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11/19 (12:11) from 122.46.159.34' of 122.46.159.34' | Article Number : 1657 |
올빼미
|
Access : 8711 , Lines : 28 |
|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2007.11.18하늘뜻나누기 원고) |
|---|
|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5장 46~47절 독재체제 아래서 인권은 시민권과 갈등적이지 않습니다. 체제에 의해 유린당하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곧 인권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한데 ‘민주화’된 사회는 인권과 시민권 사이의 결함이 생깁니다. 시민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고 시민 자신이 체제를 형성하는 주체로서 부상함으로써 민주제는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민주적 체제에서 인권의 문제는 시민적 권리에서 소외된 존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한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 민주제 사회의 인권과 시민권에 관한 논의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계의 인권 담론은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화 20년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자는 논의가 분분했던 2007년 현재까지도 말입니다. 하긴 올해 기독교는, 소위 ‘기독교 인권 그룹’이라고 불리는 진보적 기독교계는 민주화 20년을 기념하는 데만 온통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지요. 기독교 보수파들이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반성 없이 기념하는 것으로만 일관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양자 모두 대선이 있는 해인 올해를 정치적 기득권을 확보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기억’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이겠지요. 이른바 기억의 정치’를 기념비 세우기 쯤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과거를 현재의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사용하는 태도입니다.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이것은 꽤나 신랄한 자기 비판적 물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전태일을 새삼 기억함으로써, 전태일이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의 고통을, 그 정신을 망각한 채 살아온 우리가 고통 없이 그를 위한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명하는 데 전태일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파르티잔 출신의 어떤 분은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전후 각 세력이 승자들의 기념비 세우기에 몰두하던 시절에 비판의 각을 세우며 외쳤다고 합니다. 저도 잡지를 만들던 시절에, 당시 노무현 정부가 집권을 시작하던 무렵, 정권 인수위원회가 돌아가던 그 시절에 책 한 권을 만들면서 책의 제목을, 그 파르티잔 출신의 저 이름 없는 분의 말을 빌어서 <탈영자들의 기념비>라고 붙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민주화 시대의 인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참여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시민적 권리를 위한 제도화를 새 정부가 정권의 핵심으로 선전하던 시절에, 그러한 시민적 참여의 권리가 비시민의 참여 배제의 양상으로 제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 끝자락에 우리는 또 한번 바로 이러한 탈영자들의 배제를 법제화하려는 우리 시대의 민주화의 현 주소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민주화된 사회답게 그 이름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지난주에 교회 홈페이지에 한 분이 정보를 주었고, 그것을 정리해서 프린트물로 지난주 예배 때 나눠드리 서명을 받기도 했으며, 오늘 제가 이야기한 뒤에 다른 분이 다시 잘 정리해서 알려드릴 그 이 법률안입니다. 법무부가 발의한 이 법률안의 이름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인데, 인권위원회나 법무부가 예고한 원안과는 달리, 국회에 제출된 안에는 8개 조항이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7개 조항은 이른바 우리 시대의 탈영자들입니다. 반면 차별금지법의 주된 수혜자는 시민이고요. 요컨대 결과적으로 이 법률안은, 시민의 기본권을 위해 입법안이 마련된 것인 반면, 비시민의 배제를 제도화하는 법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한기총, 기독교의원연맹 등 보수적 기독교계가 나서서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고 합니다. 즉 우리 사회의 보수파가 개입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의 시민적 권리가 옹호되고 비시민적 권리의 박탈이 정당화되는 법률안이 최종 제출되게 된 것입니다. 한데 시민의 기본권 보장을 선언하는 법률이 소위 인권법의 개념으로 제시되는 것은 민주주의 20년을 성찰하는 사회의 그것으로는 너무 시대착오적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민권=인권’이라는 생각은 그것은 독재시절의 관점이지 민주주의 20년을 논하는 사회의 인식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난 20년간 승자들의 기념비 세우기에만 몰두했던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민주주의적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요컨대 한기총 같은 보수주의적 기독교계의 압력이 주효하기는 했지만, 민주제사회 다운 인권의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지난 20년 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했다는 자기들의 승전가를 반복해서 부르는 데만 치중해왔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생각도 거기에서 그다지 다른 인권 의식을 갖추지 못한 결과라는 얘깁니다. 