존 코너의 출생을 막아보자는 것이죠. 전 편이 장차 존 코너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죽이려는 음모에 관한 것이라면, 후편은 어린 코너를 처형하기 위해 온 다른 터미네이터에 관한 얘깁니다. 여기서 속편의 터미네이터는 흥미로운 하나의 상상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모델명 T-1000이라는 이 합성인간은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져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신체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일반 생명체와 다른 존재임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또 신체는 인간에게 자신의 성(性)을 깨닫게 해 줍니다. 나아가 신체는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자신을 인식하도록 강요합니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된 마녀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합니다. 거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인간 내면의 욕망의 소리입니다. 무의식 깊숙한 곳에 은폐된 내면의 목소리로 '돌아가 살피고자' 할 때, 거울은 그 내면의 소리를 폭로해 주는 것입니다. 이때 거울은 항상 신체를 반사함으로써 대답합니다. 그런데 T-1000은 이런 신체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는 누구도 될 수 있지만, 누구의 모습으로도 자신을 반사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즉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신체를 통하여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존재, 결국 '돌아가 살필' 내면의 목소리 자체가 무의미한 존재인 것입니다. 설날을 앞둔 예배의 설교 소재로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얘기라고요? 사실은 '귀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캐묻다가 이런 상상력을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고향을 향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귀성(歸省)이라는 단어로 표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귀성일까, 왜 '돌아가 살핌'이라고 표현했을까? 귀성이라는 것은 거대한 인구 이동을 야기했던 '근대화/산업화' 현상의 소산입니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인간은 대가족적, 혹은 촌락적 공동체의 일원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 위치를 각성하게 되며, 그 지역의 소속원으로서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아가 태고적부터 계보를 이룬 혈통적 혹은 지연적인 인연(因緣)의 망이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형성할 뿐 아니라, 그의 사망 이후까지도 혈통적이고 지연적인 관련 속에 있습니다. 대가족의 공간, 지연적 공간,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본향을 떠나 도시로 이동합니다. 그 결과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은 본향을 향해 다시금 되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귀성입니다. 곧 귀성은 가족적 고리를 재확인하려는 행위요, 나아가 존재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돌아가 살핌', 그것은 근대화/산업화된 초기 사회에선 귀향 행위를 통해서 표현됩니다. 그가 돌아갈 고향이라는 공간은 바로 태고적부터 먼 훗날까지의 인연의 고리를 살짝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한 소설가는 어느 칼럼에서 40대인 자기 자신이 귀성의 마지막 세대일 거라고 말합니다. 1960~70년대의 대대적인 이농을 염두에 둔 얘기겠지요. 이농을 체험하지 않은 그 이후 세대에겐 고향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른바 근대화가 한참 진행된 지금의 세대에겐 명절의 역이나 버스 터미널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귀성 공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의 위치를 가족이나 땅을 통해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존재의 본향을 찾는 곳은 바로 자기 자신, 내면의 자아인 것입니다. 거울이이런 내면의 자아의 소리를 신체의 반사를 통해 표현해 주는 매체이지요. 그런데 최근 정보통신 테크놀널지의 발달로 근대화의 물결은 거대한 파도로 돌변해버렸습니다. 이른바 정보화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엄청난 정보가 세상을 떠다니면서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정보는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합니다. 더구나 그 이동 속도는 버스나 기차로서는 흉내낼 수조자 없는 이른바 광속도입니다. 한가하게 거울에 반사된 모습에서 자기를 묻는 사람은 도무지 정신차릴 수 없는 변화의 격랑을 타고 있습니다. 마치 신형 터미네이터 T-1000처럼 정보화 사회의 인간은, 변화되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타인과 비교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자신의 모습을 변신시킴으로써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사이버스페이스)에 인간 자신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때 그는 신체가 없는 존재로서 실존하게 됩니다. 