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12/19 (23:58) from 211.191.202.242' of 211.191.202.242' | Article Number : 1647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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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10 , Lines : 31 |
| 단 하루(2006 12 17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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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1,112번째 모임 (2006.12.17) 단 하루 얼마 전 만난 오랜 친구는 나를 보고 ‘글 쓰는 재주 하나밖에 없는 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나를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내게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밖에 없는 재주도 변변치 못하다는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논문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글을 쓰는 행위는 내겐 꽤나 힘든 노동입니다. 술술 써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내겐 불가능한 일이지요. 해서 조금 힘들게 글을 마쳤다 싶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을 앓곤 합니다. 별로 읽어줄 이 없는, 실은 그럴 만한 가치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 글이지만, 10년쯤 전 <르몽드>지에 실린 한 삽화처럼, 실타래인 내 머리통에서 실을 빼내 글을 직조하는 것이지요. 필경 사라진 내 머리통을, 그 흘러나가 버린 뇌수를 무언가로 채워 넣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아마도 그것이 내가 앓았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데 최근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글쓰기 기간을 보냈습니다. 불과 3개월 여 동안 세어보니 꽤 긴 논문 세 편을 포함해서 무려 열 편의 글을 썼습니다. 논문 한 편 쓰기에도 그리 여유롭지 못한 시간에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의 질이 형편없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요. 그 열 편의 마지막 것을 마치던 날, 나는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던 날입니다. 저녁 세미나를 마치고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반포대교를 건너 차를 몰고 있을 때 한 자극적인 충동이 나를 휩싸 안아 버렸습니다. 저 난간 밖으로 질주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러면 마치 새처럼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이 저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엔 나의 형편없는 글을 읽을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또 그런 글을 쓰는 혹독한 시간 중에 범했던 크고 작은 실수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갑니다. 그 모든 부끄러운 것들을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리고 내가, 내 몸둥이가 하늘로 치솟아 날아간다는 것, 그건 달콤한 자유의 향락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파괴함으로써 얻는 해방이자 구원의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생각이 다급한 불청객처럼 허겁지겁 다가옵니다. 어쩌면 죽은 뒤에 내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형식으로라도 존재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입니다. 죽었는데도 이 세상과의 소통의 끈이 남아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입니다. 그러면 내 글을 보며 조롱하는 이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내 행동으로 불쾌했을 이들의 마음을 읽어버릴 것입니다. 또 내 죽음 자체로 인해 슬퍼할 몇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자동차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걱정이 팔자인 나는 나를 파괴함으로써 누릴지도 모르는 짜릿한 쾌감을 포기하기로 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그 일이 있고난 며칠 후에 나는 그 오래된 친구를 만났고, 그는 내게 글재주 운운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별로 깊은 생각도 없이 한 말에 과민반응한 나는 그에게 그날의 체험을 변명하듯 털어놓았고, 그는 작가의 자살충동에 관한 어느 소설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졸렬한 글에 좌절한 나머지 심약해진 글쟁이가 흔히 체험하는 자기 파괴의 충동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대개 사람들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그런 글쟁이는 자기 글을 위해 혼신을 다할 만큼 자기와 사투를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단지 그는 졸렬한 글을 쓴 작가일 뿐이고, 그런 이유로 심약해진 심성이 벌인 한 판의 자기 도피적 상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요. 얼마 전 한 분이 내게 종말론에 관해 설교를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어떤 얘기를 할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 삶의 자그마한 동요의 물결을 일으킨 에피소드 하나가 안성마춤이라 생각되어 위에서 그 얘기를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날의 이야기를 종말론적 체험이라고 말 하려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체험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싶은 강렬한 내적 충동과 깊이 관련됩니다. 시간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기억을 정지시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것에 대한 회상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기억과 인과적 사슬로 엮인 무수한 예감들이 얽혀 있습니다. 