오직 우리 사회의 소수 일각에서만 인권을 ‘탈영자들의 기념비’라는 문제의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민주제 사회의 인권 개념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지 않았고, 여전히 과거의 유물인 권위주의 시대의 생각을 인권에 관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오늘의 예배 취지를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되새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로 민주제 사회의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을 상기하고 그러한 생각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 이번 차별금지법 사태를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예배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길었군요. 실은 제가 맡은 얘기는 성서 속의 인권에 관한 것입니다. 이 예배도 그렇거니와 저희 연구소도 이 법률안 사태를 문제제기하기로 해서, 지난 한 주일간 성서는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 비교적 지속적인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처음엔 삭제된 8개 조항을 하나하나 검토할까 생각해보았지요. 한데 성서는 절대로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 텍스트가 아니기에, 그건 용이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배제된 이의 인권을 옹호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예수를 주목하고, 그분의 인권에 관한 생각의 기조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분도 시대의 자녀인지라, 시대의 편견을 돌파하는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주면서도 종종 시대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기에, 인권에 관련된 그분의 말 하나하나를 통해 8개 조항을 다루는 것보다는 생각의 기조를 읽어내는 게 더욱 유용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공동체가 기억하는 예수의 인권에 관한 생각의 기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 ‘친하고 싶은 사람과만 나눔을 갖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태복음｣은 전후 유대사회의 통합이 원리주의적 유대주의를 통해 강력하게 추진되던 상황에서 유대회당의 폭력에 심하게 당한 이들의 상처로부터 출발한 텍스트입니다. 결국 회당에서 축출당한 이들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했습니다. 한데 이들이 입지한 지역은 갈릴래아 이북, 시리아 남부에 있는 이방 사회입니다. 전쟁 당시 로마군의 진군루트에 있어 심하게 징병, 징용, 징발을 당하면서 얻은 뼈저린 고통이 고스란히 남은 지역이지요. 해서 그 시대 그 지역은 유대이에 대한 원한이 깊게 아로새겨져 있었던 곳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회당이라는 로마가 공인한 공동체의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사람들, 이른바 유대사회의 탈영자들, 그들이 바로 마태공동체의 구성원인 것입니다. 이중 삼중의 폭력에 시달리던 이들, 그래서 그들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는 이들입니다. 온통 외부가 적으로 들끓는 가운데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상처만 남은 마음은 그대로 화합하기엔 너무 피폐해 있었고 분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폐쇄적이고 공격적이었지요. 이때 지도자는 예수님을 상기시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이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이도 사랑해야 한다고’, ‘나누고 싶은 이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없는 이와도 나눠야 한다고.’ 여기서 이 말은 강자인 로마나 회당 같은 폭력의 가해자를 용납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텍스트는 그네들에 대한 날카로운 증오를 도처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 외부의 가해자들은 너무 강합니다.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복수가 가해자의 강한 힘 때문에 실패할 때, 그것은 안을 향하게 마련입니다. 내부의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세관원’ 같은 이가 그런 대상입니다. 자기들보다 못한 자, 그네들의 현존재가 공동체를 사랑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공격받아 마당하다는 생각, 그러한 편견에 대해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을 빌어서 말하는 공동체의 지도자는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하라고, 나눌 수 없는 이와 나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권은 항상 편견과 견고하게 들러붙어 있는 차별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는 늘 저 견고한 편견을 이유로 들면서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하는 인권은 그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을 사랑하고 나누는 대상으로 삼는 것, 바로 그것이 인권임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예수가 말하는 인권의 핵심기조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올빼미) |
|