산업사회가 혈통이나 땅에서 이탈한 수많은 유랑자를 낳았다면, 정보화 사회는 신체를 상실한 유랑자 집단을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근대사회의 유랑민이 존재의 본향을 향한 질문, 즉 귀성을 혈통적이고 지리적인 귀향 행위에서 찾았다면, 포스트근대 사회의 귀성은 자아를 향한 '되돌아 살핌'을 의미하게 된 것이죠. 한 평론가는 미당과 소월과 김지하의 시를 비교하면서, 미당의 시가 존재를 향한 '회귀(回歸)'를 꿈꾸고 있다면, 소월은 '불귀(不歸)'로 자신을 추락시키고 있고, 반면 김지하는 '미귀(未歸)'를 선언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소월의 불귀란 고향 땅에서 쫏겨나 산수갑산을 지나 머나먼 타국 땅, 간도로까지 내몰리는 유민의 한(限), 결코 본향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유랑민의 나락의 행보에 자신의 가슴을 찢는 시인의 통렬한 절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반면, 김지하의 미귀는 그런 유랑민의 고통이 절망이 절규로 메아리치는 세상을 홀로 해탈하고자 하기보다는(회귀), 또 그 한의 소리에 자신을 파묻어 버리기보다는(불귀)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며, 그곳에 남아 있겠노라며, 자신의 해탈을 유예시키는,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적극적 저항의 결의를 의미합니다. 존재를 향한 그리움, 그것은 유랑을 낳는 배제의 문명 위에서 나옵니다. 그 파괴적 문명 속에서 자신을 향한 되물음, 귀성(歸省), 즉 '돌아가 살핌'은 이 평론가의 평가처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신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당신들의 '신체'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오." 이 말은 신체를 떠나는 구원으로의 머나먼 여정을 강조하는 어떤 이들의 주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이 난무한 광란의 역사를 마주하던, 초기의 도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신비주의적 신앙의 단초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도시는 사방각처에서 전쟁포로로 끌려오거나 난민으로 이리저리 유랑하다 들어온 사람들이 인구의 절대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혈통적으로도 피부색으로도 언어로도, 어느 하나 동질감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도시. 이곳에선 공권력의 폭력뿐 아니라, 별의별 인연을 통해 형성된 수많은 공동체들의 박터지는 경쟁에 의한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도시라는 전체 체제는 너무나도 안정되어 있었지만, 사람들 개개인이 느끼는 상황은 힘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지극히 불안정한 정글사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속에서 소수파 집단인 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무력감 속에서 세상의 권력적 질서를 벗어 던지는, 그런 질서의 세례를 받은 신체로부터 이탈하려는 열망을 신앙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널리 유포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해 말합니다. 환상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신체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곧 '미귀'의 선언인 셈입니다. "그날은/ 없다// 있는 것/ 살아 있는 것은/ 지금 여기…"(김지하, [그날] 중에서).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날은 유예되었다고 말입니다. 지금은 그날을 앞당기기 위한 우리의 개입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입니다. 정보화 사회는 우리의 신체를 왜곡시킵니다. 오늘날 거울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점점 무의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터미네이터2"의 T-1000 역의 배우는 컴퓨터가 재생해내기에 적합하다는 이유 때문에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신체를 볼 때조차, 표준화된 수치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존재를 향한 그리움'은, 즉 귀성은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수행됩니다. 정보화 사회의 매스미디어가 설파하는 기준에 의해서 재생된 자신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하려는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의 신체의 왜곡은 권력의 작동 방식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보화 사회의 권력 논리에 따라 왜곡된 신체 속에서 착취당하는 자, 배제되고 축출당하는 자가 무수히 생겨납니다. 마치 고대로마제국처럼 도시는 난민들이 들끓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심화된 불평등 구조 속에서 아우성과 절규가 울려퍼지는 나락의 장소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 속에서 우리의 귀성 행위는 무엇일까? 바울의 권고에 따르면 귀성, 곧 돌아가 살핌은, 시대의 고통에 개입하는 적극적 실천, '미귀적 실천'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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