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8/18 (10:13) from 61.104.50.248' of 61.104.50.248' | Article Number : 157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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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958 , Lines : 23 |
| 먼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나요(2003.8.10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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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나요 정몽헌 씨의 자살 소식은, 대형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이른바 ‘사건 25시의 사회’에서도,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연일 신문의 거의 절반이 그 얘기로 가득 찼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재벌가의 정통 후계자가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지쳐 고뇌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자살 소식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읽으셨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요?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그 역시도 보통의 사람들과 하등 차이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겠지만, 분량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기사들 속에 기억된 정몽헌 씨의 이미지는 그가 더욱 특별한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 않던가요? 수많은 정치적인 언술이 그의 죽음에 관한 해석을 휘감아치고 있지 않던가요? 심지어는 사실적 증거에 전혀 기반을 두지 않은 이른바 ‘음모론’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나아가 언론매체까지도 그것을 보도하고 있지 않던가요? 그의 죽음은 재벌 총수 집무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을 넘어서, 이해관계를 둘러싼 정파간의 논쟁의 수단이 되었고, 나아가 그의 죽음은 전후 맥락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담아내는 적절한 소재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문뜩 얼마 전 자살한 교장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또 지난 2001년 일본에서 죽은 이수현 씨가 기억나는군요.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건이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의 이해관계를 담아내는 정치담론화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발산시키는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포합니다. 요컨대 죽음에 대한 의미/해석의 과잉은 그것의 정치화 및 욕망의 대상화를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최근 들어 자살 보도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엔 TV 저녁뉴스에서 한꺼번에 네 건의 자살보도가 방영된 적도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자살률은 10년 동안 두 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OECD 소속 25개 국가 중 한국의 자살순위는 10위에 올라있고, 그 수가 인구 10만 명당 14.6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앞의 경찰청 통계는 자살자의 수가 하루 36명에 이릅니다. 자살에 실패한 수는 그 몇 배가 된다고 하니, 자살은 이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병리 현상의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뉴스의 네 건의 자살 보도는, 매우 이레적인 취급임에도, 자살한 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기사의 양도 너무 짧아서 이들의 자살은, 단적으로 말해서, 사회적으로 ‘망각된 것’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기사화되어 방영된 자살 건은 완전히 망각되지 않을, 예기치 못한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얻은 경우에도 그 짤막한 기사로는 정치적 거래의 수단이 될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죽음을 마음대로 상상하는, 그렇게 해서 소위 ‘음모론’이든 아니든 소설적으로 구성된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굴절된 자신의 욕구를 만끽해볼만한 소재의 가치 또한 없습니다. 이상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사회의 두 가지 반응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는 이미지가 ‘과잉’이고 다른 하나는 ‘망각’입니다. 전자가 주로 정치적으로 수단화되거나 남발된 상상력을 통해 죽은 이의 이미지가 과잉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후자는 그러한 가치가 없다는, 즉 그 자살의 ‘상품성’이 약하다는 예감에서 망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형태의 반응은 얼핏 서로 상반된 듯하지만, 기실 같은 방식으로 평가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살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려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자살’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자기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물론 ‘자기 보존’의 반대 행위입니다. 그런데 자살의 상황은 이렇게 단순한 틀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회 속에서 ‘자기 보존’의 욕망은 종종 ‘타자를 파괴하는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행위 의도의 차원이 아니라 행위 결과의 차원에서 보면, ‘타자 파괴 없는 자기 보존이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러한 성찰은 더 나아가서, ‘타자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자기 보전의 역사’는 실은 ‘자기 파괴의 역사’로 귀결된다는 문제의식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예는 ‘핵무기’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한편, ‘자기 파괴’의 행위는 어떤가요? 