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n Ho's Sermons Archive

2006/11/28 (17:35) from 59.6.212.91' of 59.6.212.91'	Article Number : 1646
올빼미	Access : 2464 , Lines : 42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성남주민교회 특강 원고2006.11.8)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

그분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제 이름은 군단(레기온)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했다.
―｢마가복음｣ 5장 9절

무덤가에서 기거하는 기괴한 자,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손발을 포박해 놓아도 기어이 그것을 끊고 부수어 버리는 괴력의 소유자, 밤이고 낮이고 괴성을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짓찧는 광폭한 자.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한 광인에 대한 묘사입니다. 필경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이 기억이 암시하는 것은, 그 자는 한마디로 위험하다는 것이겠지요.
도대체 뭘 했기에 그가 위험할까요? 소리를 지른 것, 자해를 한 것, 이런 행위가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쳤을 리는 없습니다. 왜냐면 어차피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의식하게 되고, 해서 그를 묶어두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위험한 인물’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요? 얼굴은 알고 있을까요? 나이는? 출생관계는? ...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그를 아는 이처럼 말했겠지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그들이 아는 그의 모습이란 너무도 피상적입니다. 요컨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사람 자신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를 그렇게 보려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을 뿐이지요.
어쩌면 그가 자기 몸에 자해를 가한 것은, 사람들이 무서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그가 무슨 해를 입힌 것이 아님에도 다짜고짜 잡아다 몰매를 가하고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워 가둬버리곤 했기에, 그러한 폭력이 두려웠을 법도 합니다. 더 나아가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그에겐 불행이 닥쳐왔을지도 모릅니다. 해서 본능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가 산 사람들의 공간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공간인 무덤가에서 기거했다는 게 이해가 갈만 합니다.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이곳에 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죽거나 하면 시신을 버리려 이곳으로 오곤 했고, 그러다 사람들을 마주치면 그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던 것은 아닐까요?
한데 그런 사연들을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그 자의 광폭한 듯한 행태만을 주목할 따름입니다. 그리고는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해 버렸습니다. 사회가 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바로 이런 식이었지요.
해서 그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그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라는 표상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존재하지만 부재한 자, 이름이 없음(부재)으로써만 그가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증되는 자. ‘거라사의 광인’이라고 알려진 이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잠시 우리 사회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노숙인입니다. 그는 언젠가 밤 늦게 귀가할 때 지하철 역사 한구석에서 신문종이를 이불삼아 누워 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배고프다고 오백 원만 달라고 구걸하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데 그가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경찰은 사망신고를 받고 그의 신원을 조사하지요. 한데 그에겐 신분증이나 그밖에 그를 증명할만한 어떤 소지품도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비군 훈련에 무단불참을 거듭한 탓에 고발되었으나 고발장이 본인에게 접수되지 않아 ‘행불자’로 처리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의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다시 회복하지 않는 한, 사회 속에서 그는 법적으로 부재한 자가 됩니다. 존재하지만 존재에 관한 사회적인 공식적 기억이 말소된 자인 것입니다.
한데 그가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끔씩 집을 찾아 들어간다고 합시다. 그때마다 그는 술값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가족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했을 수 있겠지요.. 가족은 몇푼 안 되는 집을 임의로 처분할 게 두려워 그의 법적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한정치산자 신청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법적 행위능력은 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단지 법정 대리인을 통해야만 그의 행위는 법적으로 유효한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법적인 무능력화의 과정은 그가 법적으로 부재한 자로 간주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그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존재하지만 존재가 부정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법적인 ‘기억 삭제’라고 규정하고자 합니다. 그의 행위 능력을 부정함으로써 존재하지만 존재 하지 않는 자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은 사회가 그에 대한 기억을 삭제한 셈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와 비슷한 기억 삭제는 시장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최근 문제가 됐던 신용불량자는 시장에서 그를 기억하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는 이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법적인 행위이든 시장에서의 경제적 행위이든, 행위가 무능력화된 사람에 대한 사회적 규정을 기억 삭제라고 규정한 것은, 그것이 일종의 사회적 공적 처벌이라고 말하기 위함입니다. 무능력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그를 존재하지만 부재한 자로 간주하는 장치들이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기억 삭제라고 명명한 것이지요.
아무튼 이러한 공적인 기억 처벌은 단지 그가 국민 혹은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를 제약받게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아가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대개 정신적으로도 심각하게 무능력화되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노숙인에 대한 진료봉사를 해왔던 한 의사는 그네들의 ‘언어 붕괴’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말을 내게 전해 준 적이 있습니다. 말을 더듬거리고 횡설수설하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존감이 붕괴됩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는 무능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요컨대 기억 처벌의 현상은 사회가 그(녀)를 무능력자로서 처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 스스로도 자기를 처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마가복음｣ 5장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거라사의 광인은 아무도 그를 그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그가 누군지를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들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그를 기억할 뿐입니다. 요컨대 그는 기억 처벌의 형을 받은 것입니다. 해서 본문이 그를 무덤에서 기거하는 자라고 묘사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의 공간에서만 살아 있는 자라는 것이겠지요. 존재하지만 부재한 자인 것입니다.
필경 그는 단지 무덤가로 내몰린 자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괴성을 지르고 자해를 하는 행동은 더욱 그를 위험한 자로 여기게 했을 것입니다. 요컨대 그는 자기 자신을 변명할 능력, 자기가 악령 들린 아기 아님을 논증할 능력을 스스로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점점 더 부적절하게 될 뿐입니다.
