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4/25 (11:39) from 211.245.9.110' of 211.245.9.110' | Article Number : 1360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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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05 , Lines : 22 |
| 커피 한 잔과 회개(2005.4.17한백 부활절 예배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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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과 회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4절 일본 역사교과서 사태로 꽤나 떠들썩한 나날입니다. 일본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이른바 ‘자학사관’을 폐기하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을 어떻게 해서든 자국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싶어 안달입니다. 일본의 한 시민운동가는 이 교과서의 문제점을 ‘전쟁을 하는 나라의 국민 만들기’라고 꼬집습니다. 한국의 한 연구자는 이 교과서는 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청산을 하지 못한 하나의 결과에 불과하다면서, 심지어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국민적 정체성에 방해가 된다고 떠벌려 왔던 자학사관조차도 진정한 ‘사죄’의 자세에 준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 연구자의 비판은 놀랍게도 기독교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아니 그가 생각하는 일본의 파렴치함보다 기독교의 경우는 더욱 ‘악성’입니다. 기독교는, 처절한 질곡에 떨어지고서야 나올 법한 ‘회개’라는 격정적 삶의 계기를 평탄한 일상 속으로 놀랍도록 확고하게 옮겨다 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회개는 대단한 체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 체험의 일상화’가 과연 가능한가요? 존재가 붕괴되는 경험을 거쳐야 가능할 법한 그것을 평온한 일상 속에서 손쉽게 해 버린다면, 그(녀)는 자신의 위선을 자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데 자기가 위선적임을 안다면 ‘회개’의 행위는 자신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위선이 자기 자신에게 ‘들키지 않아야만’ 회개라는 자기 갱신적 행위는 효력을 발생시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은 회개를 통해 삶이 반전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삶의 밑바닥까지 핥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회개 행위를 위선으로 체험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기독교 ‘의전(儀典)’의 놀라운 효능이 빛나는 대목이 바로 여깁니다. 의전은 ‘반복성’과 ‘지속성’을 갖습니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형식으로 나누는 예배가 그 대표적 실례입니다. 여기서 의전 담당자들은 항상 동일한 의전복을 입곤 하며, 성가대의 동일한 송가(頌歌) 가락이 매번 반복되고 그때마다 성직자는 동일한 몸동작이나 어구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회중은 거기에 맞추어 동일한 화답어구를 반복합니다. 성서나 찬송가라는 동일한 재료가 예배 의전에 참석하는 이의 필수 지참물이며, 그 텍스트들에 대한 동일한 해석이 반복됩니다. 한편 의전은 사람들에게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 양 생각하게 합니다. 또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렇게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한다고 믿게 합니다. 그리하여 ‘반복성’은 의전 참여자들에게 친숙한 기억을 주입하며, ‘지속성’은 그러한 기억이 초시간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효과는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과정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적 의전은 특정한 신앙적 기억, 특정한 신앙적 상상을 무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지요. 회개 행위는 기독교 의전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하여 기독교인들은 의전을 통해서 회개함으로써 격정적인 고통의 체험 없이도 삶이 반전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는 생각에 익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다만, 가장 현대적인 신학적 문제설정인 ‘무종교적 기독교’의 문제를 간파한 최초의 신학자의 한 사람인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장적 은유의 표현을 빌면, ‘싸구려 은혜’일 따름입니다. 시장(market)은 거래되는 물건에 ‘시장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한, 그 물건은 생산한 이의 장인정신이나 그것에 얽힌 어떤 기억 등을 단순히 보존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재해석되어 의미가 부여됩니다. ‘물건이 시장을 통해서 상품이 된다’는 말 속에는 물건의 이러한 ‘재해석된 속성’이라는 차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회퍼의 ‘싸구려 은혜’라는 은유 속에는, 기독교가 ‘회개’를 대중화함으로써 회개가 마치 시장의 상품과 같은 것으로 변모/전락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그의 말을―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이해하는 데 퍽 중요합니다. 왜냐면, 상품에 대한 소비 성향은 소비자의 일반적인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가령, 싸구려 상품을 선호하는 패턴을 가진 이는 일반적인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서도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컨대, 기독교가 만들어낸 신앙의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의 하나인 ‘싸구려 은혜’는, 그것을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천민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명한 개신교 원로목사 세 사람(조용기, 김창인, 강원용)의 회개의 고백이 있었습니다(4월 8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개최한 회개기도회). 