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3/05 (10:24) from 211.245.9.160' of 211.245.9.160' | Article Number : 1319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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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885 , Lines : 27 |
|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까(2005.2.13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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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일천 열다섯 번째 모임 (2005.2.13)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까 <그때 그 사람들>은, 제목이 말해 주듯, 인물을 주된 소재로 삼아 10.26이라는 사건을 기억해내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기억은 단순한 회상 작업이 아니라 기억하는 이의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항상 기억하는 이 자신의 사적인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데 종종 이 사적인 기억은 공적 무대에 전시되며, 그중 일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집단적 기억 내지는 공적 기억이 되곤 합니다. 물론 그것은 대중의 공증을 거쳐야 하겠지요. 감독은 이 영화의 ‘그때 그 사람들’ 가운데서 영문도 모르고 그 사건에 말려들어 죽어야 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재밌는 발상이고, 또 중요한 문제의식입니다. 그간 이 사건의 공적인 기억에서 철저히 묵살되어온 이들을 해석자-감독은 주목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빼앗긴 언어를 되돌려주고, 그들 각자의 삶에, 그들 각자의 서로 다른 얼굴에 갑자기, 느닷없이 덧씌워진 그 폭력적 사태를 바로 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겠다는 것이겠지요. 영화가 이런 방식의 문제의식을 과연 잘 담아냈는지, 대중에게 그 개연성이 설득력이 있을지는 대중의 검증을 받아봐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문제의식 자체조차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한데 이 영화는 애초부터 그 의도 ‘외부’에서 논란이 될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 사람들’ 중, 지금까지 일반적인 공적 기억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박정희 전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가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필경 그가 죽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닮고 싶은 인물 1위로 선정될 만큼 그는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까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와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의 딸은 현재 야당의 지도자가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다루었다는 자실만으로, 영화(의 내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센세이셔널한 측면을 갖습니다. 게다가 감독이 유신 시절 반골 기질의 집안에서 자랐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였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은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박정희 기억을 둘러싼 논란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을 겁니다. 저의 개인적인 심증이지만, 박지만 씨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영화의 처음과 끝 부분의 다큐멘터리 영상 세 부분, 3분 50초 분량을 삭제하라는 조건부 상영 결정이 난 직후 박지만 측 변호사의 무미건조한 불만의 변에 비해 감독의 발언은 대단히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것이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고, 하여 틈틈이 준비해둔 것이라고 할 만큼 이 영화가 감독에게 각별한 것이었다면, 법원의 판결에 대해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을까, 저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추측할 수 있는 전부는, 필경 세세하게는 아닐지라도 이런 상황은 미리 예측된 것이고, 그래서 정작 그 사태에 직면했을 때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심리 상태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어처구니없는 법원의 판결과 그것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상업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겁니다. 또 그 논란의 무대를 제공해준 몇몇 온/오프라인 언론 매체들은, 과잉 발달한 정치감각의 소유자들로 들끓는 이 공적 담론의 생산공장들은 내심 즐기면서 이 사태를 보도하였을 겁니다. 특종에 안달난 기자들은 이미 제작 단계부터 과도하게 이 영화 주변을 맴돌며 기사를 만들고 인터뷰를 따오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화 외부에서 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열광적인 소비자들과 교활한 생산자들의 행복한 만남을 주선해주었습니다. 물론 영화는 현재까지 꽤나 많은 관객을 불러 모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해석자-감독은 ‘그때 그 사람들’ 중 그날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만들었다고 했으니, 박정희 재현을 둘러싼 논쟁은 이 영화를 오독한 것일 테니 말입니다. 시종일관 저의 관람에서 중심은 그 빼앗긴 언어를 되찾는 데 있었습니다. 