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7:46)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13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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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48 , Lines : 57 |
| 리듬의 힘 ― 성령과 방언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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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의 힘 ― 성령과 방언론 ― 김 진 호 한백교회 목사 때 : 통일염원 55년 칠백 한 번째 예배에서(1999.3.14) 본문 : 사도행전 19장 6절 \ 곳 : 한백교회당 사도행전 19장 6바울로가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러자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여러 혀로' 말하고(원본)/ 방언들로 말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공동번역성서>에서 인용) 제가 아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20년 지기입니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이후 각기 아내와 자녀들을 둔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우정은 간직하고 있지요. 대학 시절 내내 늘 붙어다니며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그들은 직장을 선택할 때도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신중히 고려했고, 그 중 하나가 2년간 외국에서 근무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같은 도시를 벗어나서 산 적이 없습니다. 아, 군복무 시절에는 서로 떨어져 지냈겠군요. 몇 년 전에는 서울 외곽도시의 한 조합아파트 추첨에 함께 참여해서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시골에 공동주택을 짓고 함께 노동하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다정한 친구들은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한 친구는 매우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우유부단할 정도로 부드러움을 천성으로 간직하고 있는 반면, 다른 친구는 표정만큼이나 격동적이고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모든 운동을 잘 하고, 잡기에도 능한 그런 류의 사람이지요.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여성상도 다르고, TV프로에 대한 선호도도 천지차입니다. 또 시국에 대한 이해도 전혀 달랐지요. 독서 습관도 마찬가진데, 한 친구는 대학시절 카프카나 니체 같은 사람의 글을 즐겨 읽었던 것 같고, 다른 친구는 무협지만을 읽는 사람이었지요. 제가 아는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막내라는 점과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를 좋아한다는 사실뿐입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같은 조원끼리 디스코텍에 갔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 계기가 찰리 파커에 대한 얘기였다더군요. 재즈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다른 류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끈질기고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하게 헸을까. 최근 글 한 편을 읽으면서 저의 이런 궁금증은 조금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리듬은 개인의 존재의 깊은 곳에 침입해 들어간, 아니 어쩌면 존재의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온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그 무엇'이라고 합니다. 어느 경우든 그것은 존재의 본능적인 것이기도 한 동시에, 개체를 초월하여 실재하는 외부 세계적, 아니 우주적인 운행의 한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리듬 속에는 개인과 집단을 나누는 모든 정의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재즈 음악가는 말합니다. `재즈의 정신은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존재의 원초적 리듬을 재현하는 자유다'라고. 재즈를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그들에겐 단지 음악의 한 장르에 공히 심취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그것을 통해서 리듬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었고, 서로에게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리듬이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공속감을 향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영문학자가 소월의 시 속에 품겨져 있는 리듬을 평하면서, 민족을 공유한 모든 이들이 소월의 시 속에서, 시의 내용이 아니라 시의 운율 속에서, 원초적인 공속적 정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할 때와 마찬가지의 경험일 겁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일체감에 도달하게 됩니다. 서로간의 온갖 다름을 불식시키는 원초적인 공속감을 향유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20년 우정의 이야기들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달랐고, 지금도 그 다름은 계속됩니다. 그들은 자기들처럼 너무 천양의 모습을 한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는 데 퍽 어려워합니다. 또 그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생활습관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해 갔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태를 종종 이해할 수 없어하는, 다소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상투적인 얼굴을 갖추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끼리는, 서로를 바라볼 땐 언제나 따뜻함을 잃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의 자취 그대로를 늘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리듬의 힘, 존재의 깊음 속에서 나오는 그 규칙적인 그 무엇은 참으로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옴, 그 유출됨을 표현하는 데 `솟구침'이라고 말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것은 낯설음을 전복시키는 솟구치는 내면의 동력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사도행전에서 몇 차례 언급되어 있는 `방언'이라는 표현을 떠올렸습니다. 