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7:45)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12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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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13 , Lines : 48 |
| 도시의 경계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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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경계밖 김 진 호 한백교회 목사 때 : 통일염원 55년 육백 아흔여덟 번째 예배에서(1999.2.21) 본문 : 마르코복음 1장 43~45절 \ 곳 : 한백교회당 마르코복음 1장 43예수께서 곧 그를 보내시면서 44"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 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엄하게 이르셨다. 45그런데 그는 … 이 일을 널리 선전하여 퍼뜨렸기 때문에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 다.(<공동번역성서>에서 인용)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어느 지역에서 '나병환자' 한 사람을 고쳐주면서 일어난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 먼저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졌음을 증명받으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는 들어가실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심각한 질병의 사람을 고쳐주고 그를 자 활하게 했는데, 훈장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미움을 사게 되었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런 사악한 사람들이…. 그런데 본문은 그 마을 사람들의 고약스러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담담하게, 마치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는 듯 태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수수께끼가 본문의 핵심적 문제거리임을 깨닫 게 됩니다. 우선 '나병'이라는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말하는 의학적 개념의 문둥병(leprosy) 은 아닙니다. 추정컨대 신체에 혐오스럽게 돋거나 혹은 전염성이 강한 피부질환과 관련된 신체적 증상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도 너무 현대 의학적인 지식의 어법입니다. 성서의 '나병'은 전문의적 지식보다는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검진되었고, 병리적 원인보다는 종교적 원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아무튼 고대의 이스라엘의 나병은 최악의 질병으로 여겨 졌고, 따라서 죽음에 비견되는 저주의 징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공동체 내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람들과 마주쳐서도 안 됩니다. 보기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 천형(天刑)을 오염시 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커녕 인적이 많은 도로 근방에 얼씬거려서도 안 됩니다. 혹 저 멀 리 인기척이 들리면 나병환자는 자신이 부정탄 사람임을 소리쳐 알려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의 생활 공간의 외부로 쫓겨 난 사람들, 아니 삶의 공간인 세상에서 격리된, '이미 와버린 죽음'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자신을 고쳐달라고 애원합니다. 예수님이었기에 망정이지 보통의 사람이라면 경을 칠 일입 니다. 과연 메시아를 자청할만한 대단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징벌한 천형의 사람을 거리낌없이 마주할 수 있는 이, 그 사회의 건강관리 체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이. 그분은 도리어 그를 '측은히' 바라봅니다. 치유된 자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본문으로 추정컨대, 그는 필시 다시 내쫓김당했을 겁니다. 어쩌면 나병환자들 사이에서도 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된 셈입니다. 성서는 나병 걸린 이가 있 으면 그를 격리시키고, 나으면 사제의 검진을 받은 후 다시 복귀시키라고 합니다(레위14,2~32) .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배제는 일단 제도화되면 관성이 생깁니다. '제도화'는 어떤 행위를 권장 또는 규제하는 정치적 기구뿐 아니라, '의식의 관성화' 까지도 포함합니다. 즉,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보상/처벌하는 정치적 장치가 있고, 사람들이 이 장치의 판정과 습관적으 로 동일한 가치판단을 할 때, 사회는 그 행위에 대해 제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병은 신의 저주이기에 그를 사회 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사회정치적 형벌이 내려졌고,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불결의 상징으로 여겨 회피하는 것, 심지어 질병 에 걸린 그 자신조차도 이런 사고에 종속되어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제도화된 나병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 병이 나았다고 합시다. 사제가 그를 정결하다고 판결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사회정치적 형벌의 해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 들의 습성화된 관성은 여전히 그를 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의 관성조차 그리 쉽게 해제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관한 정치사회적 제도는 있으나마나한 것이 됩니다. 사람들이 공공연히 위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거꾸로 정치적 기구는 여간해선 그런 사람에게 복권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의 개혁을 위해서는 무수한 세월과 희생을 대가 로 치뤄야 합니다. 가령,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로 수감된 사람들의 사면은 법제뿐 아니라 사람들의 적개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적어도 법제적 불이익이 전혀 없는 장애인에게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 견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 다. 