가령 어린 시절의 화상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가 화롯불만 봐도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기억이 너무나 그(녀)를 고통스럽게 할 때, 그리고 이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때, 그(녀)는 가끔씩 종말적 상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단 하루’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에게 종말론적 상상을 유도하는 상투적인 질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안전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탈의 욕구’를 이야기합니다. 금지된 그것을 미친 듯이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로 종말적 체험입니다. 그날의 나도 그랬습니다. 나를 파괴하고 싶은 욕구는 내게 순간이나마 한없은 해방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불쾌감에 빠져들어야 했습니다. 왜냐면 다시 일상으로, 기억의 공간 속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러한 치명적인 일탈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곧 ‘단 하루’는 내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것입니다. 경험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금지된 그것이 허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지만, 끝내 그것을 할 수 없는 한계적 시공간 속에서 다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데 나의 오랜 친구는 내게 제법 쓸 만한 위로의 말을 남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작가의 자살충동은 그가 실행에 옮기지 못함으로써 그(녀)를 한층 성숙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종종 기독교인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종말론적 체험을 지속시키기 위해 일상에서 이탈하여 종말적 공동체 안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데 이것은 퇴행적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적 체험은 시간 밖의 비일상의 공간으로 그(녀)를 몰고 가지만, 그(녀)가 속한 종말적 공동체는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버리고 온 자녀가 떠오르고, 자신이 겪었던 불행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왜곡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종말적 체험은 억지로 지속시키는 게 아니라, 불청객처럼 일상에 다가와 일상을 무너트립니다. 아니 그런 상상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종말적 상상을 철저하게 밀어붙일 수 없습니다. 금방 다시 기억의 공간으로 복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잠시의 전복적 상상이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해방감을 안겨주기에, 그 순간의 구원체험은 일상을 견디고 일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내기 위한 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나는 어제 한 연구단체의 연례 심포지엄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세 편의 눈문 중 마지막으로 쓴 것을 발표했습니다. 한데 이 글에서 나는 안병무 선생의 글 한 편을 깊게 독해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1987년 1월말 혹은 2월초 즈음에 쓰인 ｢인권에 대한 신학적 조명｣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이 시기는 전두환 체제의 끝에 거의 다다라 최후의 발악을 하던 때이고, 그로 인한 고통의 작렬하듯 확산되던 때입니다. 또 그때는 선생의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글을 손수 쓰는 것이 거의 어려워지던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선생은 몹시 초조하지 않았을까요? 그 어간에 있었던 한 인텨뷰에서 ‘무엇을/누구를 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선생은 ‘혁명을 보고 싶소’라고 대답합니다. 종말적 상상입니다. 초조하기에 꿈꾸어보는 그런 상상 말입니다. 하여 ‘단 하루’만이라도 그것을 본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러나 선생은 ‘단 하루’도 그것을 만끽하지 못했습니다. 그 ‘단 하루’는 선생에게 주어진 현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선생은 다시 시간의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앞에서 언급한 선생의 글 ｢인권에 대한 신학적 조명｣은 바로 기억의 현장에서 벌이는 신학적 고투인 것입니다. 지난달의 제 하늘뜻나누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서 선생은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을 요약하면서 국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국민의 관점에서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데 글 속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른 생각이 끼어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시 말씀드린 것처럼, ‘(가해자) 국민 대 (피해자)국민’이라는 새로운 틀이 그것입니다. 한데 이러한 새로운 틀은 선생이 겪어보지 못한 세계, 이른바 민주화된 사회의 인권 문제에 관한 훌륭한 통찰입니다. 그러한 사고의 분열은 한 시대의 막바지에서 다른 시대를 바라보며 생각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분열된 의식의 흔적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선생이 20부 후반에 만든 첫 번째 잡지의 제목인 ‘야성(野聲)’이 떠올랐습니다. 선생은 아마도 그때부터 평생을 광야의 예언자처럼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광야의 예언자로서 옛 시대의 끝을 고발하고 새 시대의 새벽을 알리는 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이 한 시대의 끝과 다른 시대의 시작을, 그 속에서 있을 고통의 흔적을, 마치 예언처럼, 아니 아무도 얘기해보지 못한 야성처럼 선포한 것은 그의 의지 속이 아니라 의지 밖의 분열된 생각에서였던 것입니다. 종말적 상상은 야성이 되고 싶었던 그를 어느 날 문뜩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소망은 도둑처럼 다가와 그의 소망을 실현시켰던 것이지요. 퇴행적인 것이 아닌 아름다운 종말적 꿈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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