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7/06 (00:26) from 210.205.223.111' of 210.205.223.111' | Article Number : 1652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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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862 , Lines : 29 |
| 이웃의 조건(2007.7.1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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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조건 ❚ 함께 읽을 성서 구절: ｢루가복음｣ 10장 36절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만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몇 사람과는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며 연인이 되어 보다 깊은 삶을 나눈다. 무엇이 그네들과의 관계를 보다 깊게 하는 요인이었을까? 소소한 인연의 얽힘, 그리고 그것에 관한 애틋한 기억의 방식, 그것이 중요하겠다. 한데 그렇기만 할까? 우리의 체험 밖에 있는 무엇이 가깝게 하기의 조건이 되지는 않았을까? 선험적인 무엇이 거리두기의 조건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가깝게 하기와 거리두기의 선험적 조건, 즉 이웃의 선험적 조건이 삶에 끼어들어, 체험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곧 우리는 누구와 만날 때, 그(녀)들을 겪기 전에 미리 주어진 조건들에 의해 먼저 선호를 너무 결정적으로 정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경험이 배제된 선호의 선험적 조건은 통상 범주적(categorial)이다. 인종, 학력, 부(富), 직업, 성별 등등. 각 범주에 따라 각인된 전형성이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하여 이 기억은 관계의 얽힘을 미리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크래쉬>는 이러한 범주적인 이웃의 조건들로 인해 관계의 장벽들이 너무 높게 설치된 사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상호폭력의 위기를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사회는 상호폭력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제도를 발전시킨다. 외형상 그 제도는 범주적 이해를 축소하려는 사회적 의지의 산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도리어 이러한 제도들이 또 다른 범주적 전쟁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래쉬>는 그러한 복잡한 갈등의 양상을 다층적 사람들의 엇갈림과 얽힘을 통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래에서는 그중 한 등장인물에만 집중해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논해보고자 한다. LA의 지방검사 릭은 백인임에도 소수인종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진보적 정치인이다. 알다시피 미국사회에서 소수인종들은 백인에 비해 사회적으로 너무 불리한 제도들 속에 살고 있다. 그 결과 백인에 비해 훨씬 더 폭력적이고 범죄적이다. 영화의 대사에 따르면 백인에 비해 흑인의 범죄율은 8배나 된다. 또한 마약이나 술 등에 대한 의존성이 월등히 높다. 흑인 사회의 이러한 열등함은 물론 환경에서 유래하였고 그 환경을 재생산하는 사회체계에 기인하지만, 또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전략적 행동 하나하나가 저 불균등한 환경 및 체계를 더욱 강화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악순환이다. 이 고약한 고리를 끊을 길이 정상적인 경쟁 조건 속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릭은 소수 인종에게 부분적으로라도 다소 유리한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만 저 악순환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인 듯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권위의 허용한도 내에서 유색인들을 위한 다소 편파적인 기회의 공간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인종 호혜적 입장은 그의 정치적 지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유색인종의 폭넓은 지지를 통해 지방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종간의 상호폭력을 관리하려는 제도를 잘 활용하면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를 반대하는 이들도 스스로가 인종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터이니, 릭의 입장은 미국 사회의 공공적 담론 지형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과대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반대파가 릭과 같은 이를 비판하려면 언제나 인종주의적 혐의를 받지 않는 방식의 적절한 명분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데 최근 벌어진 한 사건은 반대파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해줄 여지가 많았다. 마약 수사국의 한 백인 경찰이 다른 부서의 흑인 경찰을 사실한 사건이다. 사살된 흑인 경찰은 마약거래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니 백인 형사의 총기남발은 정당한 업무수행의 일환으로 판단할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파들은 이것을 명분삼아 흑인 경찰 일반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강화시키려 할 것이고, 흑인에 대해 우호적인 릭의 정치적 기반을 마구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러면 여론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릭의 비서진은 이 심상치 않은 사태를 헤쳐 나가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실은 그 백인 형사가 매우 광적인 인종주의자로 판단할 소지가 없지 않았다. 그는 마약수사관으로서 이번 사건을 포함해서 흑인만 세 명이나 사살한 경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 사건의 담당수사관인 그레이엄이 지방검사에게 소환된다. 릭의 비서진은 그레이엄이 흑인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가 사살된 흑인 경찰의 마약거래의 증거를 은폐하고, 백인 형사의 인종주의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수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레이엄은 인종주의에는 혐오적이었지만, 흑인의 일탈행위에 그리 동정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전과자인 자기 동생에 대해서조차 매우 불편해하는 사람인 듯하다. 그는 히스패닉 여성과 섹스하면서도 어머니에게 백인 여성과 섹스하고 있다고 말할 만큼, 흑인 공동체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가족과 동생에게 소흘히 했던 것은 아마도 흑인식의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백인보다 더욱 백인답게, 아니 ‘공명정대한’ 백인스럽게 일하여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앞섰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릭의 비서진은 그레이엄을 회유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하고 있었다. 