만약 치유받은 나병환자의 운명이 그렇게 됐다면, 그를 측은해하던 예수님은 분명 실수하신 셈입니다. 어쩌면 당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사회의 견고한 편견을 너무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런 행위의 결과는 예수님 자신에게도 난처한 상황을 가져다주고 말았습니다. '보아서도 안 되는 불경한 이를 만나 치유까지 해 주었으니, 그 작자야말로 악령의 힘으 로 기적을 일으키는 자일 거야',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배제당한 자를 복권시키는 일 , 격리의 해제를 선포하는 일, 그것은 정말로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지난 2월 7일 현장의 소리를 한 주영수 선생은 노숙자에 대한 우리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해 비평한 적이 있습니다. 가령 모 언론에서 노숙자들이 일반인보다 2.5~3배 정도 결핵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다는 대한결핵협회의 발표를 인용하면서 노숙자들 의 심각한 질병오염 가능성(유병률)을 보도한 것은, 사람들에게 노숙자와 접촉하는 것 에 대한 혐오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결과 산출 방식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지도 않은 채, 그 결과를 인용된 것은 이러한 높은 수치가 주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고 그는 추정합니다. 유병률이 산업보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의 폐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노동/실업 문제 등에 비해 노숙자 문제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지 나치게 소흘한 것이 아니냐는 제 물음에 그는 자기가 접했던 몇몇 사람의 이야기를 근거로, 아마도 노숙자가 대중에게 혐오적인 존재이기에 그런 게 아니냐고 대답했습니다. 농촌이나 3D 업종에 일자리가 부족한 터에 노숙이라는 건, 게으름과 나태의 소산일 뿐이라는 대중의 일반적인 가치판단에 영합하는 언론의 소심증적 폐혜의 단초일 거라는 얘기지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파급력이 강한 의제설정의 매체는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제 막 주목되기 시작한 노숙의 문제는 성서의 나병처럼 제도화된 배제의 새로운 항목으로 책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 니다. 사실 일제시대 이후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문둥병자 등과 같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여, 도시의 경계밖으 로, 생활 영역 외부로 밀쳐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런 류의 사람들은 적어도 우리 삶의 공간에선 거의 망각된 존재가 되 었습니다. 혐오의 대상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새로운 존재로 노숙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사람들의 배제주의적 가학성을 채워줄 대상으로 그들이 채택되고 있는 경로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가슴 속엔, 심지어 노숙자 자신의 가슴 속에서도, 노동할 수 없는 인간, 노동하기 위해 삶을 기획하지 못하는 인간은, 수혜 대상은 될지언정, 도시 거주자의 권리(시민권)를 행사할 수는 없는 '폐인'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또 다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해묵은 논제가 되살아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 최근 채택한 '경제백서'에서도, 노숙 혹은 유랑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반면, 많은 분량을 노동 문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의 유의미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장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 의 삶이, 그 존재의 가치가 폄하됩니다. 이런 사회에선 노동만이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이요, 그래서 노동하지 않는 존재는, 개별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을 불문하고, 불완전한 존재 혹은 폐인으로 치부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동이란 상품을 생산하는, 즉 상품의 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사일이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등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서 성차별, 아동 차별의 사회경제적 근거가 도출됩니다. 조신한 여성은 집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거나, 아이들은 학교나 집에서 공부나 해야 한다는 판단의 근거도 바로 이런 노동의 숭고성에 대한 지 나친 신뢰에 기초합니다. 더구나 노동하지 못하는 인간, 노동할 가능성도 없는 인간, 노동사회에서 폐인일 뿐인 인간, 즉 (재노 동화할 수 없는) 노숙자는 천형을 받은 죄인으로 규정되어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패기찬 '객기'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배제주의적 관성에 도전함으로써, 예수님의 문제 제기로 인해 배제된 이들의 자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체제의 가학성이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나병 환자가 유죄가 아니라, 그 사회가 유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여성 노숙자 쉼터에 재정적인 후원을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경제적 압박 아래 있는지를 유념한다면, 이것 은 결코 무가치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우리 안에서도 점점 확산되어 갈지도 모 르는 배제주의적 관성화, 그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니 그것을 공공연히 위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온정어린 행위 속에 은폐 된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가학적 욕망은 계속 숨겨진 채 있을 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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