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7:47)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14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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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52 , Lines : 45 |
| 너희가 생명을 아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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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생명을 아느냐 김 진 호 한백교회 목사 때 : 통일염원 55년 칠백 두 번째 예배에서(1999.3.21) 본문 : 로마서 8장 22~23절 곳 : 한백교회당 로마서8장 22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23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공동번역성서>에서 인용) '온 우주 만물이 우리(인간)와 더불어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앞장서서 허무의 노예로 남아 있으려 했고, 그 때문에 온 우주 만물 또한 허무에 예속되어버린 탓이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쓰여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새로운 천년대의 갈림길에 거의 다다른 오늘날 수많은 생태론자들은 이와 똑 같은 경고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도래할 새 시대에 대한 설레임과 도전적인 기획이 있어야할 자리에, 임박한 미래에 대한 암울함과 공포감이 우리를 휩싸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절망적 시대 인식은 로마서의 바울을 관류하고 있습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도 하는 양 집단자살에 이른 극단의 신자들에서 가족을 버리고 가출하여 종말공동체에 들어간 사람들에까지, 열광주의적 종교집단들이 여기저기서 극적으로 도래할 심판과 구원의 날을 대망하며, 속속 현세의 고통스런 일과로부터 일탈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읽은 우리 시대의 부호는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시대도, 종말에 대한 공포감 속에서 광적인 신자들의 신비주의가 횡행했고, 성령은 그러한 이들의 탈세주의적 선택의 알리바이를 제공해준 신비의 묘약 같은 것이었습니다(로마8,12~17).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반박하면서 오늘의 본문과 같은 말을 합니다. '피하지 말고 세상의 고통스러움을 대면하라. 왜냐면 현재의 고통은 장래의 영광과 견줄 바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8,18)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로마 제국 권력의 본거지 한 가운데서 도무지 보이지 않는 구원을 상상해야 했던 교인들에게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권면했던 바울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생태론자들은 장미꽃 만발한 기술사회(테크노피아)의 똥내나는 뒷뜰을 고발하며 묵시록을 펼칩니다. 원자탄 같은 악용된 기술이 아닌, 선한 목적의 문명의 이기조차도 얼마나 파괴적이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체르노빌 원자핵발전소 참사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 자체가 우리 시대의 위기의 요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게 되면서, 기술의 발전은 이제 마지막 금기까지도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생명복제 문제는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 것입니다. 알고보니 이미 10년 전부터 게놈 프로젝트라는 것이 국제적 공조로 시작되어 2003년이 되면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유전자 배열을 밝혀내어, 이른바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수한 유전성 질환이나 암은 물론이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신체 부위를 부작용 없이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아가 2020년쯤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완전한 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술사회가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소식에 접하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잡지나 전문지, 그리고 인터넷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찾아낸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깊은 우려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들 중, 자연과학으로 교수직을 가진 사람, 국가출연 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 미국의 모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 10년 이상 고등학교 과학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 등 4명에게 청문을 해 보았는데,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과학자들조차 기술과학의 발전은 너무 지나친데, 그것을 막을 길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도 역시 그러한 대세 속에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고, 사실은 자신들의 연구 활동 과정에는 그 결과의 사회적 의의 따위는 거의 고려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술과학의 철학적 윤리적 문제 등을 매우 어눌한 방식으로만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준비 안된 답변을, 저의 고압적인 자세에 못이겨, 마지못해 퍽 힘들게 늘어놓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한 친구의 말처럼, 아마도 이것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술과학연구의 운전대를 부여잡고 있는 과학자로서 그 위험스런 귀결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보려는 것이 무망한 짓에 불과함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들 모두는 차라리 뒷일은 종교에 맞기는 것이 더 현명한 게 아니냐고, 목사인 제게 반문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이런 문제에 대해 상식 이상의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복제양 돌리 같은 정보를 듣고는 곧 망각의 강 속으로 던져버리는 경우입니다. 한 친구는 그런 문제는 생각해 봐야 골치만 아프지 대안이 없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더군요. 그들은 차라리 대세에 적응하면서, 미래가 종말로 귀결되는 않든 현재라는 터를 향락의 기회로 삼겠다는, 매우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부류는 앞의 경우보다 훨씬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현실의 고통을 심각하게 보고 있기에, 그것을 대체할 묘약을 현실 밖의 공간에서 찾으려 합니다. 종교는 이들에게 좋은 묘약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열광적 신비주의 공동체는 체면 효과가 가장 강력한 묘약을 제공해준 반면, 그 대가를 가장 값비싸게 지불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편 열광적이기보다는 냉랭한 종교집단은 값싼 대가로 세속적인 축복을 선사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세계는 악령의 주문에 떨어진 저주의 도성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받고 있는 축복은 정결하게 세례받아 위생처리된 복음의 복권과 같은 것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아무튼 보통의 사람들도 전문가들인 자연과학자들처럼, 고통스런 현실과 그 암울한 귀결을 직시하기보다는 무관심을 선택하였습니다. 한 입장은 그들은 신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이 생략한 운명을 신에게 위탁함으로써, 고통을 환기시키려 했고, 다른 입장은 신의 죽음을 전제하고 있기에, 힘겨운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회피할 길은 희망을 향락으로 바로 바꿔주는 '자판기' 같은 세상에서 고통을 망각시켜주는 묘약을 마시려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부류로 나뉘든 말든, 인간 대부분은 기술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무'(無)로 귀결하고 말 것이라는 절망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있으며, 바로 그 희망 없음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적 노하우는 두려움에 대한 '무관심/외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무관심을 선택하는 동안, 모든 피조물은 닥치는 대로 인간에게 정복당하고 모든 것을 몰수당하고 강간당했습니다. 너무도 잔혹한 파괴 행위 속에 모든 피조 세계는 생명 자체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많은 곳이 신진대사 기능을 상실한 채 더 이상 회생불능의 주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인간이 무관심에 빠져 고통의 현실을, 미래 없는 암울함을 회피할 때, 정복당한 세계가 도리어 죽음 같은 현실을 하소연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관심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인간이 탈세로의 도피를 택하든 현실주의적 향락에 심취하든, 그것은 자신들만의 구원이나 행복에만 집착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인간과는 달리, 도리어 다른 피조세계는 자신들이 인간과 공동운명체임을 알고, 인간이 자신들과 더불어 덧없음에서 해방되기를 갈구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피조세계가 능동적 행위주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파괴적 능동성을 피조세계의 창조적 능동성과 대비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무책임성을 피조세계의 적극적인 책임성과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의 반생명적 행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기서 바울은, 당하기만 했으면서도 인간과의 공동의 생명을 위해 갈구하는 피조세계 앞에서, 인간더러 '너희가 생명을 아느나?'고 격앙되어 소리지르고 있는 셈입니다. 바울은 종말신앙이 팽배한 서기 50년대의 세계를 맞이하여 열광적 신비주의에 빠져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있는 로마교회의 신자들을 향해, 그리고 내일 없는 현재의 향락에 빠져 있던 제국의 엘리트들을 향해, 아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기 3천 년대를 앞두고 기술과학의 파괴성 앞에 두 손을 들어버린 무력한 인간을 향해, 진정한 신앙은 고난과 당당히 대면하는 삶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실천이요, 온 피조세계와의 상호관계를 회복하는 실천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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