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7/12 (12:02) from 61.248.24.204' of 61.248.24.204' | Article Number : 1467 |
올빼미
|
Access : 2853 , Lines : 30 |
| 황우석 대 교회, 그리고 바울(2005.7.10하늘뜻나누기 원고) |
|---|
|
황우석 대 교회, 그리고 바울 우리가 알기로, 모든 피조물은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 로빈 쿡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코마>는 한 병원에서 수술중인 환자들에게 모종의 가스를 주입해서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어 그들의 장기를 적출해낸다는 음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병원이 장기가 거래되는 암시장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허구지만, 그 배후에는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현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장기 기증자에 비해 수요가 월등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추세로 볼 때 이런 현실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기이식수술은 신체 내부에 장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생명 연장에 치명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타인의 장기를 이식함으로써 장애를 복원시키는 의료기술입니다. 이런 이식술의 발견은 죽음에 임박한 이의 생명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그 기간 동안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상의 중대한 성과임에 분명합니다. 한데 문제는 대부분의 장기는 제공자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결국 장기는 많은 경우 제공자가 죽어야만 타인에게 이식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공급과 수요 간의 심각한 불균형은 암거래시장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그 시장은 누군가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단절시켜야 하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게 됩니다. 이런 사정은 엄청난 거래비용이 발생하는, 꽤나 매력적인 지하시장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임의 시장입니다. 한데 영화 <코마>가 다루는, 미국의 한 저명한 병원에서 저질러질지도 모르는 의료과학의 부적절한 활용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암시장이 이미 지구적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남아시아나 러시아 등의 극빈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들 가운데는 장기이식용 인간들의 매매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지구화된 장기의 공급시장은 공급자와 의료기술자간의 철저한 분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장기들은 윤리적 문제들이 세탁된 채 의료기술자들에게 전달됩니다. 더구나 법은 대체로 장기 제공자인 외국의 익명의 타자들을 위해 수요자인 내국의 시민들을 처벌할 만큼 공명정대하지 않습니다. 결국 장기이식이은 ‘살림의 축복’이기도 하고 ‘죽임의 저주’이기도 한, 야누스적인 의료과학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현대의학은 이런 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식의학’이 아니라 ‘재생의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용화를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지구적 의료자본들의 집중적인 투자 속에 연구가 진행 중인 성체줄기세포 연구와,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 의해 그 현실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후자는 아직까지 의료자본의 공백지대였지만,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성과(인간의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의 개발)로 인해 자본들의 투자가 경쟁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들은 많은 점에서 과거의 의료과학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식의학의 저주’를 푸는 축복의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치명적으로 훼손된 장기의 재생이 가능하다면 장기의 암시장은 사라질 것이고, 이 시장에서 희생되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 또한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는 의료과학이 갖는 죽임의 요소를 축소하고 살림의 요소를 확대할 기회를 제공해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믿음을 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정부는 그것을 죽임의 과학으로 보는 견해를 대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 그리고 시민사회의 일각에서 비판적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된 비판 논조는 그것이 인간 배아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죽임의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성의 난자가 매매되는 시장을 만들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여성 몸을 착취하는 죽임의 과학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여성이나 초기 생명체일수도 있는 배아의 고통을 간과하는 의료과학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림의 윤리, 살림의 신앙임을 자부합니다. 한데 이 주장은 난치병으로 저주스런 삶을 영위해야 하는, 혹은 임박한 죽음을 고통 속에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질병의 고통은 단지 육체 기능의 결함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을 통해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시민사회는 그다지 유념하지 않아왔던 것입니다. 또 장기이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함으로써 지구화된 장기의 암시장을 개선하려는 일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여성 육체의 착취를 우려하는 시선 속에는 종종 난치병으로 훼손된 여성 육체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비판들이 자부하는 살림의 윤리, 살림의 신앙은 동시에 죽임의 윤리, 죽임의 신앙 의 차원 또한 갖고 있습니다. 결국 쌍방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배려를 명분삼아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은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들 견해들은 ‘옳은 것’, ‘옳은 주장’은 ‘삶림의 윤리’, ‘살림의 신학’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대립되는 입장은, 흥미롭게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서로 동일한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인간 생명의 고통만을 유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범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핵심적 논점인데, 바로 여기에는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이 강박증처럼 서로를 옭아매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한데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것은 대단히 모호합니다. 가령 어디부터 주검인가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명확한가요? 사실 삶과 주검의 경계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을 필요로 했던 것은 196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장기이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증자의 필요 때문에 주검의 명확한 정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에야 뇌 전체의 죽음을 뜻하는 ‘뇌사’를 주검의 기준으로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삶이 어디부터인지를 논하는 것도 사회적 필요와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대 비인간의 차이에 대하여 좀 더 생각을 진전시켜 봅시다.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시절 북아메리카 백인들의 대다수는 흑인을 ‘말하는 짐승’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절, 일본 내지인에 비해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등은 덜 준비된 인간이었으며, 남양군도의 흑인들에 비해서는 좀 더 준비된 인간이었다는 담론 연구들도 있습니다. 또한 여성은 오랫동안 불완전한 인간으로 취급되어왔고, 지금도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육체적 소수자(장애인 등), 성적 소수자, 이념적 소수자, 인종적 소수자 등등, 수없이 많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들의 언어 세계 속에 실재하고 있습니다. 또 패륜범죄자, 연쇄살임범 등, 악마화된 존재, 반인간적 존재로 인식되는 이들 또한 실재합니다. 요컨대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의 이면에는 이런 모호한 존재들,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이런 무의식적인 차등의 이분법 속에서 배양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감성을 연구한 많은 이들은 고통이 공감되는 범주를 그 준거로서 제시합니다. 곧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이의 고통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일어나는 반면, 그 외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고통에 대해 더욱 공감을 많이 하는 사회는 가족공동체가 강한 사회이고, 민족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비상할 때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토양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통의 공감이 안 일어나는 이들을 우리는 비인간적 존재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고통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령 시민사회에서 타자들의 고통은 침묵 속에 묻혀버립니다. 성인들의 사회에서 아동이나 청소녀/년의 고통이 오랫동안 묵살되어온 것처럼 말입니다. 교육은 교육 대상자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발설하기보다는 어른들의 욕망을 반영할 때 우량한 존재, 보다 인간화된 존재로 간주되는 체계로 구축되어 왔습니다.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가상적 이분법에 몰두하는 논쟁은 각자 ‘살림’을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관점이 ‘살림’의 시선이라는 생각에서 타자의 죽임, 그 고통의 소리에는 공감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 맥락에서 자기들의 살림은, 살림에 대한 감각은 타자들의 죽임, 그 고통의 소리에 대한 무관심을 수반했던 것입니다. 최근의 의료과학에 대한 논쟁은 바로 그러한 이분법에서 한걸음도 성찰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 온 세상 모든 것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 이르게 됩니다. 그에 의하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고통의 소리를 내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곧 고통을 침묵에 빠지게 하는 인식을 낳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죽임의 체제에 순응하는 자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예수를 통해 바로 그 침묵에 빠져버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들의 고통에 민감한 자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에게 예수를 덧입음이요, 거듭남입니다. 곧 죽임을 넘어서는 살림의 신앙을 향한 순례의 길인 것입니다. □<올빼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