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1/30 (08:25) from 211.191.202.205' of 211.191.202.205' | Article Number : 1639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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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39 , Lines : 26 |
| ‘낯선 타인의 눈’으로 보는 <성서>(2006.1.29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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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인의 눈’으로 보는 성서 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력 1월 1일을 설로 쇠었습니다. 음력설엔 당일만 공휴일이었기에 설로 쇠기엔 사실상 어려웠지요. 그래도 그날엔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퍽 한산했습니다. 학교는 더욱 쓸쓸했지요. 그런데 저는 대학 시절 내내 음력설에 도서관을 갔습니다. 거의 비어있어 자리 차지하려 애쓸 필요가 없어 좋았고, 조용해서 좋았습니다. 점심 때 밥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학교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항상 문을 여는 구멍가게가 있어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해하진 마세요. 저는 대학교 때 결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축에 끼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제가 한 공부는 성서 읽기였지요. 대학 시절 제가 가장 열심히 한 것 두 가지를 들라면 하나는 전도고 다른 하나는 성서 읽기였습니다. 제가 성서를 읽는 방식은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듯 통독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읽고, 다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갔지요. 저는 대학 시절 통독만 일곱 번을 했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한 권 한 권을 공부하면서 세밀히 읽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읽는 재미가 꽤나 있는 방식입니다. 가령, ｢출애굽기｣ 36장에 나오는 성막 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만들듯 종이 위에 성막을 그리고 거기에 천막 덮개 모양으로 색칠까지 하면 제법 근사한 성막 그림이 만들어지지요. 이런 식의 독서는 대단한 성취감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마지막 방식은 매일 아침마다 한 장씩 읽고 명상하는 방식입니다. 주일을 빼고는 6년간 거의 빠짐없이 했던 일인데, 이런 읽기는 삶을 성찰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퍽 괜찮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무튼 성서 읽기는 제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성서를 읽어댔을까’, 어제 저는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아침에 명상하는 것은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 많은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데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읽어댔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나의 신앙의 업적을 쌓으려는 욕구 탓일 겁니다. 실제로 다른 동료들과 대화할 때 혹은 논쟁할 때 그 상황에 맞는 성서 구절을 들이댐으로써 상대에 대한 우월감에 젖곤 했습니다. 요컨대 성서 읽기는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어떤 권력을 향유하게 했던 것입니다. 성서 구절들을 연결하면서 내 나름으로 구성한 신앙의 논리는 마치 신의 계시처럼 저의 신앙생활을 지배했고, 또 저의 훈육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규율하는 신앙 규범이었으며, 나아가 전도의 대상으로 점찍은 타인의 상황을 판별하는 준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제가 구성한 신앙의 논리는 저를 훈육한 선배의 논리를 제 나름의 언어로 보충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그 선배는 선배의 선배에게서 배운 것이고요, 또 그 선배의 선배는 선배의 선배의 선배에게서 그,것을 배웠지요. 해서, 저의 논리란 실상 공동체의 논리, 공동체의 질서에 일부일 뿐인 것입니다. 저를 기쁘게 했던 성서 읽기를 통한 ‘깨달음’은 외와 같이, 낯설은 것이 아니고, ‘익숙한 것’을 재확인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그러던 제게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성서 읽기가 아닌 다른 독서로 말미암은 사건입니다. 발터 침멀리라고 하는 독일의 저명한 구약학자의 논문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중심적 문제｣라는 제목의 글인데, 저로서는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의 제 지적 수준으로서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위해 한 열 번 정도는 읽었을 겁니다. 이 논문의 내용은 ‘구약성서엔 전체를 꿰뚫는 중심사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로선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항거하고 싶었지만, 여러 번 읽는 가운데 발견한 것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내용을 감싸고 있는 논리 또한 탄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논리는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견고하게 축적해왔던 ‘공든탑’은 의외로 허술했던 것입니다. 혼란 속에서 이 책 저 책을 정신없이 읽어댔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저의 신앙이 붕괴되고 만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기로 작정하고, 또 오늘날 성서학 연구자가 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성서학 연구자가 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최근 ‘안병무 다시 읽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성서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안병무 선생은 민중신학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성서의 중심 사상은 ‘오직 야훼만의 신앙’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던집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침멀리의 견해와 상충될 뿐 아니라, 현대 성서학의 일반적인 이해와 선을 긋는 주장인 것입니다. 물론 성서를 아우르는 선생의 논증은 상당히 진부합니다. 실은 이미 붕괴된 가설들을 가지고 성서를 꿰뚫는 사상의 궤적을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 성서학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비평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해당 본문을 비평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역사적 증거를 결합함으로써 역사적 해석에 이르게 하는 방법입니다. 