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6/05 (02:21) from 61.254.100.232' of 61.254.100.232' | Article Number : 114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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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847 , Lines : 19 |
| '존속살해', 그 가족주의적 악의 합리성에 대하여(2003.6.1한백의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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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해’, 그 가족주의적 악의 합리성에 대하여 부모를 살해한 사람의 죄는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 지난 2002년 3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직계존속의 상해치상죄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요컨대 한국에서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는 타인을 죽인 경우보다 중죄의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죄를 지은 자는 대개 사형이나 무기형에 처해진다고 합니다. 근자에 들어 정상참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 7년형 선고를 받기도 하지만, 형을 떠나서 우리 사회는 이런 이를 ‘패륜아’로 취급하여,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로 규정합니다. 지난해 개봉되어 극찬을 받은 영화 <공공의 적>은 ‘직계존속 살해범’에 대한 이러한 법적이고 사회적인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두 부류의 사람을 선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고 학력 높고 깔끔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재산도 배운 것도 별볼 일 없고, 성질도 한마디로 ‘더러운’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전자에게 좋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이미지를 뒤집음으로써 관객에게 가치 전도의 즐거움을 줍니다. 이 영화는 ‘보통 나쁜 놈’과 ‘지독히 나쁜 놈’간의 대결이 아니라 단순명쾌하게 ‘나쁜 놈’과 ‘좋은 사람’의 대결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질 것을 다 가진 그 나쁜 놈’은 살인을 밥 먹듯이 하고, 특히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패륜아입니다. ‘부유함-고학력-존속살해’라는 고리는 최근 들어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됐던 두 건의 존속살해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2000년 5월 과천에서 일어난 토막살인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2002년 6월 분당에서 일어난 살해 후 집에 불을 지른 사건입니다. 두 사건 모두 대학생인 아들이 교수인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이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파렴치하게도 시신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건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입니다. 그리고 범인이 부유하게 자란 모범생 이미지의 대학생이라는 점도 동일합니다. ‘부’와 ‘학력’이 우리 사회에서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주된 요소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의 세습이나 학력에 대한 집착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서, 가족주의가 끼치는 대표적인 폐해에 속합니다. 요컨대 한국 사회에서 부나 학력이 가족주의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러한 조건들이 가족주의의 해체를 시사하는 존속살해와 만나면, 오히려 더욱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양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는 사실입니다. ‘부유하게 자라고 배울 만큼 배운 놈이 그런 패륜적인 짓을 저지르다니.’ 이것이 사람들이 이런 사건을 접할 때 품는 생각입니다. ‘부’와 ‘학력’이라는 가족주의적 폐해가 한 개인을 파멸시킬 만큼 충분히 심각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존속살해’라는 사건 앞에서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은 더욱 가족주의적 자세로 가족 내의 모든 문제점을 덮어버립니다. 심리학자인 이훈구는 과천의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인 이은석을 소재로 저술한 ꡔ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ꡕ라는 책에서 이은석은 ‘무죄’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그는 20여년간 부모가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욕구를 온갖 방식으로 자식에게 압박을 가해온 지독한 폭력에 대한 ‘무의식적 정당방위’를 행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박한 꿈조차 착취당했으며, 부모의 욕구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온갖 폭언과 모멸을 받아야 했고, 이런 좌절감으로 인해 인생을 철저히 파괴당했다고 합니다. ‘미안하다’고 자식에게 사과할 수 없는 부모의 병든 욕구는 결과적으로 자기들의 자식을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내던져버렸고, 또 그 가족 자체를 붕괴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이훈구 교수는 미국의 존속살해 연구가인 하이드 박사의 연구를 인용하여 한 해 3백여 명이 부모를 살해한 것으로 기소되며, 이 가운데 90% 이상이 부모의 학대를 경험하였다는 미국의 통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0% 이상이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족주의가 더욱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부와 학력의 가족주의적인 집착은 존속살해에 의해 무시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속살해라는 패륜적 사건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이 교수의 주장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부모 살해’는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요? ｢출애굽기｣는 부모를 때린 자, 심지어 업신여기는 자까지도 사형에 처하라고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21,15․17) 어떤 유보 조항도 없습니다. 이 단락 전후에서 상해나 살해의 경우 그 동기가 처벌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과 대조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성서 도처에서 수십 번이나 언급됩니다. 이것은 물론 자식들이 부모를 공대하지 않고 심지어는 폭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폭력은 없었을까요? 성서는 부모의 자녀 폭력에 대해 수없이 많은 전거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위신을 위해 자녀의 목숨을 내걸기도 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자녀를 재물로 바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런 폭력에 대해서는 성서는 이상하리만큼 무심합니다. 또 성서에서 전거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부모 폭력이 금기시되고, 자녀 폭력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후자가 전자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폭력은 쉽게 정당화되는 반면 그 반대는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에서, 부모를 살해한다는 것은 정말로 심각한 학대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나타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서가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필경 성서의 내용에 가족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서를 좀더 복잡하게 살펴보지 않고서는, 그 구절들 하나하나만을 단순히 받아들여서는 현실의 복합성을 읽어내는 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존 스타인벡이 소설 ꡔ에덴의 동쪽ꡕ에서 ｢창세기｣의 타락 신화를 해석하면서, 한 가족의 위기에서 자기 시대의 문명사적 피폐성을 읽어내고, 그 가족의 문제가 바로 부모의 자녀에 대한 폭력이었다는 점을 제시하는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즉 성서에 나오는 신화 속의 가족 해체의 위기를, 시간을 가로질러 모든 가족들의 위기 특히 저자 자신의 시대인 근대화가 급속도로 추진되는 사회의 가족 해체의 위기의 원형으로 읽고, 거기에서 사회 전체의 문명사적 위기를 발견하고 있으면서, 이 위기가 바로 자기를 닮은 자에 대한 욕구, 아니 자기 자신이 욕구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식에게서 발견하려는 욕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저는 부모 살해라는 것을 절대악으로 상정하는 가치관을 우리가 성서에서 배운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 살해는 정말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부모의 폭력에 대한 은폐의 기재로서 사람들에게 이해된다면, 바로 그러한 숨겨진 폭력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이유 모를’ 위기에 놓일 것입니다. 숨겨진 것이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한국의 주요 신문 몇 개를 선정해서 직계존속살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발견한 기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 범죄를 패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상당수의 기사들은 부모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실제는 더 많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거의 대부분의 기사는 이러한 패륜적 범죄와 부모의 폭력을, 함께 이야기할지라도, 연결시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실 보도에 강세가 있는 기사에 비해 논설 같이 주장에 더 강세가 있는 기사는 훨씬 더 강고하게 패륜적 범죄성만을 언급할 뿐입니다. 요컨대 존속 살해 앞에서 부모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기자들에게조차도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속살해의 관념이 명백히 가족주의 속에 내재된 수많은 악을 숨기는 기재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존속살해는 잘못된 것이지만, 바로 그러한 잘못에 대한 균형 잡히지 못한 우리의 집단적인 아집은 다른 악을 숨기고 정당화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존속살해는 더 큰 악이 아니라 하나의 악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가족주의의 악을 합리화하여, 악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지 않을 때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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