전과 2범인 동생이 자동차 절도 혐의자로 또 한 번 기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거래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면 이른바 ‘삼진아웃’ 제도에 의해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모순적 존재위치가 드러난다. 동생을 돌봐달라고 끊임없이 간청하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타협한다. 그 백인 경찰을 광적인 인종주의자로 처리함으로써 죽은 흑인 경찰을 무고한 희생자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레이엄은 어머니와 화해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릭은 정치적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흑인 공동체는 자괴감을 가지게 될 하나의 요소를 제거하는 셈이 된다. 자신만 눈감으면 이 모든 사람들, 자기와 이웃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저 백인 형사는 이미 세 명의 흑인을 살해했으니 처벌받는 게 그리 부당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필경 그레이엄은 이렇게 자기를 정당화시켰을 것이다. 그레이엄이라는 <크래쉬>의 한 등장인물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대략 이렇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나게 묘사된 문제제기는, 바로 이 에피소드가 잘 말하고 있듯이, ‘실제의 이웃’이 만들어지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연계된 신념의 동맹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각자의 이해관계가 모호한 상황에 끼어들어 선택적인 동맹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동맹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포장하는 사후과정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후 포장은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정치적 올바름의 체계를 구축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가령 흑인은 항상 피해자이고, 백인은 항상 가해자라는 도식이 그렇다. 여자는 항상 피해자이고, 남자는 항상 가해자라는 도식 또한 마찬가지다. 제3세계는 항상 피해자이고, 제1세계는 항상 가해자라는 도식 물론 예외가 아니다. <크래쉬>의 도처에서 볼 수 있듯이 흑인을 포함한 소수종족은 일반적으로 피해자임에 틀림없지만, 또한 기회의 공간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가해자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문제제기를 오늘 우리의 맥락에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수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내게 가장 떠오른 것은, 지난해에 보스톤과 뉴욕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의제화시킨 요코 윗킨스의 자전소설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일련의 파동에 관한 것이다. 이 소설은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군대가 철수해버린 이후, 11세 소녀인 저자와 그녀의 가족이 함경북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의 역경을 그리고 있다. 내용 속에 담긴 몇 가지 사실이 과장되거나 조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이 문제로 제기되어 논란에 휩싸여버렸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일본 패전 이후 1946년 5월까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남겨진 일본인 민간인이 대략 270만 명이나 됐다고 하고, 귀환 과정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수의 여성이 강간의 피해자였다는 견해도 있다. 통계치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본인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때 가해자가 주로 중국인이나 조선인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요코 이야기가 이러한 역폭력의 위험을 헤치고 한 무력한 일본인 가족이 가까스로 귀환하는 과정이 다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사적 진실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방적인 피해자 의식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한데 이 소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반응은 가해자 대 피해자에 대한 단순한 도식이 조금도 문제로 성찰되지 않은 채 전개되었다. 하긴 식민제국의 피해자라는 자의식으로 동시대의 모든 폭력과 고통을 환원시켜버렸으니,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사악한 자들이 언제 다시 제국의 발톱을 드러낼지 모르니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그 외의 많은 문제들을 들춰내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동화시켜 왔던가. 적 앞에서 우리의 분열상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마땅하다고 우리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선한 우리와 사악한 저들’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당시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민족의식의 주조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분법에 준해서 구성된 정치적 올바름의 틀이 바로 우리의 민족의식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식의 틀이 이웃에 관한 선험적 조건 위에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가 요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역사적 교훈에 조금만 더 진지해질 수 있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코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리 경험하기 전에 이웃의 조건을 전제하면서 만남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잘 알려진,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은 ‘적’이라는 편견이 이웃의 선험적 기준이 된 사회에서 예수의 비유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인 사제나 레위인보다도 한 사마리아인이, 그것도 장사치가 강도 만나 죽을 번한 한 유대인에게 더 유의미한 이웃일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선험적 편견을 버리는 삶의 태도가 바로 예수 신앙의 요체임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굳어버린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이 타인의 이웃이 되고자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예전에 참여하고 기부금을 내고 조직 충성심을 보이는 것보다 더욱 핵심적인 신앙의 내용이라는 것을 뜻한다. (올빼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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