이러한 역사의 암울함을 읽은 선각자들이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을 고발한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기 파괴의 역사’, 은폐된 이러한 원리로 구성된 세상에 대한 ‘불편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담론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자살’이라는 테마는 바로 그러한 ‘불편함’의 시선으로만 제대로 읽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 파괴’로서의 자살에 이런 역사적인 자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자살은 세상을 걱정한 자살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걱정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상과의 불편함이기는 하되, 이타적 자살이라기보다는 이기적 자살에 속합니다. 이러한 자살은 ‘파괴로 점철되는 세상’ 속에서 자기 파괴를 통해 위기에 처한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적 자살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과의 불편함을 실존적으로 느끼고, 그러한 위기에서 자기 파괴를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자기 파괴를 미학적으로 성찰한 것이라는 점에서 실존적인 자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세계보건기구의 OECD 국가들의 자살 유형 조사에 따르면 서구 사회의 자살은 이러한 실존형 자살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편 세계가 벌이는 자기 보존의 게임에서 자신이 파괴될 타자의 표적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이 자기 파괴를 실행하는 이유인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 현상은 이러한 ‘생계 비관형’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특히 ‘표적이 되었다는 상실감’은, 최근 보도된 자살 기사를 통해 추측해보면, 주로 신용불량자의 위기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뢰’라는 사회관계의 요소는 지구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높은 신뢰 가능성’은 오늘날, 국가의 경우든 기업의 경우든 개인의 경우든 간에, 가장 ‘튼실한 자본’에 속합니다. 반대로 ‘낮은 가능성’은 매우 심각한 위기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신뢰의 가능성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파산 선고를 받은 ‘신용불량자’의 경우는 세상의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적나라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주된 자살의 원인인 ‘생계 비관형 자살’은 극단의 위기 상황에서 자기를 파괴함으로써 자기를 보존하려는 ‘정당방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상에서 언급한 자살의 여러 유형들을 꿰뚫는 공통점은 ‘세상과의 불편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살을 어떻게 기억하려 할까요? 기독교 신앙은 ‘신의 자살’ 테마를 불편함을 전도시킨 사건으로 해석해버렸습니다. 신이 죽음으로써 사상과의 불편함이 ‘해소’되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타자 파괴를 지향하는 자기 보전의 역사로서의 세상에 대한 예수의 비판적 메시지는 불편함이 해소된 세상을 선사할 것이라는 축하의 메시지로 뒤바꿔버립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 자살이든 실존형 자살이든 비관형 자살이든, 세상과의 불편함을 해소시킨 채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을 저는 ‘의전(儀典)’이라는 말로 표현해 봅니다. 영화 <축제>는 의전이 되어버린 ‘죽음의 기억’ 양식이 죽은 자를 매개로 해서 모인 가족들이 어떻게 서로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것은 ‘축제’입니다. 한데 과연 <축제>의 죽음의 ‘의전’은 서로의 불편함을 실제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일시적인 봉합이 아닐까요? 여전히 세상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서로를 파괴할 테니 말입니다. 의전은 죽음을 통해 불편함을 봉합하고자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정치적 수단들이 개입합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 수단들은 한결 같이 불편함을 해소하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습니다. 때로 죽음은, 특히 자살은 상호 파괴의 불편함을 잊게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효과가 발현된 결과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정치적 수사일 뿐입니다. 한편 의전에서 소외된 자살은 불편함을 봉합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러한 죽음은 앞서 말했듯이 망각의 대상이 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요한복음｣의 한 에피소드를 떠올렸습니다. 오라비 나자로의 죽음에 대해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상반된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마르타는 여기서 ‘의전을 주관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공적인 대화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만약 이 이야기가 실재 있었던 것이라면, 놀랍게도 부활의 믿음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복음｣ 당시 기독교도들은 죽음의 의전에서 이런 유의 대화를 나누었겠지요.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놀라운 진실을 교리문답하듯 낭독한 이들의 대화와 비교라도 하듯, 마리아는 예수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가서 다짜고짜 ‘울고불고’ 합니다. 그녀는 그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죽음에 이름짓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넌지시, 예수님도 ‘눈물’을 흘렸다고 함으로써 교리문답 같은 죽음의 의전을 비아냥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살한 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오늘 우리에게 쓰임새 있게 가공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야만 정치적 효과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의전’만이 남은 신의 자살을 기리는 예배가 한마디로 ‘유령 숭배’로 전락해버린 것처럼, 세상의 폭력과 자살한 이의 고통을 감정이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복음｣이 가르쳐주는 교훈처럼, ‘먼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나요?’라고 자문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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