한데 저는 영화 속 인물 누구에게서도 10.26 사태에 대한 공적 기억으로 인해 빼앗긴 언어가 발설되는 장면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확인한 것은, 재수 없게 그 자리에 있어서 불행한 운명을 맞은 사람들이 이념도 신념도 없이 그 사태에 말려드는 장면들이 곳곳에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 각각의 존재의 구성요소들인 희로애락, 꿈, 노력 등이 그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망각되었는지, 우리는 그들 각각을 더 이상 그 사람들 자체로 기억되지 않고 단지 사건 속의 엑스트라로만 기억되게 되었는지를, <박하사탕>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인물에 대한 첨예한 물음이 이 영화에서는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정작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10.26이라는, 절대권력의 가슴에 총탄을 박는 그 역사적인 대사건이 실은 별로 원대한 명분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각각의 주요 행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태도들이 겹쳐지면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럴듯하게 상상해내는 데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는 그 사건의 주역들을 ‘야유’하려고 만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이해할 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웅대한 이념들과 명분들을 야유하는 것은 이른바 해체주의 담론에서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이 이념들과 명분들이 권력의 역사를 구축하는 뼈대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것들에 대한 야유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미학을 해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권력에 대한 도전 또한 수많은 이념들과 명분들로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도전 세력 또한 그 안에 나름의 권력의 성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또 간간히 도전 세력이 지배권력을 대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지배권력은 구지배권력을 비판하면서도 닮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인식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도전 세력의 이념과 명분도 야유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해체주의적 야유가 항상 위대한 이념들로 인해 강탈당한 사람들의 언어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지향을 담고 있는 데 반해, <그때 그 사람들>의 야유는 그것이 간과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 영화는 영문 모르고 죽어가야 했던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 결코 될 수 없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체주의적 ‘야유’는 역사를 위대한 인물들 혹은 주요 인물들의 영웅적인 기획의 성과라는 인식을 비난합니다. 실은 어떠한 역사도 의도한 대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발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합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한데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발성의 역사’를 권력의 바보스러움으로 보이게 합니다. 웅대한 이념으로 뼈대 지워진 기획된 역사가 아니라 우발적 역사라는 주장 대신, 바보들의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우발성의 역사라는 주장입니다. 어느 평자는 이를 “희롱당하고 조롱당했던 사람들이 희롱과 조롱으로 그 기억에 앙갚음하는” 것으로 읽는다. 마치 5공 시절, 그 숨 막히는 폭압적 규율 속에서 이른바 ‘바보 전두환 시리즈’를 회자시켰던 청년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서만 미덕을 갖는다. 반면 권력의 깊이와 폭을, 그 영향력을 집요하게 묻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사유 방식이다. 단지 ‘착한 우리’와 ‘악한 저들’이라는 이분법과, ‘악한 저들의 세계는 멍청이들의 역사다’라는 식의 인식에 둘러싸이고 말 뿐이다. 나는 여기서 바울을 떠올린다. 왜냐면 그는 권력의 체제의 심장함을, 그 교활한 침투를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문제제기한 첫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체계에 매료당하는 존재가 바로 자기 내부에도 있다는 것을 직시했던 것이다. 권력의 체계는 폭력적일 뿐 아니라 매력적이라는 인식은 그에게서 ‘성전’으로 비유된다. 거룩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며 온 몸을 바쳤던 사람에게서 ‘성전’이라는 것은, 권력이 거룩함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진리에의 유혹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거룩함의 미학 대신 아름다움의 미학을 애기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체계의 중독적 매력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것은 결코 호락호락한 권력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꿈을 꾼다. 이 유혹적인 미학의 체계, 그 현실의 성전이 붕괴되고 새로운 성전이, 인간에 의해 구축된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성전이 도래할 세계를 소망한다. 비록 바울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그는 사람들 각각의 체험을 몰수하고, 특히 ‘그때 그 사건의 뜻하지 않은 희생양들’, 모든 사람들을 그 잠재적 희생양으로 만들어 그들의 언어를 박탈함으로써, 거룩함의 가치에 함몰되어 재현되게 하는 그 ‘그라마톨로지의 세계’, 그것이 붕괴되는 전면적인 파국의 사건, 그 종말적 구원의 꿈을 소망하였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도래할 세계는 끝없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현실의 성전의 매혹에서 우리는 결코 벗어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상상하는 것은 이 세계, 현실의 성전의 미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살면서 밖을 상상하는, 즉 그 질서에 매어 있지만 동시에 그 질서를 넘어선 자처럼 사는 이중적 삶을 상상한다. 권력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그 상상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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