그런 이가 예수님과 마주쳤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바로 그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 이름이 무엇이요?’ 너무나 평범한 질문이라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사람에겐, 그간 아무도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거든요. 아무도 그를 그 자신으로 물으려 하지도 않고, 그 자신으로 기억하려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만이 그를, 바로 그 사람 자신을 향해 말을 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대답을 봅시다. 이 낯선, 충격적인 질문에 그는 아직 스스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의 안에 있는 악령이 그를 대신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악령은 떠나가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적절한 말을 하게 되는 사건, 곧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는 사람을 보면 괴성을 지르며 자해를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간청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스스로 얘기하는 자, 자기 자신의 바람을 차분하게 주장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한데 이 기적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한 가지를 더 얘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를 향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하는 악령의 정체에 관한 것입니다.
악령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군단’(레기온)입니다.” 이 표현은 유대의 군대나 거라사의 군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단’이라는 표현은 오직 로마군대를 지칭할 때만 쓰는 용어입니다. 더욱이 로마 군대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행동의 기본이 되는 단위가 바로 군단입니다. 즉 로마 전체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군단이라고 하는 그 악령은 예수께 돼지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군단이 6천 명 정도의 대규모 병사 단위이므로, 여기서 돼지떼가 매우 많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규모 돼지 사육장이 그 근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은 유대인들의 식량이 아닙니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필경 로마군과 그들이 비호하는 거라사 시민층의 먹거리를 위한 사육장이었을 겁니다. 요컨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령 들린 이의 고통의 배후에는 제국의 착취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서 구절에서 저는 오늘 우리 시대의 고통을 연상해 봅니다. IMF 사태 이후로 급속하게 지구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존의 위협 속에 허덕이며 삽니다. 언제 어떻게 몰락할지 모르는 공포감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전엔 가난했지만 좀더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며 살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이젠 희망보다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던져질까봐 전전긍긍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더욱이 급속하게 변하는 제도적 현실은, 빠름의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숨이 가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으로 점점 내몰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미 FTA 논란에서 보듯이, 그러한 지구화된 세계의 고통의 현실은 점점 가중되어 가는 듯이 보입니다. 이럴 때 종종 사람들은 더욱 심한 고통에 놓인 이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해서 어떤 경제학자는 우리 시대의 현상을 ‘잊어버림의 정치’라는 말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우리 시민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눈 감아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배제하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바로 가장 심한 고통 상황에 놓인 이들, 곧 비시민화된 자를 망각함으로써, 앞서 말한 그네들의 사회적 기억을 말소하는, 하여 결국 그들을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기억 처벌 과정에서 저들 비시민화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회생불능의 나락의 상황 속으로 내몰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교회의 과제를 생각하면서 거라사 광인을 대하는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모두들 그를 잊은 채, 자기들이 규정하고 싶은 대로 그를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망각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이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모두에게 잊혀진, 심지어 그 자신에게조차 잊혀진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여 그 부름에 대답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에 관한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빈곤층 밀집지역에 대한 현장조사들을 보면, 그곳 주민들의 가족해체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보고에 접하게 됩니다. 이혼율 세계 1위 운운하는데,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한 곳이 바로 빈곤층 밀집지역이라는 것입니다. 한데 이런 지역에서 가족 해체의 주된 이유의 하나가 바로 가정 폭력입니다. 요컨대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이라는, 그리고 이웃간의 정이 넘치는 익숙한 달동네 가족의 풍경은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달동네가 더욱 광폭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맞물려서 알콜 중독의 심각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도시의 빈곤 지역에서 점점 자존감을 상실한 이들이 많아진다는 얘깁니다.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 다른 것에 의존성이 강화되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가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정신적 붕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의 교회, 특히 민중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거의 어디서나 민중교회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생각하면 당연한 얘깁니다. 말씀드렸듯이, 사회는 점점 타인을 생각하는 것을 짜증스러워 하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지구화는 그러한 강퍅한 심성을 빠르게 유포하는, 일종의 악성 전염병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고통당하는 타인과 아픔을 나누려는 신념을 가진 교회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망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민중교회는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때, 그 망각된 이들을 돌아보고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존감을 상실한 그(녀)를 위험한 존재처럼 바라보려 할 때, 그네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한국의 민중교회의 역할은 거의 결정적이라 할 만큼 지대했습니다. 빈민지역이나 노숙자 문제는 비교적 시민사회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거의 몰인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한 시민사회의 망각, 그 잊어버림의 정치는 민중교회의 고발과 각성이 아니었다면 더욱 심각해졌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한 편견에서 비록 소소하나마 이 만큼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된 데에는 민중교회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지구화의 압박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 또한 더욱 가중되겠지요. 그리고 이 고통이 특정 집단에 좀더 과중되어 부과될 것이며, 이러한 고통 전가의 체계는 이들 과부화된 고통 담지자의 무능력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결국 지구화는 민중의 신체와 영혼을 붕괴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교회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 망각 상황에 놓인 이들, 그래서 점점 자기 자신이 붕괴되어 가는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 바로 그러한 과제를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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