그 몇 년 전에는 요한 바오로 2세도 지난 2천 년간 천주교회가 저지른 죄들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집전한 바 있습니다(2000.3.12). 또 그 무렵 한국 천주교회도 이 땅에서 자행한 잘못에 대한 사죄의 고백을 합니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가, 가장 완고하게 세상 앞에 도도했던 이들을 사죄의 마당으로 끌어낸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들의 마음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일생을 쌓아온 신앙의 내공을 무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회개의 행동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공표한 이상, 남다른 사회적 지위에 있는 그들에겐 예사롭지 않은 압박이 가해질 것은 의문의 여지없습니다. 그들의 말은 저와 같은 이의 말보다 훨씬 커다란 무게로 타인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회개를 의심하기보다는 그것이 더욱 공적인 것이 되도록 고무 격려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느냐는 어느 선배 목사의 말은 지당합니다. 한데 저는 다른 측면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사죄 선언을 못하겠다고 버튕기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기독교 지도자들은 더 손쉽게 회개라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심성을 갖고 있다는 제 주관적인 추정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역의 공적 지도자들보다 회개라는 행위를 훨씬 가볍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의 추론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 제도, 특히 의전 제도는 그들을 수없이 연습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싸구려 은혜’의 열렬한 소비자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다른 영역의 지도자들보다 회개라는 행위를 선택할 때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런 태도는 기독교 지도자들만의 문제인가요? 우리 자신 또한 ‘싸구려 은혜’에 탐닉하지는 않습니까? 아니 실은, 공적 지위에 있는 그들에 비해, 좀 더 손쉽게 회개를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요? 단지 더 많은 권력 자원을 가진 이들의 허툰 말보다 공적 피해를 덜 끼친다는 것 외에, 악성 회개를 일삼는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것 없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목사가 되고나서 제일 싫은 것이 축도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목사란 축도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낯선 타인에게, 그 증오나 무관심의 대상에게 그들 자신의 축도를 나누어 주라는 권면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폭넓게 애창되는 복음성가 한 곡이 몹시 거슬립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최소한 이 노래가 소통되는 주된 공간은 자기 자신이 신앙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의 시장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저 유명한 ｢고린토전서｣ 13장에서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3절)라고 말한 것이나,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예수의 황금률이라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그리고 성자 프란체스코의 기도로 알려진 ‘평화의 기도’의 한 구절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등과는 사뭇 신앙의 태도가 다르지 않은가요? 고통스런 나날을 견뎌내기 위해 ‘신께서는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자기 확인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무턱대고 폄하할 수많은 없지만, 만일 이것이 신앙의 주요 동기요 재생산의 동력이라면, 그런 심성에서 나오는 수많은 회개는 ‘싸구려 은혜’를 탐닉하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마음, 그 욕구의 시장에 안성마춤의 ‘싸구려 사랑’, ‘싸구려 은혜’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신이 스스로 주인공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종이 되었다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는, 그 신앙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갈망에 휩싸여갑니다. 특히 유대교의 공공연한 멸시와 모독과 박해를 견뎌내면서, 회당에서 린치를 당하고 집을 빼앗기고 마을에서 추방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예수의 추종자이자 후계자들은 서서히 저들보다 더 큰 성공, 더 큰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하며, 그리하여 저들을 압도할 만한 더 큰 힘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입니다. 마치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인 양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이때 유대교 회당과 예수의 교회들의 힘 숭배 신앙을, 로마 제국의 팍스로마나의 내적 논리였던 그것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병적 집착을 목도하면서 ｢요한복음｣ 공동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이자 세상을 향한 권고의 말을 남깁니다. 예수를 숭배한다고 자부해온 교회가 거의 언제나 망각해온 그 말입니다. 우리 역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늘상 잊은 ‘척’하는 그 말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12,24)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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