성서에 중심사상이 없다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도출된 ‘큰 결론’에 속합니다. 수많은 다양한 관점과, 그것에 못지않게 많은 다중적 주체들이 서로 갈등하고 경합하면서 많은 ‘텍스트’들을 생산했고, 그것이 후대로 가면서 엮이고, 나아가 권위가 부여되면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 바로 성서라는 것이지요. 해서 역사비평학의 주된 과제는, 중심사상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서 속의 여러 사상들의 계보를 발견하고, 그 과정을 조망하는 데 있습니다. 한데 역사비평학의 문제는 그 조망들이 ‘객관적’이라고 믿는 데 있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연구자의 의도가 들어간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즉 역사비평학은 연구자와 연구 대상 사이의 확고한 간격을 통해 수행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는 주체이고 연구 대상은 객체인데, 이전의 성서 읽기 방식은 이 주-객 간의 간격을 확고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면, 역사비평학은 그 간격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과거를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안병무 선생은 이러한 주-객 이분법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성서학은 역사비평학이 이러한 이분법으로 말미암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성서를 읽는 이는 자신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묻습니다. 그것은 역사비평학 이전이나 이후나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비평학은 단지 묻는 테크닉이 달라졌음을 말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은 그가 독창적으로 창출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집단의 사유 양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성서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을 때 실은 그것이 제가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논리라는 뼈대 위에 나름의 살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성서 해석자의 주장도 바로 그가 속한 사회의 언어가 허용한 변형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안병무 선생의 주장에로 돌아갑시다. 선생은 성서의 중심사상을 얘기합니다. 한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성서 읽기의 주-객 이분법을 비판합니다. 모순입니다. 중심사상이란 성서 전체를 꿰뚫는 거대한 축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일 텐데, 중심사상 운운해 놓고, 다른 맥락에선 객관적 주장 자체를 해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선생이 말하는 중심사상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엔, 선생에겐 이것은 모순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선생은 역사비평학의 주-객 이분법을 비판하면서도, 역사비평학의 큰 결론인 성서의 다양한 궤적을 수긍하고 있습니다. 가령 출애굽 신앙과 다윗 신앙은 다른 계보임을 말하면서, 다윗은 성서 역사에서 야훼만의 신앙의 종언을 야기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류 신학에서 단절된 야훼만의 신앙을 극적으로 부활시킨 이가 예수라고 선생은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 사건에서 계승되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출애굽-예언자-예수 사건-｢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 사건’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들은 서로 단절적입니다. 마치 화산구로 용암이 분출하듯 역사의 표면에선 인적, 제도적 연계성이 없는 단절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성서의 표상에선 중심적 흐름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선 도도하게 흐르는 화산맥이 단절적인 것을 잇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선생은 역사상으로는 단절된 것을 마치 서로 연계된 계보인듯이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는 중심사상이라는 것은, 성서 전체가 이런 사상으로 편집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적으로 보이는 성서의 표상적 기술들을 보는 해석적 시각인 것입니다. ‘야훼만의 신앙’의 관점이 바로 성서를 보는 시선인 것입니다. ‘야훼만의 신앙’이란 ‘나와 야훼’ 사이엔 어떤 중계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권위에 대한 도전의 정신이 이 신앙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권위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부당한 압박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반면 불의한 권력은 부당한 압박으로 느껴지기에,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반감을 낳습니다. 다만 폭력이 두려워 승복하는 척할 뿐입니다. 이에 비해 권위는 부당하지 않은 듯이 나를 사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권력에 포섭된 사람들에게 신앙심은 그러한 권력을 미학화하는 장치이고, 오늘날 국가권력에 포섭된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입니다. 또 오늘날 사회문화적 권력에 포섭된 우리 모두에게 양심이나 질서의식 등도 이와 같은 권력의 양식인 것입니다. 야훼만의 신앙은 바로 이러한 권력 일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왜 불의하게 느껴지지도 않은 권력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요? 이에 대해 선생은 바로 예수가 그 해답을 제공해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는 신이 자신을 ‘오직 야훼만의 신앙’의 주체라고 하는 대신, 신의 자기를 비하했음을 몸으로써 보여준 존재인 것입니다. 신이 인간이 됐습니다. 아니 신이 십자가 위에서 저주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질서 속에 포용될 수 없는 자이며, 세상의 양심을 거스른 자입니다. 세상의 권위 아래서 적당히 타협하는 이가 아니라, 세상의 권위가 내포하는 그 은밀한/드러나지 않은 폭력을 예민하게 읽어내며, 그리하여 세상의 권위에 의해 죽임당하기까지 저항한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신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그래서 민중인 그가 신이라는 주장입니다. 역사비평학 이전이나 이후나, 혹은 교회나 신학이나 모두가 세계의 질서 내부에서 익숙한 것을 진리로서 주장해왔습니다. 허나,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예수는 세상이 낯설어 하는 것을 진리로서 제기한 분입니다. 바로 성서의 중심사상은 신이 세상의 타자가 되어 그 시선으로 세상과 갈등한 것처럼, ‘타인의 눈’으로 세계와 마주서는 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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