그 소리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저는 소리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데 소리의 리듬성을 주목하면서, 불연듯 오늘의 본문 같은 난해한 구절이 명쾌하게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대도시 에페소의 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도입 문장은, `아폴로가 고린토에 있는 동안 바울은 에페소에 이르렀다'(사도19,1)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앞에는 바울이 아폴로를 만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18,24~29). 그는 안렉산드리아 출신이었지만, 에페소에서 활동하는 정력적인 그리스도교 떠돌이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바울과는 전혀 별개로 활동했던 예언자로, 당시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서 바울 만큼이나 매우 영향력 있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이였겠지만, 그들은 만났고 이후 평생의 동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 같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린토전서에 의하면 당시 교회들은 아폴로와 바울의 영향력 때문에 분열이 일어날 지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 시대로부터 30년 정도 후대의 문서(80~90년경)인데, 이 문서에 의하면, 당시에도 바울과 아폴로 지지자간의 긴장의 흔적이 잊혀지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에페소에서 있었던 그리스도인들간의 갈등에 관한 일화로 읽어야 합니다. 다분히 바울의 입장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사도행전 저자는 마치 아폴로 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 의해 불완전한 신앙을 보완하게 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다 중립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두 유파간의 타협이 소개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울이 세례를 주고 난 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여기서 세례라는 것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세례는 각 그리스도교 유파에 개인이 소속원이 되었음을 선서하는 일종의 신고예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수많은 유파로 갈라졌음에도, 뿌리가 같다는 동족 의식 때문에, 입회의식인 세례를 둘러싸고 교회들간에 신사협약이 맺어지게 되어, 소속 유파를 바꾸어도 대부분 세례를 다시 강요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세례는 신입절차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례는 평생에 단 한번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식으로 정착되기 이전에 세례는 전향의 공적 신고인 동시에, 위대한 인물로부터 마술적인 힘을 옮겨 받는 주술적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세례를 베푸는 이의 능력이 중요하고, 그와 수세자간의 신뢰관계가 필수적입니다. 바울을 만난 에페소의 그리스도인은 그에게 신뢰를 표현하며 세례를 받음으로써 동류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저 위대한 인물로부터 나온 신비한 힘을 전수받고자 했습니다. 본문은 성령이 임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집단 내의, 혹은 집단간의 갈등을 화해하게 하는 신비한 힘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징후는 방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낯설은 리듬으로 소리를 냅니다. 이 체험은 강한 에너지를 유출시킵니다. 아마도 이 소리는 원초적 리듬이 재현된 소리였을 겁니다. 많은 종교들의 주술적 주문들처럼. 요컨대 낯설음은 친숙함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에페소의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에서 바울과의 공감대를 얻게 됩니다. 서로간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이 낯설음으로 인한 많은 오해와 편견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하며 차이를 전복시키는 힘이 이 친숙한 낯설음의 리듬의 발설을 통해 생겨난 것입니다. 이로써 아폴로 파인 그들은 바울과 동지애로, 아니 가족애로 묶이게 됩니다. 본문은 두 이질적 집단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주장들, 이념들, 이데올로기들 속에 감추어졌던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원초적인 리듬이 있습니다. 방언 속에서 그들은 만나고 화해하고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체험입니다. 성령은 낯설음을 일소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차이로 인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힘입니다. 성령은 서로간의 갈등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전복시키는 힘입니다. 곧 성령은 흩어진 이들을 모우고 동지로 가족으로 상면케 하는 힘인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분들을 뵈었습니다. 이념의 차이를 예각화시키고, 낯설음의 기억을 증폭시키며, 분노를 조장하는 분단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로부터 소원해지기를 강요당했던 사람들입니다. 30년 이상을 유폐되었다가 풀려난 그분들의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따듯한 것을 보면서, 우리를 여전히 둘러치고 있는 분단의 영의 광폭한 장난에 새삼스러운 혐오감이 솟습니다. 무엇으로 이 놈의 광폭스러움을 제압할 수 있을까? 교회는, 교회의 영은 이 점에서 철저히 무능했습니다. 아니, 분노의 영이 더욱 활개치는 곳이 교회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교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화해하게 하는 영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 원초적 리듬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회를 차지하고 있는 영과, 그것에서 나오는 힘의 광폭함을 증언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민족과, 인류와, 온 우주 만물이 해방되기를 염원합니다. 진정한 영을 품은 화해의 리듬을 소망하면서. 주님, 그 소리를 읽게 하소서. 아니 우리 자신이 그 소리가 되게 하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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